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의 딸, 아일린과 연애하기
"서른일곱 살에 엄마로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하면서 줄곧 내 안에서는 이기심과 죄의식이 맞부딪치며 갈등을 일으켰다. 나는 그 둘 다에서 약간 멀리 서있기로 했다."
서른 중반이 훌쩍 넘은 나이,
임신이라는 단어가 주는 기쁨도 잠시. 병원에서는 뭔 놈의 검사를 그토록 권장하던지......
미국에서 병원이란 곳은 한번 방문만 해도 수백 불이 나오는 곳이다.
물론 보험이 있어 한번 방문 때마다 20불 정도로 커버가 가능했지만,
할 때마다 피를 족족 뽑아가니 한번 병원을 다녀올 때마다 나의 팔에는 시퍼런 멍들이 가시질 않았다.
늦은 나이의 임신이란
의사 선생님이 권하는 검사를 뿌리칠 용기를 가지게 하지 못한다.
유전자 검사를 시작으로,
두 번의 유산 경력으로 시작된 호르몬제 투여, 그리고 그로 인해 너무나도 지독한 토하는 입덧이 시작되었다.
유전자 검사는 거금이 들었지만 (물론 보험으로 커버가 되어 다행이었다),
아이가 딸이란 사실을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2015년 12월 24일에 알게 되었다.
시댁에서는 은근히 아들을 바라시는 눈치셨지만,
우리 부부에게 있어 처음 품게 된 이 아이의 성별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유전자 검사에 이상이 없다는 것과,
나의 입덧이 시작되었다는 것.
(두 번의 유산 모두 입덧이 없었기에 입덧은 정상 임신이 되었다는 증상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에게는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간 듯한 2015년의 크리스마스였으니까.
그렇게 열 달 동안 마음을 졸이고,
검사 결과가 좋아서 기뻐하며,
또 다른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걱정하다가 웃던 시간들이 지났다.
온갖 힘든 과정을 남들과 똑같이 겪으며,
결코 쉽지 않은 분만의 과정을 지나치고,
나는 그렇게 꿈에 그리던 한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입장을 바꿔보면 나라도 사랑하는 엄마 품에 폭 안겨 높은 곳에서 두루두루 주변을 구경하면서 나를 사랑한다는 속삭임을 들으며 흔들흔들 나른한 진동을 느끼고 싶을 것 같았다. 누구는 그러더라. "안아줄 수 있을 때도 얼마 안돼. 나중에 커서 안아보자고 하면 그땐 아이가 싫다고 내뺄걸." 어서 허리 고치고 팔뚝 근육이나 키우는 게 모녀간에 서로 행복해지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18개월이 넘어,
19개월을 향해가는 아가는 무. 겁. 다.
나의 몸무게에 고작 4분의 1이지만 그래도 버. 겁. 다.
이 아가를 품에 안고 매일같이 2층에서 1층으로, 1층에서 2층으로 계단을 오르내리고
(타운하우스에 살고 있다. 밖에서 보면 쌍둥이들처럼 똑같이 닮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1층은 거실과 주방, 2층은 아이방과 침실, 그리고 3층은 서재로 꾸몄는데, 1층과 2층을 주로 아이와 다니다 보니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여간 고통스럽지 않다. 다음번에 이사를 가면 꼭 단층으로 가리라 다짐 중이다.)
아이를 품에 안고 노래를 불러주고 자장가를 불러주며 재운다.
아이가 12개월까지 누워서 잠을 자려고 하지 않았다.
수면교육을 시켜야 하나 책도 참 많이 봤었다.
울리기도 많이 울리고, 짜증도 많이 냈었다.
힙시트가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팔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고통들을 매일 두세 번씩 겪다 보니 아이가 원망스러울 적도 많았다.
'누구네 애는 누워서 잔다고 하더라'
'우리집 애는 수면교육에 성공해서 누워 자요'
이런 글들을 인터넷에서 접할 때면 나만 바보 같고, 나의 딸은 발달이 더딘 아이 같기만 했다.
아이의 돌잔치를 위해 몇 년만에 가게 된 한국.
매일 나의 지친 모습에 친정엄마도, 시어머님도 왜 애를 그렇게 키우냐고 속상해 나무라셨다.
