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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Sep 24. 2018

기분이 나쁘다. 수성못(2018)

*스포일러 있습니다!





  끝까지 보면 참 기분나쁜 영화다. 10분정도는 계속해서 기분이 나빴다가, 혹자가 불편한 영화가 잘 만든 영화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왜 나는 기분이 나빠야 했는가, 다시 생각하고 곱씹어보았다.


  일단은 영화를 보면서 모두가 한 번 쯤은 경험해봤을 좌절감, 극심한 우울감의 감정을 잠시동안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숨이 턱 막히는, 산소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 죽으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공상적인 감각들.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영화는 흥행과는 관련 없이 어느 부분에서 성공한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는 편입 준비생 '희정'의 시선을 따라간다. 운동과 알바, 편입 준비까지 자기개발에 몰두하는 똑순이같은 희망찬 캐릭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이입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우리도 저래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일수도 있겠고, 영화 상에선 다른 캐릭터들보다 현실에서 더 존재할 것 같은 가능성이 가지기 때문이다. '수험생'으로 등장하지만, 화면 상에 보여지는 장면은 공부하다가 조는 장면, 아침에 낮잠자는 장면 등 활기차게 묘사하기보단 무기력한 이미지가 더 강해 보인다. 많은 청춘 영화는 '노력'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그리기만 하지만, 청춘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이 우리가 캐릭터를 더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디테일로 돋보였다.
  우연히 희정이 자살방조 사건에 엮이는 것도 졸음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 이후로 자살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군상이 스쳐 지나가고, 결국엔 희정 본인도 삶을 비관하여, 복선과 연결시켜보았을 때 투신 자살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실 자살과 관련된 영화를 불편하지 않게 그린다는 건, 소재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감정을 투영시켰던 희정이라는 캐릭터가 그토록 남에게도 설파하고 스스로 부르짖던 '목표'를 잃고 삶을 비관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자살을 추호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자살'이라는 사건이 충분히 일반인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자각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자살예방센터의 존재를 드러내고, 다양한 관점에서 솔직한 '자살 담론'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신선했던 영화였다.


  자살에 관련된 수많은 군상들이 존재한다. 그 하나하나가 개별적인 이야기를 갖고 있지만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은 화면 상에 등장하지 않는다. 소름끼치지 않는가. 영화는 부분적으로 청춘드라마같은 발랄한 톤앤매너를 유지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모두 끊는다. 연출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인 연대를 호소하기 위해서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반자살을 기획하는 사람, 자살 시도를 했다가 살아야 하겠다고 생각한 사람, 동반자살 모임에 나와 수다떠는 사람, 자살을 생각하지만 겁쟁이같이 보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 등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미디어에 수없이 비쳐지는 쾌활한 청춘들, 끊임없이 자기를 갈고 닦는 청춘들 말고도 '이런' 청춘의 삶도 존재하고 있다.  








Q.
 -자살 미수자, 삶의 무게에 짓눌린 불쌍한 영혼들?



Interesting
  익사한 귀신이 꿈에 나와 목을 조르는 장면이 다른 영화의 레퍼런스인 걸 눈치챘는데, 어디서 본 것인지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소설 7년의밤? 기억이 안나..
  마지막 장면에서 기타치는 아저씨의 환상이 보인다. 뭔가 이렇게 전통적인 복선의 방식이 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신선한 느낌이었다.
  '희정'역의 배우가 정말 리얼하다. 진짜 대구에서 공부하던 수험생을 잡아다 연기시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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