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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Jun 19. 2021

2. 재봉은 삼시 세 끼 차리기와 같다

재봉틀을 갖게 되기 전, 재봉틀은 그저 위험하고 어려워 보이는 기계였다. 

‘바늘이 저렇게 빨리 움직이는데, 저기 손이라도 찔리면 어쩌지?’ 

실제로 써보니  여간해서는 바늘과 손가락이 마주할 일도 없었다. 

사진 1.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이젠 아무렇지도 않은 재봉틀 바늘


‘실을 여기저기 걸어서 바늘 구멍까지 통과시켜야 하는데, 복잡해서 못하면 어쩌지?’

실 꿰는 방법은 매뉴얼을 따라하면 끝이었다. 몇 번 해보니 매뉴얼이 없어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렵고 복잡해보여도 정확한 방법을 따라 여러 번 해보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는 내가 압력밥솥을 사서 쓰는데 적응되기까지의 과정과 흡사했다. 신혼 때부터 압력밥솥을 살 기회는 몇 번 있었는데 그 때마다 

‘압력밥솥은 어쩐지 무서워. 뚜껑이 날아가는 사고도 있었다지?’

‘회전추는 왜 있는거지? 불 조절도 해야 하고 사용하기 복잡해 보이는데 그냥 전기밥솥이나 잘 써야겠다.’

그렇게 매번 마음을 접고 지내다가 결혼 6년차에 드디어 압력밥솥을 샀다. 며칠 간은 압력밥솥 다루기가 조심스러웠다. 회전추가 기울어지지 않았는지 잘 확인한 후 불을 켰고, 회전추가 돌아가며 칙칙폭폭 소리를 내면 약불로 줄이고 타이머를 3분에 맞췄다. 3분이 지나면 불을 끄고 회전추가 다 돌아가서 소리가 나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 후에 뚜껑을 열면 끝이었다. 이 방법만 잘 지키면 뚜껑이 날아가거나 밥이 설익을 일은 없었다. 

사진 2.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이젠 아무렇지도 않은 압력밥솥


재봉틀도 쓰기 전에는 미지의 세계였지만, 해보면 별 것 아니었다. 매일 밥을 해먹기 위해 사용하는 압력밥솥처럼, 식구들의 옷을 만들기 위해 수시로 사용하는 하나의 가전제품일 뿐이다.  

압력솥 얘기가 나온 김에 또 비유를 해보자면, 옷 만들기를 해보니 요리와 매우 닮은 일이었다. 오랫동안 자취생활을 하다가 결혼 한 직후, 요리가 막막했다. 블로그에서 이것저것 찾아서 해도 실패하는 날이 많았는데, 어느 날 괜찮은 요리책을 발견했다. 그 책에 소개된 레시피를 따라하면 가정식 백반집 또는 반찬가게의 반찬 맛이 그대로 났다. 중요한 건 그대로 따라한다는 점이었다. 채소 데치는 시간을 정확히 지키기 위해 항상 초시계를 옆에 두었고 진간장을 3과 1/2큰술 넣어야 한다고 하면 대충 3큰술로 얼버무리지도 않았다. 과정이 똑같아야 결과도 똑같을 테니까. 


사진 3. 요리를 별 것 아닌 일로 만들어 준 고마운 요리책


옷 만들기도 비슷했다. 옷을 만들 줄 모르던 때에는 빨래 후 마른 옷가지를 정리하다가 문득 옷을 살펴보노라면 

‘도대체 이런 건 어떻게 만드는 걸까? 목과 소매 부분에 잘 늘어나는 천은 어떻게 붙인 걸까?

