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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mini Nov 03. 2020

무대가 끝나고 막이 내리면

고 박지선 님과 모친의 명복을 빕니다

살아가는 환경, 내 집의 평수, 아니 나아가선 집의 유무, 학교, 직장, 개인이 노력하지 않아도 얻게 되는 것;

우리 모두는 이 불공평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공평한 사실은 오직 하나, 우리 모두는 한번 태어나고 한번 죽는다는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우리가 나고 자라는 환경을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와는 동 떨어져서 대부분의 경우, "부모"라는 이름의 어른들로부터 결정지어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어른"이라는 타이틀이 주어졌을 때 우린 비로소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극소수의 경우에는 타인에 의해 개인의 인생의 방향이 결정지어져서 그렇게 평생을 살게 되기도 합니다만, 보통 우리는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순간순간의 선택을 모아 삶의 방향성을 잡게 됩니다.


이미 한번 태어는 났으니 이제 내게 남은 한 번의 공평한 그것, 죽음.

그것에 도달하기까지의 삶의 방향성. 잘 살아내기 위한 개인의 선택.

직업이라 불리는 그 인생의 중대사에 있어서 "웃음 주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녀는 사실 내 마음속 넘버원 코미디언은 아니었습니다.

티비를 켜면 늘 볼 수 있는 코미디언들이 있는데 그녀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꽤 오래전에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에 그녀가 나온 걸 본 이후로는 티비에서 보지 못했습니다.

듣자 하니 햇빛 알레르기로 인해 카메라 조명 앞에 서는 것도 힘들어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최근 들어 더 악화되기도 했다고) 사실 대중들은 그런 속사정까진 알지 못하니까요.


그녀에 대해 아는 건 "아주 똑똑한 사람이었다는 거, 굉장히 웃기고 유쾌한 할머니가 쓴 일기를 한 프로그램에 나와 읽었을 때 내가 배를 잡고 웃었던 기억, 수줍음이 많고 펭수를 좋아했다는 거, 자신의 외모를 개그 소재로 삼아 사람들을 웃겼었다는 거" 정도가 되겠습니다.


요즘같이 연예인의 일상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관찰 예능에 자주 나오는 연예인이 아니라 (물론 그런 관찰 예능을 촬영할 때도 본연의 모습을 완전히 보여주는 연예인은 없겠지만) 예전에 개그 프로그램이 한창 전성기를 누렸을 때 우리에게 소소한 웃음을 주었던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그녀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사실이, 그녀가 떠난 지금 조금 미안하고 가슴을 콕콕 찌르기도 합니다.


그녀는 웃음을 주는 일을 선택한 사람이었습니다.

웃음을 주는 일을 할 땐 대개 본인의 개인사는 개입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 내가 일터에 나오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 마음의 상태를 관중은 알지 못해야 합니다.

웃기 위해, 웃고 싶어서 이 자리에 온 관중들이 나로 인해 한껏 깔깔대고 웃고 발걸음을 돌려야 내가 제 몫을 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우린 그녀가 우리에게 수많은 웃음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개인사에, 그녀의 어제에, 그녀의 오늘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알지 못합니다.


조금은 다른 맥락이지만 저도 남들에게 웃음을 주는 일을 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저는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승객들을 웃음으로 맞이하고 웃음으로 보내는 일을 합니다.

내가 출근길에 엄마와 전화로 한바탕 하고 온 사실을, 혹은 아침부터 한 끼도 못 먹어 지금 내 배가 등가죽에 붙어있고 나는 굉장히 예민한 상태라는 사실을 승객들은 알지 못해야 합니다.

내가 매일 반복적으로 하는 이 비행 일이 누군가에겐 "난생처음 타보는 비행기" 일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일 수도 있으며,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개인적인 감정은 숨기고 웃음으로 일터를 떠나고 나면 퇴근길 차에서는 내내 무표정으로 일관합니다.

가끔은 어떤 소음도 듣기 싫어서 노래도 끄고 퇴근길 30분 내내 고요한 상태로 집까지 갑니다.

집에 가서 씻고 짐을 풀고 차분히 앉아하는 일이 코미디언들이 나오는 예능을 보는 일이었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니 티비를 보다가 이따금씩 크게 웃기도 하고 가끔은 공감도 하고 그러다 울기도 하고.. 그렇게 고단했던 하루를 가벼운 마음으로 마무리하는 게 일상이었죠.


나같이 미소로 일관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진짜 웃음을 주던 그 사람들은, 아니 그녀는 일상에서 무엇으로 인해 웃을 수 있었을까요.




언제 막이 내릴지 모르는 이 삶이라는 무대의 막, 이 생에서 그녀의 막이 어제 예고도 없이 내려왔습니다.

왠지 모르게 더 친구 같고 지인 같고 언니 같고 알 법한 사람인 것 같았던 그녀의 갑작스러운 소식에 아마 우리는 어제 하루 상실감과 우울감에 빠져있었을 겁니다.

아마 대중은 며칠이 지나면 이 사건을 가슴에 묻고 다시 살아가겠지요. 가끔 떠오를 때마다 아프고 안타깝고 가슴이 시리긴 하겠지만 묵묵히 담담히 매일과 같은 일상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녀가 떠남으로 인해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죽음은 그렇게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밖에 되지 않는다고.


무엇을 위해 그 얇디얇은 종잇장을 채우기 위해 아등바등 살얼음판을 걸으며 사는 걸까요.

각자의 종잇장을 채우는 일에 바빠 서로의 안위를 돌보지도 못하면서 말이죠.


늘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던 그녀,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에 대해 자주 말하던 그녀, 웃음이 아름다웠던 그녀.

생각보다 많은 걸 주고 떠난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이젠 닿을 수 없는 곳에서 편히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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