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이야기] 13개월의 아일린,
데이케어에 가다

토들러의 아이를 더 이상 '아가'로 대하지 말라!

by 아일린맘






[글을 들어가기에 앞서]


'될까?'하며 신청한 브런치 작가 신청.

그 신청이 받아들여지고 처음 써보는 글.

뭔지 모르게 기분이 남다릅니다.


프로필 소개에도 썼듯이,

교환학생을 시작으로 어느새 17년을 낯선 미국에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이 시간 동안,

7년동안 '남자친구'였던 남자가 '남편'이란 이름으로 곁에 있고,

결혼을 한지 어느새 6년의 시간이 흐르고 7년차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나서 두 번의 아픔을 겪고 2015년 가을 원하던 임산부가 되었고,

2016년 Eileen Chaeyeon Lee의 맘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너무나도 모르는 것이 많고, 이기적이고, 화도 잘 내고, 짜증도 많이 부리는 참 쓸모없는 애미입니다.

마치 '결혼은 처음이라서'라고 부부싸움 끝에 화해를 하는 심정처럼,

'애미는 처음이라서'라고 매일같이 일기장에 회개의 글들을 채웁니다.


이 공간에 대한 대단한 포부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아일린을 키우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가감 없이 적어가고,

한국이 아닌 아무도 없는 낯선 미국이란 땅에서 아이를 키우며 일을 통해 내 자신도 키워가야하는 과정들을 하나 둘 들여다보며 일기를 쓰듯, 누군가에게 얘기를 하듯, 그렇게 채워나가겠습니다.


어찌어찌 이 공간을 찾아 지금 이 순간, 제 글을 읽고 계신 님,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 아일린을 낳았던 때로 돌아가야만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백일이 하루 지난 날부터 파트타임으로 아가를 데이케어에 보낼 것이다.
일주일에 다만 몇 일이라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육아에서 잠시라도 해방되어서 엄마가 아닌 여자로, 인간으로 살 기회가 엄마들에게도 필요하다.
아니, 다만 몇 시간이라도 잠을 푹 잘 수만 있다고 해도 그 때 당시에는 영혼이라도 팔고 싶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것.
그것만큼은 진.리.다!



임신 중 읽은 육아서들, 친정엄마의 조언, 주변 사람들의 증언 등등으로 나는 일을 잠시 접고 12개월이란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기로 마음 먹었었다. 보통은 자아가 확실하게 성립되는 3살까지의 기간을 엄마 손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라고 하며 나에게 겁을 주던 글과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3년씩 쉬면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아 3분의 1로 줄인 1년의 시간을 아이와 함께 지내기로 하였다.


우리 두 사람과 갓난 아가를 도와 줄 가족이 없는 상황이란 전쟁을 방불케하는 하루하루를 의미한다는 것을 나는 아일린을 낳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잠만 잔다던 신생아는 끊임없이 먹어야했고,

모유수유를 간절히 원하던 초보맘은 제왕절개 후 젖빠는 것을 거부하는 아가때문에 하는 수없이 유축기 앞에서 시도때도없이 유축을 하며 졸아야 했다.

아이는 성장통인지 소화불량인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밤마다 보챘고,

(이 때문에 병원, 응급실도 몇 번 찾았지만 의사샘도 시간이 지나면 좋아진다는 위로의 말을 남길 뿐이었다.)

잠을 재우기 위해 남편과 나는 카시트에 백일이 안된 아이를 싣고 밤마다 유랑을 떠나야했다.


어느 날 문득 소파에서 졸고 있는 남편과

세수도 못하고 지쳐 식탁 앞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내 모습을 보고 금새 우울해졌었다.

하지만 대안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에게 주어진 이 little human-being을 생존시키는 임무만을 완수해야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둘 다 좀비가 되어갔고,

행복한 육아와는 거리가 먼 피폐한 삶을 살고 있었다.


