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민 Jun 19. 2021

1. 나는 어떻게 미싱을 시작했는가?

재봉틀 없이도 아무런 불편함 없이 지냈다. 단추가 떨어지면 손바느질로 달았고, 바지를 새로 사면 수선집에 맡겨 기장을 줄였다. 그 정도가 전부였는데,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예전에는 생각도 없던 재봉틀을 갖게 되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이의 돌을 앞두고 한복을 직접 만들어주고 싶다며 무턱대고 재료를 사온 것이 시작이었다. 분명 손바느질로도 충분하다고 들었는데, 밤에 아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와 낑낑거리며 조각끼리 바느질하다 보면 재봉틀 생각이 저절로 났다. 

사진 1. 손바느질로 아이 색동 저고리를 만드는 광경



‘재봉틀만 있으면 이 작업을 얼마나 금방 할 수 있을까.’

‘그래도 고작 아이 한 복 한 벌 만든다고 몇 십 만원이나 하는 재봉틀을 살 순 없지.’


간절히 원하면 길이 열린다고 하지 않나. 추석을 맞이해 시댁에 가서 남는 시간에 아이의 한복을 손바느질하는 나를 본 시어머님이

‘이거 돌아가신 너희 시할머님이 예전에 쓰던 건데 필요하면 가져갈래?’

라며 베란다 창고에서 재봉틀을 하나 꺼내 오셨다. 큼지막한 민트색 뚜껑을 벗겨내자 날렵한 본체의 재봉틀이 나왔다. ‘DRESS'라고 이탤릭체로 로고가 붙어 있고, 오른쪽에는 손잡이가 달린 둥근 바퀴가 달려 있었다. 전기도 필요없고 손으로 그 바퀴만 돌리면 바늘이 아래위로 움직이면서 손바느질과 비교할 수도 없이 깔끔하고 일정한 재봉선이 나왔다. 

사진 2. 돌아가신 시할머님이 쓰시던 오래된 미싱



그 재봉틀로 아이의 돌 한복을 잘 만들어 입히고 나니 재봉틀 돌리는데 조금 자신이 생겼다. 그 전에는 재봉틀이 손재주가 뛰어난 소수의 사람만 쓰는 거라 생각했는데, 직접 써보니 그저 윗실과 밑실이 교차하면서 재봉선을 만들어 천 두 장을 연결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한복이 완성되는 걸 본 남편이 옷장에서 바지 두 벌을 꺼내왔다.

‘혹시 이것도 고칠 수 있어? 수선집에 맡겨야하는데 자꾸 까먹어서.’


한 벌은 바지 기장을 줄이지 않은 채로 계속 입고 다녀 밑단이 다 닳아 있었고 다른 한 벌은 기장을 줄이지 않아 사놓고 아예 한 번도 안 입었다고 했다. 

시할머님의 손재봉틀로도 할 수 있겠지만, 제대로 하려면 전동식 재봉틀이 있었으면 했다. 손재봉틀은 한 손으로 손잡이를 돌려야 바늘이 움직이기 때문에 옷감을 한 손으로 잡아야 하는 점이 불편했다. 

‘고작 바지 몇 벌을 위해서 몇 십 만원이나 하는 재봉틀을 산다고?’

그런데 재봉틀로 아이 한복을 만들어본 터라, 이 기계를 앞으로도 잘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지 한 벌 기장 줄이는데 5천원이라고 치면, 열 벌을 고치면 5만원이고 장기적으로 보면 더 많이 고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이가 크면 아이 옷도 고쳐 입혀야 할텐데.’

계산해보니 재봉틀을 꾸준히 활용하기만 하면 본전은 찾을 수 있을 듯 했다. 


‘수많은 재봉틀 중에 뭘 사야하지? 가격은 얼마 정도가 적당할까?’

