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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Jun 21. 2021

4. 매일 배우는 즐거움

재봉의 매력

재봉이 재미있다고 하면 


‘바느질이 뭐가 재밌지? 그건 할머니들이 하는 거 아닌가? 우리 집엔 반짇고리도 없는데.’

혹은

‘나는 실과시간에 바느질 숙제가 나오면 제일 싫었어. 어렵고 지겹고 점수도 못 받고.’

하며 자신과 별개의 일이라고 선 긋는 반응을 자주 접한다. 


실제로 다뤄본 재봉틀은 실과 시간에 억지로 하던, 테이블보에 수 놓기와는 전혀 다른 활동이었다. 재봉틀 다루기가 어렵지도 않았다. 조금만 사용법을 익히면 재봉틀은 그저 윗실과 밑실이 교차하면서 천 두 장을 이어주는 기능을 하는 가전제품일 뿐이었다. 압력밥솥으로 밥을 만들고 와플 기계로 와플을 만드는 것처럼, 재봉틀이 있으면 내가 원하는 옷이나 천으로 된 소품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 재봉틀은 옷 조각을 연결하고, 나의 손길로 또다시 매만져서 또 재봉으로 연결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마침내 옷 한 벌을 뚝딱 만들어 주는 요술같은 기계였다. 


주부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고 살림이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오죽하면 살림이 ‘살리는 일’ 이라는 뜻이 있다고도 하지 않나. 하지만 그 중요함과 사명감을 인식하는 것과 별개로 집안일에서 성취감이나 재미를 느끼기 어려운 때가 많았다. 일단 일은 많이 하는데 티가 안 난다. 한참 조리대 앞에 서서 만든 음식은 금방 사라지고, 설거지해놓은 깨끗한 그릇은 금방 다시 개수대 안에 쌓이고, 깨끗이 빨아 말린 옷가지도 곧 다시 먼지와 얼룩이 묻은 채 빨래 바구니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 반복 가운데 식구들이 건강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기에 주부의 일에 가치를 느끼지만, 그래도 반복되는 노동을 마지못해 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지 출처: https://www.freepik.com/free-vector/illustration-collection-with-house-cleaning-process_5551


재봉은 그러한 집안일보다는 더 오랫동안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옷 만들기는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하고 주도하는 일이다. 어떤 원단으로 어떤 디자인이 옷을 만들지 내가 결정한다. 만드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이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사람도 나다. 

‘이 부분은 초록 실이 어울릴까, 아니면 파란 실이 어울릴까?’

‘목 부분이 좀 끼어 보이는데 목선을 1센치 내릴까 아님 1.5센치 내릴까?’

이런 사소한 문제라도 다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내 뜻대로 결정해서 완성하는 재미가 있다. 인간은 사소한 일이라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느낄 때 성취감과 행복을 느낀다. 게다가 옷 ‘만들기’ 아닌가. 만드는 작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다는 점에서 성취감을 높여준다. 음식이나 정돈된 집도 완성의 모습이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성취감을 느끼게 해줄지도 모르지만, 만든 옷은 훨씬 오랫동안 더, 사라지지 않고 계속 볼 수 있다. 게다가 ‘옷’ 만들기 아닌가? 벽걸이나 찻잔 매트도 아니고 남편과 아이들이 입고 다니는 옷이다. 내가 만든 결과물이 누군가에게 유용하게 사용되는 것을 계속 지켜본다는 데서 뿌듯함을 느낀다. 옷을 사 입힐 때에는 몰랐지만, 아이가 내가 만든 옷을 입고 있으면 계속 바라보고 싶어졌다.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새로운 걸 조금씩 계속 배우는 점도 좋다. 처음 옷을 만들 때는 책에서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기 바빴다. 옷을 다양한 디자인으로 만들면 좋겠지만 옷 본을 다 구입하는 비용이 부담되어 가장 기본 스타일의 책을 사서 봤다. 거기서 만들 수 있는 맨투맨 티셔츠는 한 디자인 뿐이었다. 한 디자인으로 원단만 다르게 해서 맨투맨 티셔츠를 열 벌쯤 만들고 나니 기본 패턴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변형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가 돌이 지났을 때 처음 옷을 만들어주려고 패턴 책의 도안을 펼쳤는데 가장 작은 사이즈도 둘째에겐 커 보였다. 그 사이즈대로 티셔츠를 만들었더니 소매가 너무 길고 허릿단은 짧으며 목둘레는 조금 끼어서 머리를 넣을 때 불편했다. 

‘소매는 2센치 정도 짧게 하고, 허릿단은 3센치 밑으로 내리고, 목둘레는 앞목점 중간을 1센치 내리면 더 잘맞을 것 같은데?’

원하는 수정 사항을 패턴에 반영해 그린 다음, 그 패턴으로 다시 옷을 만들었다. 두 번째 옷은 아이에게 훨씬 잘 맞았다. 패턴은 사람 몸에 잘 감싸도록 옷을 만들기 위해 평면에 그려진 그림일 뿐이고, 필요한대로 길이를 줄이거나 늘리면 실제 옷도 그대로 나옴을 알게 되었다. 


