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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남긴 여름

여름마다 꺼내 입는 엄마표 사랑잠옷

by 가히

어느 해 여름 더위가 시작될 때쯤이었다.


"야들아, 가실가실한 인견잠옷들 맞춰 줄 테니까 어떤 모양 원하는지 말해봐라. 바지랑 원피스 중에 뭘로 할 거냐"


더위를 유난히 탔던 엄마는 시원한 여름 나기 일 번 아이템이 바로 인견 옷이었다. 울 엄마 기준 '진짜인견'을 찾아냈다며 전화기너머 목소리엔 기쁨과 반가움이 가득 전해 졌다.


"아오 나는 시원한 잠옷 있으니까 엄마나 해 입으셔"

"무슨 잠옷을 맞춰서까지 입어"

"엄마, 나는 필요 없어"


나름의 패션기준이 있는 우리 다섯 자매들은 엄마의 호의에 심드렁한 반응부터 철벽거부까지 다양했지만 엄마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한번 입어보면 그런 소리가 쑥 들어갈걸!

진짜 인견이라 얼마나 차르르 한지 나는 외출복으로도 입고 다녀!

더 만들어달라고나 하지 말어~~"


못 말리는 엄마 성화에 우리들은 떨떠름한 마음으로 몇 벌씩의 인견 잠옷을 마지못해 받아 들었다. 하얀 바탕에 하늘색꽃무늬와 주황 꽃무늬의 반소매 상하세트에 체리열매무늬의 민소매 상하세트 잠옷에서는 엄마의 소녀감성이 그대로 느껴졌다.



'못 말리는 우리 엄마'라 생각하며 '세탁 한 번 하고 입어라'는 엄마말은 귓전으로 흘린 채 서랍장에 넣었다. 얼마 안 가 본격적인 더위가 한창일 때쯤 전화한 동생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언니, 엄마가 준 그 잠옷 입어봤어?"

"아니"

"한번 입어봐, 세상에 정말 시원해! 진짜 그 옷 입어보면 다른 옷은 못 입어. 울 엄마는 세성 제일 똑똑 박사야. 젊은 우리도 엄마 총기는 절대 못 따라간다니까!"


누가 그랬다지. 엄마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진짜 옛말 그른 게 하나 없다.


그 후로 엄마표 인견 잠옷은 우리 자매들의 필수템이 되었다. 엄마말대로 가실가실하고 시원해 사위와 손주들까지 할머니표 인견잠옷이 한 여름 만능일상복이 된 것이다.


"엄마, 내 인견 잠옷 한 벌 더 만들어 주면 안 돼요? "


무더위가 사상 최악으로 심하던 지난 주말, 아들의 전화에 가슴이 먹먹해지며 지난 세월이 더 아쉽고 야속해졌다.


무심하게 그저 받기만 했던 엄마의 인견옷은 돌아가신 엄마의 마지막선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때깔 좋은 진짜 인견을 어디서 구입해 어느 솜씨 좋은 어르신께 맡겨 우리들의 제각각 취향을 딱 맞추었는지 아는 딸이 아무도 없었다. 도깨비방망이가 그저 '뚝딱'하고 만든 양 넙죽 받아 입기만 했던 철없던 우리들이었던 것이다.


'아들아 그 옷들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특별유산이니 아끼고 또 아껴 입어라'


아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앉으니 생전의 엄마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푹푹 찌는 이 더위에 시원한 인견 옷 입고 그리 좋아하던 수박화채 맛있게 드시던 모습에 눈물만 쏟아지는 무정한 7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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