재봉틀은 종류가 많았고 몇 만원이면 살 수 있는 미니 미싱부터 백만원 이상의 것도 있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예산인 20만 원 선에서 골랐다. 좋은 걸 고르자면 끝이 없었다. 어느 제품을 보다보면 더 좋은 제품이 눈에 띄었다. 직선 박기, 지그재그 박기 등의 기본 스티치뿐만 아니라 자수 등 화려한 기능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모델도 한동안 고민했다. 하지만 기능이 많아도 다 쓰지 않을 것 같았고 직선박기가 제일 중요했기 때문에 직선박기를 포함해서 총 23가지 스티치가 가능한 모델로 골랐다. 재봉틀 치고는 스티치 종류가 적은 편이었는데, 직접 써보니 그 23가지도 다 쓰지 않고 직선, 지그재그, 단춧구멍 이 세 가지만 주로 쓰였다. 

사진 3. 내가 구입한 가정용(준공업용) 재봉틀, 싱거 4423


구입한 재봉틀로 가장 먼저 한 일은 남편의 바지 기장 줄이기였다. 기장 줄이는 법은 블로그와 유튜브에서 검색하니 금방 알 수 있었다. 검색을 굳이 하지 않아도 알 만한 절차였다. 원하는 완성선을 표시하고 말아 접을 여유를 1-2센치 정도 두고 가위로 자른 후, 말아 박으면 끝이었다. 이 작업에서 실제로 재봉틀을 사용한 건 1-2분도 채 안될 것이다. 그 짧은 시간이지만 재봉틀이 있어서 깔끔하고 튼튼한 봉제선을 만들 수 있었다. 


‘괜찮네. 말 안하면 집에서 고친 줄도 모르겠다.’

남편이 마음에 들어하자 어깨가 으쓱했고, 수선집에 맡기는 걸로만 생각했던 바지 기장 줄이기를 내가 스스로 했다는 점이 자랑스러웠다. 

이후에도 재봉틀을 이용해서 남편 옷 몇 벌을 고쳤다. 그러다보니 옷도 별 것 아닌 듯 느껴졌다. 그 전에는 기성복을 자르고 다시 바느질한다는 건 엄두도 못냈지만, 여러 번 그 일을 반복하다보니 기성복도 결국 공장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 나온 것일 뿐이었다. 


‘남이 만든 옷을 고칠 뿐만 아니라, 내가 직접 옷을 만들 수도 있겠는데?’

그래도 맨땅에서 옷 만들기를 시작하기란 쉽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옷 만들기 책을 빌렸더니 옷 본이 부록으로 따라왔다. 옷 본은 펼치면 전지 사이즈인 종이인데, 옷을 만드는데 필요한 조각의 도안들이 복잡하게 얹혀 있었다. 그 중에서 내가 원하는 옷의 도안을 찾아 다른 종이에 베껴 그린 후, 그걸 천에 대고 오렸다. 조각끼리 연결하는 방법은 책에 친절하게 나와 있었다. 어깨선끼리 재봉틀로 박고, 소매를 달고, 접어서 소매 입구부터 허릿단까지를 박으면 어느새 내가 아는 그 티셔츠 모양이 되어 있었다. 여러 책을 빌려본 후 마음에 드는 책을 몇 권 샀다. 


옷을 만들어보니 오버록 미싱을 사고 싶어졌다. 오버록 미싱은 칼날로 원단 가장자리를 자르고, 윗실 두 개와 밑실 두 개가 교차되며 올이 풀리지 않게 튼튼한 마감을 해주는 밑단 처리 전용 미싱이다. 오버록이 없어도 일반 재봉틀의 지그재그 스티치를 하거나 오버록 노루발을 달아서 올이 안 풀리게 할 수는 있지만, 오버록이 있으면 기성복같은 깔끔한 마감의 옷을 집에서 만들 수 있다. 

‘뭐가 계속 필요해? 고작 한 가지 기능뿐인 미싱인데 또 돈을 주고 사야 하나?’

‘재봉틀도 처음에는 망설였는데 지금은 잘 쓰고 있잖아. 옷 만들기도 처음부터 쉬워 보인 건 아니지만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왕 옷 만드는거 제대로 하게 오버록도 사보자.’


