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 Mar 20. 2018

2. 여기가 정말 아프리카?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안녕? 좋은 아침이야. 나는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가는 중이야. 아파트 정문에서 길을 건너 직진하면 해변을 따라 멋진 공원이 나올 거야. 주변에 괜찮은 카페가 있으니까. 간단한 식사를 하기도 좋을 거야. 여기 교통카드를 놓고 갈 테니 시내에 나갈 일이 있으면 필요한 만큼 충전해서 사용해. 좋은 하루 보내!'


 느지막이 일어나서 거실로 가니 크리스틴이 출근하면서 남겨 놓은 메모를 볼 수 있었다. 크리스틴의 친절한 메모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해변 공원과 케이프 타운의 시내가 몹시 궁금해졌다. 어제는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숙소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기에 창 밖으로 멀리 보이는 바다를 보며 해변가에 자리 잡은 아파트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주변에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는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우리는 바쁘게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관광객이 아니었지만 갑작스러운 설렘에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서서 크리스틴이 알려준 해변 공원으로 향했다.


 숙소 앞의 큰길을 건너 깔끔하게 정돈된 주택가를 지나자 갑자기 바다에 반사되는 쨍한 햇빛이 눈을 간지럽혔다. 주변을 돌아보니 바닷바람이 거세게 부는 해변을 따라 짙푸른 잔디 공원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이란 이런 것이었다. 서늘한 바람과 따뜻한 햇볕, 평화로운 풍경. 벌써부터 케이프타운이 마음에 쏙 들기 시작했다. 도무지 아프리카의 한 자락이라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그동안 아프리카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잘못되었거나, 이곳만 유독 특별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케이프타운에 머무는 내내 그동안 나의 식견이 대단히 좁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케이프타운의 Sea point 지역은 해변을 따라 공원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크리스틴의 아파트는 도심까지 걷기에는 조금 멀지만 차로는 순식간인 애매한 거리에 있었다. 우리 부부는 여느 때처럼 걷기를 선택했다. 도심까지는 해변 공원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이어져 있었기에 아름다운 바다 풍경 속을 걷는 길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서 여기까지 오는 긴 여행 중에 바다를 볼 일이 참 많았었다. 거의 한 달을 넘게 배를 타기도 했으니 바다를 바라보는 일은 새삼 놀라운 풍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바다를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편안함과 설렘의 감정을 동시에 주었다. 잔잔한 수평선의 평화로움과 저 넘어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바다는 항상 신비로운 존재였다.


 한눈에는 푸른 바다를 다른 눈에는 녹색의 초원을 담은 채로 한참을 걷자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열렸었던 축구장이 나타났다. 바다를 향해 나가가는 배처럼 보이는 거대한 경기장에서 바다내음을 느끼면서 경기를 했을 선수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활기가 느껴졌다. 내가 선수가 된 듯한 기분으로 축구장을 지나 워터프런트 지역에 도착하자 또다시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깨끗하게 정돈된 항구는 현대식 대형 쇼핑몰로 둘러싸여 있고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어울려 축제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어느 곳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워터 브런트에 데리고 와서 안대를 벗긴다면 누구라도 유럽의 해변 휴양도시를 떠올릴 것이라 생각될 정도로 완벽하게 개발된 곳이었다. 간혹 기념품 가게에서 보이는 전통 공예품 만이 이곳이 아프리카 대륙의 일부임을 떠올리게 해줄 뿐이었다.


옛 항구에 거대한 현대식 쇼핑몰이 자리잡은 워터프런트 지역


 사실 여행 중에 만나는 현대식 쇼핑몰이 반가울 때도 있지만 나에게는 그다지 흥미로운 장소는 아니었다. 자본주의의 손길이 듬뿍 닿은 관광지는 어디나 비슷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다국적 브랜드의 의류점, 전 세계 어딜 가도 같은 맛을 내어주는 패스트푸드점, 모양만 조금씩 달라졌을 뿐 중국에서 만들어진 물건들이 가득한 기념품 가게. 나의 상상 속에 마지막 미지의 공간이었던 아프리카에서도 잘 꾸며진 쇼핑몰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배신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그들에게도 편리한 생활에 대한 욕구가 있기에 나와 같은 여행자의 낭만을 위해 마냥 개발을 멈춘 채로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동남아시아나 남미를 여행하면서 이들이 언제라도 지금 같은 모습을 지켜줬으면 하고 바랐던 것이 나그네의 주제넘은 이기심이 아니었나 싶었다. 기대와 다른 모습의 화려한 쇼핑몰도 그곳의 일부인 것이다.


  워터프런트의 화려한 쇼핑 구역을 거닐던 중에 멀리 귀엽게 생긴 동상들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동상의 주인공들은 만화 속의 캐릭터들이 아니라 남아공의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힘썼던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이었다. 그 유명했던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기 위해 싸웠던 분들로 앨버트 루툴리(Albert Lutuli),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 프레드릭 클레르크(FW de Klerk) 그리고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의 동상이 나란히 서 있었다. 동상들을 보고서야 이곳이 인종 차별의 아픔이 있었던 곳임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폐지된 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지금의 이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당장 워터프런트만 둘러보아도 일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흑인들이고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백인었다. 하지만 일부의 모습으로 전체를 일반화하기보다는, 앞으로 이어질 여행을 통해서 차차 보고 듣고 느끼게 될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들


 날씨가 무척 맑았던 덕분에 워터프런트에서 케이프타운의 상징이 테이블 마운틴이 한눈에 보였다. 거대한 병풍처럼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웅장한 산에 당장이라도 올라가 보고 싶었지만, 일정의 여유가 많았기에 무리하지 않고, 내일은 케이프타운의 자연을 만나보리라 다짐하며 크리스틴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1. 첫 발을 내딛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