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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세기소년 Aug 04. 2020

막장 드라마, 브랜드 ‘구찌(gucci)’ 이야기

배신, 트렌드, 명품



구찌갱, 구찌갱, 구찌갱, 구찌갱~


릴 펌프의 구찌갱, 다들 들어봤지? 바야흐로 3년 전,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조금 놀랐어.


진짜 노래 제목이 구찌-갱이라고?




릴 펌프의 구찌갱 MV, 구글이미지

https://www.youtube.com/watch?v=4LfJnj66HVQ&has_verified=1  

-> Lil Pump - Gucci Gang MV (구찌갱 뮤비 유튜브 링크.)


명실상부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구찌. 2015년 이후 밀레니엄 세대로부터 핫 한 명품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프라다 펜디와 같은 급으로 평가받지. 2019년 기준으로 구찌는 명품업계 매출 2위를 달리고 있는 중이야. (1위는 루이뷔통)  


오늘 주제는 하이 엔드(High-end) 브랜드, 명품 끝판왕 구찌의 기막힌 가족사야.


사실, 이미 아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유튜브나 블로그에도 구찌의 재미있는 역사에 대해 다룬 내용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아껴두고 언젠가 꼭 쓰고 싶은 에피소드였어. 자, 그러면 재미있는 막장 드라마, 구찌(Gucci) 이야기, 시작할게!



Gucci의 탄생


구찌 대표 : "라떼는 말이야, 호텔 벨보이부터 시작했단다."



 1897, 이탈리아의 젊은 소년 구찌오는 돈을 벌기 위해 런던에 갔어. 런던 시내의 최고급 사보이 호텔에서 벨보이로 일을 했지. 구찌오는 호텔을 방문하는 상류층들의 패션을 보며 많은 영감을 꼈어. 이후 이탈리아에 귀국해 가죽 공방을 배우지. 그리고 1921, 피렌체에서 작은 가방과 가죽용품을 파는  구찌 매장을 오픈해.


구찌오 구찌의 첫 구찌 매장 (피렌체)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승승장구했지. 하지만 인생이 쭉 잘 풀리진 않지? 맞아. 고비가 찾아와. 2차 세계 대전이었어. 알다시피 이탈리아는 전범국이자 패전국이었고 모든 가죽 공급이 끊겨버렸지. 하지만 구찌오의 아들이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대체재를 완벽히 구하지. 그것은 다름 아닌 일본산 대나무였어. 그리하여 오늘날 구찌를 상징하는 대나무 백이 생겨난 거지. 이뿐만 아니라 벨트, 가방, 손잡이 등에도 쓰여 아주 뽕을 뽑아버렸다고 해.


50-60년대 영화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의 촬영 현장에서 폴 뉴먼(오른쪽)과 함께 출연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뱀부백을 들고 있다. 사진 출처, 중앙일보


서구권에서는 대나무 자체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희귀한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지. 덕분에 유럽의 부자들 사이에서는 대나무 아이템들은 꼭 갖고 있어야 할 Must have it이 돼. 다른 브랜드들을 제치고 또 한 번 도약한 거지.


그리고 1953년, 구찌의 창업주 구찌오 구찌가 사망하고 그의 세 아들 중 첫째인 알도 구찌가 경영권을 잡아. 알도 구찌는 나름 아버지 구찌오 구찌를 기리며 GG라는 오늘날에도 쓰이는 구찌의 로고도 만들었어. 성실히 구찌를 경영하지. 다행히 이때까지만 해도 구찌는 승승장구했어. 구찌의 매장은 런던, 파리, 베버리 힐스, 나아가 일본과 홍콩에도 진출하지. 그리고 세계적인 명품의 반열에 오르지.


그리고 1980년, 구찌의 전성기쯤 해서 구찌와 구찌 가문의 비극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골로 간 막장의 구찌 가문

"자전거를 타고 웃느니, 롤스로이스를 타고 우는 게 낫다.",

 "모피코트를 입고 가야 하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파트리치가 레지아니



구찌 창업자 구찌오 구찌의 2세에는 2명의 아들이 있었어. 바로 첫째 알도 구찌, 그리고 둘째 로돌포 구찌. 두 아들 역시 각자 한 명씩 아들이 있었지. 알도 구찌의 아들은 파올로, 로돌포의 아들은 마우리치오인데 그림으로 설명하는 게 훨씬 낫겠다. 이름마다 구찌 구찌 거리니 내가 더 머리가 아프네 잠시만.  


