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쫓길수록 더 필요한 단 하나의 시간
하버드대 경제학과 센딜 멀레이너선 교수가 진행한 실험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실험 참여자들에게 자동차의 부품이 고장 나 수리비가 40만 원 든다는 시나리오를 읽게 한 뒤, 곧바로 IQ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이때 참여자들은 소득 수준에 따라 부자 집단과 빈자 집단으로 나뉘었고, 두 집단 모두 비슷한 IQ 점수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수리비가 400만 원 든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동일한 테스트를 실시했더니, 부자 집단의 점수는 거의 그대로였던 반면, 빈자 집단은 평균 10점 이상 IQ 점수가 하락했습니다. 단순한 금액 차이가 아니라, 심리적 압박과 스트레스, 즉 '결핍' 상태가 인지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 실험이었습니다. 이 10점의 차이는 돈 자체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 부족'이라는 보이지 않는 부담이 만들어낸 결과였던 것입니다.
이 실험은 단순한 숫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매일같이 느끼는 '압박감'의 정체를 설명해주는 열쇠와 같았습니다. 해야 할 일은 쌓여가고, 머릿속은 복잡한 걱정들로 점점 둔해집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정작 사소한 실수로 인해 흐트러지고 맙니다. 무언가 '정신이 없다'고 느낄 때, 그건 단순히 일정이 빡빡한 것이 아니라, '결핍'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금이 내 정신에 부과된 상태였습니다.
잠을 한숨도 못 잔 사람보다, 400만 원의 수리비 걱정을 안고 있는 사람이 더 낮은 IQ 점수를 받았다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결핍은 우리를 잠 못 이루게 만들고, 충동적이게 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실수를 유발합니다. 백인 학생들에게 낯선 중국 요리를 내놓고, 숫자를 외우게 했더니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무례한 말을 내뱉었다는 장면은, 바쁜 직장인이 가족에게 괜히 짜증을 내는 모습과 닮았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은 우리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줍니다. 정신이 너무 바쁘고 무거우면, 인간은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것. 결핍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치열하게 몰아붙이죠. 그래서 정작 중요한 일, 미래를 위한 계획은 뒤로 밀리고, 눈앞의 급한 일들만 처리하다가 하루가 끝나버립니다.
센딜 멀레이너선과 엘다 샤퍼는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서 결핍이 우리 삶에 다섯 가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첫째, 경제적 결핍은 '돈이 없다'는 단순한 상태를 넘어선 압박과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둘째, 정신적 결핍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상태로 이어져 사고력을 저하시킵니다. 셋째, 사회적 결핍은 '친구가 없다', 즉 관계를 맺을 에너지조차 부족한 상태를 만듭니다. 넷째, 결핍은 '덫(trap)'이 되어, 단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다 장기적으로 더 큰 손해를 보는 악순환에 빠지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시간이 없다'는 감각입니다. 결핍은 우리의 시간을 축소시켜, 지금 당장의 불을 끄는 일에만 집중하게 만들고 장기적인 계획은 뒤로 밀려나게 만듭니다.
이 책은 결핍을 단순히 가난이나 부족함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왜곡시키는 심리적 상태로 분석합니다. 그리고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첫걸음은 '정신적 여유'를 회복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하루 한 시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
멀레이너선 교수는 이 느슨한 시간이야말로, 결핍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여유’를 사치처럼 여깁니다. 일을 더 해야 하고, 성과를 내야 하고, 가족을 돌봐야 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가. 바쁘게 일하고 있지만, 그 일이 정말 중요한 일인가.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기 위한 반복은 아닌가. 이 질문은 결국 ‘나는 왜 이렇게 지쳐있는가’라는 고민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해답은 어쩌면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무시해온 '여유' 속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결핍에 빠졌을 때 사람은 장기적 사고를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적금을 알아보거나, 꾸준한 운동을 시작하거나, 투자 공부를 하거나—이런 일들은 지금 당장 급하지는 않지만, 미래를 바꾸는 열쇠입니다. 그러나 정신의 공간이 없으면, 이런 일은 늘 ‘내일’로 미뤄집니다. 그 ‘내일’이 수개월, 수년이 되어버리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요즘 하루에 한 시간만이라도 ‘의도적으로 비워두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책을 펼치거나, 창밖을 보거나, 가만히 호흡을 느끼는 시간. 그 시간 동안은 쫓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여유가 다시 정신의 여백을 채우고,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는 힘이 되어줍니다.
영상의 마지막에 등장한 ‘늪에서 빠져나오는 법’은 참 인상 깊었습니다. 몸에 힘을 주고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지게 된다는 말은, 결핍의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가 삶에 너무 쫓기고, 결핍의 압박 속에서 더 빨리, 더 많이, 더 완벽하게 하려 들면 들수록 오히려 상황은 악화됩니다.
센딜 멀레이너선과 엘다 샤퍼는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서 이와 같은 상황을 '인지 초크(choking)' 현상으로 설명합니다. 결핍 상태에서는 뇌가 과도하게 스트레스에 반응하여, 평소 할 수 있던 판단과 실행이 오히려 더 어려워집니다. 골프 선수나 농구 선수가 자유투처럼 평소 잘 하던 동작에서 실수하는 것처럼, 결핍은 우리의 정신적 '루틴'을 무너뜨립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의외로 단순한 전략입니다. 바로 잠시 멈추는 것, ‘대자로 누워서 무게를 분산시키는 것’처럼 말입니다. 몸과 마음에 힘을 빼고, 자신을 다그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유연해지는 것. 결핍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단기적인 불안보다 장기적인 회복을 우선하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진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일, 더 많은 돈, 더 많은 성과가 아니라—스스로를 믿고 여유를 허락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남’일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저와 마찬가지로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 단 10분이라도, 스스로에게 여유를 선물해 주세요. 미래를 위한 중요한 계획을 세우기 위한 시간,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호흡, 무의미해 보이지만 꼭 필요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
결핍은 우리를 바쁘게 만들지만, 여유는 우리를 사람답게 만듭니다.
삶이 너무 벅차게 느껴질 때, 대자로 누워보세요. 그 느슨함이, 어쩌면 가장 큰 생산성일지도 모릅니다.
이 글은 유튜브 채널 「심리학 고양이: 새로운 마음의 습관」의 영상 〈하버드대에서 밝힌 ‘삶에 여유가 없을수록 꼭 해야 하는 1가지〉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해당 영상은 센딜 멀레이너센 & 엘다 샤퍼의 저서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2025)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