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 영국기행 1] 망가졌던, 새롭게 재생 중인 도시로 들어가며
'사회문화적 맥락'까지 담는 도시 여행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스쳐 지나가는 여행도 매력적이지만, 충분히 깊게 머무는 여행은 더 특별합니다. 특히 한 도시와 지역사회가 가진 사회적 맥락과 역사, 문화적 배경을 현장감 있게 느끼며, 주민들과의 만남 등까지 허락된다면 말이죠.
-제가 그동안 일하고 공부해온 '사회혁신'(사회를 이롭게 바꾸기 위한 새롭고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실천, 예를들어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도시재생, 마을공동체 등의 사업과 실천으로 나타나곤 합니다)을 키워드로, 영국 사회의 역동과 보존, 새로운 혁신 사례 등을 우리의 눈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려 합니다.
-영국 코벤트리에 머물며 만나고 사색하고 공부하고 차분히 거닐었던 경험을 나눕니다. 코벤트리대학교(Coventry University)와 그 속에서 함께하는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 사람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여정에서 만난 도시 공간, 명소, 인물, NGO, 소셜 비즈니스 등을 즐거운 사연과 함께 전하겠습니다.
[이 연재를 엮고 보완하여 단행본으로 출판하였습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61761
전통과 모더니즘, 어색한 조화가 매력인 도시
폐허처럼 스러져버린 대성당과 바로 옆에 붙어있는 신생대학의 모던한 혈기가 미묘한 조화를 이뤘다. 순간 포착한 도시의 첫인상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이 어색한 매칭은 기실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여러모로 코벤트리는 어울리지 않을법한 요소들이 얼기설기 얽혀서 형성되어왔고 변화해가고 있는 곳이다.
영국 웨스트미들랜즈 주에 위치한 인구 35만의 중규모 도시 코벤트리는 드라마틱한 역사를 지닌 도시다. 번성과 쇠퇴, 재기의 굴곡들이 커다란 파도처럼 요동치는 곳이다. 특히 코벤트리의 현대사는 영국 자본주의의 궤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리본 제작과 시계의 도시, 자전거와 자동차 생산(재규어의 고향) 등 제조업의 중심지, 2차 세계대전 폭격의 폐허와 재건, 제조업의 급격한 쇠퇴 이후 교육과 문화를 필두로 내세운 도시재생 등.
사실 코벤트리는 과거의 명성(중세시대 잉글랜드의 경제적, 종교적 중심 역할을 한 곳, 현대에는 ‘재규어’의 도시로 많은 산업 노동자들을 끌어모은 곳 등)에도 불구하고 대외적으로 크게 알려진 곳은 아니다. 특히 해외 여행자들에겐 더더욱 생소하다. 론니플래닛 등 유명한 여행서에는 하나의 카테고리조차 소개되지 않고 몇몇 지엽적인 정보들만 담겨 있다. 한때는 ‘유령 도시’로 불리기도 했단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으로 인한 폐허의 흔적과 이어진 제조업의 쇠퇴가 만들어낸 그림자일 것이다.
폐허를 중심지에 간직한 채
도시의 가장 두드러진 공간부터 여정을 시작한다. 폐허가 된 상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코벤트리 대성당(Coventry Cathedral)은 도시의 굴곡을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는 장소다. 중세에 코벤트리가 얼마나 번성했는지를 짐작케 하는 웅장한 규모다. 그러나 첨탑과 뼈대만 남은 채 바스러졌다. 맹렬한 폭격의 공포가 그대로 전해지는 공간이다. 도시의 한 복판, 그것도 신성하고 기념비적이고 역사 그 자체인 곳이 처참한 돌가루가 되어 먼지 속으로 흩어지는 광경을 주민들은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았을까.
군수품 조달용 등 산업시설이 많다는 이유로, 코벤트리는 전쟁 기간 동안 41번에 걸쳐 공습을 당했다. 1200여 명의 사상자와 약 1/3의 주거지, 산업시설들이 망가지는 피해를 입었다. 가장 비극적이었던 1940년 11월 14일, 독일군의 맹폭에 최소 554명이 목숨을 잃었고 1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으며 이 거대한 성당마저 지금의 발가벗은 모습으로 무너져 내렸다.
