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복저수지 아래길

by 이해하나

이번 추석 때 가족끼리 고복저수지 근처 매운탕 집에 갔다.

식사가 한창일 때, 아버지가 옛날이야기를 꺼내셨다.


공부를 무척 잘하셨지만,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년 동안 농사일을 도우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모할머니는 너무나 가슴 아파하셨고, 그 이듬해 아버지를 청주중학교에 입학시키셨다고 한다. 그리고 신혼의 단칸방 한쪽에 커튼을 치고 3년을 돌보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매주 토요일이면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꼬박 다섯 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서 집에 왔다고 하셨다.

지금은 저수지이지만 그때는 전부 복숭아, 포도밭이었던 이 길을 지나면 "이제 반 남았다." 생각하셨다고 했다. 또한 이 길은 너무나 힘든 길이었다고 하셨다. 목도 마른데 향긋한 복숭아가 너무나 힘들게 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몰래 먹어 본 적이 없으셨다고 한다.

마지막 딸각 고개를 넘으면 산중턱에 집에 보였고 늘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셨다고 했다.


"왔냐."

"응, 왔어."


다섯 시간이라는 힘든 걸음 끝에 마주한 엄마와 아들의 짧은 대화지만, 그 두 마디에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부모와 자식 간의 애틋함이 모두 담겨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이모할머니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평생 품고 사셨다.

먹고살기도 힘든 여동생이 조카를 위해 신혼의 단칸방을 내어준 일.....,


할머니는 첫째 고모, 둘째 고모, 셋째 고모에게 늘 미안해하셨다.

고모들도 공부를 잘하셨지만, 형편이 안 돼 아버지만 공부를 시킨 것에 대해 늘 미안해하셨다.


끼니 한 끼조차 때우기 어려운 삶에....., 모든 자식들을 가르칠 수 없는 삶에.....,

서글프고 악에 바쳐 그래서 더 악착같이 사셨고, 더 열심히 일하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손 끝이 갈라져 피가 나도 일을 멈추지 않으셨다. 그리고 형편이 닿을 때면 꼭 쌀 한 말을 사서 아버지 편에 이모할머니 댁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 한 말의 쌀은 단순한 양식이 아니었다. 여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할머니가가 보고 싶어 그 멀고 험한 길을 걸었고, 할머니는 아버지를 공부시키기 위해 이을 악 물고 '그릇'을 머리에 이고 걸었던 그 길....., 그 모든 애틋함이 고복저수지에 담겼다.


그렇게 그 두 여인의 애틋한 마음이 한 소년을 성장시켰고, 나의 아버지가 되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표정 없는 세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