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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mini Mar 02. 2021

비행이, 비행만 너무 하고 싶은 날

wish I was cruising above 38,000ft.

수개월이 지났다.

9월 30일에 호놀룰루 비행을 마지막으로 비행기에 크루로 탑승하지 못한 지 5개월쯤 되었다.

그건 시차 적응에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되고 규칙적으로 식사, 규칙적인 시간에 취침을 한 지 5개월쯤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 달에 반 이상을 집이 아닌 곳에서 눈을 뜨던 내가 이젠 특별할 것 없는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내며 내 침대에서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눈을 떠 하루를 시작한 지 5개월이 되었다는 소리다.


서글프게도 꽤나 괜찮은 이 하루하루를 나는 무탈하게, 그리고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행복을 갈망하고 또 나름 실현해가며 지내고 있지만.

자주.. 그래, 생각보다 자주 나는 비행을 꿈꾸며 살아간다.


이렇게 쉽게 깨질 줄 몰랐기에 깨지고 나니 더 소중했던 그것.

조금 더 유의미하게 행했다면 좋으련만 그 소중한 경험들은 애석하게도 나에겐 매일 반복되는 일과가 되어있었다.

여느 직장과 다를 바 없이 출근을 하고 사람과 일에 치여 녹초가 되기 십상이었고 퇴근을 하고 나면 다음 출근까진 비행 생각은 하기 싫은 적이 많았다.

너무도 특별했던 그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어느 날.

세상이 뒤집혔다.

온전히 내 것이었던 그것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되었다.

맘만 먹으면 당장 몇 시간 내에 어디든 떠날 수 있던 내 발은 한 곳에 묶여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되었다.

비행을 하며 집을 떠나 있으면 늘 집을 그리워하며 규칙적인 삶을 그리고 꿈꾸며 살았는데, 집에 있으니 비행을 꿈꾸게 된다. 

사진첩을 들여다보며 하나도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을 그리워하게 된다.




최고의 비행, 최악의 비행.

둘 다 모두 아이러니하게도 호놀룰루였다.


내가 트레이닝을 졸업하고 비행을 시작한 후 정확히 두 번째로 했던 덴버-호놀룰루 비행.


나의 난생 첫 비행은 처음 보는 나에게 자신의 사생활을 너무도 노골적으로 다 밝히는 괴짜 같은 승무원이랑 했었기에 처음 들여놓는 이 세계에 온통 어리둥절함 투성이었다.


그러다가 그 비행 직후 휴스턴-덴버-호놀룰루 비행을 하게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생일 때면 


"Happy Birthday!

- your auntie"


라고 메시지를 보내주시는 귀한 분과 비행을 하게 되었다 (하와이에서는 나이가 좀 있는 여성분들은 친근감의 의미로 스스로를 auntie라고 칭한다).


일머리 하나는 자신 있는 내가 어찌어찌 열심히 일을 찾아서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완전 초짜인지라 분명 실수 투성이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계속 칭찬만 해주시던 분.

비행이 끝난 후 직접 써주신 손편지를 아직도 비행 가방에 들고 다닐 만큼 나에겐 감사한 분이다.


그 비행이 그 어떤 비행보다 좋은 기억으로 남은 이유는 한없이 넓은 아량으로 날 안아준 덴버 베이스 크루 덕이 컸지만 그것보다는 그 비행이 얼떨결에 받은 첫 하와이 비행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와이는 처음이었다.

심지어 어디로 불릴지도 몰랐던 터라 긴팔에 긴바지만 챙긴 비행이었다.

그러다가 얼떨결에 덴버에서 갑자기 호놀룰루 비행이 잡혔고 그렇게 간 호놀룰루에서 그 여름에 긴팔, 긴바지를 입고 신나 있던 건 나 하나뿐이었을 것이다.



그 크루는 모두 우리 엄마 뻘쯤 되는 여자 선배님들이었는데 내 첫 하와이 비행이라는 말에 "we'll take good care of you �"라는 말씀을 하시고는 호놀룰루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와이키키가 보이는 bar로 데려가 주셨다.

신입 중에서도 신입이었던 나는 그렇게 나이 차이가 무색하게 하늘 같은 선배님들 앞에서 알딸딸하게 술에 취해서는 헤헤☺️거리며 선배님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지난 비행 얘기도 들으며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그러다가 석양이 질 무렵 와이키키 해변으로 혼자 향했다.

일본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신혼여행 장소, 그래서 와이키키는 온통 커플 투성이었다.

그 속에서 긴팔에 긴바지를 입고 혼자 시끌벅적한 와이키키를 멍하니 관망했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어리둥절한 신입, 사회생활 초짜였던 내가 뭔 생각이 그리 많았을까.

트레이닝 도중에 사귀던 남자한테 차인 후 두 주먹 불끈지고 이 앙 다물고 어찌저찌 트레이닝은 무사히 마쳤는데 그 속도 속이 아니었을 거다.

트레이닝 중에 애인과 헤어지면 트레이닝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그래도 다행히 나에겐 그 망할 놈의 연애보다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트레이닝을 무탈하게 마치는 게 더 중요하긴 했나 보다 (그때의 나에게 고마와).


