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근데..
한국인들은 문장을 시작할 때 꼭 "아니"를 붙여서 시작한다는 웃긴 글을 본 적이 있다.
아니 근데 정말 한 해가 너무 빠르게 흘렀다.
해의 끝자락에 이렇게 한 해를 정리하는 글을 쓰곤 하는데 2019년을 돌아보는 글을 썼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정확히 올해 1월 1일에 내 아이폰 노트에 "작년과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다시 gym에 가기 시작할 거야"라고 썼었는데 여전히 뚜렷하게 기억나는 그 야심 찬 다짐이 무색하게도 올해는 gym과는 가장 먼 일 년을 보냈다.
1월에 친한 언니와 타이베이 비행을 했던 것도 생각나고 3월에 "당분간 마지막이 될 한국 비행"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같이 비행한 좋아하는 사람 몇 명이 레이오버 동안 치킨도 시켜먹고 호텔 뷔페도 들락날락거리고 했던 게 오래되지 않은 사진처럼 눈앞에 생생하다. 그래, 정확히 3/31에 자진 휴직 전 마지막 비행을 했었다.
그리고 나선 4-7월은 자진 휴직을 신청해서 내가 평소에 "난 정적인 운동이 싫어"라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골프라는 운동을 배웠다. 비행을 하다 보면 업무 자체에 있어선 늘 반복적인 일이 대부분이고, 워낙 타지에 나가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스스로 느끼기에 위험하거나, 정도를 벗어나거나, 나의 일상에 방해나 위협이 된다거나 하는 일들은 늘 피하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보통 레이오버나 데이 오프 때도 늘 하는 것만 하고 먹는 것을 먹고 자주 보는 사람들만 만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 내게 골프는 나의 잔잔한 일상에 신선한 변화와도 같았다. 코로나 19가 터진 이후 그 잔잔했던 일상은 더 이상 잔잔하지 않게 되었기에 뭔가 나의 comfort zone을 벗어나 내가 가장 하지 않을 법한 무언가를 하고 싶었던 욕구가 굉장히 커졌었다. 내 본가가 있는 애리조나는 골프 치기에 최적화된 곳이라 실제로 주변에 골프 선수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의 애리조나 인맥은 모두 골프를 친다고 할 만큼 쉽게 접할 수 있는 운동인데, 승무원이 되기 전 애리조나에 살았던 긴긴 시간 동안 골프 레슨을 받아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왜 안 했나 싶을 정도로 골프는 즐겁고 건강한 운동이다. 나같이 혼자 사부작사부작 뭘 하는 걸 즐기고 혼자 공상을 많이 하는 사람에겐 특히 더 최적화된 운동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 19 때문에 우울감을 느끼는 빈도수가 늘어나는 이때에 마음껏 광합성을 하고 그 덕에 밤에 잠도 잘 자게 해주는 고마운 운동이다.
