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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Oct 13. 2020

커피 한 잔 속에 담긴 서비스

2020.06.28

  나는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가기보다는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간다. 그중에서도 공부나 과제를 하러 스타벅스 양주 고읍점에 자주 간다. 스타벅스 양주 고읍점에는 아주 친절한 파트너 분이 있다. 그분의 성함(닉네임)은 ACE이다. 스타벅스의 파트너 분들은 대체로 친절하지만 ACE님은 내가 본 파트너 중 가장 친절하다. 날씨가 더운 날에는 “오늘 날씨 너무 덥죠…^^”라며 말을 걸어 주시고, 비가 오는 날에는 “오늘 저녁에 비 온다는데 우산 챙기셨어요?^^”라며 따뜻한 말을 건네주신다. ACE 님을 볼 때면 ‘저분은 서비스직이 천직인가?’ 아니면 ‘철저히 교육받은 대로 하는 것뿐 일까?’ 궁금증이 생긴다. 전자든 후자든 ACE 님이 대단한 건 사실이다.


  가끔은 ACE님에 대한 경외심까지 든다. 사담이지만 ACE 님은 개인적으로도 인성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분이 근무할 때 분위기가 굉장히 화기애애하고 다른 파트너 분들도 ACE 님을 좋아하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분 좋은 서비스를 받을 때마다 한 편으로는 ‘저분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서비스직이라면 당연히 저래야 하나?’하는 불편한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가 어떤 제품을 구매할 때 그게 단순히 100% 제품 그 자체의 가격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그 안에는 우리가 제공받는 서비스의 가격도 포함되어 있다. 그럼 우리는 어느 정도의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고 직원들은 어느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걸까?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는 ‘저는 오늘 고객을 고소했습니다’라는 스타벅스 파트너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을 시작으로 스타벅스는 파트너 부당 처우 논란에 휩싸였다.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파트너 A 씨는 레이니 쿠폰을 사용하며 ‘라떼 2잔이요’라고 주문한 고객에게 ‘따뜻하게 톨 사이즈 2잔 맞으세요?’라며 주문의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아마 파트너는 비 오는 날이니 따뜻한 커피를 주문할 거라고 예측했을 것이다. ‘그럼 이 날씨에 차가운 거 마셔요?’라고 반문하는 고객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료가 나오자 고객은 HOT 1잔, ICE 1잔을 시켰다고 항의했다. 고객의 항의에 음료를 새로 만들어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고객은 고성과 욕설을 하며 소란을 피웠다. 계속되는 욕설에 A 씨는 고객에게 고지 후 상황을 녹음하려고 했고, 고객은 이를 막기 위해 A 씨의 휴대폰을 부수려고 했다.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A 씨는 멱살까지 잡혔다. 이 사건이 더 논란이 된 이유는 고객의 소란에 나타난 점장이 폭언, 폭행을 당한 A 씨를 보호하기는커녕 되레 강제 사과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서비스직”이라는 이유만으로 A 씨는 고객에게 욕설을 듣고 멱살까지 잡혀야 하는 걸까?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 “고객”이니까 파트너에게 욕설을 하고 멱살을 잡을 권리가 생기는 걸까?


  전공 시간에 서비스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서비스가 제품과 차별화되는 특성에는 무형성, 비 분리성 등이 있다. 서비스는 제품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으며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지 않는다. 즉, 생산 즉시 소비된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직원이 고객에게 어느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지, 고객은 어느 정도의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는지가 모호하다.


  또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은 기계에 의해 생산되는 제품과 달리 사람을 갈아서 서비스라는 상품이 생산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생산된 서비스는 바로 고객에게 판매된다. 요즘 많은 기업들은 서비스 제공 매뉴얼을 만들고 매장 앞에 ‘직원을 가족처럼 대해주세요’와 같은 안내문을 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기업이 갑질하는 고객에게 고객의 잘못을 인지시키며 강경하게 대처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저 더 이상 우리 기업을 소비하지 않을까 봐, 기업의 이미지가 나빠질까 봐 고객을 달래기에 급급하다.


  나는 그래서 오히려 기계 같은 아르바이트생을 보면 묘한 쾌감을 느낀다. 그다지 살갑지 않으면서도   일은 다했다는 당당한 태도를 좋아한다. 이러한 태도가 나로 하여금 부담감을 갖지 않게  주고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게  준다. 물론 이건 그동안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겼던 억울함 때문일 수도 있다. 최저 시급을 받으면서도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어야 하고 말의 시작에는 쿠션어를 사용해야 하며, 목소리 톤을 높여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요구.


  나는 솔직히 대부분의 고객들이 무엇이 적절한 요구이고 무리한 요구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따뜻한 라떼 2잔을 시켰는지, 주문을 확인하는 직원의 말에 무심코 ‘네’라고 대답하지는 않았는지 기억을 되짚어보면 ‘아차!’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본인이 ‘네’라고 대답했으면서 빡빡 우겨 커피를 새로 만들게 하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가 아니다. 또 그런 무리한 요구까지 들어줘야 하는 것이 서비스직 종사자의 의무는 아니다. 치졸하지만 내가 쉬는 날에 카페에 가면 내가 손님이고 쟤가 직원이지만, 내가 일하는 날에는 쟤가 손님이고 내가 직원이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어느 때는 고객이고 어느 때는 직원이다.


  많은 서비스 기업의 근간이 되는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은 ‘리츠 칼튼 호텔’의 창업자 세라르 리츠가 한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이 말은 과거 호텔을 방문하는 고객이 실제로 ‘왕’이었기 때문에 한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왕처럼 돈을 쓰는 손님은 왕이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이런 말에 사로잡혀 4600원짜리 라떼 두 잔을 구매했다고 왕 노릇을 하려는 또는 왕 대접을 해주는 분위기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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