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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Jun 21. 2021

3. 남는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방법

재봉틀로 셀프 부업 하기

‘아이 재우고 나서 밤에 할 만한 부업거리 없을까요?’

언젠가 동네 맘카페에서 본 글이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던 터라 어떤 댓글이 달리나 유심히 지켜봤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주부는 풀타임 직장에 다니기 어렵다. 아이를 온전히 내 손으로 키우는 것만으로도 큰 일을 하는 중이지만, 종종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이가 낮잠을 자거나 밤잠에 들었을 때면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생기는데, 기왕이면 그 때에 뭔가 돈 벌 수 있는 일을 할 수는 없을까?


재봉틀로 옷을 만들어보니 식구들의 옷을 만드는 건 돈을 직접 버는 일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는 돈을 덜 쓰게 하여 통장 잔고에 돈이 더 남아있게 해 주었다. 내가 우리 집 옷공장 사장님이 되는 부업을 해 보면 어떨까? 


가장 우선순위 고객은 아이들이다. 성장기의 아이들은 계절이 지날 때마다 새 옷이 필요한데, 아이 옷은 원단이 얼마 들지 않아 직접 만들 때 더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 아이가 여러 명이라도 걱정이 없다. 기성복은 아이 수에 비례해서 지출이 늘어나니 사기가 부담될 수 있다. 직접 옷을 만들면 아이가 많아도 오히려 잘 된 일이다. 원단은 90cm인 마 단위로 구입하는데 대개 폭이 150-160센치 정도이다. 한 마를 사면 100호 또는 그 전후 사이즈의 아이 티셔츠를 두 장은 거뜬히 만들 수 있다. 한 마 사는데 비싸도 5000원 전후면 해결이 되므로 기성품을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게 옷을 만들 수 있다. 원단 두 마를 사면 상하복 세트가 세 벌은 나올 것이다. 식구 수가 많아도 ‘숟가락 하나 더 얹으면 된다’고 말하듯이, 집에서 만든 옷, 특히 아이 옷은 원단이 얼마 소요되지 않아서 한 마를 사든 두 마를 사든, 자투리가 안 남게 잘 재단을 하면 여러 벌의 옷을 만들 수 있다. 


옷을 만들기 전, 둘째에게 형이 입던 옷, 혹은 누군가가 입던 옷을 형이 물려받아 입던 옷만 입혔다. 아무리 깔끔해도 한 철 입었던 옷이고 시간이 지나니 디자인도 유행이 지나서 그런지 첫째가 입던 옷을 둘째에게 입혀 놓으면 어딘가 후줄근해 보였다. 

‘아기이니까, 옷에 별 관심 없으니까 괜찮겠지.’

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옷을 만들게 되니 둘째 옷도 새 걸로 만들어 주게 되었다. 티셔츠를 한 벌 만드나 두 벌 만드나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다. 봉제 공장에서 분업을 통해 단시간에 많은 옷을 만든다. 비록 나는 혼자 옷을 만들긴 하지만 한 번 재봉을 할 때 같은 절차를 반복하는 건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첫째가 입을 옷을 재단하다가 천이 많이 남아서 둘째 것도 재단을 하고, 같이 재봉을 했다. 갓 완성한, 한번도 입지 않아서 반듯하고 깔끔한 옷을 둘째에게 입혔더니 아이가 달라보였다. 첫째와 둘째의 자연스러운 형제 룩이 가능한 건 덤이었다. 


우리 집의 나만의 옷공장을 한 해 경영하면서 두 차례의 큰 프로젝트를 했다. 첫 번째는 여름이었다.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될 무렵, 첫째가 지난 해에 입었던 여름 옷을 꺼내보니 죄다 작았다. 반팔 티셔츠 도안을 찾아서 한 벌을 만들어봤다. 아이에게 잘 맞는 것을 확인한 후, 같은 도안으로 티셔츠를 세 벌 더 만들었다. 이후에 하의 네 장, 얇은 소재의 여름 내복도 세 세트 만들었다. 계획한 수량의 옷을 만든 후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이제 아이가 훌쩍 커서 다음 사이즈의 옷이 필요할 때까지는 쉬어도 된다. 한여름 동안은 공장을 돌리지 않고, 소소하게 옷 수선이 필요한 경우에 잠깐씩 바느질하며 보냈다. 


계절이 바뀌고 겨울이 되었다. 우리집 옷가게에서 F/W 시즌을 시작할 때가 왔다. 겨울 원단을 다 꺼내고, 더 필요한 만큼 샀다. 원자재가 조달되면 그 때부터 옷 공장을 가동했다. 생산해야 하는 제품은 정해져 있었다. 아이가 그 해 겨울 동안 넉넉히 돌려가며 입을 수 있도록 긴팔 맨투맨 티셔츠와 긴바지 각각 다섯 벌이 목표였다. 바람막이 자켓이나 코트도 만들면 좋겠지만 그건 아직 이 회사에서 만들기에는 효율이 떨어진다고 판단하여 외주를 주기로 했다. 몇 주간 작업을 해서 목표 생산량을 달성하고 난 후, 옷 만들기에 탄력이 붙어 남편 실내복도 만들었다. 원래 계획에는 없었지만 아이 티셔츠와 바지를 여러 벌 만들다 보니 남편 옷도 사이즈만 크게 하고 재봉에 시간이 좀더 걸리는 것 외에 원리는 같았기에 금방 만들었다. 아이 옷 본으로 친구 딸에게 줄 티셔츠도 두 벌 만들었다. 옷을 다 만들고 나서 본격적으로 한겨울에 접어들었고, 옷 공장은 다시 비수기가 되었다. 옷을 만들어야 할 때 바짝 일하고 나머지 기간에 쉴 수 있으니 주부가 하기에도 부담이 없다.