이렇게 키우고 싶어 키우는 게 아님을 나를 낳은 엄마도, 아이의 아빠를 낳은 어머님도 이해하지 못하셨다.
아이는 고집이 셌고,
그런 아이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을 정도로 힘이 들었던 시기가 참으로 더디게 흘렀다.
그러던 어느 순간,
기적처럼 아이는 누워서 자기 시작했다.
아마도 데이케어에 다녀오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지금은 누워서 잘 수 있는 아이를 좀 더 품에 안고 싶어 흔들의자에 앉아 아이를 안아본다.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고, 자장가를 불러주며, 하루 있었던 일들에 대해, 내일 벌어질 일들에 대해 조곤조곤 얘기한다. 아마도 아이가 하루에 한 번 낮잠을 자고, 밤잠을 10시간씩 통으로 자주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더 많이 안아주고 싶은데 요즘은 조금 안겨있으면 폴짝 뛰어 내려가 자기 자리로 가서 눕는다.
시터 이모님이 첫날 그러셨다.
"아이가 참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네요."
바람직하다.
그렇게 12개월 동안 애미에게 매미처럼 달라붙어 있더니만 어느새 독립적인 아가가 되었는지.
그래도 여전히 어느 정도는 엄마의 껌딱지인 18개월을 마친 아이.
그런 아이가 팔을 벌리고 뛰어올 때,
누군가의 품에서 나에게로 손을 벌리며 안아달라 할 때,
거부하지 않고 안아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육아 초기의 모든 육체적인 고통은 절대적인 수면 부족이 근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못 자게 하는 고문이 가장 고통스럽듯 수면 부족은 인간을 위태롭게 한다."
배우 이범수 씨의 아내 '이윤진'씨가 나온 예전에 방영된 '좋은 아침'을 다운로드하여 컴퓨터에 저장해두었다. 몇 년 전의 프로그램이라 둘째가 아주 어렸던 시절 그녀의 이야기는 나에게 충분한 자극제가 되었다.
"잠을 줄이면 모든 일을 하게 되는 것 같고......"
딩동댕!
그녀의 말은 내 생각과 일치한다.
"워킹맘으로 가장 힘든 게 뭐냐"는 '오늘 뭐 먹지'에서의 MC들의 질문에도
"졸린...... 거요?"라고 애잔하게 대답하는 그녀에게 나는 고개를 연실 끄덕여본다.
현재는 '다 키웠다'라고 생각되는 아이들을 기르고 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잠이 부족하다고 했다.
언젠가 나의 여동생 (우리는 서로를 '자매님'이라고 부르는데, 가끔 처음 오시는 블로그의 이웃님들 혹은 주변의 사람들은 천주교 신자냐고 묻곤 한다지. 다음부터는 여동생을 이 공간에서도 '자매님'이라고 부를 예정이다)이 그랬다.
"우리 아일린도 소을이처럼 자라면 좋겠어."
그래서 조금 더 관심을 가져 본 소을 엄마, 참 멋졌다.
전업주부도 마찬가지일 거고,
일을 하는 워킹맘들도 똑같을 거다.
육아를 하면서 가장 힘든 건, 나 자신과의 싸움이 아닌, 나 자신의 수면 양을 줄이는 싸움 같다.
"엄마는 편하고 즐거우면 죄의식을 느껴야만 '비양심', '무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일까. 왜 엄마는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하면 안 되는가. 왜 엄마는 자기 시간을 가지면 안 되나. 왜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되나. 가사일을 제대로 꼼꼼히 못한다고, 남편보다 집에 늦게 들어간다고, 애를 남의 손에 맡긴다고, 애랑 충분히 못 놀아준다고 왜 죄의식을 가져야 하는 걸까."
일하는 엄마,
워킹맘.
나의 수식어가 되어버린 18개월 동안 참 부단히도 나의 감정은 널을 뛰었다.
하루는 일하는 게 너무 좋아 미치겠고,
하루는 일하면서 혼자 내버려두어야 하는 아이 때문에 미치겠고.
백일을 기점으로 나는 조금씩 일을 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비지니스를 내팽개치고 아이만 볼 순 없었다.
도태되어가는 듯한 느낌, 직원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다 못마땅한 꼬인 심보, 조금은 육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심으로 한 때는 3층 서재에서 아일린이 나를 찾고 울어도 내다보지 않는 매정한 엄마가 된 적이 있었다.
