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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Oct 13. 2020

패션 공감능력

2020.06.08

  “흑인 치고는 정말 예쁘죠” 나는 중학교 때 소녀시대를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노래를 잘하는 태연이 가장 좋았다. 라디오 DJ로 활동하며 앨리샤 키스를 보고 태연은 저렇게 말했다. “흑인 치고는 정말 예쁘죠” 이후 인터넷에서 태연은 흑인 비하 발언을 했다며 큰 질타를 받았다. 솔직히 그 사건을 보고 ‘어쨌든 예쁘다고 한 건데 그렇게 잘못한 건가?’ 생각이 들었다. 핑계를 댈 수 있다면 그때 나는 어렸고 인종 차별에 대한 의식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이 일을 계기로 “00치고는 00 하다”라는 말이 차별적인 발언이라는 감 정도는 잡게 되었다.


  “내가 외국인이랑 결혼하면 어떨 것 같아?” 커 가면서 종종 엄마, 아빠에게 자주 했던 질문 중 하나다. 초반에 엄마, 아빠는 “그래도 외국인은 좀 그렇지. 생긴 게 너무 다르잖아. 정이 안 갈 것 같아.” 와 같은 반응을 보이며 큰 거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TV에 나오는 많은 외국인들로 인해 친근감이 생겼는지 최근에는 “외국인도 괜찮은 것 같아. 오히려 한국 사람보다 더 순수해 보이기도 하고…”라고 대답했다. 사실 외국인의 이미지가 좋아진 건지, 한국 사람의 이미지가 나빠진 건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엄마, 아빠의 대답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뒤에는 반드시 “근데 흑인은 좀 그래. 너무 까맣고 왠지 무섭게 생겼잖아”라는 말이 붙었다. 심지어 아빠는 아무렇지 않게 “깜둥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 같지도 않은 말로 흑인들을 옹호했다. “외국 나가봐. 흑인보다 더 차별 당하는 게 한국 사람이야”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말이다. 인종의 위계를 따지면 아시안 위에 있는 게 흑인이니까 감히 우리가 흑인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인가?


  “你好! 你漂亮!” 슬프게도 몇 년 뒤 나는 스스로가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 속하며, 누구를 무시할 처지가 아님을 몸소 느꼈다. 동남아를 여행할 때 우리나라보다 허름한 일부 시설들을 보며 한국이 좋은 나라임을 체감했다. 또 어딜 가든 내가 지갑을 열기를 바라는 분위기 속에서 금세 나는 같잖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트럭 뒤에 탄 남자애들 무리가 혼자 걷고 있던 내게 “你好! 你漂亮!”이라고 외쳤을 때 말 그대로 내가 정말 같잖은 선민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흑인 치곤 정말 예쁘죠”라는 말이 “어쨌든 예쁘다는 건데 뭐가 잘못됐지?”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렇게 많은 남자들에게 예쁘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불쾌했다. 이게 조롱이고 차별이구나. 심지어 그 와중에 중국어로 조롱당했다는게 참 웃기기도 하고 씁쓸했다.



  “아시안이 뭔데 흑인 인권을 챙기냐솔직히 1% 공감이  되는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나보다 아래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 나를 무시하고 조롱했다.  순간 스스로가  지구에서 가장 조롱당하기 쉬운 존재라는 생각에 화가 났다. 그래서 아시안 여성이  흑인 인권을 챙겨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언제까지 부당한 상황 앞에서 “나는  힘드냐? 나도 힘들어. 너보다  힘들다.” 같은 말만 외치고 있을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저런 좁디 좁은 아량만 가지고 산다면 대체  세상에 어떤 연대가 존재하고 어떤 진전이 있을까.


  ‘ 글을  사람이 직접 올린  맞을까?’ 공감능력이 부족한 나는 괜히 다른 사람의 진심도 의심할 때가 많다. 연예인들이 #blacklivesmatter 게시물을 올리거나 기부했다는 기사를 보면 ‘직접 올린  맞을까? 100% 본인의 돈일까? 소속사에서 대신 기부하고 연예인의 이름을 기사에 달아 놓는 것은 아닐까?’ 하며 의심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만약  사람의 의견이 아니고 그 사람의 돈이 아니어도  문제가 아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도움이 되고 평등에 기여를 했다면 마이너스는 아니지 않나.


  노래를 들으려고 사운드클라우드를 켰는데 조지 플루이드의 죽음을 추모하는 검정 화면이 떴다. 또 혼자 상상을 한다. 내가 이 화면을 띄우는 담당자인데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고 단지 일을 한 것뿐이다. 그런데 사운드클라우드를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면 선한 일을 한 걸까. 또 사운드클라우드는 그저 기업 이미지를 위해 추모 캠페인을 진행한 거라면 기업의 선한 영향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론은 제발 사람들이 이렇게 공감능력 있는 척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거다. 자신의 좁디 좁은 아량을 부끄럼 없이 드러내지 말고 적어도 그게 무식함, 무례함이라는 걸 알고 척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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