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잘생긴 사람, 더 예쁜 사람
"이현준 팀장이 그렇게 잘생겼나? 나보다 더?"
강솔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렸다. 언제 나타났는지, 수호가 다가와 파티션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괸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목소리 톤과는 달리 표정은 여유만만했다.
'무슨 또 뜬금없는 소리야..'
방금 전 기획팀장, 이현준이 본부장실에 와서 주간 보고를 하고 나가긴 했다. 그는 수호와는 다른 타입이었다.
일을 중시하고, 꼼꼼하고 냉정하며,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냉미남 차도남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강솔은 이현준 팀장의 일처리와 보고 스타일, 보고서의 완벽함이 좋았고, 무엇보다 요청한 자료를 기한에 맞게
보내준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여직원들 사이에서는 왜 기획본부에만 미남들이 있냐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강솔은 어디서 또 무슨 이야기를 듣고 와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수호를 한 번 올려다보았다.
"그런 건 주관적인 거 아닌가요."
"난 강비서의 의견이 궁금해서 그래. "
강솔은 수호가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비위를 맞출 것인가, 평소대로 거침없이 말할 것인가. 재빨리 판단해서 말하지 않으면 계속 물고 늘어질 느낌이었다.
"상처받으실까 봐 대답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분이 좀 더 제 이상형이죠." '강솔직 모드' 스위치가 'ON'으로 켜졌다.
"아, 실망이야 강비서. 설마설마했는데." 그 순간, 수호의 눈빛에 묘한 서늘함이 스쳤다.
"근데 나 좀 서운하려고 하네~ 눈앞에 더 잘생긴 사람이 있는데~
이상형이 저렇게 무뚝뚝하고 성격 나쁜 거야~? 진짜 실망이야~ 나 좀 더 봐주지."
"제가 가벼운 사람은 취향이 아니라서요."
"아하, 가벼운 건 별로다? 오케이, 접수. 내가 좀 진중한 모습을 보여줘야겠네.
기대해."
수호는 싱긋 웃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조금 상처 입은 듯했다.
강솔은 무심한 표정으로 다시 모니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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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솔은 비어 있는 수호의 자리에 결재문서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어디 가서 노닥거리고 있는지, ‘실컷 놀고 와서 시간을 돌려 일하면 된다’라는 생각이라도 있는 건가. 그럴 때 쓰라고 있는 능력인지 그의 속마음을 도저히 알 수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 인간 대체 어디 갔을까?” 강솔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나 찾았어?”
갑자기 귀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에 강솔은 화들짝 놀랐다. “보, 본부장님?”
언제 나타났는지, 한수호가 팔짱을 끼고 강솔의 뒤에 서 있었다.
“대체 어떤 인간이 어디 가서 안 돌아왔어?” 웃음을 참으려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강솔은 당황해하며 얼굴을 붉혔다. ‘너, 너무 크게 이야기했나? 왜 다가오는 발소리도 안 난 거지?’
강솔은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수호는 푹신해 보이는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저런 걸 신고 어디까지 돌아다니다 나타난 거야..’라고 생각하며 수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흠. 흠! 결재 부탁드려요 본부장님.” 뻔뻔한 미소를 지으며 강솔은 수호의 자리 앞에 서류를 가리키며 부드럽게 말했다.
“응, 그래.” 수호는 대충 훑어보고 결재를 하며 말했다.
“근데 나 어디 갔다 왔냐면, 회장님 비서실 다녀왔지." 좀 전에는 궁금했었지만, 그냥 넘어가도 되는 자신의 부재 사유를 술술 털어놓는 수호의 말을 듣기 싫은 듯 강솔은 무심하게 모니터를 바라보며 대답한다.
“아, 비서실 이번 신입, 그 예쁘다고 소문난 신예리 씨,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러 다녀오셨군요.”
“신예리 씨가? 난 강비서도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수호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물론, 신예리 씨가 더 예쁘긴 했어.”
“뭐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냥 찌꺼기인걸요.” 강솔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무언가 가슴속에서 화가 밀려오는 것 같았다.