아이가 주는 기쁨보다는,

내 온몸에서 전해오는 고통이 더 먼저 느껴졌고,

커가는 아이를 보면서 보람을 찾기 보다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할 의욕이 없는 무기력한 내 모습에 미친듯이 화가나기도 했다.


가끔은 아이도 나도 지쳤고,

그런 모습에 남편도 지친 듯 했다.


그때는 이 모든 것이 나 뿐만이 아닌 '엄마'가 된 모두가 겪는 과정이고,

부모가 되어가는 인내의 시간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화를 낸 내 자신을 반성하면서,

자고 있는 아가에게 눈물로 회개하며 일기를 써보지만,

다음날이면 똑같이 행동하는 게 습관처럼 거의 매일같이 되풀이 되었었다.


그 때로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다면,

(아, 상상만해도 오금이 저리지만 ㅠ)

나는 아이를 위해서도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또 내 가족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서,

나는 현재 아일린이 다니고 있는 데이케어를 찾아 이 아이를 맡길 것이다.

101일이 되는 그날에......


아이 뿐만이 아니라 부모까지도 케어해주는 곳.

아이의 행복과 부모의 행복까지도 걱정해주는 곳.


내가 지금까지 아일린을 키우며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단연코 나는 13개월의 아일린을 데이케어에 보낸 것을 선택하겠다.


오늘은 아일린이 다니고 있는 데이케어를 처음 선택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미국에서 데이케어를 보낼 때 처음 시작은 단연코 'search'다.

온라인을 뒤지고, 리뷰들을 쭉 살핀다.

가능하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추천을 받는 것이 더 좋다.


자신들이 책정해 놓은 예산의 금액이 있다면 이 역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고려사항이 아닐까 한다.

보통 내가 찾아 본 데이케어는 1일 금액을 청구한다. 즉, 예를 들어, 아침 7시부터 데이케어가 오픈을 하고 오후 5시에 닫는다면, 아이는 7시부터 5시까지 데이케어에 있을 수 있고, 기관은 부모에게 자신들이 책정한 하루 고정 금액을 청구한다. 그러니 애가 오전에만 있고 싶어 아침 7시부터 12시까지만 있는다고 해도 하루종일 있을 때의 금액을 할인없이 내야한다. 보통 풀타임의 경우 한달의 금액이 정해져서 통보되고, 파트타임의 경우보다 조금은 더 저렴한 가격으로 하루의 비용이 책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오후 5시 이후에는 매 분 단위로 추가 금액이 발생하기도 하니 잘 알아보고 가능하면 늦지 않게 픽업을 가는 것이 좋다.


보통 2-3군데 정도 알아보고, 전화를 걸어 방문하고자하는 의사를 표현한다.

너무 많은 곳을 하나하나 다 돌아보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헷갈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개, 많으면 세 군데 정도가 서치 후 예약을 하고 방문하기에 좋을 것 같다.

웨이팅이 엄청 길거나 하면 아예 신입생을 받지 않을 수도 있으니 전화를 걸어 충분한 상황 설명을 듣고 상담 후에 약속을 잡도록한다.


방문할 날짜와 시간을 정하게 되면 가서 질문할 리스트를 정리한다.

보통 기본적인 내용은 아무래도 기관에서 배포하는 설명서에 자세히 나와있어서 개인적인 문제등을 좀 더 구체화시켜 가져가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많이 되었는데, 우리의 경우는 아일린이 영어를 거의 안하고 한국어만을 듣고 의사표시를 하던 상황이라 언어적인 혼돈 부분,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것들을 선생님과 학부모 사이에 어떻게 조율해서 아이를 도와줄 수 있는지에 대한 심오한 문제까지도 들고 가서 상담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일 날에 가서 꼼꼼히 살펴보며 준비해 간 질문 거리들을 질문하고 정확한 답변을 수집한 후,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토대로 결정하면 된다.


