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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명 Sep 24. 2023

지오메트릭 폰트는 쓰지 마세요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면요.

대-지오메트릭의 시대

구글, 우버와 같은 글로벌 테크 기업부터, 아크네 스튜디오와 같은 하이패션 브랜드까지,

이제는 업종과 산업군을 가리지 않고 지오메트릭 폰트를 로고에 활용한 브랜드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도대체 지오메트릭 폰트가 무엇이길래, 왜 기업들은 지오메트릭 폰트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지오메트릭 폰트를 사용하는 기업 및 브랜드 로고들





지오메트릭 폰트의 탄생


최초의 지오메트릭 폰트는 독일의 타입 디자이너이자, 교육자였던 Jakob Erbar에 의해 1922년에 탄생했습니다. 장식이나 개성이 없는 순수한 기능성을 지향한 바우하우스 정신에 의거하여, Erbar-Grotesk는 모든 타이포그래픽 구성 요소 중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원을 기반으로, 활자가 본래의 기능만 가지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세리프와 같은 장식 요소를 걷어내고 기하학적 형태로 기능성에만 집중한 최초의 지오메트릭 폰트




Futura, 미래의 아이콘이 되다.


Erbar의 Erbar Grotesk가 지오메트릭 폰트라는 개념을 처음 세상에 내놓았다면, 이를 대중화한 폰트는 또 다른 독일 디자이너, Paul Renner가 디자인한 Futura(퓨추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Erbar Grotesk와 달리 철저히 기하학적 도형을 기반으로 글자를 파생시키고, 단층 'a'와 'g' 등, 당시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형태 또한 최초로 선보인 Futura는, '우리 시대의 서체' (die Schrift unserer Zeit)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출시 이후 유럽 전역과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초기 Futura 스케치.  훨씬 실험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역사적인 석판의 새겨진 글씨들을 기반으로 개발된 Trojan과, Futura의 비교 사진. 글자 폭 비율은 Classical Proportion을 준수하여 서로 굉장히 유사하다.


Futura는 출시 이후 몇십 년간 거의 모든 광고지면, 매장 간판을 지배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고, 당시에도 이런 독과점에 가까운 단일 폰트의 활용을 반대하는 디자이너들의 움직임이 생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Futura의 독주도 1957년 개발된 스위스 특유의 모던하고 중립적인 형태의 폰트, Helvetica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며 역사 속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지오메트릭의 부활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싶었던 지오메트릭 폰트들은, 2010년 구글의 리브랜딩에 성공적으로 활용되며 테크

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차츰 다른 산업군으로 재확장되기 시작합니다.


그럼 구글의 리브랜딩의 성공이 단순히 지오메트릭 폰트를 활용해서일까요? 구글이 리브랜딩 당시 공개한 케이스 스터디 아티클을 보면, 그들은 구글이라는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될 지향점을 철저히 이해하고 있었고, 단순히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최적의 폰트를 선택한 것뿐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구글이 필요했던 변화

기술에 발전에 따라 복잡해지는 인풋과 니즈를 쉽게 소화해 낼 수 있는 간결한 디자인

특정 연령대와 성별에 제한되지 않는 사람들이 Google 사이트에 기대하는 시각적 즐거움

확장되는 다양한 서비스와 제품에서 체계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간결함


지오메트릭 폰트의 특성

기하학적 도형으로 기반으로 특정 스타일에 제한되지 않고 보편적인(유토피아적) 디자인

정원에 가까운 원형이 반복이 주는 시각적 리듬감

어떤 매체에서도 활용되기 좋은 높은 시안성







추가 케이스 스터디 1: 리브랜딩 사례 (Gentle Monster)

좌: 리브랜딩 전 / 우: 리브랜딩 후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는 2011년 국내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전 세계 30개국에 400여 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앰부쉬, 알렉산더 왕, 메종 마르지엘라, 몽클레르까지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까지 선보이면서 국내 아이웨어 마켓을 선도하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하지만 리브랜딩 이전 보편적인 형태의 지오메트릭 로고는 매 시즌 파격적인 디자인 시도를 하고 있는 젠틀몬스터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반편 폭이 좁은 네오 그로테스트 계열의 서체로 제작된 현재의 로고타입은 젠틀몬스터라는 브랜드가 가진 응축된 에너지와 주변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 고고함이 느껴집니다.







