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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쥬얼꼰대 Jun 05. 2019

지금 이시간 또한 금세 지나가겠지

아기를 재우다가 문득 든 생각

가끔 왕년에 잘나갔던 스타들이 아주 오랜만에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깜짝 놀라곤 한다. 어렸을 적 라디오키드였던 나는 이홍렬 아저씨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을 즐겨듣던 팬이었는데, 얼마 전 TV에 나오신 모습을 보고 '아 정말 많이 늙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매우 자기중심적인 사람인지라 그 생각은 꼬리를 물고 결국 내게로 향하는데, 사고의 흐름은 대략 이렇다.

'나 그 때 뭐하고 있었지?' → '와, 시간 참 빠르네..' → '아,, 나 나이 왜케 많이 먹음..ㅜㅜ'

오늘 와이프가 회사일로 늦는다기에 저녁 때 혼자서 이유식 먹이고 좀 놀아주다가 씻기고, 또 우유 먹이고 재우려는데 아이 씻기며 같이 씻었음에 불구하고 때이른 여름 날씨에 온몸이 다시 땀으로 덮이고 열이 풀풀 난다.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느낌이다) 너무 힘들어 재빨리 자장가 한곡 불러주곤 눕히고 나와 한숨 돌리는데 10분, 20분이 지나도 통 자질 않는다. 간단히 샤워도 다시 했겠다 진정된 마음으로 초록이를 안아올려 자장가를 두곡, 세곡 토닥이며 불러주는데, 커튼 사이로 스며 들어오는 힘없는 햇빛을 보자니 쌩뚱맞게도 17년 전 바로 이맘 때, 강원도 양구의 훈련소에서 야간 행군을 떠나기 전 휴식시간이 떠오른다. 난 그 때 생각의 밸브를 잠근 채 지는 해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때는 20대 초반이었는데... 나 나이 왜케 많이 먹었냐..(결국엔 같은 결론)

이번에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지금으로부터 17년 후를 떠올려 본다. 나는 50대 중반 완벽한 아저씨?할저씨?가 되어있을테고.. 내게 안겨있는 초록이는.. 고3이겠네. 고3인 초록이는 지금처럼 내게 안겨있을 수도, 안겨있으려 하지도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뭔가 안에서부터 찡하는 게 올라온다. 초록이를 안은 채 오늘 둘이 같이 보냈던 시간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초록이 오늘 아빠에게 안겨서 아빠 혼자 식당에서 밥먹는 데 따라갔지? 잘 기다리다가 마지막엔 졸려서 찡찡거렸지?....... 이야기를 다 마치고는 평소보다 더 꼭 안아주고 살며시 눕힌 다음 뽀뽀해 주는데 아빠를 보며 생긋생긋 웃는다. 또 그 모습을 보니 핑하고 눈물이 고이려 하기에 얼른 인사하고 방 밖으로 나왔다.

육아휴직 하고 아기를 혼자 보다 보니.. 좀 더 빨리 아빠가 되어가는 것 같다.

 

아빠의 페이보륏 돈까스! 넌언제 같이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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