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한 달 앞둔 주말저녁, 연습실 문을 열자 처음 보는 아이들로 문 앞까지 꽉 찬 광경에 순간 멈칫하게 되었다. 그들과 첫 연습이 있던 날이었다.
창단한 지 6년이 되어 크고 작은 연주회를 경험한 우리는 연습을 위해 매주 목요일마다 만나는 군산여고 동문합창단 <향파코러스>다. 동문의 한 사람으로 창단 전부터 합창단에 참여하고 있는 내게 합창단의 의미는 특별하다. 노래로 하나 되는 여고 동문들의 자부심이자 삶의 긴장을 잠시 내려놓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소중한 만남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 기획한 제3회 향파코러스 정기연주회는 <동행>을 주제로 군산 산돌학교 발달장애 청소년들과 함께 꽃의 계절 6월을 맞아 공연하게 되었다. 발달장애 청소년들이 모여 만든 예술단 [그랑]은 2015년 창단 후 많은 공연을 하며 ‘그랑’이 의미하는 '어우러져가는 세상'과 그들이 보여주는 순수한 가치를 보여주는 단체이다.
그들과 함께하는 연습이 있던 첫날, 교사가 정해준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낯선 분위기에 긴장되어 보였다. 한쪽으로 자리한 우리 단원들은 늦둥이 거나 손주뻘쯤 되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할머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발달장애 예술단[그랑]에 속한 중학생 나이의 앳된 그들은 어른 앞에 나와 앉은 사춘기아이들처럼 우리의 눈을 피하며 뚱하게 앉아있거나 몸을 움직이며 불편함을 보이기도 했다.
발달장애를 가진 그들과의 대면에 나 또한 긴장이 되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불편한 그들과의 처음 만남에 내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질까 혹시 상처가 되진 않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달리 그들은 올 해초부터 연습한 대로 열심히 노래하며 최선을 다해주었다. 여러 곡의 가사를 틀리지 않고 모두 외워서 부르는 아이들의 노력과 선생님들의 노고가 느껴져 마음이 뭉클해지기까지 했다. 반복되는 연습에 집중이 어려운 아이들이 몇 있었지만 함께 온 교사의 설명에 잘 따르는 모습에 감사한 마음이었다.
짧지 않은 첫 연습을 마치고 간식시간이 되자 그들은 환한 표정의 십대들처럼 우리가 준비한 간식을 맛있게 먹는 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 필요한 사람은 말해 줘, 많이 있으니까"
단무장의 말에 여기저기서 "네!!!" 하며
큰 소리로 대답하거나 손을 번쩍 드는 녀석들의 모습에 나는 안 먹어도 배부른 부모마음이 되었다.
그 뒤로 몇 번의 연습을 반복하며 아이들과 익숙해져 갔다. 두 번째 만난 날, 훨씬 편안해진 그들의 표정에 우리 단원들은 오랜만에 만난 가족인 양 '그동안 잘 있었어'라고 물으며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맞았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하며 동행을 이루어갔다.
공연당일 40여 명의 단원들은 정해진 리허설 시간에 맞추어 무대에 도착했고 꽃단장을 한 서로의 모습에 깔깔대며 수십 년 전 여고시절로 돌아간 듯 신나 했다. 우리 연습이 마무리될 때쯤 [그랑] 단원들이 리허설무대로 들어서자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탄성을 질렀다.
"와 이게 누구야~~!!"
공연에 함께하는 17명의 모습이 하나같이 메이크업과 헤어손질을 한 꽃미남 꽃미녀의 모습이 되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우리의 호들갑에 얌전히 들어오던 아이들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샵에서 선생님이 다 해주셨어요"
"세상에, 그랬어! 완전 연예인들 같아.
진짜 멋지다!!"
우리들의 폭풍칭찬에 원희와 경석이는 눈을 피하며 배시시 웃음 지었고 어렵게 말문을 연 준섭이가 또박또박 말을 건넸다.
"저는 이번 무대에 모두 나와요. 난타랑 노래랑 댄스랑 다요"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하는 준섭이 표정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 보였다. 주변에 선 우리가 "이야 대단하다"며 엄지 척을 하자 다시 수줍은 소년의 얼굴이 되는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발달의 문제는 각자가 갖는 신체의 일부일뿐 그 해결은 어쩌면 그들에게 주는 작은 기회가 아닐까'
공연이 무르익으며 [그랑]의 난타순서가 이어졌고 원준이의 <반딧불> 노래는 객석의 모두를 눈물짓게 하며 감동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남녀팀이 각자 준비한 댄스공연은 사람들의 환호와 함께 공연의 열기를 끌어올렸다. 자신의 말대로 댄스팀에 선 준섭이는 맨 앞 줄 센터에서 음악에 맞춰 보이그룹의 리더처럼 멋진 댄스를 보여주었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그들은 신나는 음악에 자신들의 흥과 열정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장애란 세상의 편견에 그들은 자신감과 자유로운 몸짓으로 울림이 되며 모두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다. 뒤이은 우리 합창단의 '댄싱퀸'무대로 객석이 들썩이며 공연은 박수의 함성으로 달아올랐다.
마지막 순서인 [향파코러스]와 [그랑]의 협연무대가 계속되었다. 이번 공연의 주제인 '동행'을 표현하는 <흰 수염고래>와 <모두가 꽃이야> 두곡이 수어와 합창으로 전해졌다.
관객들의 앙코르가 계속되자 내 앞에선 준이가 몸을 뒤척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습 때도 집중이 어려워 보였던 아이였다. 준이의 손을 잡고 노래하던 후배는 웃는 미소로 그를 달래며 공연에 집중하게 했다. 애쓰는 후배와 준이를 뒤에서 번갈아보며 피날레무대를 마친 내가 대기실로 돌아온 후배에게 "힘들었지"라고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선배님, 동행이란 손잡고 지켜주며 기다리는 거란 사실을 알게 된 공연이었어요"
그래. 동행이란 어쩌면 비 장애인인 우리들이 손 내밀며 기다려주는 친절과 그저 지켜주는 작은 배려가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늘의 꽃은 해다.
땅의 꽃은 사람이다.
사람의 꽃은 사랑이다.
공연동안 화면에 흐르던 메시지가 동행의 또 다른 의미가 되어 내 마음에 흐르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