그렇게 내 안에서 한껏 양껏 영혼까지 끌어모아놨던 독기를 와이키키 해변에서 내려놓았다.

원망, 서글픔, 서러움, 초라함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와이키키가 가져가 주었다.

그러면서 내겐 "앞으로 비행을 하며 나에게 올 행복한 나날들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만 남게 되었다.

그 날을 기점으로 나는 지나가는 것들에 대한 미련을 갖지 않게 되었다.

또한 다른 누군가의 결정과 행동에 큰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나로서 살아가며 그 인생을 내가 설계하고 그려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게 뭐라고, 와이키키 해변이 뭐라고.

난 그 시간이, 그 자신감이 참 필요했나 보다.




그렇게 좋기만 한 하와이 비행일 줄 알았는데 애석하게도 내 최악의 비행 또한 하와이였다.


2017년 9월 경이었던 것 같다.

엑스트라 크루로 혼자 호놀룰루 레이오버를 즐기고 호놀룰루-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는 새벽 비행 (redeye)였다.

함께 비행하는 크루는 나까지 총 네 명이었는데 나 빼고 세명은 호놀룰루 베이스 크루였다.

그중 나와 함께 이코노미에서 일했던 한 승무원 분과의 일화다.


비행기를 타서 브리핑을 하고 처음 자기소개를 할 땐 나에게 "내가 너만 한 딸이 있어. 그래서 그런지 너 참 귀엽다"라고 호의적인 말들을 하셨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함께 점프싯에 앉아 당신의 강아지 얘기도 하시고 나중엔 사진도 보여주셨기에 '굉장히 친절한 분이시구나. 역시 하와이 사람들은 참 좋아'라는 생각을 하게끔 하셨다.


이륙 후 음료 서비스가 시작되었고 아무래도 새벽비행이었던지라 대부분의 승객들이 주무셔서 서비스는 15분이 채 되지 않아 끝났다.

그 짧은 15분이 채 되지 않는 사이에 도대체 그분과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그냥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함께 카트를 끌고 열심히 서비스를 했을 뿐인데 서비스가 끝나고 갤리로 돌아간 직후 그 선배의 눈빛은 180도 변해있었다.

어떤 설명도 없이 나를 10초간 노려보시더니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상처가 되는 말을 툭 던지고는 5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내내 나와 단 한마디도 섞지 않으셨다.

아니, 날 투명인간 취급했다는 게 더 맞겠지.

그 비행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퍼스트 클래스에서 일하던 다른 승무원 두 명 또한 그 승무원 분과 친구였기에 나는 모르는,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모를 어떤 이야기가 그 셋 사이에 오고 갔나 보다.

분명 내 얘기를 했을 거다.

그 셋 모두에게 나는 투명인간이었으니까.


비행기가 착륙하고 승객이 모두 내린 후 승무원들도 내리는데 비행 내내 날 투명인간 취급하던 사무장이 "it was a nice flight!"이라며 비꼬는 말투로 말을 하길래 "OH, WAS IT?"이라고 받아치고 내렸다.


알다가도 모를 사람 속,

분명 내 나이의 딸이 있다고 했던, 첫인상은 한없이 좋았던 선배가 갑자기 LTE급으로 태세 전환을 하는 걸 보며 '나만한 딸이 어디 가서 이런 취급당하는 걸 알면 저분은 어떤 기분이 들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진짜 음료 서비스 중 실수를 했던 건지 (오고 간 말이 없는데 실수를 할 게 뭐가 있었을까),

아님 그냥 내가 그분 조울증의 희생양이었던 건지.


웃기게도 비행하다 보면 승객보다는 크루 때문에 속 끓는 일이 더 많다.

지나고 보니 이 하와이 비행 사건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던 거다.

사람 마음이 다 같을 순 없기에 이유 없이 심술궂고 무례한 승무원들과 비행을 하는 경우는 끊이지 않았고 그 덕에 그런 사람들에 대처하는 내공은 자꾸 쌓여만 간다.




여느 사회생활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들과 교류를 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특히 사람이 8할 이상을 하는 이 비행 일은 내 마음가짐을 내가 단디 하지 않으면 쉽게 상처 받고 포기하기 쉬운 일이다.

그 교훈을 삶에 적용하던, 좋고 나쁜 사람의 경계가 뚜렷이 보이기 시작하던 그 무렵 나의 비행 커리어에 제동이 걸려버렸다.

하루에 수백 명은 족히 만나던 나의 활기찬 일상이 이젠 사람들과 최소한의 교류만 하며 지내는, 완전히 다른 삶으로 변했다.

'이 일상 또한 나쁘지 않다' 수없이 되뇌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오늘같이 비행이 참 많이 그리운 날엔 어찌해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언제쯤 그 끈끈했던 소속감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다시 하늘길이 열리고 비행기로 돌아가게 된다면 비행 하나하나를 다 소중히 여길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무리 좋고 나쁜 레이오버, 크루, 승객이라고 한들 비행 그 자체보다 소중한 건 없으니까.


다시 날아오를 그 날을 오늘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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