터질 것만 같은 스트레스가 꽉 찬 가슴을 부여잡고 이메일을 쓰고 서류들에 사인을 하면서도 아일린의 기저귀를 직접 갈아주지 못하는 엄마라서 죄스러운 마음이 가득했었다.
어느 날 밤,
아일린이 잠들고 오랜만에 맥주를 앞에 두고 남편과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하다가 털어놨다.
일하는 게 요즘 너무 아일린에게 미안한다고.
일 년까지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던 욕심이 내 이기심으로 변질되고 있는 게 남편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너무 면목이 없다고.
나의 말에 남편은 놀라는 눈치였다.
내가 너무 일하고 싶어 하고 즐거워하는 것 같아서 몰랐다고 했다.
내가 짜증을 내면 '아, 몸이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애보랴, 일하랴 힘든가 보다' 했다고.
이렇게 남편은 가끔 남의 편이 되고, 눈치를 안드로메다로 던져버리는 상황을 종종 연출하고 있다.
한동안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던 남편.
"난 당신이 뉴욕 회사에 다녀와서 눈을 빛내면서 그 날 있었던 일들을 나에게 얘기할 때, 그때가 가장 행복해 보여. 저녁 식사가 맛있게 되었다거나, 끝내주는 김치찌개를 끓여서 기쁘다는 말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
'은근 비꼬는 건가?'
"항상 너는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멋있어 보여."
"... 정.... 정말?"
"응. 어린 아일린은 매정한 엄마인 너를 어쩌면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을 거야. 학교에 자주 못 오고, 학교에서 돌아오고 엄마가 없는 환경에 가끔은 서럽고 외롭겠지. 근데 우리 딸이 우리의 바람대로 정상적으로 커준다면, 말을 할 수 있고, 깊은 사고를 하게 되었을 때, 우리 엄마는 일할 때가 가장 빛나고 멋있다고 얘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키워보자. 난 능력 많은 네가 그 능력을 썩히며 사는 건 원치 않아. 그러려고 내가 너랑 결혼하고, 아일린을 낳은 건 아니니까. 나만 좋은 일을 하며 사는 건 이기심이지, 안 그래? 너도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 내가 더 많이 도울게. 내가 더 잘할게."
남편은 한국에서 태어났고 지극히 평범하게 자랐다.
공부를 잘한 모범생이었고, 일류대를 나오고, 좋은 직장에서 늘 탄탄대로를 걸었다.
미국에 유학을 나와서도 한 번도 실패를 모른 사람이었다.
자신이 늘 말하는 운이 좋아서 단번에 원하는 모든 것들을 착착 이뤄낸 사람이지만,
그 이면에는 말할 수 없는 노력과 좌절이 있었음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를 지켜본 '동료'이자 '아내'로 15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었다. 어찌 보면 지독히도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시각으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볼 수도 있었을 텐데도 (눈치가 없음을 빼고는) 참 자유롭고 유동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이다. 그래서 감사하다.
가끔 낯선 곳에서 사는 게 버겁고, 가족이 그리울 때,
"우리 한국에 가서 살까?"라며 내가 꼬드기는 말을 해도
"그럼 좋겠지만, 나는 여기서 좀 더 버텨보고 싶어."라고 말해오는 남편.
FM처럼 집과 일터밖에 모르며 사는 남편이지만,
비록 충고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때는 그의 충고가 짜증으로 쌓이지만,
그 날 남편이 나에게 해준 말은 지금까지도 종종 내 일기장을 펴보는 이유가 되었다.
그래, 미안해하지 말자.
안타깝게 생각하지도 말자.
너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다.
난 엄마이기 이전에 내 이름을 걸고 하고 있는 일이 있고,
그 일에 나를 믿고 따라와 주는 사람들의 가정이 걸려있고,
내가 엄마이기 이전에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모님의 딸이었고,
내가 너를 낳기 전에 나를 더없이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이란 것을 했고,
그 남자, 네 아빠는 여전히 나의 미래를 응원하니까.
아이는 13개월부터 동네 꽤 괜찮은 데이케어에 다니고 있다.
엄마의 무지로 (미국에서는 설마 웨이팅이 이렇게 길 줄은 몰랐다) 화요일과 목요일만 가는 파트타임.