옷이 사람 몸에 잘 감싸도록 하는 원리로 만들면 된다는 걸 알게 되자, 그 사실을 다른데 적용하는 시도도 하게 되었다. 한참 글씨 쓰기를 시작한 아이를 위해 유아 책상과 의자 세트를 사 주었는데, 옆에서 아이의 활동을 봐주려면 나도 의자가 있었으면 했다. 또 둘째도 곧 클테니 같은 의자를 하나 더 구하고 싶었다. 의자를 하나 더 사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주 급한 일은 아니라서 차일피일 미루며 지내는 중이었다. 어느 날 아파트 재활용품 수거장을 지나는데 내가 살까 하고 고민하던 의자가 버려져 있었다. 다가가서 보니 본체에 얼룩이 있지만 부서진 곳은 없었다. 얼룩이야 지우면 될 일이었다. 의자 커버가 바스라져서 군데군데 까져 있었다. 그래서 원래 의자 주인도 중고로 팔거나 나눔을 하지 않고 바로 버린 것 같았다. 

‘커버는 재봉틀로 만들면 되겠는데?’


그 전에 의자 커버를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옷은 정해진 옷 본이라도 있지만, 의자 커버는 그렇지 않았다. 의자 방석과 등받침은 가장자리가 곡선 형태로 되어 있고 옆선도 바깥쪽은 두껍고 안쪽은 가늘어지는 형태여서, 쿠션에 딱 맞게 만들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패턴을 토대로 옷을 만들고, 옷을 토대로 패턴을 만드는 과정의 순환을 경험에 착안해 돌파구를 찾았다.


‘의자 커버 또한 기존의 의자 커버를 패턴 삼아 만들면 되겠구나!’

버려진 의자를 주워오고 며칠 동안, 아이들이 밤에 잠들면 거실로 나와 작업을 했다. 바스러져가는 의자 커버를 벗겨내 실뜯개로 봉제선을 다 뜯어 분해한 다음, 종이에 대고 똑같이 그렸다. 그렇게 의자 패턴을 만들어서 새 원단에 대고 오린 다음, 재봉틀로 박았다. 완성된 의자 커버는 의자에 꼭 맞았다. 

기존 의자 커버를 본따 패턴을 만드는 중


‘이렇게 입체적인 모양의 의자 커버를 내가 만들다니!!’


처음에는 누가 버린 의자를 주워온 궁상맞음이 부끄러웠으나, 커버를 만들고 나니 버려진 물건에 새 생명을 찾아줬다는 뿌듯함과 만족감이 더 컸다. 의자가 필요하면 그냥 사도 될 일이지만, 재봉이라는 작은 기술을 쓸 수 있는 덕분에 버려진 물건을 재활용하면서 돈도 들이지 않고 내가 고른 원단으로 나만의 의자를 만들 수 있었다. 그냥 샀더라면 별 감흥이 없었겠지만, 며칠간 고생해서 만든 거라 애착이 갔고 집에 누군가가 오면 의자 이야기를 꼭 해주곤 한다. 그러면 다들 놀라면서 

‘정말 알뜰하고 솜씨가 좋으시네요.’

하고 칭찬해주었다. 재봉 덕분에 삶의 작은 부분에서도 계속 돌아볼 수 있는 작고 행복한 이벤트가 생겼다. 


왼쪽이 내가 만든 커버를 씌운 의자(오른쪽은 기성품)



집에서 취미로, 그리고 식구들을 위해 하는 재봉은 거창한 야망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 이렇게 해서 뛰어난 디자이너가 되는 걸 목표로 하진 않는다. 내가 만드는 옷은 뭐 하나 특별해보이지 않는 기본 티셔츠와 바지 정도이다. 그러나 그런 평범한 옷을 한 벌, 한 벌 만드는 중에서도 분명한 배움의 순간이 있다. 주머니 만드는게 어려워보여서 늘 주머니 없는 바지만 계속 만들다가, 한 번 마음먹고 해보니 나도 완성할 수 있었다. 단춧구멍 만들기 기능이 어려워보여서 손도 못 대다가, 유튜브와 카페에서 정보를 검색하여 마침내 단춧구멍을 예쁘게 뚫어 남편 셔츠를 완성했다. 갑자기 재봉선이 엉망으로 나오면 실을 다시 천천히 순서대로 잘 끼워보면 대부분은 해결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 외에도,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워 보였지만 나 스스로, 그리고 남의 도움을 받아 새롭게 뭔가를 배운 순간이 소소하게 많았다.

얕은 계단을 꾸준히 올라가는 느낌이랄까? 나만 아는 계단이지만, 그렇게 일 년을 꾸준히 하니 상당히 많이 올라와 있었다. 학생 시절에는 열정을 갖고 이것저것 공부하던 때도 있었지만, 어른이 되고 주부로 살면서 그런 열정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재봉은 거창한 공부는 아니지만 필요한 걸 만들면서 재봉의 원리를 조금씩 파악해가는 재미가 있다. 이제는 재봉틀 사용도 능숙하게 하고, 만들고자 하는 옷도 큰 실수 없이 계획한 시간 내에 만들 수 있다. 사람은 아는 부분과 모르는 부분의 균형이 맞아야 흥미를 느낀다고 한다. 재봉은 그 균형을 항상 잘 맞춰준다. 내가 많이 해봐서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다. 가끔 새로운 문제가 생기지만 이는 큰 어려움 없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티가 나지 않는 집안일을 반복하며 지치지는 않았는가? 아무리 집안일을 열심히 해도 ‘집에서 논다’는 인식을 받으며 남들이 나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 것이 원망스러운가? 그러면서도 집안일을 하다가도 하루 중에 어느 순간, 할 일을 다 마치고 잠깐의 여유가 생겼을 때 뭘 할지 몰라서 드라마나 휴대폰을 보며 귀한 여유를 흘려보내고 있진 않은가? 기왕이면 재봉을 시작해 필요한 옷이나 소품을 만들고 소소하게 새로 배우는 기쁨을 누려보길 바란다. 재봉이 재미있어서 얼른 내일이 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대하며 매일 밤 잠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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