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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명 Apr 15. 2020

삼성과 애플의 타이포그래피

폰트로 보는 두 브랜드


삼성과 애플


지난 10년간 스마트폰 시장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해온 삼성과 애플. 두 브랜드의 경쟁은 제품에만 국한된 것이 아녔습니다. 오늘은 이 두 브랜드를 타이포그래피라는 관점으로 비교 분석해보려고 합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날의 두 브랜드의 타이포그래피와 비교하기 위해 10년 전 이미지를 가져왔습니다.


무려 5개의 서체를 사용하고 삼성의 광고는 다소 조잡하고 메시지에 집중하기 어려운 반면, 제품명과 캐치프래이즈 단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 애플의 광고는 오늘날 쓰여도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그럼 현재 두 브랜드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애플의 타이포그래피




전원을 켜면 흰 화면 속에서 천천히 점멸하는 환영 인사. 이보다 애플스러운 게 있을까요?

애플은 지난 몇 년 사이 웹사이트부터 패키징, 유저 인터페이스까지 인하우스에서 제작된 서체를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잔행 했습니다.

https://www.theverge.com/2015/5/20/8630447/apple-san-francisco-font-new-default-ios-os-x





1. 애플의 서체



SF Pro

디스플레이 & 본문용


초창기 애플은 Susan Kare와 같은 Type 디자이너들을 영입하여 New York, Geneva, Chicago, San Francisco 둥 주요 도시를 이름으로 한 폰트들을 제작했는데, 이중 San Francisco가 현재 애플이 사용하고 있는 SF Pro의 시작점입니다. Helvetica와 Din체를 바탕으로 제작된 San Francisco체는 Neo-Grotesk 군에 속하며 중립적이고 실용적인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Neo-Grotesk는 대표적인 산세리프 폰트의 한 분류로, 획의 대비가 제한적이고 획의 단자가 수직 및 수평으로 잘라져 있어 그리드에 맞추기 용이하게 제작된 서체 군입니다.

San Francisco체에는 애플의 다양한 제품군만큼 특정 용도에 특화된 폰트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SF Compact는 글자의 좌우가 깎여있어 애플 워치와 같은 소형 디스플레이에 최적화된 디자인입니다.)


글자 사이의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어 글자들이 겹치는 상황을 방지합니다.


글자의 Counter(갇힌 공간)이 넓어 소형 디스플레이에서도 선명하게 보입니다.





2. 타이포그래피 활용



명확한 위계질서

가장 중요한 정보는 크고 볼드체로, 가격정보와 같은 추가적인 정보는 배경색과의 대비를 낮춰 시각적 우선순위를 낮추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텍스트와 제품 이미지가 겹치지 않아 배경과 텍스트의 대비가 자연스럽고 콘텐츠에 집중하기 쉽습니다.




볼드 타이포그래피

최근 몇 년 사이 볼드 타이포그래피가 큰 트렌드였는데, 애플도 본문 텍스트를 Regular가 아닌 Bold로 처리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긴 텍스트가 아니기에 가독성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콘텐츠의 집중력을 높입니다.




3. 결론



모던하고, 철저하게 실용적인 타이포그래피. 


애플의 타이포그래피는 단 하나의 서체를 사용하기에 디자인이 굉장히 체계적이고 일관적으로 보입니다. 이는 브랜딩의 관점에서 엄청난 강점입니다. 애플의 어떤 것을 경험해도 역시 애플스럽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기 때문이죠.


또한 애플의 SF Pro는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한 버전의 Helvetica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Neo-Grotesk 계열 특유의 모던하며 중립적인 이미지는 애플의 고급스러우면서도 모던한 인상을 대변하고, 디지털 및 인쇄 환경에서 Helvetica가 지적받았던 점들을 모조리 개선했습니다. 지극히 애플다운 시도입니다.






삼성의 타이포그래피



자사 홈페이지에 타이포그래피 가이드라인까지 있는 애플과 달리, 초창기 삼성은 유독 타이포그래피에 약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던 삼성이 변하기 시작한 시점은 갤럭시 시리즈의 성공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일관된 브랜드 경험의 중요성이 차츰 언급되던 때였습니다.





1. 삼성의 서체



Samsung Sharp Sans

디스플레이용


2014년 삼성은 Sharp Type이라는 폰트 제작사에 자사 제품 홍보에 사용할 폰트를 의뢰합니다. Sharp Type은 자사 폰트 중 Geometric 계열의 Sharp Sans을 기반으로 다국어 지원 폰트를 개발하는데 이것이 오늘날 삼성전자 제품 홍보에 사용되는 Samsung Sharp Sans입니다.

삼각형, 사각형, 원과 같은 기하학적 도형에 기반한 Geometric 폰트는 대중적이고 친근한 이미지가 특징입니다.

Samsung Sharp Sans 케이스 스터디 보기

Geometric 서체 군의 특징인 정원(perfect circle)에 가까운 O와 단층 형태의 소문자 a가 눈에 띕니다.