풀타임을 대기 명단에 올리고 거진 몇 개월을 눈 빠지게 기다리는 중이다.
올해 초부터는 하는 수 없이 월/수/금 나머지 요일에 아이와 함께 놀아 줄 시터 이모님도 구해야 했다.
아이는 데이케어를 사랑하고,
새로 오신 시터 이모님과도 다행히도 잘 적응 중이고,
그에 따라 나에게는 조금 마음의 여유란 것이 생겼으며,
18개월 동안 단련된 마음으로 죄의식보다는 아이가 나와 함께 할 수 없는 시간 동안 더 많은 일들을 처리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우리 부모님을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으로 손꼽았 듯, 아이의 롤모델이 누구냐는 물음에 "엄마"라고 거침없이 대답해 주었음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세뇌를 시켜야지, 지금부터.
"서른 일곱 살에 '엄마'로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하면서 줄곧 내 안에서는 이기심과 죄의식이 맞부딪치며 갈등을 일으켰다. 나는 그 둘 다에서 약간 멀리 서있기로 했다. 그것은 어차피 나의 느낌이었다. 이때만큼은 초점을 아이의 마음에 맞춰보자고 생각을 바꿨다. 무게 중심을 내가 아닌 아이에게 두니 그때 그때의 판단이 훨씬 더 명료해졌다. 물론 제3자의 간섭 어린 소음으로부터는 완전히 벗어나기로 마음 먹었다."
아일린을 갖고 육아서를 참 많이 읽었다.
'그래, 유대인처럼 키워야지.'
'흠, 프랑스인처럼 양육해야지.'
다 이론적인 것들이었다.
머릿속에 가득한 이론들은 실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보였다.
머리에 들은 게 많다고 해서 강의를 잘한다거나 말을 잘한다거나 실생활에 더 잘 응용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이때 뼈저리게 깨달았었다.
뭐 그동안 쌓인 지식들을 바탕으로 18개월을 잘 키워온 거라고,
그동안 내가 읽은 육아서의 작가들이 주장한다면야 할 말이 없지만,
1년 6개월 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건,
수많은 육아서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
아일린은 또래보다 몸집이 크고, 에너지가 과하게 많다.
그런 아이에게 백과사전과 같은 육아서는 적용되지 않는 게 더 많다고 봐야 했다.
처음엔 이런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느꼈다.
내가 배운 대로, 읽은 대로 적용해보지만 번번이 좌절했었다.
'우리 아이가 조금 느린가.'
'우리 아이가 조금 빠른 건가.'
'우리 아이가 좀 많이 먹나.'
'우리 아이가 어디가 이상한 건 아니겠지?'
등등등
가장 피크였던 건, 수면교육이었다.
잠을 안 자려고 하는 아이와 재우려고 하는 애미.
그 소용돌이 속에서 아이는 미친 듯이 울어 젖히고, 애미는 녹초가 되었다.
범퍼침대에서 악을 쓰며 운 아이는 결국 침구를 다 버리며 먹은 것들을 어김없이 토해냈고,
지쳐 땀을 뻘뻘 흘리며 잠든 아이를 껴안고 속죄의 눈물을 하염없이 쏟은 들,
다시는 돌이켜질 수 없는, 소용이 없는 시간들이 지나고야 말았다.
이러다가 애 잡겠다 싶었다.
'그래, 그냥 내 뼈가 부러질 때까지 안고 자자!'라고 반성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책.
육아책.
이렇게 키우라고 하는 이론들만 가득한 책.
그러고 나서는 참 자유로워졌다.
남들과 비교도 안 하게 되고,
아일린 그 자체의 녀석에게만 집중하며 키우고 있다.
억지로 재우려고 하지도 않고,
시간이 되었으니 먹으라고 하지도 않으며,
그저 아이에게 맞춰주다 보니
아이는 어느새 정해진 시간에 자고, 푹 자고, 정해진 시간에 먹고, 참 잘 먹고, 잘 큰다.
시간이 무조건 약이었다.
시간은 100권의 육아서보다도 더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그런 아가에게 내 젖을 물린다고 해서,
내 팔이 부러질 때까지 끼고 키운다고 해서,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조언하는 것들을 철저하게 적용시켜가며 키울 필요는 없을 듯하다.