나도 직접 방문 전에는 이런저런 걱정도 많고, 여기저기 알아보기도 많이 알아봤는데, 결국 방문을 하면서 감이 오는 곳이 꼭 한 군데는 생긴다. 만약 방문해 본 곳들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기관을 알아보는 것도 또다른 방법일테고 베이비시터나 내니의 도움을 받는 것도 진지하게 고려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처음 데이케어를 근처에서 찾았을 때, 동네에 있는 데이케어 두 군데 정도를 손에 꼽고 있었다.


한 곳은 남편 학교에서 교직원을 상대로 운영 중인 사립이었고,

다른 한 곳은 지금 보내고 있는 공립 기관이었다.


우선 남편 학교의 데이케어는 믿음이 갔다. 교수진들이 총괄 감독을 한다는 점이 좋았고, 학교에서 운영하다 보니 리서치적인 성격이 강해서 프로그램들이 다양했다. 하지만 이곳은 18개월 이상의 아이들만 보낼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이 붙어 있었고, 혹시라도 13개월의 아일린을 어찌어찌 보낼 수 있는지 물었지만 역시나 되돌아오는 'NO!'라는 답변을 듣고 좌절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학교에 있는 여자 교수님들은 아이를 낳고 18개월까지 데이케어를 안 보내고 일을 하나?'

궁금했다. 보통 미국의 여성들은 아이를 낳고 우리나라처럼 1년씩 쉬는 경우가 드물고, 또 학교의 경우에는 학기 중에 아이를 낳고 바로 다음 날 강단에 서는 무시무시한 교수들도 심심치 않게 봐왔기 때문이다.


"여기는 신생아부터 받더라고. 좋아. 가봐. 근데 웨이팅이 길어."


남편의 동료 교수이자 나와도 친한 교수님께서 흔쾌히 세 아이를 모두 이 곳에 보냈다고 하시며 추천해주신 곳. 그래서 찾아간 곳이 현재 아이가 다니고 있는 공립 기관 데이케어다. 이 곳은 신생아 (6주)부터 프리스쿨 (만 5세)까지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을 받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맞벌이 부부에게는 안성맞춤이고, 무엇보다 아침/점심/스낵까지 음식이 매주, 매달마다 다양한 식단표에 맞춰 고루고루 나오고 있었다.


우선은 이 곳을 먼저 방문해보고 마음에 안들었을 경우, 다른 사립쪽으로 서치를 할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거리상으로 집에서 가까워서 더 끌렸었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곳. 날씨가 좋다면 운동삼아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거나 걸려서 오고 갈 수도 있을거란 생각에 우리는 제일 처음 이 데이케어부터 돌아보기로 했다.






아이를 보낼지 말지 결정하기 전. 그저 투어의 형식으로 미리 전화를 걸고 방문 일정을 예약했다. 약속 시간 5분 전에 도착했고, 그 시간에 토들러 반 담당 선생님이 우리를 맞이했다. 2개의 토들러 반 교실들을 둘러보게 해 주었고, 다른 아이들이 노는 것을 교실 안과 밖에서 원하는 만큼 지켜볼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궁금한 점들은 그때그때 물어보거나 미리 준비해서 갔고, 원없이 물어봤던 것 같다.


첫날 본 데이케어의 풍경은 생각보다 아늑했다. 이런 곳이라면 아일린이 좀 더 따스하게 지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갔다.

나는 언제나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내 촉이나 감정적인 신뢰를 선호한다. 공대생에 법까지 공부한 인간이라 늘 곱하고 더하고 머리를 굴려가며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따지는 판단을 내릴 거라 주변 사람들은 오해를 하지만, 내 느낌만큼 살면서 정확한 판단은 이제까지 없었던 듯 하다. 가장 중요한 선택을 내려야 할 때마다 나는 내 감정에 솔직했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그리고 내가 원하고, 내가 느끼는 바대로 선택해왔었다. 특히나 아일린을 키우면서는 애미로 가지게 되는 '촉'은 무시할 수 없다.