‘아무리 그래도 이미 하고 있는 집안일과 육아만으로도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옷 만들 시간이 나나요?’


궁금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참 옷 공장을 돌리던 때는 코로나19가 한참 유행하던 2020년 상하반기였다. 다섯 살 첫째와 한 살 둘째를 집에서 돌보면서 삼시 세끼를 했다. 둘째 이유식을 따로 만들었고, 천기저귀를 매일 세탁해서 널었다. 옷 만들기를 위해 통으로 시간이 길게 나지는 않았다. 밤에 아이들이 자면 거실에서 옷감과 도안을 펼쳐놓고 재단을 했다. 다음 날 시간이 날 때 바로 재봉할 수 있도록 연결 부위끼리 핀을 꽂아두고 잠이 들었다. 날이 밝으면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틈틈이 가끔 시간이 날 때 재봉틀을 돌렸다. 길어야 5분, 10분이었다.


‘그깟 짧은 시간 가지고 여러 벌의 옷을 어떻게 만드나?’


싶었지만, 의외로 그런 자투리 시간이 모이니 금방 옷이 한 벌, 또 한 벌 완성되었다. 류한빈 작가는 시간을 의식해 사용하다보면 짧은 시간도 긴 것처럼 느껴지고, 남들보다 두 배 긴 하루를 살 수 있다고 했다. 낮잠 자는 둘째가 언제 깰지, 혼자 노는 첫째가 언제 나를 부를지 몰라 조마조마한 가운데 재봉틀 페달을 밟다 보면 5분 동안에도 꽤 많은 부분이 완성되어 있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면 좀더 통째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씩 여유 시간이 생길 때, 어차피 휴대폰을 보면서 흘려보낼 수도 있는 그 때를 모으면 우리 집 옷 공장을 충분히 운영할 수 있다. 


‘정말 돈이 절약이 될까요? 어설프게 하다가 돈을 더 들 것 같아요.’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취미 재봉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미싱은 집에서 하는 골프’ 라는 농담이 있다. 재봉을 하겠다고 재봉틀을 사고 나면 각종 원단과 부자재를 사게 된다. 재봉틀은 가정용과 공업용이 있는데, 보통 가정용으로 입문해서 쓰다보면, 훨씬 성능이 좋고 가격도 비싼 공업용으로 갈아타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고작 옷 몇 벌을 만들려고 수백 만원이 넘는 지출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좋은 재료와 도구가 있으면 언젠가는 도움이 되겠지만, 부업의 취지에서 하는 식구들 옷 만들기는 현재 시점에서 산출 대비해서 투입이 너무 많으면 부담이 된다. 나의 사업 초기 비용은 기본 및 오버록 미싱을 사는 돈 50여 만원이었다. 보통 한 계절에 아이 옷을 사는데 10만원은 썼기 때문에 2-3년만 옷을 잘 만들면 이 비용은 금방 회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다음은 원자재를 싸게 조달하는게 관건이다. 원단을 싸게 파는 인터넷 카페를 수소문해서 가입을 했는데, 계절에 맞는 원단이 수시로 올라왔다. 지난 여름에는 아이용 여름 원단 10마를 특가라며 6천원에 팔았다. 일명 ‘묻지마’ 원단인데, 색상이나 원단 종류를 선택할 수 없고 ‘남아용’ 혹은 ‘여아용’ 정도만 지정하면 판매자가 알아서 랜덤으로 10마를 보내줬다. 내가 고를 수 없었지만 워낙 저렴해서 아쉽지는 않았고, 받아보니 내가 골라도 큰 차이가 없을 것처럼 이것저것 다양한 종류가 왔다. 1마로 상하복 세트가 나왔으니 한 벌당 300원인 셈이었다. 그전 해 겨울에는 기모 원단 10마를 2만 5천원에 샀다. 그걸로 아이 옷을 10벌은 넘게 만들었는데, 여전히 다음 겨울옷을 몇 벌 만들 만큼 남아 있다. 


그렇다고 우리집 옷 공장 옷이 그저 싸기만 한 매력이 전부는 아니다. 적은 수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면서 고객의 체형에 딱 맞는 옷을 만든다는 경쟁력이 있다. 기성복이 아무리 다양하게 나와도 사람의 얼굴만큼 다양한 체형을 모두 커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백화점이나 아울렛 근처에는 수선실이 꼭 있기 마련이다. 집에서는 옷을 만드는 단계부터 고객의 체형에 맞출 수 있다. 특히 첫째는 마른 편이어서 기성복을 사면 바지 기장은 맞는데 허리는 안맞거나, 그 반대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집에서는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바로 아이의 몸에 대보거나 입혀보면서 기장과 허리통을 결정한다. 고급 맞춤복이 비싼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입는 사람의 몸에 맞게 여러 번 손길이 가고 매만져서 옷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집 옷가게는 그런 명성이나 뛰어난 솜씨는 없지만, 식구들의 몸에 잘 맞는, 입었을 때 편하고 맵시가 나는 옷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고급 양장점에 버금간다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우리 집 옷 공장은 일 년간 프로젝트를 잘 마쳤고, 이제 슬슬 또다시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조금만 부지런해지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를 정해 꾸준히 한다면 우리집 옷 공장는 우리집 통장 잔고가 더 많이 남아있도록 지켜줄 것이다. 남이 부탁하는 일감을 받아와야만 부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부업을 한 번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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