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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Jun 21. 2021

5.팬데믹과 뉴노멀 시대에 다시 보게 된 재봉틀의 가치

몇 년 전, 일본 후쿠오카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낮 시간에 관광 명소를 몇 군데 둘러보고, 저녁에는 후쿠오카 여행에서 다들 꼭 들른다는, 텐진 역 근처의 종합 쇼핑몰에 갔다. 가전제품, 장난감, 의류, 잡화 등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었다.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3층 장난감 매장을 찾아 가는 도중, 1-2층의 전자제품 코너를 거쳐 가게 되었다. 계속 걷고 걸어도 다양한 가전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 코너에 눈길이 멈췄다. 재봉틀 몇 대가 놓여 있었다. 

‘요즘 누가 재봉틀을 쓴다고 이런게 전자제품 코너에 있지?’

재봉틀도 가정에서 쓰고 전기로 작동하니까 가전제품이다. 하지만 전자제품 매장에서 전기밥솥을 사고 선풍기를 사듯이 재봉틀을 사는 모습은 생소하게 여겨졌다. 재봉틀은 바느질을 좋아하고 손재주가 있는 소수만 갖고 있는 아이템이 아니었나? 가전제품 코너에서 재봉틀까지 파는 건 일본만의 이야기일까? 일본 사람들이 특별히 더 재봉틀을 쓰는 비율이 높기라도 한걸까? 


찍어온 사진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찾은 사진을 첨부해 보았다. 종합쇼핑몰 재봉틀 코너에서 홍보 중인 직원. 출처는 https://twitter.com/yodobashi_haka/st


왜 나는 재봉틀이 소수가 쓰는 도구라고 여길까? 신석기 유적에서 뼈바늘이 출토되어, 그 시기 사람들이 이걸로 옷을 지어 입었을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래로 사람들은 쭉 옷을 직접 만들었고 특히 집에서 옷 만들기를 담당한 것은 여성들이었다. 무형문화재인 박광훈 침선장은 어릴 때부터 ‘모름지기 아녀자는 침선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슨 구닥다리 같은 말인가 싶었지만, 누군가가 바느질을 해야 옷을 입을 수 있으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숙명여대 박물관의 한국 자수 유물 중에 버선본 주머니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정사각형의 납작한 주머니에 예쁘게 수를 놓은 것인데, 식구 수만큼 주머니를 만들어  각자의 버선본을 보관했다고 한다. 식구들마다 발 크기가 달랐을 테니, 버선본이 섞이지 않게 주머니가 필요했을 것이다. 버선본 주머니를 보면 옛날 어머니들의 일이 얼마나 끝이 없었는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식구들이 잠든 시간, 호롱불을 켜놓고 ‘오늘은 둘째 아이 버선을 만들어볼까.’ 하며 잠도 못자고 깊은 밤까지 바느질하는 고단한 모습이 저절로 상상되었다. 


버선본 주머니. 출처는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230066&cid=51293&categoryId=51293


그래서 의생활은 더 빨리 시장화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19세기 중반에 재봉틀이 발명되었고, 우리나라는 1938년에 최초로 외국 재봉틀을 도입하여, 1966년부터 국산품을 생산했다고 한다. 기성복이 정착되기 전인 1960-70년대에 손이나 발로 움직이는 재봉틀이 가정의 생활필수품으로 보급되었다. 내가 물려받은, 시할머님의 손재봉틀도 아마 이 시기의 것이 아닐까 싶다. 1960-70년대에는 재봉틀로 아이 옷이나 커튼, 앞치마 등은 거뜬히 만들어 입혀야 일등 신붓감이었대나(출처: 경북와이드뉴스, 2017년 11월 22일자). 


출처: 경북와이드뉴스 2017년 11월 22일자 http://gbwn.kr/m/page/detail.html?no=1285


1980년대에는 기성복의 대량생산이 본격화되어 재봉틀의 이용률이 저조해졌으나, 88올림픽 이후로 전기보급률이 향상되고 다양한 기능을 갖춘 가정용 재봉틀이 보급되어 1990년대부터는 다시 판매량이 늘었다고 한다(신경주, 1995). 즉 기성복이 보편화된 것도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고, 가정용 재봉틀이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30년 뒤인 지금은 어떤 시기일까? 내가 보기에는 여전히 기성복이 주류이고, 재봉은 소수의 취미로 여겨진다. 하지만 지금 보기에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지, 혹은 아닐지는 모른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는 지금까지 어때왔는지가 미래를 예측해주진 않는다. 또 내가 보는 범위가 전체를 대표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내가 아는 선에서만 다들 옷을 사입는 것으로 보일 뿐, 지금도 어딘가에서 취미 재봉을 하고 있거나, 그 길에 입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정 내 자급과 산업화의 공존은 의생활만의 이슈가 아니다. 그동안 나에게 옷이란 100% 기성품에 의존하지만 음식은 삼시 세 끼 집에서 해먹는 것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결혼하기 전 약 10년 간 자취하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식생활 또한 거의 외부에 의존했다. 자취방, 하숙집, 원룸, 기숙사 등 그간 살았던 곳은 부엌이 없거나 조그마했고, 부엌이 있든 없든 대부분의 식사는 밖에서 해결했다. 또 식구가 여럿이라고 해서 꼭 음식을 집에서 해먹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나 팬데믹을 겪으며 식당이나 반찬가게에서 포장하거나 배달시켜 먹고, 밀키트를 활용하는 비율도 커졌다. 나도 육아와 다른 집안일에 열중하느라 식사 준비를 제때 못해서 가끔 포장이나 배달로 해결하기도 한다. 그러니 식생활도 전적으로 시장에만 의존하는 것도, 가정에서 주로 자급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의식주를 꾸려가는 스타일은 더욱 급격히 다양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코로나 이후로 포장이나 배달을 통한 외식이 늘었다고 하지만, 슬로라이프를 추구하는 움직임도 있다. 코로나가 본격 확산하던 2020년 3-4월, 콩나물 시루, 떡 시루, 상추 모종, 곰솥, 사골뼈 등의 매출이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팬데믹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그동안은 바쁘다는 이유로 하지 않았던 것에 관심을 두게 되어 직접 채소를 길러 먹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도 직접 하게 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재봉틀의 수요도 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빠르고 가성비 높은 패션을 빨리 소비하는 트렌드가 대세였지만 이제는 좋은 소재로 오래 입을 수 있는 패션이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김용섭, 2020). 


