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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고 볼일이다

내가 최고가 되는 순간

by 가히


한 몸인 듯 딱 붙어 앉아 서로의 손을 잡고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연애라곤 평생 해본 적 없던 나는 중매로 만난 남편과 결혼해 사는 무덤덤한 여자다.


남편을 처음 만나 손을 잡고 팔짱을 낄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든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결혼 후 40여 년이 지났건만 남편과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는 행동이 여전히 뻘쭘하고 부자연스럽다.


'애교 많고 삭삭하니 연한 배 같은 각시를 싫어할 남자는 세상에 없다'던 친정엄마는 실상 무뚝뚝의 표본 같은 아내였다. 그래서였을까. 다섯 자매인 우리들은 엄마를 빼닮아 애교 빵점에 자기주장 강하고 독특한 개성의 기 쎈 딸들이었다. 집안의 유일한 남자인 아빠는 언제나 다섯 딸들의 의견을 존중했고 힘들거나 어려운 일은 무조건 당신이 도맡아 앞장섰던 딸바보였다. 아들 없는 딸부잣집 아빠에게 큰딸인 나는 언제나 공주였고 평생 주인공이다. 결혼 후 두 아들을 낳은 후에도 아빠에게 1순위는 큰 딸인 나였으니 말이다.


세상의 주인공이라 여기며 자란 내가 결혼 후 왕비가 아닌 무수리 대접에 애교가 생길 리 만무했다. 더구나 '연한 배 같은 아내'는 내 사전엔 상상 안될 어불성설이었다. 그럼에도 울 엄마는 내게 꿈같은 기대를 했으니 처음 맞는 사위가 무척이나 맘에 들었던가보다. 평생을 '큰사위 큰사위' 노래를 부르며 당신 딸이 그에게 사랑받는 아내이길 바라셨으니 말이다.


왕비를 꿈꾸는 여자와 왕대접을 기대하는 남자의 조합은 상상이상 삐걱거리며 어찌어찌 서로의 자리를 지켜왔다. 흐르는 세월에도 여전히 맹숭맹숭한 우리는 금슬 좋은 정답의 부부는 아니다. 그저 다름을 인정하는 차선의 부부로 살고 있다.

어느 날 아들이 물었다.


"아빠, 미래 제 여자친구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면 어떡하실 거예요?"


" 딱 네 엄마 같은 사람만 데려오면 무사통과니까 명심해라. 나는 네 엄마가 반대하면 절대 허락할 수 없다"


'뭐라고라고라고!!

평~생 소 닭 보듯 재미없게 살며 남의 편이라 생각하던 남편에게 내가 인생 최고의 아내라고?'


믿거나 말거나 말이 안 되고 소가 웃을 남편 대답에 놀란 아들과 나의 표정이 압권이던 그날.

혼자 앉아 킥킥대며 중얼거렸다.


'그럼 그렇지! 나 같은 마누라를 어디서 만나겠어, 당근 각시가 최고라는 애정표현을 이렇게 하다니!'

얄미운데 고소하다~~^^

하!! 진짜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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