추가 케이스 스터디 2: 동종업계 (Aston Martin vs. Genesis)


영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카 브랜드인 Aston Martin과, 현대 자동차의 브랜드인 Genesis는 둘 다 최상위 럭셔리 브랜드를 지향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유려한 획대비와 클래식한 멋이 있는 Aston Martin의 로고타입과 대조적으로 Genesis은 로고타입 자체만 분리해서 본다면 하이엔드 브랜드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입니다.


정원에 가까운 G의 형태와, N의 사선으로 생기는 넓은 여백, 네 개의 가상의 원형이 연상되는 두 개의 S가 하이엔드 브랜드를 위한 로고로는 낮은 밀도감과, 과한 리듬감을 형성합니다. 상대로 적으로 높은 밀도를 가진 날개 마크 하단에 배치되어 이런 인상이 더욱 강조됩니다.








그럼 언제, 어떻게 써야 할까?


앞서 살펴본 사례들로 지오메트릭 폰트는 잘만 활용한다면 효과적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브랜드가 나아가고자 하는 지향점과 충돌할 수도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오메트릭 폰트는 도대체 언제,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일까요?




1. 브랜드의 성격을 고려할 것.

로고타입에 활용될 폰트를 고를 때에는 브랜드가 쌓아온 헤리티지와, 브랜드의 성격,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지향점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래는 지오메트릭을 활용하기 좋은 브랜드의 예시와 피해야 할 예시입니다.


지오메트릭을 적용하기 좋은 브랜드의 특징

엔드 유저의 범위가 매우 넓고 보편적이다. (예: Google, Uber)

비교적 젊은 연령대를 타깃으로 한다. (예: Adidas)

브랜드 자체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예: COS, Uniqlo)


지오메트릭을 활용하기 어려운 브랜드 특징

브랜드의 역사가 길거나 브랜드 자체의 개성이 매우 뚜렷하다. (예: Prada, Walt Disney)

브랜드가 타겟팅하는 특정 연령대 혹은 특징이 있다. (예: Ralph Lauren)

즉각적인 시각적 차별성이 필요한 신규 브랜드





2. 브랜드명의 길이와 글자 조합을 고려할 것.

브랜드의 성격이 지오메트릭 폰트를 적용하기 좋다고 하더라도, 브랜드명의 길이와 알파벳 조합에 따라서는 피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곤 합니다. 아래의 예시는 가급적 피해 보세요.


1. 브랜드명이 길 경우

기하학적 형태를 기반으로 하는 대다수의 지오메트릭 폰트는 활자폭이 넓어, 로고타입의 길이가 지나치게 길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글자 각각의 형태가 유사하기 때문에 브랜드명의 가독성이 저하될 수 있습니다. (이는 브랜드 인지도 상승이 빠르게 이루어져야 하는 신규 브랜드에게는 큰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


2. 브랜드명에 O(원형)에서 파생되는 글자가 많은 경우

a, b, c, d, e, o, p, q 등 원을 기반으로 파생되는 글자들은 로고에 재밌는 시각적 리듬을 형성할 수 있지만 그 수가 많아질수록 로고의 흥미도가 저하될 수 있습니다. 이런 활자들의 개수와 위치를 고려하여 적절한 폰트를 선택하세요.


3. Ascender 혹은 Descender가 많은 경우

b, d, p, q와 같이 소문자 높이 기준으로 뻗어나가는 수직선(Ascender), 혹은 베이스라인 밑으로 뻗어나가는 수직선(Descender)의 개수가 많을 경우, 획의 디자인이 단조로운 지오메트릭의 폰트 특성상 로고의 심미성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3. 로고가 활용되는 매체의 크기에 따라 간격을 신경 쓸 것

속공간과 글자를 둘러싼 여백이 큰 지오메트릭 폰트의 특성상 다른 스타일의 서체들보다 자간을 좁혔을 때, 원형 기반의 형태와 다양한 사선 각도에서 나오는 지오메트릭 폰트의 심미성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유의해야 할 점은, 로고가 작은 사이즈로 활용될 때에는 자간이 지나치게 좁아져, 자간을 재조정한 별도의 로고가 추가적으로 필요합니다. (실제 예시로 구글은 메인 페이지 입력 필드 위에 위치한 로고와, 검색 결과 페이지 좌측 상단에 있는 로고의 자간이 서로 다릅니다.)