물론 큰 그림을 그리고 그 틀 안에서 아이에게 훈육도 하고 기초적인 것들을 가르치며 키우는 건 맞겠지만,
아이의 내일은 오늘과 다르고,
아이의 오후는 오전과 또 다르다.
가끔 아이는 일탈도 한다.
새벽에 깨어나 놀자고 "하이"를 외치며 나를 깨운다거나,
자야 할 시간을 한참 지나도 잘 생각이 없다.
그럴 때면 솔직히 짜증도 나고 조바심도 난다.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화도 낸다.
이게 설마 루틴이 될까 봐 나는 자주 불안하다.
근데 그러다가 다시 아이는 잘 자고, 일찍 자고, 잘 놀고, 잘 웃는다.
예전 같으면 인터넷을 뒤지고, 책을 뒤져봤을 거다.
'왜 아이가 갑자기 새벽 4시에 일어나 2시간이나 놀다 자는가?'
뭐 찾아보면 또 이론적으로 수많은 이야기가 나올 테고,
인터넷으로 뒤져보면 우리 아이와 같은 아이가 수두룩 빽빽할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을 보며 위안이 되겠지만, 그냥 놔두기로 했다.
요즘 같은 정보의 홍수는 나 같은 헛똑똑이 초보맘에게는 너무나도 버거운 짐과도 같았다.
이 짐을 벗어나야 비로소 내가 보이고, 내 아이를 이해하게 되고, 아이가 웃게 될 것만 같다.
적어도 나는 이 아이를 키우면서 책에서 조언은 따로 안 구할 생각이다.
아이를 맡아주시는 소아과 선생님, 데이케어 선생님들, 시터 이모님, 아이와 함께 플레이데이를 하며 지켜봐 주는 주변 지인분들의 말을 더 경청하고 되새기며 아이를 키울 것이다.
한국에서 아일린을 키울 수 있다면,
무한 애정을 쏟아주시는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 이모들과 삼촌들, 사촌 언니들과 친척들 틈바구니에서 아이는 자연히 많은 것들을 습득하고 스스로 깨달을 것이지만, 아쉽게도 이 곳에서는 그런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은 더 외롭게 커갈 수 있겠다.
명절이 되면 친척들을 찾아갈 수 없어 엄마 아빠와 조금은 적적하게 휴일들을 메꿔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게 우리 아이의 운명임을, 외로움도 그녀 인생의 일부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키우고 싶다.
"나는 결코 아이에게 "네가 나의 꿈이고 희망이고 미래야. 너의 꿈이 나의 꿈이지"같은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 그 말이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라는 말로 바뀔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이 책을 뉴욕에 있는 한인 서점에서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집어 들어 2배의 값을 지불하며 사온 까닭은 이 문단 때문이었다. (사실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서 100불 이상 주문하면 오래 걸리긴 해도 (1주일에서 보름 정도) 무료 쉬핑에 반값 정도로 구입이 가능했다. 아니면 이북으로도 나와있어서 바로 구입하면 읽을 수도 있었는데, 나는 종이책으로 이 책을 간직하고 싶었다.)
이 책을 놓치고 사지 않는다면,
내가 이렇게 어느 순간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 두려워졌었다.
'곁에 두고 읽고 또 읽어야지!' 생각하며
침실 탁자 위에 구비해 둔 까닭도 이 문장 때문이었다.
엄마가 너의 꿈이 아니 듯,
너는 나의 꿈이 아니다.
우리는 이 넓은 세상에 '가족'이란 이름으로 소속될 수 있는 구성원일 뿐.
가족도 돌아서면 남이고,
부부도 도장을 찍고 나면 평생 안보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된다.
부모 자식 간에도 한번 토라지고 나면 평생을 안 보고도 살 수 있는데,
어떻게 네가 나고, 내가 너일 수 있단 말인가.
남편과 자주자주 하는 말 중에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아일린에게 '너는 뭐가 돼라'라고 얘기하지 말자"는 것.
가끔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과 통화를 하게 되면 시부모님들은 아일린이 공부를 잘해서 이름을 날리고 살기를 원하신다.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공부=최고'라는 마인드가 있으실 거라 이해는 된다.
