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만의 세계를 인정하고 존중하기
"데이케어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울지 말고, 밥 잘 먹고, 낮잠도 푹 자고...... 이따 저녁에 행복하게 만나자!"
뉴욕을 가는 기차에 오르기 전,
역 앞에 나를 데려다 주는 남편의 차 안에서 내 딸, 아일린에게 긴 인사를 한다.
아이는 그저 손을 흔들며 "바이!"를 하고,
데이케어에 가고 싶어하는 흥분된 기색으로 얼른 가라고 나에게 손짓을 할 뿐,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다.
다행이다.
울고 불고,
'애미야, 가지마라!'하면-
그것만큼 또 가슴이 찢어지고 아픈 상황은 없을테니까.
정확히 오전 7시 40분,
나는 그렇게 남편과 아이의 배웅을 받으며 뉴욕행 암트랙 기차에 올랐다.
1-2주에 한 두번씩 뉴욕과 보스턴을 오가며 일을 한다.
대부분은 집에서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나는
<재택근무를 하는 워킹맘>이다.
덕분에 아이는 화/목 파트타임으로 데이케어에 가고,
월/수/금은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터 이모님과 함께 지낸다.
그리고 그 시간,
나는 집에서 혹은 단골 카페에서 아니면 도서관에서 일.을.한.다!
워킹맘
: 일을 하는 엄마를 자칭해서 부르는 말.
모피스족
: Missy와 Office의 합성어로 워킹맘을 상징하는 신조어.
직장인맘
: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일을 하는 여성.
일을 하고,
육아를 하는,
'엄마'를 뜻하는 단어가 찾아보니 참 다양했다.
일과 육아.
적어도 두 개의 직업을 가진 여자.
그게 나였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나는 주로 집에서 일을 하는 워킹맘이다.
1-2주에 한번씩 몰아 뉴욕과 보스턴 오피스를 오가며 하루종일 이어지는 미팅과 클라이언트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정확히 3년 전, 학교 때부터 함께 공부하고 어울렸던 스터디 그룹 멤버들과 뉴욕에 작은 회사를 직접 차려보기로 의기투합하고 일을 쳤다. 우리가 가진 돈은 아주 적었다. 은행 대출을 받아 오피스라도 그럴싸하게 차리고 시작하자는 의견과 officeless로 시작하는 의견이 분분했고, 우선은 시험삼아 3개월만 흩어져 맡은 바 업무를 처리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함께 모여 미팅을 통해 그동안의 일들을 공유하는 것으로 회사의 모델을 잡았다. 처음에는 진도가 많이 나가지도 않았고, 이메일만 주구장창 답하고 쓰다가 시간이 다 가고, 전화 업무만 보다가 날이 새는 줄 알았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어느 정도의 기반이 잡혀갔고, 세분화 된 role 이 정해지고 해야할 일들이 늘어남에 따라 힘들었던 초창기의 적응 시간들과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뉴욕과 보스턴에 작은 사무실을 두게 되었고, 10명의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한다.
뉴욕까지는 기차로 두 시간.
매일같이 출퇴근하기에는 왕복 네 시간이란 금쪽같은 돈을 허비해야함에 나는 재택근무를 선택하고 있다.
아이가 조금 더 자라게 되면, 그때는 뉴욕이나 뉴저지쪽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하나 고민중이고 말이다.
하지만 남편의 학교가 이 곳에 있기에 나의 재택근무는 한동안 꽤나 오래 계속될 것만 같다.
재택근무를 하면 좋은 점도 많겠지만,
안좋은 점들도 무시할 수가 없다.
회사를 나가 아침 9시부터 퇴근 전까지 일하는 시스템이 아니다보니
강제성이 없다는 단점과 일에 대한 '촉'을 늘 세우고 24시간을 보내야한다는 나쁜 습관이 생겼다.
아이를 키울 때도 아이가 낮잠만 자면-
이메일 창을 열고, 그동안 쌓인 이메일을 보고 답하고,
급하게 전화를 해야하는 클라이언트와 내 담당 비서에게 전화를 하다보면 아이의 낮잠 2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고 만다. 어쩔 때는 그나마도 다 해결하지 못해서 깨어난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이메일을 쓰고, 아이를 업고 화상통화를 했던 날도 있었다.
'집에서 일하는 엄마라니...... 너무 환상적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회사나 밖에서 일하는 것보다 아이를 늘 옆에 두고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고도 말할 것이다.
하지만 집에서 일을 해야하는 엄마도
그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고 버거움이 있고 힘들다는 점을 알아주었음 싶다.
