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닫힌 아들의 방문을 열어준 소통창구가 되다
아빠와 아들의 티격태격 여
“아빠, 이번 여름방학 때 오사카 놀러가면 안돼?”
올해 중학생이 된 막내아들이 쭈뼛거리며 말을 꺼낸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 방 문을 닫고 들어가서 잘 나오지도 않던 녀석이 먼저 여행을 가자고 하니 뜬금없기도 했지만 내심 반가웠다. 평소 서먹서먹했던 부자사이에 대화를 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더위에 약한 나로써는 한 여름의 오사카가 그닥 내키진 않았지만 아들 마음이 바꾸기 전에 얼른 여행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내는 회사 일정상 휴가를 내기 어려웠고, 새침데기 큰 딸은 더운 곳은 싫다며 단칼에 안 가겠다고 거절하니 결국 아빠와 아들 단둘이 가는 부자 여행으로 가닥이 잡혔다. 무뚝뚝한 잔소리쟁이 아빠와 사춘기 아들의 동행이라……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아 걱정도 되지만, 어쩌면 부자간의 여행이 또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 여행 준비를 서둘렀다.
하루가 모자란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 즐기기
아들이 오사카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단 하나, 항상 손에 달고 사는 닌텐도 게임 관련 컨텐츠들을 실컷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사카에 위치한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에는 게임 속 캐릭터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슈퍼 닌텐도 월드’ 테마파크가 있다. 게임에 관심이 없는 나로써는 잘 이해가 안되지만 2023년 현재 전 세계에서 ‘슈퍼 닌텐도 월드’는 이곳 오사카와 미국 LA 두 곳 밖에 없어서 일본 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관람객들이 몰려드는 명소라고 한다. 조금만 늦으면 대기를 해야 하거나 입장이 제한되기도 한다고 해서 우리는 가까운 곳에 숙소를 구하고 오픈 시간 전에 미리 가서 대기를 하기로 했다. 평소 학교 등교 시간이 다 돼서야 겨우 일어나는 늦잠꾸러기가 5시 알람이 켜지기가 무섭게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줬다.
개장 1시간 전에 도착했는데도 이미 엄청난 인파가 정문앞에서 줄을 길게 늘어섰다. 이미 예상했던 터라 15분 미리 입장할 수 있는 ‘얼리파크인’ 입장권을 구입했고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적은 시간에 이용하려고 입장하자마자 오픈런까지 해서 겨우 슈퍼 닌텐도 월드에 도착했다. 입구를 들어서니 닌텐도의 메인 캐릭터인 ‘슈퍼 마리오’ 게임 스테이지가 눈 앞에 펼쳐졌다. 한 눈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큰 규모였다. 파워업을 하기 위한 코인과 버섯, 각종 장애물, 귀여운 녹색 공룡 요시와 우락부락한 악당 쿠파의 동상까지 게임 속 캐릭터와 아이템들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총 600억 엔을 투입하였고, 슈퍼마리오의 원작자인 미야모토 시게루가 설계에 참여하였다고 하니 그 정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인 간다. 마치 동화 속 세상에 들어온 듯 했다. 게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내 눈에도 약간 가슴이 울컥할 정도인데 닌텐도 게임 광인 아들이의 눈에는 성지순례의 느낌이었으리라. 평소엔 다 큰 녀석이 이런 게임에 빠져 돈과 시간을 허비하는게 조금 한심하게 느껴졌는데, 막상 이곳에 오니 어린아이들 보다 더 적극적으로 즐기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인스타 인증샷을 열심히 찍고 있는 젊은 커플들, 마리오 의상까지 풀세트로 입고 마리오 카트를 타는 아저씨들, 기념품 샵에서 양손 가득 캐릭터 인형을 들고 있는 아이 부모들까지… 슈퍼 마리오라는 프랜차이즈 파워가 이렇게 대단한지 새삼 깨달았다.
사람들이 점점 몰려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어트랙션들도 둘러보기 위해 아쉬움을 남기고 슈퍼 닌텐도 월드를 나섰다. 하지만 이제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한 코너를 마쳤을 뿐이다. 아들이 평소 여러 번을 반복해서 볼 정도로 좋아하던 ‘미니언즈’, ‘해리 포터’, ‘쥬라기 공원’, ‘스파이더맨’과 같은 영화 속 캐릭터들을 모티브로 한 어트랙션과 엔터테인먼트들이 차례로 기다리고 있었다. 별 기대 없이 아들 데려다주러 왔는데 나중엔 내가 더 신이났다. 미니언즈들이 깜찍한 디스코 댄스쇼를 한 후 관객들과 포토타임을 할 땐 나도 정말 염치 불고하고 앞으로 뛰어나가 사진 한 장 같이 찍고 싶었고, 쥐라기 공원의 ‘더 라이드’ 어트랙션을 탈 땐 물이 튀어서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오히려 오사카의 폭염을 식혀주었다. 하루에 이곳의 모든 어트랙션을 제대로 즐기기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 아들 덕분에 생각에도 없던 세계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를 경험해 본 것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조금 더 어릴때 데리고 왔으면 더 재미있게 놀지 않았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여행을 마치고
사춘기 아들과의 여행이 내내 즐거웠던 것 많은 아니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선 그렇게 적극적이고 잘 놀던 아들이 다른 일정에서는 인파에 시달리고 더위에 지쳐서인지 가끔씩 짜증을 내기도 했었다. 서로 먹고 싶은 음식이 달라 식당 선택할 때 다투기도 하고, 기념품이라도 사려고 쇼핑을 하자고 하면 돌아다니기 귀찮으니 자신은 커피숍에서 게임하고 기다릴 테니 혼자 다녀오라고 배짱을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다툼 속에서도 싹튼 동지애랄까? 암묵적으로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긴 것 같다. 여행을 다녀온 후 부자간의 사이가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믿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아들의 방문은 아직까지 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