다른 곳을 둘러볼 필요도 없었다. 많은 분들이 추천을 해주셨고, 직접 투어한 결과 우리의 마음에 흡족하게 만족한 이 곳으로 우리는 아일린을 보내기로 맘먹었다. 그러나, 우리가 보낸다고 해서, 보내고 싶다고 해서 "어서 오십시오!"하고 맞아주는 데이케어는 이 미국이란 나라에도 없었다.

"임신해서부터 웨이팅에 걸어놔야 좋은 곳은 보낼 수 있어!"라고 하던 한국의 실정보다는 조금 나을지 몰라도,

때 맞춰 데이케어에 보내려면 이곳도 몇 달 전에는 예약을 하고 웨이팅을 걸어놔야 원하는 때에 아이를 풀타임 (월~금, 오전부터 오후까지)으로 보낼 수 있었다. 이런 정보가 전혀 없었던 우리는 그저 두근거리며 그들의 결정만을 기다려야 했다. 결국, 사무실에서 연락이 온 건 화요일과 목요일 이틀만이 가능하다는 파트타임 제안.

'그래, 그거라도 어디냐'며 눈물을 머금고 일단 아이를 데이케어에 보내 보기로 했다.






아이는 늘 태어나서 나와 함께 있었다. 다른 가족들이 다 한국에 있었기에 항상 아빠와 엄마만을 보고 자랐다. 유독 낯을 많이 가렸다. 태어나서부터 백일까지 일주일에 두 세번씩 오셔서 아이와 나의 상태를 돌봐주시는 둘라 이모님이 계셨는데, 그런 이모님마저도 백일 전부터 보기만 해도 계속 우는 통에 결국엔 이모님이 그만두시고, 내가 끼고 키워야 했다. 아이는 돌이 지나서까지 늘 낯선 사람들을 꺼려하고 울었다. 특히나 집에서는 한국어를 쓰는데, 나가면 모두가 영어를 하니 안 들어 본 언어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향한 적개심이 더 깊은 듯 했다. 영어로 예쁘다고 해도 크게 자지러지며 울기가 일쑤였다. 역시나 아일린은 데이케어에 가던 첫날 아빠와 나의 껌딱지가 되었고, 단 한순간도 아이는 홀로 선생님들의 곁에, 다른 아이들의 곁에 자발적으로 가지 않았다. 그토록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가 넘쳐나는 13개월의 아일린은 태어나서 가장 처음 얌전을 떨고 앉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오전 수업 동안에 나와 함께 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놀람과 충격은 지금도 또렸하다.


아일린보다 개월 수가 많은 아이들이 대부분인 토들러 반.


13개월의 아일린이 막내였고, 15개월이 그 다음으로 개월 수가 적은 아이였다. 보통 토들러 반은 만 1세부터 3세까지 머무는 곳이라 아이들의 발달은 천차만별로 다양했지만 2-5개월 정도 차이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어서 비슷비슷해 보인 게 사실이고, 미국 아이들은 조금 개월 수보다 작게 보인다. 그래서 아일린과 덩치로는 크게 차이가 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우리 아일린은 13개월에도 잘 걷진 못했다. 여자 아이는 보통 성장이나 발달이 초창기에 남자아이보다 많이 빨라서 돌 전에 걷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우리 아이는 한국에서 돌잔치를 할 때까지 걷질 못했다. 성격이 조급한 애미는 병원이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친정엄마에게 매번 푸념을 하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4개월까지 아일린은 걷다가 넘어지고, 그저 서서 무언가를 바라보다가 넘어지곤 했다. 그 당시, 다른 아이들은 거의 뛰어다니는 것으로 내 눈에 비쳤는데, 그런 틈바구니에서 내 아이만 기어 다닐 환경이 첫날부터 무척이나 마음이 쓰였다. 그런 심정을 어필하니 담당 선생님은 웃으며 걱정 말라했다. 자신들이 다 케어할 테니 그런 부분은 "No Worry!"란다.


'그래도 애민데.. 아무리 모성애 없는 날라리 빵구같은 애미라도 어떻게 걱정을 안하냐!'