집에서 옷을 직접 만들어보니, 살 때보다 좀더 신중해졌다. 한참 옷을 사 입던 시절, 유명 SPA브랜드 매장에 가는 걸 좋아했고, 매장을 한바퀴 돌고 나오면 몇 벌의 옷이 손에 들려 있었다. 그렇게 옷을 사는 방식이 익숙했고, 당연하다 여겼다. 그 중에는 한두 번 입고 옷장 속에서 더 이상 나오지 않다가 헌옷 수거함으로 들어가는 옷들도 제법 있었다. 

‘정말 내가 잘 입을 수 있을까?’

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보다는, 분위기에 이끌리고 지갑은 가까이 있으니 충동구매를 하기 쉬웠다. 내가 직접 옷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 옷이 정말 필요한지를 따지게 되었다. 나의 노력과 시간이 직접 다가오기 때문이다. 물론 기성복을 사기 위해 필요한 돈도 나의 노력고 시간과 맞바꾼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니 옷 한 벌, 한 벌을 만들 때에도 언제, 어떤 용도로 입을 것인지를 좀더 분명히 정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정말 필요한 옷만 딱 알맞게 갖고 있게 되었다. 옷장이 자연스레 미니멀해진 것이다. 재봉을 시작하고 주로 아이 옷을 만들었는데, 그 이전에는 여기저기에서 물려받은 아이 옷이 리빙박스로 몇 개나 되었다. 사 입히기도 했지만, 혹시 몰라서 주위에서 옷을 물려주면 갖고 있었다. 정작 옷을 입을 때가 되어서 물려받은 옷을 살펴보면, 사이즈는 맞는데 소재가 안 맞거나, 혹은 그 반대이거나, 아이에게 잘 안 어울리는 스타일인 경우도 종종 있었다. 새 옷을 사 입히는 경우에는 그런 문제는 덜했지만 사이즈가 잘 안 맞는데 금방 수선하지 못해서 잘 입지 못하고 계절이 지나간 적도 있다. 집에서 옷을 만들면 옷이 많진 않아도 아이에게 잘 맞고 어울려서 한 계절 내내 자꾸만 입히게 되는, 스테디 아이템으로 옷장이 구성된다. 티셔츠나 바지 등 한 아이템 당 다섯 벌 정도씩 만들게 되는데, 세탁을 주 2-3회 하기 때문에 돌려입는 데 아직까지 어려움은 없었다.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 사회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기존에 해오던 생활 스타일을 돌이켜볼 때이다. 지금까지 밥은 집에서 해 먹고 옷은 사 입었다 하더라도, 그건 나에게, 혹은 그 시점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예전에도 취미로 재봉을 하는 사람들은 늘 있었지만, 뉴노멀의 시대에 재봉틀은 슬로우 라이프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데 도움을 주는 도구로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집에서 콩나물도 키우고 파도 키우고 와플도 만드는데, 옷이라고 왜 만들지 못하겠는가? 


몇 년 전 일본 여행 중에 들렀던 그 쇼핑몰을 다시 떠올려본다. 최신 기술을 적용해 화면이 휘어진 텔레비전, 증강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안경, 최첨단 휴대폰과 더불어 한 코너에서 재봉틀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시되어 있었다. 이는 바느질이 보통 사람들에게 앞으로도 계속 필요한 기술임을 보여준다. 뼈바늘을 가지고 바느질하던 선사시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뉴노멀 사회로 급격히 변화 중인 지금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바느질은 필요하다. 뉴노멀 시대에는 과거의 나를 버리고 재빠르게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전의 나는 재봉과 거리가 멀었어도, 뉴노멀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재봉틀을 스스로에게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 지금이 바로 재봉을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다. 필요한 옷과 물건을 직접 만들며 즐거움을 느끼다보면, 예전처럼 바깥에 자유롭게 다니던 때가 덜 그리울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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