요리와 베이킹도 시작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쉬운 부대찌개 하나 할 줄을 몰라서 매번 금손 사촌언니에게 카톡으로 레시피를 받아 부대찌개를 만들었던 나였는데 요리는 하면 늘게 된다는 사실 외에도 타고난 외가 손맛이 내게도 있다는 걸 계속 발견하게 되는 한 해였다. 강제적으로 외식을 못하게 되다 보니 매 끼니를 만들어먹게 되었다. 메뉴를 고민하는 기쁨 외에도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주는 걸 보며 엄마들이 느끼는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기쁨"이 이런 건가 싶었다. 베이킹은 새로운 영역이었다. 어느 날 유튜브를 보다가 미국에선 절대 사 먹을 수 없는 "얼그레이 스콘"이 너무 먹고 싶어 졌다. 그래서 '그럼 내가 만들어 먹음 되지'라고 시작한 베이킹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고 스콘에서 파운드케이크로, 에그타르트로 종목을 넓혀 나가다가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라는 생각에 베이킹 클래스를 들으러 한국에까지 가게 되었다. 비행을 하면 이렇게 길게 시간을 내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쉬고 있는 이 시간을 십분 활용하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체 가만히 못 있는 내 성격이 어쩌면 코로나 19가 터지며 나의 잠재력을 여러모로 밖으로 꺼내 준 좋은 요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코로나 19로 인해 일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던 3월부터 나는 천당과 지옥을 수백 수천번은 왔다 갔다 거렸기 때문에 제발 2020년이 어서 끝나고 2021년이 오길 간절히 바랐다. 이게 다 아홉수 탓인 것 같았다. 나에겐 지난 한 해가 내 삶을 통째로 흔들어놓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괴로운 시간이었으니까. 내가 여태껏 힘들었던 것들은 깜찍한 수준에 불과했구나 싶을 정도로 끔찍한 나락까지 떨어져도 보고, 절망이라는 파도에 잠겨도 보고, 우울에 수없이 담금질당했다가 또 어느 날은 이유 없이 힘이 나기도 하는 날 보며 '정말 내가 미쳐가나, 조울증인가'싶은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강제휴직을 당하게 되며 지금 당장 비행을 못한다는 사실보다, 까마득히 어두워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 모르는 나의 미래가 더 걱정이었다. 승무원 권정민에서 무직 권정민으로 변한다는 사실이 날 더 미치게 했다. 그 무직이라는 타이틀을 얼마 동안 달고 있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게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인내심 없는 내겐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코로나 19는 나뿐 아니라 세상 전체를 멈추게 한 큰 일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가치를 내가 의심하게 되고, 남과 비교하고, 스스로를 더 불안에 몰아넣기 시작했다. 나에겐 이렇게도 지옥 같은 2020년이 누군가에겐 기회였으며 더 위로 올라가게 된 터닝포인트였을지도 모른다는 게 분했고 원통했다. 그렇게 꽤 오래 지냈던 것 같다. 나 스스로와 한 약속은 늘 지키고, 내가 정해놓은 일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던 내가 무기력하게, 무력감을 느끼며, 그렇게. 내가 날 다잡지 못하고 그렇게.
코로나로 잠시 직장을 잃은 것에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다사다난한 2020년은 쉬지 않고 커브볼을 날렸다. 어디까지 버티나 나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바짝 엎드리고 자세를 낮추고 마음속에서 이 시간이 지나가길 그저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징징거리는 거 해봤으니까 이제 달리 해보자 싶어 시작한 존버가 계속되며 생채기 난 부분이 아물고 마음 근육이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확실한 확답을 주는 게 하나도 없는 이 시간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내 안에서부터 확신을 갖자 라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내 머릿속이 그리도 복잡했던 건 외부로부터 오는 어떠한 것들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서 자아들이 자꾸 충돌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꼬여있는 실타래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그저 단순히 생각하고자 했다면 나의 2020년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까.
무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며 내가 나를 돌아보고, 또 나는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무엇이 아니어도 나 자체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는 시간이 더 지속되었어도 좋았겠지만. 감사하게도 2월에 복직을 하게 되었다. 12월 초 미국으로 돌아와서 샌프란시스코 살이를 정리하고 난 후부터 쭉 피닉스 본가에 있었는데 "복직하는 2월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문제에 해결책을 이제 슬슬 찾아봐야겠다. 워낙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 어쩌다 보니 문제 해결에 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용케 최고의 답을 찾아내겠지.
2021년은 올해 내가 했던 실수들을 반복하지 않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서두르지 않고 꼭꼭 씹어먹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내 가치를 의심하지 않고 또 그것을 누군가에게 증명해 보이려고 하지 않는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사는 한 해가 되었음 한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 제목처럼 (책의 저자는 이번에 큰 논란이 있었지만) 정말 우리네 일상이 멈춰버리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마음에 새기며 구분된 삶을 살기를.
타성에 젖어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시간에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내 시간의 주인이 되어 능동적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2021년이기를.
외부 요인으로 인해 어쩌고 어쨌다는 핑계를 만들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니 근데 사실 그래도 코로나 19는 얼른 종식되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