'설마 내가 이현준팀장님 칭찬해서 일부러 저러나.'
수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마. 강비서는 나한테 가장 필요한 사람이야.”
그의 목소리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찌끄레기라니. 이렇게 예쁜 찌끄레기가 어딨어?”
그는 싱긋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가장 만만한 사람이겠죠..?”
수호는 한숨을 내쉬며 강솔의 책상 위에 결재서류를 툭 내려놓았다. 그의 시선은 강솔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강비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하지? 네가 그렇게 자신 없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넌 나에게 유능한 비서이고, 우리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야.”
“네. 기운을 북돋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강솔은 힐끗 수호를 바라보고는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강솔을 보며 피식 웃으며 한수호는 조용히 말했다.
“그만하고 나 좀 봐줘.”
“그 유능한 비서 일할 시간입니다..” 강솔은 태연한 듯 중얼거렸다.
한수호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의 시선이 강솔에게서 떨어질 줄 모른다.
“아, 진짜 일만 할 거야? 나 좀 봐줘. 응?”
“본부장님이 인정하셨듯이 회사가.. 저를 필요로 하는데요..!! 지금 도착한 메일과 메신저가, 장난 아니거든요!”
강솔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수호는 계속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아, 알았어, 일해, 일. 오늘도 얼른 칼퇴나 해야지.” 수호는 투덜거렸다.
“그니까 칼퇴하려면 중간에 예쁜이 보러 다녀오거나, 놀면 안 된다고요.” 강솔은 여전히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수호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슬며시 다가와 강솔의 옆에서 상체를 숙였다.
그의 팔이 강솔의 팔에 닿았다.
“음, 이 보고서 말야. 이 부분이 좋네.”
그가 말한 부분을 확인하러 강솔은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한수호는 강솔의 옆얼굴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그가 강솔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집중할 때 너무 예쁜 거 알아?”
“본부장님은 일에 집중할 때가 더 멋지다는 거 아시나요??" 지지 않고 강솔은 맞받아쳤다.
한수호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더 가까이 다가와 강솔에게 속삭였다.
“둘 다 멋지다고 해줄래?”
“뭘 해도 멋진 본부장님 덕에 오늘 칼퇴 가능하겠는데, 약 30분만 조용히 해주세요.”
그 모습에 한수호는 장난기를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집중할 때마다 그렇게 입술이 삐죽 나오는 거, 알지? 더 귀엽잖아.”
‘이제 반응하지 말자. 아무리 받아쳐도 끝이 없네.’ 강솔은 입을 다물었다.
마지못해 수호는 자리로 돌아가면서도 강솔을 향한 부드러운 시선은 그대로 고정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퇴근 시간이 되었다. 한수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투를 걸쳤다.
“가자, 강비서.”
강솔은 무심하게 대꾸했다. “일도 많고 찾는 사람도 많고.. 다들 놀고만 있진 않아서요. 야근해야 하네요.”
한 직원이 멀리서 본부장을 발견하고 소리치며 급히 다가왔다.. “아, 본부장님!!! 저... 부탁하신 제안서 초안 작성했는데요.”
수호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미심쩍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직원은 긴장한 듯 더듬거리며 말했다. “더.. 더 수정할까요?”
수호는 그가 작성한 제안서를 휙휙 넘겨보더니
한 손을 들어 보이며 “아니, 훌륭해. 이대로 진행해.”라고 말하며 직원을 돌아보았다.
직원은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네, 넵... “ 떨떠름하게 돌아갔다.
한수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직원들도 일을 멈추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제대로 보시긴 한 건가... ‘ 강솔은 의문스러웠지만, 시선을 모니터로 돌렸다. “어쨌든 저는 할게 아직 남아서..” 타닥타닥, 타자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 또 다른 직원이 다가왔다.
“하, 뭐야. 이젠 줄을 서라, 서.” 수호는 그 모습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강솔은 정말 6시 다 돼서 찾아오는 건 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긴급 건 아니면 내일 제게 말씀 주세요. 아니면 메신저, 메일 남겨주세요.”