늘 학교에 있으면서 선생님, 교수님들의 말씀을 진리로 여기던 나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살짝 반항심마저 일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고, 나오는 음식이 궁금해서 일부러 기다렸다. 아일린에게 그동안 이유식에서 서서히 일반식으로 음식들을 먹여 오고 있었고, 한식 위주로 식단을 먹여오던 차라 더없이 궁금했다. 역시나 미국 스타일의 음식들이 주르륵 나왔다. 햄버거 패티, 빵, 야채와 과일. 그리고 우유. 아일린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는 음식들이 나와 더 당황시켰다. 앞에 놓인 고기 패티를 선생님이 내 바람대로 (아니지, 내 주문대로) 잘게 칼로 썰어 주셨고, 역시나 아일린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다른 아이들은 고기째 들고 우적우적 먹었다. 맛있다고 "음음음!" 소리를 내는 먹성 좋은 작고 마른 15개월의 꼬마아이도 있었다.


전자기타를 치다가 감전되면 이런 느낌일까? 남편과 둘이 아무 말도 못하고 어리둥절해 했다.

아일린을 뺀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어린이'였고, 아일린만 혼자 '아가'인 느낌.

우리의 양육방식에 처음으로 커다란 물음표를 그렸던 순간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나의 양육방식에는 문제가 많았지만, 내가 혼자 하고 비교할 대상도 조언을 구할 상황도 아니니 무슨 상관이 있으랴.)


밥을 다 먹고 난 후, 2차 충격의 시간이 다가온다. 제각각 앞에 놓인 접시가 비고, 우유컵이 비었다. 몇몇은 음식이 남았고, 점심을 배불리 먹은 아이들은 오전에 신나게 놀아서인지 반쯤 감긴 눈을 하고는 지쳐 졸려워했다. 선생님들은 "다 먹었니? 그럼 치우고 잘 준비를 하자!"했다. 나는 속으로 '저걸 애들이 어떻게 치워?'하며 비웃었는데, 조막만 한 아이들이 제각각 자기가 먹은 그릇들을 들고 일어난다. '어랏?'하며 바라보는데 먹고 남은 음식은 쓰레기통에 탈탈 털어 버리고, 빈 접시는 설거지를 모아놓는 통에 가져다 놓는다. 포크와 수저까지. 그리고 우유를 마신 컵마저도. 그리고는 줄을 서서 세면대에서 손을 혼자서 씻고 차례차례 자신의 이름표가 붙은 잠자는 공간을 찾아 갔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에게 칫솔에 치약을 짜서 나눠주었고, 아이들은 침대 공간에서 칫솔질을 하며 앉아 있거나, 좋아하는 책을 가져가서 선생님이 다가와 읽어주길 기다리거나, 평소 늘 가지고 있는 애착인형, 담요등을 품에 안고 잠을 청했다.


'Oh, My Goodness!'


남편이 나를 쳐다봤고, 나도 말없이 쳐다봤다.

'너도 놀랐지? 나도 놀랐다!'

남편도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고 있었고, 나는 이 모든 과정들에 소름이 끼칠 만큼 전율했었다.


아일린.

문득 내 옆에서 수저도 포크도 아닌 손으로 고기를 조물거리는 아가 같기만 한 내 아이를 바라봤다.


'널, 어쩌면 좋냐?'


내 아가는 먹기 전의 준비부터 다 먹고 나서의 과정까지 하나하나 일일히 우리들의 손을 거쳤다. 물론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당연히 어른들이 해야함이 맞지만, 먹고 나서도 그저 하이체어에서 우리 둘 중 한 명에서 안겨 나오는 것으로 그녀의 몫은 끝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저 하이체어에서 묵묵히 앉아 주는 밥을 받아 먹는 것만으로도 '오, 하느님!' 하며 키웠다. 모든 음식은 내가 먹여줬고, 아일린은 그저 아기새처럼 입만 벌리면 되었다. 나도, 남편도, 그리고 아일린도 그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그 때까지 생각했었다.


