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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고 바로 누우면 정말 소가 될까?

자율신경, 뇌, 수면장애의 의외의 연결고리

by JM Lee

나 어렸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는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가 된다며 겁을 주곤 하셨습니다.

실제로 ‘게으름뱅이 아들이 밥 먹고 뒹굴다가 소로 변해 팔려나가 죽도록 일하다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는’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 말입니다.


그 이야기 덕분에,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밥을 먹고 나면 절대 쉬지 않았습니다. 설거지를 하든, 산책을 하든, 무언가를 꼭 해야 직성이 풀렸죠.


그런데요, 꼭 옛날이야기가 언제나 옳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최근 우연히 자율신경기능의학 전문의 김준영 원장의 강의를 보게 됐습니다.

그 영상에서 그는 뇌 기능과 수면, 심지어 공황장애와 우울증까지, 우리가 평소 '마음의 문제'라고 여겼던 증상들이 자율신경과 몸 상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말은 이거였습니다.

“밥 먹고 바로 눕고 싶다면, 눕는 게 좋습니다. 몸이 편하면 소화도 잘 됩니다.”



뇌는 ‘에너지 괴물’이다


우리는 보통 뇌를 생각할 때, 그저 머리 안에 있는 작은 기관쯤으로 여기지만, 실은 **우리 몸 전체 에너지의 20%**를 사용하는 ‘에너지 괴물’입니다. 체중의 2%밖에 안 되지만, 가장 많은 산소와 포도당을 요구하죠.
뇌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산소, 영양소, 물, 체온 네 가지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중 하나라도 어그러지면, 집중력 저하, 수면장애, 기억력 감퇴, 심지어 공황장애와 우울증 같은 정신적 질환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 시작점은 의외로 *‘목’*일 수 있습니다.



거북목과 자율신경


현대인은 대부분 일자목, 거북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노트북, 장시간 운전.
이러한 자세는 뇌로 가는 혈류를 방해하고, 자율신경의 균형을 무너뜨립니다.


“뇌의 문제가 아니라, 뇌에 가는 피가 부족한 것일 수 있습니다.”


목이 굳으면 어깨도 결리고, 호흡도 얕아집니다. 그러다보면 잠이 안 오고,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커피에 손이 갑니다. 그런데 커피는 또 탈수를 부릅니다.
만성 탈수, 장기능 저하, 혈액순환 장애는 결국 자율신경의 총체적 난조로 이어지고, 수면장애와 감정 기복을 낳습니다.



수면제는 뇌의 스위치를 강제로 끄는 것이다


잠이 안 오는 이유를 단순히 스트레스나 고민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김 원장은 “몸이 편하지 않아서”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경추 배열이 틀어져 누워도 긴장이 풀리지 않는 경우, 잠들기 어렵고, 수면제 없이는 ‘스위치 오프’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건, 몸이 불편하면 마음도 불편해진다는 점입니다.

공황장애, 우울증 역시 뇌의 화학물질 문제가 아니라 신체 구조와 자율신경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숨이 가쁘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병원을 찾은 사람들이 ‘심리적 문제’로 분류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약을 먹고 좋아진 것이 아니라, 감정이 무뎌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밥 먹고 눕는 것을 許하라


돌이켜보면, 내가 밥 먹고 곧장 움직이던 습관이 늘 피로를 안고 살게 했던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김 원장은 식사 직후 몸이 피곤하다면 누워도 괜찮다, 다만 몸이 편해야 누운 게 효과가 있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서있거나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하다면, 소화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밥을 조금 줄이고, 단백질 위주로 식사하고, 식사 전후로 잠깐 누워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습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살았던 몸의 신호를 다시 들을 수 있는 작은 실천입니다.



'내 몸'을 믿는 연습부터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모든 문제는 ‘마음’이나 ‘정신’이 아니라, ‘몸’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걸요.
몸이 불편한데 원인을 모를 때, 그 모호함이 우울함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원인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고, 자율신경의 흐름을 되살리는 것이 바로 ‘회복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말씀이 틀렸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우리에겐 그 ‘소가 되는 이야기’보다도 몸의 피로와 회복을 바로 알아차리는 감각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혹시 오늘 점심을 먹고 몸이 무거웠다면,
소파에 기대어 10분만 눈을 감아보는 건 어떨까요.


몸이 편하면, 뇌도 쉬고, 자율신경도 회복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살아나는 겁니다, 당신의 뇌도.


https://www.youtube.com/watch?v=eB4eFXjJP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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