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아프리카는 나에게 아주 먼 나라였다. 국제 뉴스나 자연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던 아프리카는 마치 외계의 행성을 떠올리는 것처럼 나의 일상과는 무관하다고 생각될 만큼 동떨어진 공간이었다. 그만큼이나 지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곳이었기에 아프리카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은 나에게는 마치 인류가 달 표면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만큼이나 생소하고 신비로웠다. 내가 서있는 곳이 아프리카라니.
어느 날 갑자기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아프리카로 날아간 것은 아니었다. 사실 아프리카에 도착하기 전에 나는 이미 집을 떠난 지 1년이 넘은 채로 아내와 함께 남미 대륙을 방황하고 있었고, 긴 여정의 다음 목적지로 아프리카로 결정했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지구 반대쪽 남미에 있다 보니 아프리카가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별다른 준비나 조사도 없이 자연스럽게 아프리카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프리카 여행이 시작되었다.
남미에서 대서양만 건너면 아프리카 대륙이기에 오고 가는 항공편이 꽤 많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브라질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으로 가는 항공편은 그리 많지 않았고, 저렴하지도 않았다. 수개월 전부터 항공권 가격을 모니터링하다가 결국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거쳐서 케이프타운으로 향하는 항공권을 구할 수 있었다. 저렴한 경유 항공편이었기에 아디스아바바에 늦은 저녁에 도착해서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연결되는 항공편을 탈 수 있는 노선이었다.
비행기가 아디스아바바 상공을 지나 공항으로 내려앉는 순간까지 창밖에는 화려한 불빛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노란색의 백열등이 드문드문 보이는 작은 마을에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 온통 검은빛의 흑인들 가운데 유독 우리 부부만이 도드라져 보였다. 그래서 였을까.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공항 검색대를 통해서 나가지 못하고 현지 공항경찰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갔다. 허름한 소파가 놓여있는 작은 조사실에는 이미 몇몇의 사람들이 불쾌한 표정을 하고 앉아있었다. 마치 범죄자를 취조하는 듯한 분위기가 몹시 불쾌하기도 했지만, 화장실을 사용하는 순간까지도 따라와서 감시하는 삼엄한 분위기에 정당한 항의를 하기도 어려웠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잠시 기다리라는 대답만 돌아왔기에 하염없이 기다리던 중에 오해는 풀렸다. 같이 조사실에 있던 다른 현지인들은 진짜 범죄자들이었고, 우리는 항공사 측에서 공항경찰에게 요청한 보호대상이라고 했다. 항공사에서는 다음날 오전에 출발하는 항공편을 타기까지 대기하는 동안 쉴 수 있는 호텔까지 제공해 줬지만, 안내를 담당한 경찰의 실수로 범죄 조사실로 가게 된 것이었다. 여행 중에 가끔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날 때가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별일 아닌 일인데도 그 순간에는 눈 앞이 깜깜해지며 바보가 돼버리고는 한다.
잠시 공항 로비에서 기다리다가 하얀색 승합차를 타고 항공사에서 잡아 준 호텔로 향했다. 도무지 여기가 어딘지 가늠할 수도 없는 어두컴컴한 거리를 달리는 동안 마음속에는 또다시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긴 여행 중에 한 번도 대기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항공사에서 숙박을 제공해 준 적이 없었는데 혹시 숙박비를 내지 않으면 돌려보내 주지 않는다는 등의 사기는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그러는 와중에 매캐한 연기가 자욱한 거리를 뚫고 공사 현장으로 보이는 난잡한 길로 차가 드러서자 덜컥 겁이 났다. 막 운전기사에게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물어보려던 순간, 그 파헤쳐진 길 끝에 거짓말처럼 번듯한 호텔이 나타났다. 심지어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따뜻한 저녁 식사가 제공되었고, 우리가 머물 방은 여행 중에 머물던 어떤 숙소보다도 넓고 깨끗했다. 아프리카 여행은 시작부터 반전의 연속이었다.
예상치도 못한 서비스를 받고 다음날 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날이 밝자 이제야 주변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항에서 오던 길이 험했던 이유는 공항 주변 지역이 온통 공사 중인 까닭이었다. 이제 막 개발을 시작하는 신도시처럼 여기저기 건물이 올라가고 도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대부분의 공사 현장에는 중국어로 된 간판들이 붙어있었다. 아프리카 시장에 중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다는 뉴스만 들었는데 생각보다 꽤 활발한 분위기였다. 공항에 도착하여 무사히 케이프타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아프리카 여행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지난밤에 겪었던 심경의 변화만으로도 앞으로도 험난한 여정이 이어질 것이 예상되었다.
혹시나 창밖으로 사바나의 초원이 보이지는 않을까 연신 내려다보던 중에 비행기는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끝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도착했다. 케이프타운은 에타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백인의 비율이 꽤 높은 영어 문화권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왠지 선진 문명보다는 자연에 더 가까울 거라는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공항에서부터 아프리카에 대한 그 선입견이 와장창 깨졌다. 1년을 넘게 여행을 하면서 매번 공항에서 도시로 들어갈 때는 가장 저렴한 버스를 탔었는데, 케이프타운에서 처음으로 미국에서도 안 썼던 우버를 이용하게 되었다. 처음 사용해보는 우버가 아프리카에서 일 줄이야! 터치 몇 번으로 만난 앳된 우버 기사는 낯선 땅이 신기하기만 한 우리 부부를 태우고 케이프타운 시내로 향했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창 밖으로 보이는 고층 빌딩 숲과 깨끗하게 정돈된 주택가보다 더 우리를 놀라게 했던 것은 교통정체였다. 그동안 아프리카를 자연 다큐멘터리로만 만났던 탓일까?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신용카드로 결제한 우버택시를 타고 빌딩 숲을 가로질러 가면서 교통정체를 겪으면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아프리카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리셋해야 했다.
문득 가보지 않은 곳, 해보지 않을 일들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포기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기술의 발달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더 많아짐에 따라 이런저런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조합해보고 지레짐작으로 판단을 내리는 일이 더 쉬워졌다. 직접 겪지 않고도 미리 안다고 자부했던 일들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에 대해서 여행 중에 참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이라는 단어의 한자어인 旅나그네 여, 行행할 행의 뜻처럼 여행은 직접 행하면서 생각만 하던 좁은 식견을 깨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아프리카에서 뜻밖의 교통체증을 경험하며 한참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숙소는 케이프타운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해변가에 있는 아파트였다. 택시에서 내려 어렵지 않게 찾아간 숙소에서 집주인 크리스틴을 만날 수 있었다. 귀금속 쇼핑몰 웹디자이너라고 자신을 소개한 크리스틴은 자신의 남는 방에 여행자들에게 빌려주며 늘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생활하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놓자 안정된 마음이 들었다. 계속 이어지는 이동에 피로감이 느껴졌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아프리카 여행이 시작된다 생각하니 설렜다. 드디어 첫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