데이케어에 보내지 않았으면 몰랐을 많은 것들을 깨닫는 순간.

생각보다 13개월의 아이는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


선생님이 그러셨다. "아이를 더 이상 아가로 대하지 마세요! 토들러는 아가가 아닙니다."라고.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해요. 그래야 엄마도 편하고, 아이도 재미나하고 그러죠. 우리는 아이만 케어하지 않아요. 아이를 보내는 부모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해요."


아일린의 빈 접시가 선생님과 함께 들려 설거지 통으로 향해졌다. 아직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일린을 뒤에서 안아 발걸음을 떼도록 부축하며 선생님은 그렇게 첫 아일린의 빈 접시를 설거지 통에 넣어 주셨다.

(이때도 선생님과 단 둘이서는 안가려고 해서 내가 쪼그리고 앉아 따라갔던 게 기억난다 ㅠ.ㅠ)






처음 약 2주간은 아이도 부모도 많이 힘든 적응의 시간을 보냈었다.

그 때 당시에는 '보내지 말까'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인내하기 힘든 시간이 참 느리게 지났었다.

(아이가 데이케어에 적응한 시간에 대해서는 다음에 정리를 해서 차츰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지금 아일린은 집에서 노는 것보다 데이케어를 훨씬 더 좋아한다.


아이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 7시 30분에 집을 나서 데이케어에서 주는 아침을 먹는다. 오전에는 다양한 액티비티를 하고, 점심을 먹은 후 낮잠을 잔다. 데이케어를 시작하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일린은 누워자기 시작했고, 낮잠을 2시간 넘게 자기 시작했다. 낮잠에서 깨면 교실에서 선생님들과 스낵까지 달게 먹고, 오후 플레이로 놀이터에 나가서 열심히 뛰어 논 후에야 집에 온다. 우리는 보통 4시에서 4시30분 사이에 픽업을 가는데, 도착해서 창문 너머로 놀고 있는 아이를 가만히 구경해보면, 너무나도 신나게 잘 논다. 요즘은 거의 대부분 정체모를 춤을 추고 있더라. 하! (제발 춤만은......;;)


얼마 전에는 간식을 먹을 때 가봤더니 먹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들한테 뭐라뭐라 한다. 선생님들은 그런 아일린을 보며 미소를 지어주고 웃어주며 아는체를 해주신다. 간식을 배불리 먹은 아이는 의젓하게 자신의 빈 접시를 설거지 통에 당연하다는 듯 일어나 가져다 놓고, 선생님께서 건네주시는 냅킨을 받아 입을 닦고 휴지통에 넣는다. 그리고는 더 환히 웃으며 교실 한켠에 마련된 세면대에 올라가 손을 닦고 마른 냅킨으로 손에 묻은 물을 닦는다.


'정말 많이 컸구나, 너!'


고작 5개월의 시간인데,

그동안 나의 아이는 무지했던 부모의 '아가' 양육방식을 벗어나 독립적인 '토들러'가 되어가고 있었다.






미국의 데이케어에 보내면서 자주자주 느끼게 되는 것은,

선생님들도 그리고 아이들도

서로가 서로를 독립적인 개체로 인정하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


아이를 끼고, 안고, 돌봐주고, 감싸주는-

어른이 아가를 대하는 행동들보다는,

멀리서 지켜보면서

다치지만 않고,

위험하지만 않다면,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


아이는 그런 곳에서 독립심을 배우고 있고,

생각보다 더 많이 자랐고,

더 많은 것들을 스펀지처럼 습득하고 있었다.





