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너 닮은 자식 낳으라던 엄마
지가 옳다는 주장을 조목조목 설명하며 높아지는 언성까지 영락 내 모습이다. 끓는 화도 모자라 멘붕이 올 것 같지만 누굴 탓하랴. 내가 낳아 30년을 키운 내 아들인 것을.
나의 부탁에 최선을 다해 보여준 자신의 진심을 이해 못 한 엄마에게 아들의 화가 폭발한 것이다.
발단은 다 늦게 시작한 나의 글쓰기에서 시작되었다. 늦깎이 학생처럼 취미로 합류한 글쓰기모임에 몰두한 나는 봇물 터지듯 떠오르는 생각들을 써 내려갔고 물 만난 물고기처럼 몰두하는 내게 출판사대표의 출간제의가 이어졌다. 꿈에도 생각 못한 제안에 얼떨떨한 멈칫은 잠깐, 오지랖의 평소대로 직진한 내 결심에 글쓰기 풋내기의 출간은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그런데 아니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내용을 그저 써 내려가면 책이라는 결과물이 후다닥 만들어질 줄 알았건만 천만의 말씀, 어림없는 나만의 착각이었다. 날마다 이어지는 편집에 주제별 글 분류와 편집자와의 의견조율이 첩첩산중 산 넘어 산이었다.
'견뎌내자! 참아야 하느니라!'를 반복하며 하룻강아지 초보작가의 겁 없는 도전이 이어졌다.
책내용들이 웬만큼 마무리될 때쯤 커버 시안을 위한 출판사대표와의 의견조율 중 아들이 떠올랐다.
디자인을 전공한 아들은 자신의 바쁜 일정에도 엄마의 첫 출간을 위해 흔쾌히 도움을 결정했다.
"밝고 환하면서 약간은 화려하지만 심플한 디자인이면 좋겠어"
'화려'와 '심플'이란 두 단어의 의미 충돌을 지적하며 아들이 웃으면서 말했다.
" 단순한 요구지만 디테일이 엄청 필요한
어렵고 까다로운 클라이언트를 만났네"
커버디자인에 대한 내 생각과 의도를 세심하게 확인한 아들은 며칠 후 4개의 시안을 보내주었다.
'역시 내가 낳은 아들이구나' 싶게 아들의 디자인 하나하나가 마음에 쏙 드는 최고의 시안들이었다. 커버 디자인은 물론 속지의 구성과 디자인 폰트, 주제별 글에 따른 섹션별 디자인까지 세심하게 만든 아들의 정성에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그런데 문제가 터진 것은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였다. 아들이 보낸 시안은 출간을 위한 모든 것을 고려한 최종시안이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폰트와 책 사이즈 그에 따른 모든 크기와 디테일이 맞추어진 한 세트였다. 출간을 위한 책의 외형이 수정 없이 그대로 진행되도록 짜였던 것이다.
그러나 출판을 맡은 출판사와 인쇄소 실무진은 커버 사이즈와 그에 따른 폰트와 속지의 구성분류를 변경 조정하는 시안으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디자인 자체의 변화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특별한 생각 없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일의 진행상황을 묻는 아들에게 인쇄 전 진행사항을 알렸고 이런 변경내용을 확인한 아들의 화가 날벼락처럼 내게 떨어진 것이었다. 자신의 일과 관련된 전문영역을 상의 없이 손을 댄 엄마가 무지몽매하다며 문제를 지적했다. 단순히 커버 디자인만 눈여겨보던 내게 출판사의 변경과 아들의 결정이 큰 차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완성한 디자인과 그에 따른 세부사항이 달라지면 이 모든 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하며 덧붙였다.
"책 뒷면 표지 디자인에 내 이름은 절대 올리지 마세요"
설명도 변명도 필요 없이 내 말만 앞세우며 엄마의 잘못을 따져대던 그 나이 때 내가 보여 더 할 말이 없었다. 아들 속에 비친 나를 곱씹으며 '내 잘못이 뭘까' 되짚어보는 나 자신이 낯설고 기막혔다. 끝까지 내 주장을 안 굽히며 엄마를 이겨먹던 세상 잘난 딸이었는데 말이다.
옛말 틀린 게 없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 않나!
어쨌든 상의 없이 바꾼 내가 잘못한 건 맞다. 그럼에도 화가 난다. 아니 서운하고 속상하다.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힘들게 낳아 어려운 시간 공들여 키운 어미공도 몰라주는 나쁜 자식'
혼잣말로 되뇌고 나니 어디서 많이 듣던 넋두리다. 답답하던 울 엄마가 소가지 사납던 딸 뒤통수에 읊어대던 하소연과 속상함 그대로다. 전수된 타령처럼 내 입에서 술술 나오며 뒤바뀐 부모 맘을 이제야 짐작한다.
'그래 부모자식이 다 그런 거지.'
세상사는 이치려니 내려놓는 마음 한 구석 서운한 아들보다 떠나가신 엄마생각에 후회막급 딸이 된다.
'엄마, 딱 나 닮은 아들 낳아 그대로 겪고 있으니 엄마 맘이 좀 나아졌을까. 화를 내도 좋으니 보고 싶은 울 엄마, 오늘 밤 꿈에라도 한 번 만납시다!'
나를 쏙 빼닮은 아들이 울 엄마가 내게 준 선물인 듯 흔적 같아 못다 한 딸의 후회가 밀려오는 날이다.
엄마가 좋아하던 수국 한 다발 가지고 엄마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