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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떠나는 여행길, 사랑이 있는 곳으로

by 이해하나

이른 새벽, 숙소를 나서며 자연스레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가족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하는 길이었으니까요.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들이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갔고, 햇살이 차창을 부드럽게 어루만졌습니다.

"아빠 왔다!"

현관문이 열리며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뛰어나왔습니다.

아내도 반가운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집 안에서는 따뜻한 아침밥 냄새가 가득 퍼졌습니다.

갓 지은 밥 냄새, 보글보글 끓는 된장국의 구수한 냄새, 고소하게 익어가는 계란 프라이 냄새까지 그 모든 것이 집으로 돌아왔음을 실감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순간을 위해 매주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설렘으로 가득한, 행복한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면서 길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늘 같은 경로, 같은 거리, 같은 풍경. 그런데도 마음은 예전과 달랐습니다.

몸은 점점 무거워졌고, 기름값과 생활비는 부담이 되어 갔습니다.

매달 빠듯한 예산을 짜면서도, 왕복하는 교통비와 주말마다 지출되는 비용은 줄일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새 출발 전부터 한숨이 먼저 나왔습니다.

"이번 주는 그냥 좀 쉬고 싶다."

그런 생각이 스칠 때쯤, 전화기 너머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빠, 언제 와?"

잠시 망설였던 마음이 이내 단단해졌습니다.

아내는 여전히 혼자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고, 아이들은 그 사이에도 조금씩 자라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일하는 곳에 계셨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먼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주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매주 이렇게 오가는 게 힘들지 않겠느냐? 이쪽으로 이사 오는 건 어떠냐?"

부모님께서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물으셨습니다.

주말마다 왕복하는 이 길이, 멀리서 보면 어쩌면 불필요한 수고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부모님께 그 길은 단순한 ‘거리’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챙기려는 저처럼, 부모님도 멀리서 홀로 애쓰는 제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입니다.

"힘들지 않겠느냐?"

그 말속에는 자식이 먼 길을 오가며 피로에 지쳐가는 게 안쓰럽고, 혹시라도 그 길이 부담이 되진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부모님께는 걱정거리였습니다. 왕복하는 교통비와 생활비, 멀리 떨어져 두 집 살림을 하는 부담까지, 부모님은 말하지 않았지만 다 알고 계셨습니다.

"조금이라도 편한 선택을 하면 안 되겠느냐?"

그 질문 속에는 단순한 편리함이 아니라, 제가 조금 덜 힘들었으면 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제 안부를 걱정하는 것처럼, 저도 아내와 아이들이 적응한 삶을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사를 결심한다면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해야 했고, 아내도 새로운 일상을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이사에는 비용이 들었고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요."

매번 그렇게 얼버무리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이 길은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도 제 몫이었습니다.

매번 같은 길을 지나면서도, 마음은 늘 달랐습니다.

어떤 날은 기운이 나고, 어떤 날은 지쳤습니다. 어떤 날은 설레고, 어떤 날은 한숨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그 길 끝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이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들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고민이 떠오르지만, 결국 이 길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기도하며 나아가고, 안전을 빌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는, 이 길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주말이 아닌, 평범한 월요일 아침에도 가족과 함께 식탁에 앉아 따뜻한 밥을 먹을 날이 올 것이라고.

그때가 오면, 이 길을 떠올리며 흘려보낸 시간이 그리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가족들에게 감사하고, 저를 걱정해 주고 응원해 주는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누군가는 간절히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삶을 저는 살아가고 있음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도 축복임을 압니다.

창밖으로 또 한 주가 흘러갑니다.

그리고 저는, 가족을 만나러 갑니다.

그 길이 힘들어도, 사랑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라면, 저는 언제든 다시 길을 나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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