하며 내가 모르는 과정에 대한 막연한 어려움을 느꼈다. 직접 만들어보니 옷도 정해진 과정을 따라 만들어졌다. 내가 할 일은 고민하거나 어떤 신비한 영감이나 계시를 받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고민해서 다 밝혀놓은 순서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내가 만든 반찬도 반찬가게에서 산 듯한 맛이 나듯이, 내가 만든 옷도 옷가게에서 산 것 같은 모습으로 나왔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된다는 점에서도 요리와 옷은 닮았다. 주부는 삼시 세 끼를 차리는 일을 한다. 맛있게 요리하고 예쁘게 차려서 내는 것도 좋지만, 제일 우선은 어쨌든 식구들이 배고파하지 않게 제 시간에 먹을 만한 음식을 내는 것이다. 매번 요리 하다보면 잘 되는 날도 있지만 생각만큼 식구들 입맛에 맞지 않은 때도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곧 다음 끼니가 돌아오고 있으며, 그 때는 좀 더 잘 하면 되기 때문이다. 옷은 요리처럼 매일 여러 번 하지는 않지만, 옷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닳고 낡아 새로 장만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옷 역시 디자인도 참신하고 재봉도 깔끔하게 만들면 좋겠지만, 옷이 필요할 때 완성하는 점이 제일 중요하다. 아이가 지난 해에 입었던 여름 옷이 죄다 작아졌는데 날은 하루가 다르게 더워지고 있다면? 며칠 내로 옷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그냥 사입혀야 했다. 옷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입을 만하면 거기서 멈출 필요도 있었다. 이 외에도 매일 해야 하는 일이 많으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위안을 준다. 실패를 좀 해도 괜찮다. 지금 필요한 옷을 입을 만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했다. 또 바로 다음 번 기회가 오니까 그 때는 더 잘 하면 된다. 

사진 4. 올 여름, 납기일을 맞춰 간신히 완성한 아이용 반바지 떼샷


더 좋은 점은, 다음 번에는 정말 더 잘하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노하우가 생겨서 단시간에 더 좋은 결과가 나왔다. 처음에는 옷을 만들다 보면 바늘땀이 울퉁불퉁해서 뜯고 바르게 될 때까지 한참 씨름하기도 했고, 왜인지 모르지만 실이 자꾸 끊어지는 때도 있었다. 지금은 좀 더 재봉틀이 길들여졌고 나도 실수를 덜 하게 되어 웬만하면 그런 일 없이 다음 단계로 척척 나아간다. 재봉틀을 사고 지금까지 아이용 맨투맨 티셔츠를 가장 많이 만들었는데, 초기에는 목둘레천을 예쁘게 다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 티셔츠 목 넣는 부분에 신축성이 뛰어난 원단을 연결하는데, 이 때 목둘레천은 몸판 목둘레의 60% 정도로, 더 짧게 만든 후 늘려가면서 박아야 한다. 그래야 입을 때 옷이 쭉 잘 늘어나고, 입고 나면 원래 모양대로 돌아온다. 어떻게 길이가 다른 천조각들을 연결한다는 건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고, 짧은 조각을 당겨가며 박는 것도 힘들어 완성하고 보면 울퉁불퉁했다. 티셔츠를 스무 장 가까이 만든 지금은 훨씬 편하게 목둘레천을 연결하고, 실수하는 일 없이 한 번에 깔끔하게 나온다. 


가끔 시장 찬스를 쓸 수 있다는 점도 같다. 평소에는 삼시 세 끼를 집에서 차리지만, 피곤하거나 귀찮으면, 어쩌다 다른 일로 바빠서 준비를 못했으면 외식을 할 수 있다. 꼭 그런 구실이 아니더라도, 탕수육이라던지 치킨처럼 집에서 하기 번거롭고 해도 잘 만들기 어려운 음식이 먹고 싶으면 외식 찬스를 쓰면 된다. 옷도 마찬가지이다. 한참 의욕이 넘쳐 아이가 한 계절 입을 옷을 다 만들 기세였다가도, 이유 모르게 ‘봉태기(재봉의 권태기)’가 오면 몇 벌 사입히면 그만이다. 혹은 옷을 열심히 만들고 있더라도 코트나 패딩 점퍼처럼 내가 직접 만들면 너무 오래 걸리고 퀄리티도 잘 안 나올 것 같은 어려운 아이템은 사입으면 된다. 그렇게 해도 집에서 어느 정도 옷을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히 도움이 되니까.  


일 년 정도 옷을 만들어 보니 옷을 만들기 전에 갖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이나 신비로움은 거의 없어졌다. 매일 먹고 살기 위해 요리를 하듯이, 입어야 하니까 옷을 만든다. 요리를 할 수 있으면 옷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비록 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생소하고 특별하게 보일 수 있지만, 레시피를 보고 반찬을 만들 듯이 옷 만들기도 정해진 절차를 따라 반복하는 것이 전부였다. 손재주가 없다는 이유로 포기하기에는 옷 만들기는 생각보다 평범한 일이다. 블로그나 책을 보고 요리를 완성할 수 있다면, 옷도 분명히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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