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편집자가 되다

책 좋아하는 만 5세 아들 이야기

by 금경희

우연히 어린이편집자 모집 글을 봤다. 창비 출판사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을 내기에 앞서 아이들의 생각을 반영하려는 시도인 듯했다. 어른에 의해 어른들 생각으로 아이들의 책이 만들어지고 제작되는데, 어린이라는 독자의 시선을 반영해보겠다는 시도가 신선하고 반가웠다. 실질적 구매자 부모의 의견과 생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오롯이 아이를 하나의 독자층으로 존중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다양한 장르의 책을 꾸준히 읽어왔고, 책 읽기가 습관화되어있는 7살(만 5세) 아들에게 출판사에서 어린이편집자를 모집한다는데 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출판사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없는 아들은 ‘편집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한 이해도 하지 못했지만, 책을 만드는 일이라니 흥미로워했다. 재미 삼아 집에서 6페이지 5페이지짜리 책을 만들어본 적 있어, 그런 일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지원서에 작성할 2가지 문항에 대해 아들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가장 재미있게 읽은 그림책에 대하여 글과 그림으로 자유롭게 표현해주세요.


재미난 책을 끊임없이 읽고 있는 아들에게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을 골라봐”란 질문이 쉬울 리 없었다. 이틀 동안 고민 끝에 아들은 3권의 책에 대해 말했다. 스즈키 노리타케 작가의 <케첩맨>, 토미 웅거러 작가의 <크릭터>, 사이다 작가의 <고구마구마>. 한 권의 책에 대해 그림을 그려본다면 어떤 책을 그리겠냐고 했더니 <크릭터> 그림을 망설임 없이 그렸다. 그 날은 토미 웅게러 작가의 작고를 접한 날이었고, 아들에게 안타까운 그 사실을 알렸다. 존 버닝햄 작가의 별세를 알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소식이라 아들은 왜 자꾸 작가들이 죽느냐고 물었다. 존 버닝햄 작가도 토미 웅게러 작가도 네겐 친구처럼 느껴지지만, 시골 증조할머니랑 비슷한 나이라고 설명해주었다.


<크릭터> 책을 처음 읽은 날, 출장 중이던 아빠와의 통화에서 “아빠 오늘 정말 재미난 책 발견했어요.”라며 전화로 줄거리를 말해주던 아들이 떠올랐다. 아들은 재미난 책을 읽고 나면 아빠와 공유하고 나아가 유치원 친구들과 공유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아빠도 자기가 느낀 것처럼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는지, 전날 저녁에 아빠와 시간을 보내지 못한 날이면 다음 날 아빠가 출근하기 전 재미있었던 책을 같이 읽자며 조르곤 한다. 남편이 아이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지금 시간이 없으니 퇴근하고 와서 같이 읽자고 말하면 “이미 읽은 책인데, 재미있어서 아빠랑 공유하고 싶나 봐”하고 내가 아들을 대변해주곤 한다.


아들이 <크릭터>를 처음 읽었을 땐 남편이 출장으로 일주일 가량 집을 비운 상태였다. 다음날 공유하기 어렵다 느낀 아들은, 전화를 붙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을 들려주었는데 그때 들뜬 아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아들이 그린 <크릭터> 그림

어떤 그림책을 보고 싶나요?

내가 보고 싶은 그림책에 대한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주세요.


유치원 가기 전 아침식사를 하며, 어떤 그림책을 보고 싶으냐고 아들에게 물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눈사람 호텔>이란 제목의 책을 보고 싶다고 아들이 말했다. 그에 대한 내용을 오늘 하루 생각해보고, 집에 와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말했다. 아들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렸다가 다시 그리기를 반복했다. 원하는 대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자 칭얼거리며 울음을 발사했다. 아들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이 어떤 형태인지 알지 못했던 나는 도움을 주고 싶어도 도움을 줄 수 없었다. 호텔의 모양이 짧다며 다시 다른 종이에 그리고, 간판이 너무 크다며 또다시 다른 종이에 그리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5번째에 그림을 완성하였다. 간판은 영어로 써야 한다며 <Snow Men Hotel>을 내게 써 달라는 요청을 했다. 눈사람 모양의 문으로 눈사람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호텔에 모여 있던 눈사람들은 눈이 오는 날이면 슈퍼맨처럼 출동하여 아이들이 노는 곳으로 가고, 녹을 무렵 다시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다고 설명했다.

아들이 그린 <눈사람 호텔>

아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지원서 작성을 마친 후,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고 나서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박진혁 어린이 어머니 맞으신가요?”

“네, 누구신가요?”

“여긴 창비 출판사입니다. 어린이편집자 지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박진혁 어린이 '어린이편집자'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어머! 어린이편집자 됐나요?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가 감사합니다. 정말 멋진 지원서 보내주셔서, 저희가 감사드려요.”


믿기지 않았지만, 아들은 어린이편집자가 되었다. 전화를 받고 나서 기쁜 마음에 아들을 안아주고 또 안아주었다. 남편은 시차가 큰 해외에 출장 중이라 카톡을 보냈다. 이 기쁨을 공유하고 싶은데, 남편과는 전화통화가 어려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시어머니께 전화로 소식을 전했다. 지원한 사실도 모르고 있던 어머니께, ‘어린이편집자’가 되었다 하니 그게 무엇이냐고 되물으셨다. ‘어린이편집자’에 대한 설명을 하자, “다 애미가 만든 공이다. 잘했고, 축하한다.”라고 점잖게 말씀해주셨다. 엄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아들도 기분이 좋았는지 내게 말했다.


“엄마도 그림 잘 그리니까, 나중에 좋은 편집자 될 수 있을 거야.”


대다수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책을 쉽게 접하고 책을 좋아한다 생각해왔다. 아들이 책을 보며 보이는 반응이나 상상하는 말들이 특별할 것이 없다고 줄곧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번 일을 계기로 아이가 책에 보이는 반응, 아이의 상상력으로 펼쳐내는 말이나 그림에 대한 기록을 해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곳에 아들과 딸의 일상생활에 대한 관찰을 기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