차라리 눈에 안보이면,
귀에 들리지 않는다면,
조금은 더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을것인데-
시터 이모님과 아이방에서 놀 때 아이가 웃으면 그 웃음소리에 기분이 좋고,
아이가 조금만 울거나 찡찡거리면 금새 걱정이 되어 내니캠을 켜보곤 한다.
하는 수 없이 집중해서 일을 빠르게 처리해야하는 날에는 집근처 카페에 간다.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전화까지 마치고 나서는 다시 집에 돌아와 아이의 점심을 혹은 저녁을 챙긴다.
오히려 나가서 일을 할 때면 집안일이라던가 식사의 문제는 포기하고 일에만 집중할 수 있지만,
집에서 일을 하다보면 더러운 거실이 걸리고, 더러운 화장실이 눈엣가시가 되고, 지저분한 변기를 본 순간 일로 돌아가 집중할 수가 없게 된다.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오는 남편에게 "햄버거나 사먹자"고 꼬실 수가 없고,
19개월이 된 아이에게 "핏자나 먹을래?"하며 일하는 엄마 티를 낼 수가 없다.
아니 그래도 누가 뭐라고 안하고,
남편도 오히려 그러자고 하지만,
내 양심상 먹는 것을 제대로 먹이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이 들고 불편해진다.
늘 나는
워킹맘과 전업주부의 그 묘한 경계에 서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일이란 것을 하다보니-
매해마다,
매달마다,
더 해보고 싶어서 꿈꾸던 그 많은 것들은-
어느새 '아이'라는 단어에 가려져 저 멀리 밑바닥으로 던져버리는 삶을 살게 되어버렸다.
사실 작년부터 수험서 교재 집필을 의뢰 받아오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그것마저도 선뜻 '오케이'할만큼의 에너지가 나에게는 남아있지 않음을 서글프게도 깨닫고 말았다.예전의 나라면 "어, 정말? 앗싸! 재밌겠다" 하며 단박에 오케이를 했을테다.
일과 아이.
그것만으로 24시간이 늘 나에게는 버겁다고 생각되던 시간들.
내가 그리던 나의 미래에 관한 모든 꿈 그리고 계획들,
아이를 갖기 전에 막연하게 얘기하고 수첩에 끄적이며 적어놓은 것들은
'아이가 데이케어에 풀타임으로 들어가게 되면......'이란 비겁한 변명을 하며 저만치 치워버리고 조금은 더 느긋해졌었다.
2주 전, 뉴욕에 다녀오던 날.
그날까지 나는 아주 평범한 육아를 짬짬이하며 매너리즘에 조금 빠져 허우덕거리며 일을 하는 그런 엄마였다.
일을 마치고, 회사를 함께 시작한 친구들과 세금 보고 및 연말 결산과 관련해 의논을 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다가 남자 동료들이 약속이 있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참 오랜만에 나는 유일한 여성 창립 멤버인 친구와 함께 자리를 했다.
사실 그동안 너무나도 이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들어주고 싶은 말들도 참 많았지만, 아이를 갖고, 낳고, 키우고 하는 동안 이런 시간들을 생각보다 가질 수 없어 늘 미안했다. 그동안 나의 친구는 이혼을 했고, 싱글맘으로 삶을 꾸리며 5살된 아주 귀엽고 똑똑한 아들 녀석과 함께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동안 했다.
나보다 출산을 먼저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에 있어서 선배인 친구의 이야기를 더 많이 경청했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빠질 수 없는, 간간히 들려주던 그녀의 이혼 과정 이야기와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고충은 구태여 강조하지 않았어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와닿았다.
그녀에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해 얘기했다.
내 소소한 꿈들을 잠시 미룬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
교재 집필 의뢰에 대한 망설임,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같은 느낌에 대한 스트레스.
엄마가 아닌 여자로,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평범한 사람이 아닌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의 비좁힐 수 없는 갈등들에 대해서......
친구는 가만히 나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나도 똑같은 고민을 늘 해.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 세상에서 네 빈자리를 오래 기다려주는 사람들은 없다'는 거야. 네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네가 아이를 키우며 네 꿈에 대해 그 자리를 비워두는 동안, 그 자리는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게 되어있어."
정말 경험하지 않는다면 얻을 수 없는 깨달음.
