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장님은 칼퇴집착댕댕 (7)

이상한 꿈

by J모아

강솔은 분주한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쌍둥이 남매 세진과 세아는 식탁에서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부엌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찬란하게 빛났다.


“엄마아, 세진이가 자꾸 발로 걷어차.” 세아가 마주 앉은 세진을 노려보며 울상을 지었다.

“세아가 먼저 그랬단 말야. 앙앙.” 세진은 식탁 의자에서 내려와 그림책을 꺼내왔다.

“이거 읽어준다고 했잖아 엄마.” 공룡 동화책을 펼쳐들며 세진은 웅얼거렸다.

“바보야, 아침 다 먹어야 읽어준다고 했잖아!”


세아는 요거트 한 숟가락을 떠먹고는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우리 세아 공주님, 세진 왕자님, 다 드셨어요? 양치해드려요?” 앞치마를 하고 머리를 질끈 묶은 강솔이 아이들을 다독였다.

“세진이가 또 내 칫솔 팽개쳤어! 내 하트핑 칫솔! 으앙!”

“세아가 먼저 내 차봇 칫솔 숨겼단 말야. 으앙앙!”

‘이 꿈은 뭐지… 내 미래인가? 정신없어…웬 쌍둥이 애들?’


강솔은 어쨌든 꿈이라도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울먹이는 아이들을 달래며 양치질을 도왔다.


“자꾸 싸우면 이빨 다 썩어서 병원 가서 위이이잉~ 할 텐데. 치카 잘해야지?”


먹다 남은 요거트를 정리하며 설거지까지 마친 강솔은 하나씩 옷을 입힌 뒤 두 아이들의 손을 잡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아이들의 아빠가 잽싸게 아이들을 카시트에 앉히고 벨트를 채웠다.


강솔은 뒷자리에서 양쪽 아이들의 손을 잡고 토닥였다.


“사랑의 하트핑, 친절의 착해핑~”

“차봇 우리들의 친구 차봇~”


차 안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주제가가 가득 차고,


따라 부르는 소리에 맞춰 자동차는 폭신한 구름 위에서 춤을 추듯이 달려 유치원 입구로 날아들었다.


“엄마, 다녀오겠습니다!”

“세진이 세아 엄마가 너무 사랑해~”


아이들은 손바닥만 한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해 자신의 이름이 붙은 자리에 사뿐히 올려놓았다. 선생님은 반가운 얼굴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싱글벙글 웃으며 교실로 들어갔다. 강솔은 연거푸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차로 돌아갔다.


운전석에 앉아 강솔을 기다리던 남자가 씨익 웃었다.


“오늘 아침도 고생했어 여보.”


한수호가 다정한 손길로 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강솔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잠에서 확 깨어났다.


새벽 6시, 휴대폰에서 귀를 찢는 알람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강솔은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잡아뜯었다. 아직 머리에 그의 손길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하. 뭐야 대체. 꿈 한번.’


고요한 방 안에 살며시 들어오는 햇살은 온기를 담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의자에 걸쳐놓은 흐트러진 옷가지가 현실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출근이나 하자.’ 강솔은 재빠르게 출근 준비를 마쳤다.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였다. 청소 도우미 아주머니께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유~ 솔이 비서님은 오늘도 일찍 나오셨네~ 호호호.”

“여사님,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강솔은 미소 지으며 아주머니께 따뜻한 차를 건넸다.


강솔은 기지개를 살짝 켠 뒤, 자료를 챙겨 들고 임원회의 준비를 시작했다.


[본부장님, 저 먼저 회의실 가 있을게요.]


수호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회의실로 가는 중, 카톡방을 다시 확인했다.


오늘은 회장의 부재로 부회장이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비서실 카톡방—


(부회장 비서) 10시 회의는 다들 알지? 부회장님 주재로 변경.


(우성훈 비서) 회장님은 국정감사 참석하시느라…


(비서실 1)아, 다른 그룹 회장님들도 다 거기서 정모 하시겠네..


(우성훈 비서)어 차피 내가 모시고 가서 모니터링할 거니까.


(비서실 2) 우성훈 비서님 수고 많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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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회장은 수호의 작은아버지인 한주원이다. 수호와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다. 매섭고 날카로운 성격의 한주원 부회장은 회장이 수호를 자유롭게 놔두는 것도 썩 맘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더 완벽하게 준비해야 해.’ 강솔은 긴장한 듯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회의실에 일찍 도착한 이현준 기획팀장이 다가온다.


“강비서? 일찍 왔네.”


단정한 슈트 차림의 기획본부 제일가는 미남-강솔 피셜-인 현준은 무뚝뚝한 얼굴로 강솔이 준비한 자료를 넘겨보고 있었다. 기획팀에서 작성하여 미리 제출을 끝마친 자료는 오늘 회의를 위해 몇 번씩이나 검토에 검토를 반복했다. 지난번과 같이 그래프가 잘못 들어가는 실수는 다시는 없으리라.


“제가 확인했는데 특별히 이상 없었습니다.” 강솔은 현준에게 살짝 웃음 지었다.


마침 수호가 회의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는 현준과 강솔이 있는 것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솔아. 어제는 잘 들어갔지?”

