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명근 Jul 04. 2024

지방대 교수의 하루 (3)

수요일

수요일     


여느 때처럼 여섯시에 일어나서 씻고 학교로 향한다. 아내를 안 태워다 줘도 되므로 조금 더 일찍 도착했다. 오늘은 오전 열한 시에 센터 회의가 있는 날이므로, 오전에 좀 더 힘주어 공부해 보고자 노력한다. 사실 힘줘서 공부한다고 더 잘된다고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해본다. 별 성과는 없었다. 다른 교수님들의 논문도 읽어보고 글도 써보고 정리도 한다. 벌써 열시 반이다. 회의자료를 읽어보고 센터에 회의하러 간다.


센터에는 두 분의 연구원 선생님이 계신다. 연간 업무 계획에 따라 어떻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지를 보고하고, 의사결정이 필요한 것에 대해 질문하거나, 문의사항 중 잘 모르는 경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물어보신다. 내 선에서 의사결정 할 수 있는 것들은 의사결정을 하고 나도 위에 물어봐야 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정리해서 보고자료를 준비해 달라고 한다.


열한 시 사십분쯤 회의를 마치고 선생님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간다. 차 타고 20분 정도 나가면 냉면집이 있다. 냉면집에서 온면을 시켜 먹는다. 냉면집에서 온면이라니 좀 웃기긴 하지만, 맛있게 먹고 선생님들과 수다를 떤다. 남들과 대화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대화 하는 것이 즐겁다. 커피숍에서 커피 하나씩 사들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오늘은 한시 반부터 통계 수업이 있는 날이다. 공학관 4층에서 수업이 있는데, 공학관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계단 오르는 것이 심장에 좋다는데, 생각하며 두 칸씩 올라간다. 확실히 공학관이라 그런지 짧은 머리의 남학생들이 많다. 


수업을 시작한다. 출석을 부르고 강의자료를 띄워놓고 수업을 한다. 회심의 일격을 날린다.     

“여러분도 이런 교수들 보면 뚝배기 부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오늘은 아무도 웃지 않는다. 뭐지? 어디서 잘못된 거지? 같은 유머인데도 이 반에선 안 통한다. 뚝배기를 부순다는 것이 머리통을 깨버리고 싶다는 너무 무시무시한 표현이라 그런가? 얼굴이 화끈거리고 수업을 계속한다. 50분 수업을 한 뒤 10분 쉬는 시간이다. 앞에서 수업을 잘 듣는 여학생에게 물어본다.     


“아까.. 그 뚝배기 얘기 재미 없었어요???”     


여학생은 당황해하며 멋쩍게 웃는다. “재밌었어요.”


“그런데 왜 안 웃었어요?” 찌질하게 끝까지 물어본다. 학생은 더 당황해하며


“웃었는데요?”라고 대답한다. 그래, 피식도 웃음이다.     


수업을 마치며 여느 때와 같이 말한다.     


“질문 있는 사람은 나와서 질문하세요. 오늘 고생 많았습니다!”     


칠판을 지우며 질문하는 학생들이 나오기를 기다려본다. 학생들은 썰물처럼 강의실을 빠져나간다. 아무도 없다. ‘수업이 재미가 없었나?’ 하는 찰나 한 학생이 다가온다. ‘오 열심히 수업듣는 학생이 있구나!’ 학생이 질문한다.     


“교수님, 이거 시험에 나와요?”     


약간 김이 샜지만, 그럼에도 나와 이야기 나눠주러 앞으로 나왔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교수 특유의 화법으로 대답해 준다.     


“나올 수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학생은 실망한 표정으로 강의실을 나선다.     


두 시간 강의하면 체력적으로 많이 소진된다. 세시 반. 이제 한 시간 후면 내가 속한 처의 회의 시간이다. 앉아서 쉬면서 회의자료를 읽어본다. ‘음 오늘도 가만히 있으면 되겠군.’ 


회의 장소에 가니 회의자료가 준비돼 있고 교수님 열 분 정도가 회의장에 모였다. 돌아가며 안건에 대해 논의하고 내 차례가 왔다.     

“역량성취도 평가 수행 중이며 참여 인원은 <표 5>와 같습니다. 학과에 독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짧게 한 두 마디 나누고 넘어갔다. 아싸 회의 끝. 다섯 시 반이 되니 회의가 마친다. 회의에 참여한 직원 선생님들도 계신데, 직원 선생님들의 퇴근 시간이 다섯 시 반이기 때문에 땡하면 회의가 종료된다. 회의를 마치려는 찰나 처장님이 부르신다.      


“조교수님은 남아서 얘기 좀 하죠?”     


가슴이 두근 거린다. 뭐 잘못한게 있나. 아래 층의 처장실로 이동한다. 이야기 주제는 올 해 추진하고 있는 사업 중에 AI 관련된 파트를 좀 더 개발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다행히 준비하고 있는 주제라 답변을 차분히 드렸다. 흡족해 하시는 처장님께서 시간 되면 같이 저녁식사를 하자고 제안하신다. 오늘도 아내는 친정에서 자므로 그러겠다고 했다. 혼자 앉아서 유튜브 보면서 밥 먹는 것보다는 이야기 나누면서 먹는게 여러 모로 좋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학교 앞 냉면 집으로 가시죠.”     

앗.. 어제 먹었는데.. 그래도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고 냉면집으로 가서 온면을 먹었다. 요즘 하는 취미생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장님은 너무 바빠서 취미생활 할 겨를이 잘 없다고, 교수 그냥 때려 치울까 고민한다고 하셨다. 역시 화끈하시다. 나는 테니스 이야기, 주짓수 이야기도 하고 요즘 듣는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도 나눴다. 


집에 돌아와서 씻고 누워서 쉬다가 티비를 켜서 나는 솔로를 본다. 대 여섯 명의 남녀가 나와서 서로의 매력을 어필하며 짝이 되기를 고대한다. 보는 내내 이런 말 저런 말 티비와 대화를 나눈다.     


“안돼, 제발 그러지마!!”     


제발 저런 찌질한 말만큼은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옛날의 내 모습이 겹쳐보이기 때문일까. 욕을 하면서도 계속 보게되는 이 프로그램을 끊을 수가 없다. 어디서 이런 사람들을 모아 온 것일까. 다들 잘생기고 예쁘고 멀쩡한데 모아 놓으니 특이한 점들이 생긴다. 낄낄거리며 보다가 아내와 영상통화도 하고, 웹툰을 보다 잠든다. 내일은 아내가 온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지방대 교수의 하루(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