구찌의 경영권에 관련된 구찌 가문 가족 관계도


색칠되어 있는 부분은 구찌의 CEO를 역임했던 사람들이야. 사진만 봐도 범상치 않지? 제 2대 CEO 였던 알도 구찌와 그의 아들 파울로 구찌는 사이가 무척이나 안 좋았어. 반면, 로돌프 구찌는 일찍 죽었기 때문에 50%에 달하는 구찌의 지분을 아들 마우리치오에게 남겼지. 마우리치오는 큰 아빠인 알도의 경영 방식이 마음에 안 들었어. 욕심도 낫겠지. 근데 때마침 알도의 친아들인 파울로 구찌가 그에게 손을 내밀어. 마우리치오는 “그라씨아”를 외치며 파울로와 손잡아 알도를 감옥에 보내지. 마우리치오는 그렇다 쳐도 소름 돋는 건 파울로였어. 자기 아버지를 탈세혐의로 신고해 감옥에 보내버린거지.


가장 큰 골칫덩이를 숙청?한 마우리치오는 경영권을 잡게 돼. 구찌의 지분을 제일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CEO가 되었지. 그리고 바로 행한 일이 놀랍게도 감옥에 있는 큰 아빠 알도를 만나는 일이었어. 마우리치오는 알도를 내치는데 도움을 준 알도의 친아들 파올로 때문에 골머리를 섞이고 있었거든.


그럴 만도 하지. 아버지를 몰아내고도 자기가 구찌의 경영권을 갖지 못했다고 생각한 파울로는 막 나가기 시작해. 자기 이름을 딴 '파울로 구찌'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물건을 값싸게 팔기 시작한 거지. 본사의 허락도 없이 말이야. 덕분에 구찌의 이미지는 완전한 싸구려가 돼버려. "나도 구찌다" 뭐 이런 맥락이었겠지?


감옥에 있는 큰 아빠 알도를 찾아간 마우리치오는 이렇게 말했대.


"큰 아빠,  당신 아들 파울로가 다 꾸민 일이에요. 제가 파올로를 책임 지고 몰아낼게요. 저에게 나머지 주식을 팔기만 하세요."

이미 분노에 눈이 돌아간 알도는 자기 아들인 파울로를 구찌에서 몰아내는 조건을 걸고 자신의 주식을 모두 넘겼대. 그렇게 마우리치오는 모든 걸 갖게 되었지.


당시 구찌는 최고 전성기인 1980년대를 거치는 중이었어. 회장이  마우리치오에게는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라는 아내가 있었어. 원래는 평범한 세탁소집 딸이었다고 . 그리고 마우리치오가 구찌의 회장 자리에 오르면서 그녀는 점점 사치스럽고 욕심 많은 여사님으로 변해갔어. 사치뿐만 아니라 레지아니는 남편에 대한 집착과 의부증이 극에 달했다고 해.


결국 1985 둘은 별거를 시작했어. 그리고 1991, 둘은 이혼을 했지. 이듬해인 1992, 레지아니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뇌종양까지 걸리게 되었어. 그때부터였어. 레지아니는 마우리치오에 대한 광기 어리고 한이 서린 증오와 분노를 쏟아내.


마우리치오와 그의 아내 레지아니. 사진 출처, 레지아니.


 1995년 3월 27일, 밀라노, 아침이었어. 차에서 내려 출근하는 마우리치오의 머리와 몸통에 4발의 총알이 박혀. 마우리치오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어.


사건의 전말은 레지아니가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해 마우리치오를 살해한 거였지. 이로써 구찌 가문은 막을 내려. 레지아니는 결국 29년 형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지. 경찰에 체포되는 순간에도 그녀는 이런 말을 했대.


"모피코트를 입고 가야 하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녀가 남긴말 중 이런 말도 있대. 믿거나 말거나,


"자전거를 타고 웃느니, 롤스로이스를 타고 우는 게 낫다."



아, 그리고 이 스토리를 담은 영화 '구찌'가 개봉한다는 소식이 있어. 궁금한 사람들은 꼭 보도록 해. 참고로 ‘레지아니’ 역은 레이디 가가가 맡았대.


좌측, 레지아니 역을 맡은 레이디 가가, 우측 레지아니.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세월 앞에 장사 없고, 돈 앞에 핏줄 없다는 생각이 드네. 글을 마무리하면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멕베스]의 로 멋좀 내볼게. 왕권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멕베스 앞에 마녀들이 나타나 그를 유혹하며 이런 말을 하지.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


이상! 구찌 가문 이야기였어. 우리들에게 아름답거나 소중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글 읽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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