“그럼요.” 자료를 다시금 확인하느라 정신없는 솔은 수호 쪽으로 눈을 돌리기가 왠지 부끄러웠다.


아침의 그 꿈이 생각나서 더욱 그랬다.


강솔은 미래를 보는 능력이나 꿈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는지를 물어보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고개를 흔들어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안돼, 회의에 집중해야 해. 그건 개꿈일 뿐이야.’


오전 10시, 부회장과 임원들이 모두 들어오고 회의가 시작되었다. 현준은 차분하게 이번 분기 콜라보 진행 중인 한율식품 컵떡볶이 제품 라인의 순조로운 매출 현황과 실적을 보고했다.


아동 타깃 콜라보였기 때문에 제품 포장지에 들어간 캐릭터는 ‘하트핑’과 ‘차봇’이었다. 두 만화 캐릭터를 보며 강솔은 새벽까지 꾸던 꿈이 떠올랐다.


‘아, 하필 이 캐릭터가… 아냐, 지금 한창 애들에게 인기 폭발이잖아, 자료를 열심히 본 게 무의식에 남았나. 하하.’ 강솔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임원들의 질문에 명료하게 답변하는 현준을 보며 회의록을 작성해 나갔다.

“현재 컵떡볶이 제품 6종류 모두 괄목할 만한 판매고를 올리고 있고, 해당 애니메이션 등장하는 인기 캐릭터들을 활용한 제품 추가 출시하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한주원 부회장은 팔짱을 꼈다가 팔꿈치를 테이블에 올렸다가 하며 주의 깊게 듣고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PT화면과 함께 현준의 일정한 저음 톤이 임원들에게 신뢰를 주었다.


수호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재미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자신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현준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강솔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다음 안건은 한율 본사의 ‘주 4.5일제 시범 도입’이었다. 정부에서 입법 추진하는 내용에 따라 이미 계열사에서 시범운영하며 나타난 긍정적 효과를 바탕으로 본사에 적용하는 방안이었다. 부회장은 가만히 발표를 듣다가, 수호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다 좋은데, 음. 한 본부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근로시간 단축은 뭐 이제 피할 수 없는 것 같고요, 저는 시범운영과는 별개로 좀 더 칼퇴부터 정착되었으면 좋겠네요.”


수호가 열심히 밀고 있는 ‘칼퇴’가 또 등장했다. 부회장은 눈을 살짝 감았다 뜨며 다시 물었다.


“주 4.5일도 하고 칼퇴도 하고?? 일은 언제 하나?”

“부회장님, 그니까 8시간 10시간 앉아 있으면 건강에도 안 좋아요. 일할 때 집중해서 바짝 일하고 얼른 퇴근해서 자기 시간 가져야죠. 취미생활도 하고, 연애도 하고…” 수호는 씨익 웃었다. 강솔은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하, 연애라, 더 나아가서 결혼도 하고… 출산율도 높이는 데 기여하자. 그런 의미인가?” 부회장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질문을 계속해 나갔다.

“뭐 궁극적으로 그렇다고 봐야죠.”

“연애는 해도 결혼은 안 하는 젊은이가 많다던데, 한 본부장은 결혼 생각 없는 거 아니었어?”

“에이, 아니에요. 저도 아들딸 딱 둘만 낳고 살 건데요?”


순간, 강솔은 멈칫했다. 왜 저 말을 하면서 나를 보는 거야. 그녀는 또 그와 쌍둥이 남매가 나왔던 꿈을 떠올렸다.


‘왜 오늘따라 그 꿈과 회의에 나오는 게 자꾸 겹칠까?’


강솔이 자꾸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본 수호는 이상하다는 듯 그녀를 힐끔거렸다.


이현준 팀장은 수호가 강솔에게 시선을 보낼 때마다 그녀가 자꾸 고개를 돌리는 것을 의미심장하게 지켜보았다. 그는 곧 부회장과 수호의 대화를 끝내기 위해 말을 꺼냈다.


“본부장님의 향후 자녀계획까지 알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임원들이 너도나도 쿡쿡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계신 임원 여러분들도 시범 4.5일제에 많은 관심 가져 주시고 원활히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회의는 곧 마무리되었다. 부회장은 수호를 더 공격하고 싶었으나, 현준의 보고에는 만족한 듯 일어섰다.


“이 팀장 오늘 아주 수고했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 주게.”


수호를 힐끗 바라본 후 부회장은 자리를 떴다.


강솔은 큰일이 벌어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임원들을 배웅했다.


‘이 팀장님 준비 철저히 잘하셨네. 역시 프로야.’


강솔은 현준에게 다가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이 팀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멋있.. 었습니다. 최고.”


현준은 별 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목례하고 자리를 떴다. 그녀는 회의실의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수호는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갔다. “강비서, 나도 오늘 잘했는데, 난 칭찬 안 해줘?”


갑자기 다가온 그의 등장에 놀랐는지 강솔은 뒤돌아보았다. “네, 네??”


그녀는 오늘 수호를 똑바로 보기가 힘든 것 같았다.


“강비서 오늘 이상하네. 다른 날은 회의 때 노잼이라는 표정으로 잘 있었잖아. 내가 뭔가 잘못 말했나?”


그는 그녀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섰다. 눈빛이 이글이글 타는 것 같았다.


“근데, 그렇게 이현준이 멋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