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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근 Jul 01. 2024

지방대 교수의 하루

월요일

아침 여섯시. 벨소리 없이도 잠에서 깬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는 한 주가 시작되는 날이라 도로에는 활기가 돌기도 하고,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피곤해 보이기도 한다. 교통체증도 다른 날보다 더 심한 느낌이 든다. 아내의 출근을 돕기 위해 분주히 준비하고 집을 나선다. 아내를 ktx역에 내려주는 시각은 아침 일곱시. 연구실로 향한다.


아직 학생들이 도착하기 전인 오전 일곱시의 학교 전경은 참 한적하다. 학교가 외진 곳에 있어서 그런가, 공기도 좋고 새소리도 들린다. 일찍 오면 연구실 바로 앞에 주차할 수 있다. 연구실에 들어가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자리를 정돈하고 커피를 한 잔 내린다. 한 때 커피를 네 다섯 잔씩 먹던 커피중독자였기에, 건강을 생각해 디카페인 원두로 바꿔 딱 한 잔만 마시기로 한다. 하루에 딱 한 잔만 허락되는 커피이다 보니 기분이 좋다. 향을 한 번 맡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시계는 일곱시 이십분.

오늘은 수업이 없는 날이다. 오전 열한 시까지가 가장 집중력이 높은 시간이므로 이 시간에 주로 논문을 쓰거나 글을 쓴다. 논문들을 찾아보며 글을 쓰고, 기존에 떠올랐던 아이디어로 연구할 수 있는 주제가 있는지를 살펴본다.


나는 사회과학의 한 분야인 교육학, 그 중에서도 교육측정 평가를 전공하고 지금 학교에서도 그것을 가르치고 있다.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는 제한적이다. 사람을 상대로 실험하는 것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본인이 실험 대상임을 알게 되면 평소와 다른 형태의 응답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실험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여러 연구들을 읽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연구는 무엇인지,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다양하게 아이디어를 내본다. 그 중 일부는 정제해서 잘 다듬은 뒤 논문으로 출판할 수 있게 되지만,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사장된다. 이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아이디어인지 고민하고 글로 옮겨보는 것이 오전 시간의 할 일이다.


가끔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하고 왔다갔다 하면서 계속 조금씩 글을 쓰고 발전시켜 본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열한 시, 점심 때가 되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부터는 아침을 먹지 않았다. 하루에 두 끼만 먹는데도 왜 이렇게 살이 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열한 시 반에 점심을 먹기 위해 열한 시에 연구실을 나선다. 우리 학교 교정은 넓고 아름다운 편이다. 슬슬 한 바퀴 돌면서 산책을 한다. 밥이 나오는 열한 시 반에 맞춰 교직원 식당에 간다.


오늘 점심 메뉴는 무엇일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계단을 오른다. 흘끗 보니 대박이다. 제육볶음! 혹여 누구를 마주칠까 제일 구석진 자리에 가서 입구를 등지고 앉아 혼자 밥을 먹는다. 나는 혼밥이 익숙하다. 장교로 군대생활 할 때에도 복무기간 대부분 크루근무를 했다. 크루근무는 업무의 특성상 자리를 24시간 지켜야 하는 경우에 하는 근무 형태이다. 보통 6시간 근무를 서고 18시간 휴식을 한 뒤 다시 6시간 근무하는 식이다. 이러한 근무체계이다 보니 남들이 일할 때 자거나 쉬어야 하고, 남들이 잘 때 일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 때부터 혼밥이 익숙해졌고, 패밀리레스토랑까지 혼자 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젊기에 빠르게 밥을 먹는 편이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흘끔흘끔 보며 혼밥을 한다. 10분만에 식사가 끝난다.


열한 시 사십오 분. 식당을 내려와 학교를 다시 한 바퀴 돈다. 식후 30분 정도 산책을 하면 혈당관리에 좋다고 한다.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니긴 하지만, 혈당 관리를 위해 학교를 한 바퀴 걷는다. 연구실에 돌아오니 열두 시 반이다.


열두 시 반부터 두시는 가장 집중력이 낮은 시기다. 생산성이 가장 낮기 때문에 별로 힘이 안 드는 일을 한다. 결재를 하거나, 메일을 확인하거나, 수업자료를 업로드 하거나 과제를 올려둔다. 때론 유튜브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밀린 웹소설이나 웹툰이 있는지 확인하고 이 때 본다. 졸리면 자기도 한다.


오후 두 시부터 다섯 시까지는 집중력이 중간 정도 된다. 이 때는 주로 찾아놓은 논문을 읽거나 책을 읽는다. 내일 있을 수업을 준비하며 수업자료를 살펴보기도 한다. 사회과학 관련된 책들을 좋아해서 이것 저것 읽는다. 요즘은 유명 자기계발 유튜버들이 이 책들을 소개하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자기계발 신봉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왠지 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을 읽을 때는 기록하며 읽는다. 한 번만 읽어서는 내용이 잘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어차피 양을 많이 읽는 것보다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읽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다섯 시가 다가올 무렵에는 보던 책들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다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 교수 테니스회가 있는 날이다. 학교 교수님들과 모여 테니스를 친다. 배운지는 1년 정도 됐는데 실력은 여전히 고만고만하다. 다른 교수님들은 다들 구력이 수 십년이라고 하니 당연히 상대가 안 된다. 대학 동기인 김교수님을 만나서 둘이 단식을 친다. 같은 대학을 나오고, 테니스를 배운 시기도 비슷하고, 임용된 시기도 비슷해서 자주 만나서 밥도 먹고 테니스도 친다. 오늘은 1승 3패 했다. 끝나고 다같이 칼국수 집에 가서 김치찌개를 먹었다. 굳이 왜 칼국수 집에 와서 김치찌개를 먹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주린 배를 채우고 나니 노곤하게 잠이 온다.


아내를 태우러 ktx역으로 향한다. 아내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 직원이다. 아내의 학교에서는 직원들 저녁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데, 거기서 저녁을 먹고 왔다. 반갑게 아내와 인사하고 집으로 간다. 이야기도 좀 나누고, 티비도 좀 본다.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스타 한 판 고?”     


제수씨에게 허락을 얻었나 보다. 5판 3선승 만원 내기 게임을 시작한다. 첫 판을 지고 나니 약이 오르기 시작하고 연달아 두 번째 판도 진다. 화가 난 나머지 주먹으로 키보드를 내려친다.      


\\\===]\\\\\\\\\\\     


누른 적 없는 키가 계속 입력되어 게임에 방해 된다. 결국 내리 세 판을 지고 만다. 동생에겐 욕설이 담긴 카톡을 보내고 돈은 안 보낸다. 아내가 한심하게 쳐다본다.      


“그럴거면 게임을 왜 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어본다. 나도 이해가 안 되는 질문이다. 이럴려고 게임을 하는 것이다. 아내와 밖에 나가서 한 바퀴 산책을 한다. 아파트 조경이 잘 되어 있고 단지가 커서 한 바퀴 도는데 20분 이상 소요된다. 한 바퀴 걷고 들어오면서 맥주를 하나씩 사든다. 집에 돌아와 아내와 맥주를 한 잔씩 하고 눕는다.


열한 시. 잘 시간인데 웹툰이 업데이트 되는 시간이다. 이것만 보고 자야지 하다가 또 웹툰이 늘어난다. 열두 시, 이제는 정말 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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