티비나 책에서만 듣고 보던 이야기라해도 나는 가장 친한 내 친구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
"또 하나, 아이를 너무 네 인생에 있어 최우선으로 두진 마. 아이는 네 인생에 함께 동참하러 온 소중한 선물이자 인연이라고 생각해. 너는 네 인생을, 아이는 아이의 인생을 사는 것. 그리고 그 제각각의 인생을 하나의 인격체로 함께 바라봐주는 것. 나는 그게 내가 자식과 함께 걸어가야할 시간이라고 생각해."
그녀는 너무 아이에게 올인하면 금방 지치는 육아가 되고 만다고도 덧붙였다.
부모가 되어서 방관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너무 깊숙하게 아이의 인생에 관여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어우 야! 그래도 네 아들은 5살이니까 그런 생각도 하지. 내 딸은 이제 겨우 1살이야."
내가 너무한다고 툴툴거리며 얘기했다.
"하하. 그래. 근데 네 딸도 이제는 사고하고, 말도 하지 않아? 고집도 생겼고 눈치도 볼걸? 이제 그 아이도 그 아이만의 세계가 존재해."
그렇다.
내 아이를 나와 다른 인격체로 대하자고 그렇게 책을 읽고 구절을 기록하고 외우다시피 했으면서도
'아이의 세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좀 더 커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나는 그날 그녀와 1시간가량을 이야기했다.
무거운 얘기,
조금은 가벼운 이야기,
그녀의 아들과 나의 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대한 포부들까지......
그녀와 헤어지고 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의뢰받은 수험교재를 시작한다는 이메일을 썼다.
그리고 노트북에 앞으로 좀 더 해보고 싶은 꿈에 대해서 적었다.
그동안은 이런 저런 핑계로 멀찌감치 미뤄놨던 미래에 대한 계획들을 타임라인에 따라 정리했다.
무엇보다 그날 이후,
나는 나의 미래를 '아이'와 '여성'을 위해 한 부분 투자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잘될진 모르겠지만......
아일린은 오늘 만 19개월로 들어섰다.
혼자서도 잘노는 편이고,
책도 꽤나 오래 혼자 보는 편이다.
시터 이모님과도 잘 놀고,
데이케어 가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는 말이 많이 늘어서,
이제는 두 세 단어씩은 금새 붙여 말한다.
"하이 베이비"
"하이, 이모!"
"하이, 엄마!"
"땡큐, 아빠!"
"미미 보고시" (할머니 보고싶다)
"모모 야옹" (이모네 집에는 야옹이가 산다)
등등등
시터 이모님이 오시면 아침을 함께 먹고 식탁에서 내려와 이모의 손을 잡고 2층 자기 방 계단을 오르며 나에게 "바이"하고 인사를 한다. 그렇게 나와 헤어져 6시까지 잘 논다.
데이케어에 가는 날에는 아침 7시40분쯤 아빠 품에 안겨 차에 오르고, 카시트에 앉아 나에게 굿바이 뽀뽀와 더불어 "안뇽!"을 말한 후 빨리 문을 닫으라고 재촉하며 떠나 오후 5시경에 다시 집에 아빠와 함께 돌아온다.
월/화/수/목/금.
나의 딸 아일린의 이렇게 자신만의 스케줄을 살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열심히 자라나고 있다.
여전히 나는 그 시간들동안 집에서 일을 한다.
서재에 틀어박혀 밖의 상황을 신경쓰지 않으려 이어폰을 끼어보기도 하고,
주말에 한 두끼 정도는 외식이랑 투고로 주방일에서 벗어나 쉬기도 한다.
집안 청소를 도와주시는 분을 일주일에 1회 방문에서 2회 방문으로 늘렸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시간과 많은 부분 싸움을 하며 지낸다.
이 부분은 재택근무를 하는 엄마라면 쉽게 풀리지 않을 숙제처럼 늘 껴안고 고민해야할 부분인 듯 싶다.
나는 요즘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할 때, TED를 자주 본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Lean in의 저자인 Sheryl Sandberg의 예전 테드 동영상은
조금 나태해졌거나 모티브가 필요할 때 찾아보게 된다.
Why we have too few women leaders?
https://www.youtube.com/watch?v=18uDutylDa4
그녀는 강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의 경우 여자들은 육아에 남자보다 3배를 더 투자하고,
이에 반해 남자는 일에 올인할 환경이 많이 주어진다고.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일터에서는 맞장을 뜰 수가 없다.
한가지에 집중해 10시간을 투자하는 사람과,
여러가지 일에 10시간을 할애해야하는 사람은 엄연하게 실력차가 나기 마련이다.
이런 문제 역시도 여자이고 엄마이기에 극복하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