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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의 삶과 천재적 작가의 부조리사이에서

by 가히

내가 속한 문학회 단톡방에 <작가 채만식의 75주기 추모제> 소식이 올라온 날은 바로 지난 주말이었다.


백릉 채만식은 군산을 대표하는 작가일 뿐 아니라 소설가로서 역사와 문학에 관심 있는 모두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다. 독서모임의 4월 도서로 그의 대표작 [탁류]를 선정해 읽으며 채만식의 생애와 작품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탁류> 속 시대적 배경인 1930년대 식민지 근대 조선의 모순된 현실과 이를 표현한 비판적 시선과 풍자적 문체, 그리고 사회 고발의 작품내용이 작가 채만식을 기억하는 강렬한 인식으로 내게 남았었다. 그의 작품을 읽고 토론하는 동안 작가로서 그의 천재적 재능과 짧은 생애가 무척 안타깝게 느껴졌던 내게 <채만식 추모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글쓰기 활동을 함께하는 지인과 같이 추모제가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그의 묘지는 임피면의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좁디좁은 골목길에 위치해 있었다. 차 한 대가 간신히 들어설 수 있는 길 모퉁이에 자리한 그의 묘비엔 그 흔한 상석하나 없이 긴 세월이 깃든 비석 두 개가 전부였다. 구석지고 후미진 장소의 묘소 주변에 걸린 추모제 현수막이 없었다면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문호의 흔적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추모제에 모인 사람들은 제례복을 갈아입고 차려놓은 제사상 앞에서 이날 행사를 위한 준비 사항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얼마 전 알게 된 문우의 모습에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나자 누군가가 대뜸 제례복을 입으라며 옷을 내밀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주섬주섬 차려입은 제례복 차림의 내 모습이 누워계신 작가님께 누가 되지 않을까 내심 신경이 쓰이며 조심스러워졌다. 추모제는 참석한 모두의 삼배를 시작으로 추모제 위원장님의 축문 낭독이 이어졌고 여러 번의 재배와 헌작 그리고 음복등으로 진행되었다. 추모제는 단출했지만 모두가 진심의 모습이었다.



추모제를 마친 후 함께 한 우리는 기념사진 촬영으로 마무리 한 뒤 묘소를 내려왔다. 오전 추모제에 이어 오후에는 월명공원에서 작가를 기리는 문인과 예인들의 추모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사정으로 참석 못한 나는 오후 추모제 행사에 부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뛰어났던 그의 재능을 기억하며, 작가의 뜻을 기리고 업적을 이어가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날 저녁 추모제 때 찍었던 사진들을 정리하며 100여 년 전 활동 했던 한 작가의 삶을 돌아보았다.


어린 시절 익힌 한학과 군산 영명학교와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으로 이어지는 지식인으로서 그의 삶이 일제 치하와 정치적 혼란기의 분단 현실 앞에서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저항과 투쟁의 자각이 현실의 삶 앞에서 무너지기도 무력하기도 했을 그 시절, 그는 친일행위 중에도 항일의 작품들을 남겼고 이러한 그의 활동은 제대로 평가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채만식의 생가 복원과 관리를 위한 시의 행정이 '친일작가'란 이유로 계속 거부되며 사후 75년이 되는 오늘까지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폐허가 된 생가>


'친일'은 청산이란 말과 함께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예민한 화두이기도 하다. 친일뿐 아니라 독재, 내란등 역사 속 주제들은 우리 모두의 아픈 현실을 드러내며 해결하고 정리해야 할 숙제다. 하지만 친일의 행적이 채만식의 작가적 재능과 그를 기리기 위한 문학적 평가를 부정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는가는 신중히 따져볼 문제이다. 그의 친일 행적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겠지만 동시에 그의 문학이 지닌 사회비판의식과 예술적 완성도 또한 우리가 인정할 가치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를 기억하고 제대로 추모하기 위한 묘지 조성 및 생가 복원 등의 노력은 단순한 기념을 넘어, 그의 삶과 문학을 종합적으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일의 행적에도 불구하고 문학적 가치를 이유로 오랫동안 인정받고 대우받았던 많은 문인들을 떠올릴 때, 우리는 그의 작품과 삶을 비판적이지만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학은 단순히 미적 가치만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시대정신과 작가의 윤리의식을 함께 담는 거울이다. 이런 이유로 그의 삶과 문학을 기리는 일은 배척과 차별을 떠나 작품이 지닌 문학적 유산의 보존이어야 한다. 따라서 그가 속했던 시대와 삶의 이면까지도 함께 조명하는 성숙한 기억이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 근대 문학의 거장’이라는 찬사와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는 비판이 공존하는 채만식의 존재는 우리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안겨준다. 그러나 이러한 양면의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학사적 가치의 관점에서 채만식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 작가의 도덕적 한계와 예술적 성취를 구분해 인식함으로써, 문학과 역사를 보다 성숙하게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을 기르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의 죄인>이란 작품과 함께 자신의 친일 행위에 대해 유일하게 과오와 반성을 남긴 작가 채만식은 스스로 통렬한 반성을 통해 후대의 우리에게 평가와 함께 또 다른 울림을 주고 있다.


"한 번 삶에 묻은 대일 협력의 불결한 진흙은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죄의 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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