로고가 크게 활용될 때는 좁은 자간을, 작게 사용할 때는 살짝 넓히세요.







4. 불필요한 변형은 자제할 것.

아래는 지오메트릭 폰트를 활용하고 더 나아가 전통적인 영문 활자체의 구조 자체를 변형하는 사례들입니다. 이런 텍스트 변형은 로고의 시각적 차별성을 부여하고 브랜드의 컨셉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만, 과할 경우 브랜드 자체의 전문성이 결여되어 보일 수 있습니다.



1. 직선 획의 삭제

지오메트릭 폰트는 그 자체만으로는 개성이 약하기 때문에 획을 일부 삭제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A의 중앙에 위치한 가로획(crossbar)의 삭제가 있으며, 위 Nokia의 예시처럼 더 다양한 획을 과감하게 삭제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런 필수적인 획의 삭제는 판독성을 저하시켜 글자를 인지하는데 어려움을 주고 브랜드의 지속가능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2. 정원 형태의 라운딩

타이포그래픽적 지식이 충분하지 못한 디자이너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입니다. 기하학적 형태에 기반한 라운딩 처리는 획이 꺾이는 지점을 자연스럽게 이어주지 못하여 불안정을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위 Hanwha 로고 예시의 경우 a의 내부 획과 바깥쪽 획 모두 정원으로 라운딩 처리 되어, 획의 두께가 일정하지 못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h 또한 두 개의 획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별도의 시각보정이 이루어지지 못해 두꺼워 보입니다.


3. 활자 요소의 불필요한 삭제

지오메트릭 기반 로고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형태의 변형입니다. m과 n 등 좌측 수직획의 상단 부분을 임의로 삭제할 경우, 단어 및 문장에서 다른 글자들과 구분하기 어려워져 판독성이 저하되며, 반복되는 곡선이 형성하는 리듬감이 브랜드의 전문성을 해쳐 보일 수 있습니다.

 






마치며

글의 제목에서는 지오메트릭 폰트를 쓰지 말라고 했지만, 사실 저 역시도 지오메트릭 폰트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장식적인 요소를 전부 삭제하고 기능에 충실한 유토피아적인 형태는 누구라도 매료될 수밖에 없는 형태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스타일의 폰트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용하고자 하는 매체의 맥락과,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기하학적 형태 자체는 시각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하기 때문에 다른 폰트보다도 세밀한 시각보정이 필요합니다. 대표적인 지오메트릭 폰트인 Futura 또한 Paul Renner의 굉장히 치밀한 시각보정과 수많은 수정에 의해 탄생했으니까 말이죠.


저는 이번 아티클과 관련된 몇 권의 책을 소개드리며, 다음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Futura: The Typeface

무려 90년간 디자인 시장을 지배한 Futura를 디자인하기까지의 장대한 여정과 초기 스케치들을 볼 수 있는 좋은 서적입니다. Futura를 디자인한 Paul Renner의 수많은 고민과 노력들을 살펴볼 수 있어요.

https://www.creativebloq.com/reviews/review-futura-the-typeface



푸투라는 쓰지 마세요

광고부터, 정치를 위한 선전까지, 폰트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활용되었고 또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 작가의 흥미로운 관점을 전달하는 책입니다.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좋은 인사이트를 받을 수 있어요!

https://m.yes24.com/Goods/Detail/67211904



Why KIA’s confusing logo is part of a growing design trend

기아, 나사 등등 로고에서 특정 글자의 획을 삭제하는 사례들이 왜 트렌딩 되고 있는지 분석한 글입니다. 작성자의 그럴듯한 추론이 꽤나 흥미롭습니다.

https://www.fastcompany.com/90824476/kia-confusing-logo-kn-design-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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