공부를 오래, 많이 해 본 사람으로서, 나는 내 딸이 솔직히 공부의 길을 걷길 원하지 않는다. 남들은 공부가 쉽고, 제일 쉽고, 가장 쉽고, 엄청 쉽다고 해도, 나에게 공부란 평생에 걸친 숙제 같고, 버거웠고, 힘들었고, 공부를 하며 낯선 곳에서 지금까지 많이 외롭고 지쳤던 것 같다. 남편도 같은 길을 걸어서인지 '가장 할 게 없는, 재주가 없는 사람들이 공부를 하는 거다'라고 한다.
그저 나는 내 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길 원한다.
매일 밤 뉴스에 나오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그런 존재가 되지 않기만을 바란다.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평범하게, 하지만 열심히 살아주면 좋겠다.
그래, 그거면 됐다. 그거면......
한 7년 가까이 꾸려오고 있는 현재 내가 운영 중인 네이버 블로그 (http://luxbabyworld.blog.me)에도 앞으로는 책 리뷰와 육아일기를 꾸준히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일상부터 상품 리뷰까지 다양하게 섞어 그때그때마다 생각나는 것들을 업데이트했었는데, 뭔가 특정한 주제를 정해놓고 정보 위주의 블로그를 꾸리는 것이 더 보람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작년 말부터 들기 시작했다.
물론 낯선 미국이란 땅에서 우리 가족이 사는 모습에 더 호기심 어린 궁금증을 가지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지금까지 17년을 이 낯선 미국에서 살아오면서 이곳 역시나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모습이란 것.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 아니, 오히려 다이내믹하지 못한 편이라 한국에 비하면 소소한 재미거리가 풍부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을 소화해내는 나 같은 재미없는 인간에게는 사는 곳이 미국이고, 뉴욕 근처고, 한 달에 몇 번씩 보스턴과 뉴욕을 일 때문에 오고 가지만 일을 빼고 나머지의 일상은 다 거기서 거기. 유난히도 너무 단조로울 수 있다는 것.
블로그나 이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의무감으로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고,
매일을 눈 속에 저장하고 머릿속에 기억해내기보다 보이는 것에 치중하기 위해 살기는 싫어졌다.
그럴 시간에 나의 아이와 좀 더 살을 부비며 놀아주고,
아이에게 해 줄 음식을 고민하는 것이 차라리 현실적이란 생각이다.
사진보다는 글에,
글보다는 생각에,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현실화시키고 구체적으로 실행시킬 수 있는 사람.
올 한 해 2018년은 이 생각으로 블로그와 브런치 공간을 꾸며볼 생각이다.
이 "엄마와 연애할 때"란 책은 내가 육아 권태기가 올 때마다 읽는 책이다.
아이에게 짜증을 부렸거나, 남편에게 화풀이를 했거나 했을 때마다 펼치게 되는 책이다.
'오, 이 사람 봐. 엄청 대단해!'라고 솔직히 느껴지기보다는 '임경선 작가도 나와 똑같은 엄마고 인간이구나!'라고 느껴지면서 위안을 받는 책. 그리고 간간히 그녀의 솔직함을 넘어선 날카로운 지적들은 가슴에 송곳을 박히게도 하면서 찌르르 전율까지 일으킨다.
육아서는 절대 읽지 않는다. 다 성인군자 같은 말씀이 가득하기에 모성애가 부족하고 짜증이 많은 내가 도저히 따라 살 수 없는 것을 안다. 다만, 이런 류의 에세이 글들은 시시콜콜 시간을 내어 찾아 읽는 편이다. 나와 같은 조금은 날라리 같은 엄마, 일을 하면서 느끼는 불안감을 지닌 엄마, 화도 내고 짜증도 내면서 화해도 하는 그런 엄마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오늘 아일린은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빠삐 선생님"을 보러 데이케어에 갔다.
(왜 빠삐 선생님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빠삐 선생님으로 불리는 브리트니 선생님도 왜 그녀를 빠삐라고 부를까 고민 중이시니까. 내 생각에 아일린은 브리트니의 미국 발음을 그저 빠삐라고 알아들은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오후 4시 30분이 되고, 그녀가 아빠와 함께 우리집 앞 초인종을 눌렀을 때, '누구보다 더 환히 웃으며 그녀를 반겨주리라. 그리고 오랜만에 돌아온 그녀를 안고 잠이 들기 전까지 열심히 연애하는 마음으로 미친 듯이 놀아줘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아마 가끔은 폭발 직전까지 나를 몰아세울 너. 여전히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