오버록 미싱도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제일 저렴한 종류로 골랐다. 기본 재봉틀을 사는데 벌써 20만원을 썼으니 여기서 더 많이 지출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또 재봉틀을 써보니 아무리 기능이 많아도 자주 쓰는 건 기본 기능 몇 가지뿐이었다. 나에게 오버록은 얼마나 좋은지로 답하기보다는 오버록이 있느냐 없느냐 중에 고르는 문제였다. 잘 작동이 된다는 전제 하에서는 저렴한 보급형도 상관이 없었다. 오버록은 아무리 싸게 사도 40-50만원은 드는데, 저렴하게 공동구매하는 곳을 찾아서 새 것을 중고같은 가격에 샀다. 


사진 4. 내가 구입한 가정용 오버록 미싱, 엘나 264


저렴한 보급형이지만 써보니 만족스러웠다. 오버록의 칼날이 지저분한 가장자리를 자르면서 재봉선이 깔끔하게 처리되어 나오는 것을 보노라면 

‘정말 오버록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것도 없이 어떻게 옷을 만드려고 한거야?’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집에는 재봉틀 두 대가 자리잡게 되었다. 


사진 5. 오버록 미싱과 일반 재봉틀이 나란히 자리한 나의 미싱 책상


아이 돌 한복을 손바느질하다가 시할머님의 손재봉틀을 물려받은 때로부터 약 2년이 지난 후였다. 그 때는 앞으로 이렇게 재봉틀을 두 대나 더 갖게 될 줄을 꿈에도 몰랐다. 재봉틀은 평소에 쓰고 있던 기계도 아니고, 이걸 앞으로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도 감이 안 왔다. 그런 상황에서 나에게 필요한 만큼만 결정했다. 시할머님이 쓰시던 재봉틀을 써보니 기계가 친숙해졌고, 더 재봉을 해보고자 전동식 재봉틀을 샀다. 일반 재봉틀을 쓰다 보니 오버록 미싱도 필요해져서 하나하나 차례대로 마련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모든 걸 계획해놓고 시작하려면 어려웠을 것이다. 일단 작게라도 시작해서, 부족한 부분을 메꿔 가다보니 어느새 많이 와 있는 나를 발견했다. 미싱 카페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본 재봉틀과 오버록뿐만 아니라 커버스티치 미싱(겉은 일자박기, 안은 휘갑치기를 해주는 밑단 처리 기능의 미싱)까지 갖고 있는 사람도 있고, 여러 종류의 재봉틀을 모두 공업용으로 갖고 있는 경우도 봤다. 공업용은 가정용에 비해 훨씬 고가이고 성능도 좋다. 그런 사람들도 처음부터 모든 장비를 비싼 것으로 풀 세팅해놓고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도 미싱 한 번 해볼까?’

싶다가도 뭘 살지 몰라서 고민하다 매번 관둔다면, 일단 지금 상황에서 가장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미싱으로 시작해보길 추천한다. 여러 가지를 다 고민한다면 끝내 시작하기도 어렵겠지만, 한 번에 한 가지의 고민만 하면 생각보다 금방 시작할 수 있다. 너무 먼 미래까지 생각하며 비싼 미싱을 꼭 사야하는 건 아니다. 미싱을 알아보고 있다고 하면 주위에서 누군가가 자기 집 창고에 있던 미싱을 흔쾌히 빌려줄 지도 모른다. 혹은 중고 거래로 괜찮은 미싱을 손에 넣을 수도 있다. 몇만 원인 미니 미싱으로도 웬만한 옷은 다 가능하다. 그렇게 구한 재봉틀로 일단 할 데까지 해보면, 어느 순간 여기서 더 나아갈지, 그만둘지 판단이 설 것이다. 최악의 경우라 해도, 재봉에 별 뜻이 없어 쓰던 미싱을 처분하는 것 뿐이다. 요즘은 중고 거래도 활성화되어 있으니, 내가 얼마 전에 하던 고민을 하던 어느 누군가가 그 미싱을 사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미싱으로 옷을 몇 벌 수선하거나 만들어보면 그 매력에 빠져서 계속 미싱을 쓰거나, 혹은 더 좋은 모델로 업그레이드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기왕이면 후자의 길을 선택해 보는 것은 어떨까? 미싱 없이는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재미난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