”그래, 내일 하라고. 자꾸 두 번 말하게 할래?” 수호는 턱에 힘을 주고 한숨을 쉬며 투덜거렸다.
“하, 하지만…” 직원은 난감한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그럼 안 하면 되잖아? 내일 해. 내일. “ 수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휘휘 저었다.
”내일 오전까지가 마지노선입니다. 오늘 컨펌해 주셔야 내일 오전에 바로 진행할 수 있고요.” 직원은 당황하며 초조한 얼굴로 재빨리 말했다.
“지금 안 하면 큰일 나는 거야? 내일 해.” 수호는 짜증스럽다는 듯 내뱉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일 오전까지 결정해야 하는 사안인데요.”
직원은 거의 울먹거렸다.
‘사실 그렇게 중요한 건 이미 진작에 컨펌을 받았어야지, 왜 이렇게 막판에 밀려들어.. 아냐.. 이건 본부장님이 너무 오래 자리에 안 계셔서 그런 거잖아. 원인유발자 한수호.’ 강솔의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아, 또 뭐, 내일 해. 내일. 어차피 지금 해도 내일 또 수정해 달라, 바꾸자, 할 거 아냐? 그냥 내일 해.”
수호는 능글맞게 말하며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방금 급하다는 건, 이미 오늘 오전에 올라온 건인데요.. 내일 오전 임원회의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확인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단 내일 오전 빨리 출근부탁드려요.” 강솔은 재빠르게 자료를 확인하며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 네, 알겠습니다. “ 직원은 수호를 한번 보고, 강솔을 한번 보며 연신 꾸벅이고는 돌아갔다.
직원이 돌아가고, 수호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강솔을 바라보았다.
“봤지? 다 내쫓았어. 이제 일할 사람 아무도 없어. 가자.”
“내일 임원회의가 있다고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중요하니 이건 검토해 주셔야겠어요.”
강솔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수호를 노려보았다.
‘신예리랑 놀 시간에 중요한 자료부터 처리했어야지! 누구 때문에 지금 야근하는데!’ 강솔의 머릿속에서는 신예리와 수호가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괜히 더욱 화가 나는 것 같았다.
“자, 봐. 3초 컷 결재. 역시 난 천재야. 검토도 다 끝났어. 나머지는 내일 오전에 하자. 연락해 놔.” 수호는 싱글벙글 웃으며 일어났다.
“가자 강솔.”
“벌써 다 보셨다고요?” 강솔은 머릿속 상상에서 빠져나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시간 살짝 멈추고 봤지.. 내일 회의 준비 끝.”
수호는 가끔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사용했다. 벽시계 초침이 멈췄다. 그 순간,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그동안 재빠르게 번개처럼 결재는 끝났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정지된 적막 속에서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에게 시간이란 마치 언제든 주무를 수 있는 단순한 도구였다.
‘그럼, 하루 종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여직원들과 놀 때만 시간을 쓰고 일할 때는 멈춰 놓고 본다는 건가? 무슨 능력을 그런 데다 써?’
“그렇지만, 이렇게 능력을 쓰고 나면 너무 피곤하다구.” 수호는 슬쩍 다가와 강솔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우리 강비서가 필요해.. 보충해 줘. 응?”
“저는 에너지드링크가 아니라서요. 어쩌죠??" 강솔은 어깨를 으쓱하며 저 손을 으스러뜨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남자 손가락이 저렇게 길지?’
“방금도 시간 멈추고 네가 일 다 한 거 봤어. 우리 강비서님 덕분에 능력을 써서 피곤하니까, 네가 도와줘야지. 안 그래? 나랑 놀아줘야겠어.” 수호는 강솔의 반응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모니터를 슬쩍 바라보고는 미소 지었다.
강솔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퇴근이야 좋지만 뭘 어떻게 놀아달란 말인가, 어린애도 아니고.
“하아, 저녁 약속도 없으신가 봐요.”
“있지, 너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