내가 육아서를 더는 찾아보지 않게 된 것이 아일린을 맡아주시는 Lorraine, Karin, 그리고 Brittney 선생님들을 더없이 신뢰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솔직히 처음부터 무작정 이 분들이라면 신처럼 숭배하고 믿었던 것은 아니다. 어쩔 때는 아쉬운 점도 있고, 조금 더 아일린에게 신경을 써주었으면 하는 엄마의 이기적인 욕심이 스물스물 들고 일어날 때도 있다. 그래도 아이의 밝은 표정에 아쉬움도 욕심도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화/목 늦은 오후에 아이 픽업을 가서 듣는 그들을 통한 아일린의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인 성장기라던가 화/목요일에 나눠주시는 알림장 페이퍼 속의 한줄을 육아서의 한 줄보다 더 기다리게 되면서부터 나는 일찌감치 육아서를 졸업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다.

이 세상에서 엄마들이 제일 위대하다고 하지만, 자신의 자식을 키우는 것은 어찌보면 인간이 가진 본성이고 모성이라는 감정을 통해서 직접 품고 낳은 생명을 보호하게 되는 것인데 반해, '선생님'이란 직업은 내가 낳지 않은 아이를 지켜보며 보호하고 키워내는 것이니 더 말할 나위 없이 위대하고 대단하다고......







<미국에서 데이케어를 고를 때 유의할 것>

1. 주변에 위치한 데이케어를 충분히 서치한다.
* 어렸을 때는 이동거리가 이왕이면 가까우면 좋겠다. 생각보다 아이는 차안에서 혹은 밖에서 걸을 때 인내심이 많이 부족하다. 집에서 가까운 차로 5분의 거리에 위치한 데이케어를 다니는 아일린도 5분을 못 참아 카시트에 앉아 울 때도 있고, 짜증을 부릴 때도 있더라.

2. 가계 예산에서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데이케어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 비싸다고 해도 무작정 좋은 데이케어는 아니었다. 동네의 데이케어 비용은 비슷비슷하고 크게 오차가 나지 않았다. 만약 데이케어보다 집에서 시터나 내니를 부르는 편이 마음이 놓인다면, 자신들이 책정한 조건을 적당히 접목시켜서 마땅한 사람을 찾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3. 서치를 마친 후, 2-3군데의 데이케어를 선정하고, 투어를 위해 미리 전화를 걸어 상담 후 예약을 한다.
* 데이케어마다 quite hours가 있는데, 낮잠을 자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피해 예약을 하도록 하고, 이왕이면 오전에 가보는 것이 좋다. 오후에는 낮잠 후 개별적인 플레이를 많이 하는 편이고, 오전에는 주로 선생님들의 지도하에 다양한 체험학습이 이루어진다.

4. 질문하고자 하는 리스트를 만든다.
* 평소에 궁금하던 것들, 아이에게 있는 특별한 상황이나 질병에 대해서 얼마나 케어해 줄 수 있는지의 여부 등도 질문에 추가한다. 바보같은 질문일거라 생각하는 것들도 질문 리스트에 빠짐없는 넣는다. 이 세상에 바보같은 질문이란 없다. 특히 자신의 아이와 관련해 엄마가 생각하고 느끼는 의문점은 전혀 간과해서 넘어가야할 부분이 아니다.

5. 방문 당일에는 약속시간에 맞추어 가도록 하고, 이왕이면 아이와 같이 가면 좋겠다.
* 아이가 현장의 분위를 보고 계속 다녀도 될지, 방문한 기관의 환경등을 좋아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 마지막 최종 결정을 내리는데 중요한 도움이 되었다.

6. 방문 후에는 바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도 좋은데, 이왕이면 하루 정도 생각해보고 의논할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 좋다.
* 나는 좋지만, 남편은 마음에 안들 수도 있고, 또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점들을 서로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사가 결정되고 기관이 마음에 들어 보내려고 하는 경우에는 가능하면 빨리 연락을 주는 것이 좋다. 보통은 의사 표현 후 데이케어에 보내기까지 2주 정도의 기간이 걸린다.
* 미국에서는 데이케어에 보내려면 병원에서 가져와야하는 서류들도 있고, 의사선생님께 직접 받아야하는 설문 자료들도 있다. 이런 것들을 빠짐없이 준비하고, 재직 증명서를 비롯해 여러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는데 있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함을 명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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