좌: Sharp Sans,  우: Samsung Sharp Sans

Samsung Sharp Sans는 유독 소문자의 높이인 x-height가 상당히 높아 소문자와 대문자의 크기가 거의 비슷하게 디자인되었습니다. Sharp Type은 이런 결과가 친근하고 매끈하며 삼성답게 만드는 디자인이라고 소개합니다.





Samsung One

디스플레이용 & 본문용


2016년 삼성은 Humanist 계열의 자사 브랜드 서체를 발표하는데 이것이 바로 Samsung One입니다.


삼성은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사람∙문화∙환경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새로운 폰트 ‘삼성원(SamsungOne)’은 그 모든 접점에서 사용자가 삼성과 연결돼 일관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삼성 뉴스룸-


Samsung One 제작기

Humanist는 전통 세리프 글꼴, 캘리그래피 등 옛 자형에 근원을 둔 산세리프 서체 군입니다. 따라서 그로테스크 계열의 산세리프 폰트보다 인간적인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Humanist 계열의 폰트답게 획의 변화가 손글씨와 같이 자연스럽습니다. 사각형에 가까운 곡선을 역동적 각도로 처리하여 갇힌 공간을 최대화한 것도 인상적이네요.


글자의 좌우 너비가 상당히 좁아 공간 효율이 좋아 보입니다.




2. 타이포그래피 활용


현재 삼성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위에 나열한 Samsung Sharp Sans를 헤드라인 폰트로, Samsung One을 본문 텍스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답답해 보이는 글자들

소형 헤드라인에서 Geometric 계열의 치명적인 단점이 드러납니다. 정원(Perfect circle)에 기반한 글자들 때문에 자간이 매우 좁게 세팅되어 있으며, 글자가 거의 서로 붙어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시각적 중요성이 떨어지는 텍스트

본문 텍스트가 애플에 비해 상당히 작고, 얇은 두께의 폰트로 적힌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중요한 제품 설명임에도 불구하고 이목을 충분히 끌지 못합니다.




3. 결론



잘 만든 폰트, 그렇지 못한 활용


Samsung Sharp SansSamsung One 모두 하나씩 살펴보면 상당히 잘 만든 폰트임이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이 폰트들을 사용하는 데 있어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글자 크기별로 자간 설정이 정해져 있을 정도로 섬세한 가이드라인이 있는 애플과 상당히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삼성은 애플과 달리 다양한 중저가부터 고가의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브랜드 이미지를 하이엔드 제품에 맞춰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친근하고 보편적인 인상을 주는 Samsung Sharp Sans는 삼성전자의 브랜드 이미지에 부합합니다.


표시한 부분을 주목하세요.

하지만 Samsung Sharp Sans의 디자인적 설계가 실제 사용에 있어 문제가 됩니다. 이는 Geometric 서체 군의 고질적인 문제로, Geometric 폰트들이 본문 텍스트에 잘 사용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O에 기반해 글자들이 디자인됨 → 글자크기가 전체적으로 큼 → 텍스트가 공간을 많이 차지함 → 자간을 강제로 줄임 → 작은 화면에서 글자 사이가 너무 좁아 보임


Samsung One은 현재 삼성의 브랜드 서체로서 제품 인터페이스, 프레젠테이션, 웹사이트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 텍스트로 활용되기에는 글자의 좌우 너비가 너무 좁아 심미성이 떨어집니다. 또한 웹 환경에서는 많은 텍스트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공간 활용이 좋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매우 심플한 Samsung Sharp Sans와 페어링 되어 사용될 시에 Samsung One의 폰트가 너무 스타일리시하여 조화가 좋지 않아 보입니다.




필요한 개선점


1. Responsive 상표 만들기

앞으로의 제품 상표에 Samsung Sharp Sans를 계속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디스플레이 환경에 변화하는 Responsive Logo처럼 상표가 사용되는 매체의 사이즈에 맞춰 적절한 자간 조정이 필요합니다.


2. Samsung One의 본문용 폰트 제작

현재 Samsung One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심미성을 높인 본문용 폰트의 제작이 필요합니다.


3. 타이포그래피 가이드라인

어떤 폰트가 어떤 상황에 사용되어야 하는지, 다른 폰트들을 어떻게 페어링 해야 하는지 등등을 명시한 타이포그래피 가이드라인이 필요해 보입니다.




글을 마치며


이번 글은 오래전부터 다루고 싶었던 주제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애플의 굉장한 팬이기도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삼성의 눈부신 발전이 인상적이어서 이 둘을 비교해보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거든요. ㅎㅎ


현재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폰들이 상향평준화되어있는 만큼 앞으로 타이포그래피와 같은 디자인 요소가 소비자에게 브랜드 선택 결정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둘의 케이스 스터디가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같이 보면 좋을 자료


삼성의 새로운 폰트 ‘삼성원(SamsungOne)’을 소개합니다

https://sharptype.co/case-studies/samsung-sharp-sans/

https://designforhackers.com/blog/san-francisco-font/


https://www.fastcompany.com/90489084/snl-lets-loose-with-tvs-most-ambitious-quarantine-episode-yet

https://www.wired.com/2015/06/apple-abandoned-worlds-beloved-typeface/

https://developer.apple.com/design/human-interface-guidelines/ios/visual-design/typography/

https://developer.apple.com/fo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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