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에르도안의 긴 그림자: 터키의 민주화는 언제쯤?

― 아르빌 공항에서 마주했던 한 남자, 그리고 지금의 튀르키예

by JM Lee

아르빌 공항에서 마주한 남자


2010년, 나는 이라크 쿠르디스탄 아르빌 공항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 공항에서 의외의 인물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생겼다. 바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당시 터키 국무총리였다.


‘에르도안이 왜 여기에?’


첫 반응은 의아함이었다. 터키는 자국 내 쿠르드족에 대해 오랫동안 억압적인 정책을 펼쳐왔다. 쿠르드어 사용을 금지하고, 독립을 주장하는 정치세력을 테러리스트로 낙인찍으며 철저히 탄압해온 국가였다. 그런 터키의 총리가, 쿠르드 자치정부의 중심지인 아르빌을 방문한다는 건 단순한 외교 일정 이상의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시만 해도 나는 그 배경을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분명한 건 그 순간, 에르도안에게서 느껴진 강렬한 카리스마였다.


말 그대로 ‘한 나라를 끌고 가는 힘’이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22년 집권, 그 끝은 어디인가


그로부터 15년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튀르키예(터키)는 다시 한 번 거대한 정치적 격랑 속에 있다.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 즉 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의 유력 대선 후보가 부패 및 테러단체 연루 혐의로 전격 구속되었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위는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등 대도시로 번졌고, 튀르키예 정부는 강경 진압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2019년, 그리고 2024년 두 차례에 걸쳐 에르도안의 아성이라 불리던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되며 야권의 희망이 되었다. 그런 그가 2028년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마자 체포된 것이다. 법원의 구금 연장 결정과 동시다발적인 언론 및 SNS 계정 차단, 통화 가치 방어를 위한 115억 달러의 외환 시장 개입까지. 단숨에 국가 전체가 ‘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이마모글루 사진.jpg


민주주의의 퇴각과 권위주의의 복귀


에르도안은 1994년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된 후, 2003년 총리, 2014년 대통령을 거쳐 2025년 현재까지 장기 집권을 이어왔다. 그는 2016년 친위 쿠데타 시도 이후 긴급조치를 명분으로 사법부, 언론, 군대를 장악했고, 2017년 개헌을 통해 대통령 중심제를 강화했다. 사실상 터키는 대통령제 독재국가가 된 셈이다.


터키는 오랜 시간 동안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온 나라였다. 그러나 에르도안 집권 이후, 그 균형추는 명백히 기울어졌다. 사법의 독립성은 사라졌고, 언론의 자유는 탄압되었으며, 야당과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하나둘 지워졌다.


그의 오랜 집권은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되었다.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으며, 2024년 기준 리라화는 전례 없는 폭락을 겪고 있다. 이마모을루 체포 당일, 리라는 달러 대비 11% 폭락했고,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하루 만에 약 17조 원 규모의 외환을 시장에 투입해야 했다.



형제의 나라, 그리고 데자뷔


튀르키예는 한국과 ‘형제의 나라’로 불린다. 6.25 전쟁에서의 참전이 그 유대의 시작이었다. 그런 튀르키예에서 최근 일어난 정치적 파동을 보며, 나는 문득 어제 있었던 ‘윤석열 파면’ 결정이 겹쳐 떠올랐다.


물론 상황과 맥락은 다르지만, 권력의 논리로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하고자 하는 시도, 사법기관이 독립된 수사기관이 아닌 정치권력의 도구처럼 사용될 가능성은 결코 남 일 같지 않다. 권위주의는 언제나 ‘질서’를 이유로 등장하지만, 결국 그것이 무너뜨리는 것은 ‘자유’와 ‘정의’다.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할 시간


튀르키예의 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국민들은 다시 광장으로 나서고 있다. 에르도안은 “정적 제거가 아니라 법의 집행”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주장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나는 2010년, 아르빌 공항에서 에르도안을 보며 느꼈던 감정—그 단단하고 힘 있는 기운이 때로는 민주주의를 집어삼킬 수도 있음을 이제는 안다.


우리도 되묻고, 점검하고, 감시해야 한다. 권력은 언제나 스스로를 감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열심히 일할수록 생산성은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