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싸우고, 매일 화해하며, 매일 회개의 일기를 쓴다
정기 체크업을 간 산부인과에서 바로 응급실로 간 케이스.
고혈압이 심한 관계로 아무 준비도 없이 그렇게 응급실에서 유도분만을 기다리게 된 7월 1일.
생각보다 유도분만은 수월했었다. 풍선을 끼워 넣는 과정에서 출혈도 많이 났고, 강한 아픔이 있었지만 견딜만했다. 30시간의 푸시도 무통주사를 맞아가며 견뎠다.
미국에서 공부하며 지낸 수많은 시간들과 세월들의 외로움과 고통에 비해 출산은 비교적 덜 아팠다.
"아무래도 제왕절개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안쓰러운 표정을 본 순간 나라를 잃은 듯 울었지만,
낯선 나라, 그것도 생전 처음 들어가 본 수술실이 신기해 금방 서러움도 잊혔다.
"으앙!"
정말 티브이에서나 보고 들었던 그런 갓난 아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의료진들은 분주했고,
간호사 선생님이 남편을 데려가 탯줄을 자르게 해 주고,
남편은 정말 핏덩어리 같은 딸을 나에게 들고 와 보여주었다.
"흑흑흑"
또다시 나라를 잃은 사람처럼 통곡을 했다.
너를 만나기 위해 두 번의 유산과 열 달의 마음 졸임과 이틀이 넘는 분만실에서의 기다림을 겪었구나.
"너는 미국에서 박사에 로스쿨까지 마친 녀성이잖아. 힘들게 공부했던 그 시간들보다 덜 힘들 거야, 그치?"
남편이 분만실로 향하는 베드 카트를 밀며 나를 위로했던 말.
그의 말에 용기를 내어 나는 너무나도 자신만만한 천둥벌거숭이 엄마가 되었다.
2018년 1월.
나의 딸 아일린은 18개월을 마치고 19개월을 향해 하루하루를 보내며 논다.
임신기간에 적은 일기들은 도저히 지금으로서는 지킬 수 없는 약속들이 한 바닥이고,
좋은 엄마들의 글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거나 회개를 한다.
그렇다.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니다.
모성애도 지극히 낮다.
아이의 모든 행동들을 자애롭고 인내심으로 바라보며 참고 길러내는 애미도 아니다.
화가 많고,
툭하며 짜증이 치솟고,
아이와 함께 신경전을 치르며 일상을 보낸다.
유산 후 어렵게 얻은 딸이라 "12개월까지는 내가 일을 쉬더라도 꼭 끼고 키울 거야"라고 다짐했던 걸 후회했던 애미다. 어쩌다 사무실에 나가야 하는 날이 되면 그렇게 홀가분하고 기분이 상쾌할 수가 없다. 밤부터 설렌다.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나가고 싶었고, 지금도 나가고 싶다.
아이가 조금씩 개월 수가 증가하면서,
나도 1분씩이라도 내 시간을 더 가지고, 일을 하며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렇듯
좋은 엄마는 아니어도 나 역시도 내 딸은 세상에서 제일 귀한 존재다.
벌써부터 내가 없고 난 먼 훗날 홀로 남겨질 딸의 미래마저도 걱정하게 만드는 그런 존재다.
앞으로 이 공간에는 처음 애미가 된 아일린 맘의 솔직한 이야기를 적어보련다.
베스트셀러 육아서나
좋은 엄마들이 교훈을 주는 그런 육아 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신도 아니고,
성인군자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니고,
부처님도 아니니까.
매일 우리는 싸우고, 화해하고 (아이는 "미냔"이라고 사과한다), 또 싸우며 지낼 것이다.
그러다 나는 잠든 아이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회개의 일기를 쓰며 반성이란 것을 할 테지.
하지만, 애미는 처음이라 이 모든 건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의 과정이 되리란 걸 안다.
(비겁한 변명일지라도)
임신을 하고 늘 누워지내며 한량의 삶을 살았던 그때를 내가 지금 그리워하는 것처럼,
내년에 나는 2018년의 오늘을 그리워하리란 것도 안다.
그토록 힘들었다고 기억되는 2017년의 나날들을 요즘 나의 아이폰 사진첩에서 훔쳐보며 조금은 더 어린 딸아이의 그때 모습이 살짝 그리운 것처럼.
그래도 아이가 "엄마, 오늘은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종알종알 거릴 그때가 더 빨리 오면 좋겠다.
(잠이라도 퍼져 자게......ㅠ.ㅠ)
"엄마, 나 이 사람이랑 평생 살고 싶어. 결혼... 하고 싶어!"라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할 그 순간이 더 기대된다. 그때까지 이 공간을 꾸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