역사는 없어질 수 없는 역사다. 무너지고 스러진 공간에도 뜻과 미학은 있다. 게다가 여기는 한 도시에서 처절히 경험한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재현해주는 곳, 그래서 다시 일어서기 위한 발걸음도, 평화와 화해의 움직임도 새롭게 움틀 수 있는 장소다. 천장도 창문도 없는, 비가 오면 그대로 맞고 서있어야 할 뼈대뿐인 초라한 성당은 이러한 역사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울림을 선사한다. 야외인듯한 실내인듯한 망가져버린 성당 내부를 우두커니 바라보면, 과거의 영예와 그 덧없음을 동시에 체감케 한다. 무너진 제대를 보며 천천히 거닐면 ’ 화해’를 상징하는 기념물과 조각, 문구들이 곳곳에서 차례로 보인다.
한 여성과 남성이 무릎을 꿇은 채 서로 부둥켜 앉고 있다. 화해(Reconciliation)라는 이름의 동상은 애절한 모습과 자태와 더불어 그를 둘러싼 파괴의 잔해를 통해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이 동상은 1995년 2차 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화해의 징표로서 세워졌다. “파괴적인 힘에 맞서 인간 존엄과 사랑의 승리”, 그리고 “민족들을 평화와 존중으로 한데 모으는” 의미를 담았다고 아래 문구에 새겨져 있다.
슬픔은 슬퍼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다. 아픔과 잔혹 역시 처절한 체득과 진정 어린 반성을 통해 평화로 승화될 수 있다. 대대손손 물려줘도 아깝지 않을 지역사회의 보물이자 유산, 거대한 성소이자 역사적 문화재마저도 가차 없이 무너뜨려버리는 인간 잔인의 현장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코벤트리는 이제 평화와 화해의 도시(city of peace and reconciliation)다. 코벤트리는 스탈린그라드와 최초의 쌍둥이 도시(Twin cities) 관계를 맺은 바 있는데, 이어서 공습의 당사자국인 독일의 드레스덴(Drespen)과도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담은 쌍둥이 결연을 맺었다.
고풍스러운 중세 도심과 산업 콘크리트와 현대적 재생의 미묘한 조화
물론 성당 주변에 ‘잔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너진 현장은 그대로 두면서 보존하고 있지만 옆에는 새로운, 현대적 양식의 성당이 파괴의 과거를 넘어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했다. 중세풍의 이끼 쌓인 옛 모습과 어우러져 새로이 들어선 현대적 감각과 평화의 메시지를 듬뿍 담은 성당의 조화는 역사를 가로질러 미래를 향해 지역사회의 질긴 끈을 이어주고 있다.
첫인상부터 ‘뒤섞인’ 코벤트리의 도시 풍경을 한눈에 살펴보기 위해 가장 높은 곳, 대성당의 첨탑으로 오른다(Cathedral Tower Climb). 폭격에 몸체는 날아가버렸지만, 높다랗게 솟은 이곳은 다행히 그대로 남아있다. 유럽의 많은 도시가 여전히 그러하듯 정해진 시간에 경건한 종소리를 지역사회로 울려 퍼지게 하는 곳, 그대로 보존하는 곳이라 승강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곳, 181개 계단을 하나 둘 밟으며, 한 사람 들어가면 꽉 차는 좁은 통로의 계단을 따라 빙글빙글 하늘로 올랐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타워에 다다랐다. 약 90미터 높이에서 바라보는 코벤트리 도시 전경.
의외의 랜드마크 중 하나는 도심을 빙 둘러싼 순환도로(링 로드, Ring Road)다.
“중세의 거리들이 모던한 세계와 만나는 곳, 거대하면서 흉측한 이 1970년대 기반시설은 무려 27개의 시와 영화 등 예술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기이한 콘크리트의 미를 찬양하며.”
도심 한복판의 대성당 주위로 이어지는 중세풍 거리들이 산업화의 상징인 콘크리트 도로에 둘러싸인 채 서로 만나고 있다. 잘 계획되고 보존된 풍경을 예상했다면 실망이다. 지극히 언밸런스하다. 역사의 흔적이 쌓인 자리에 폭격의 단절과 단조로운 산업 건축물이 뒤섞였다. 2차 대전 후 망가진 도시를 재건하며 나타난 풍경일 것이다. 단조롭고 투박한 콘크리트에도 미는 있을까. “링 로드(Ring Road)는 제게 거대한 창조물을 상기시킨다… 도시의 거대한 실체이며 오래된 도시의 성벽과 다르지 않다”. 지역 예술가들과 프로젝트(Disappear here)를 진행했던 시인 리안(Leanne Bridgewater)의 말이다.
거대한 대로와 고가, 투박한 라인, 회색조의 단조로운 건축물은 사실 현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별로 특별할 것도 없고 이렇다 하게 평할 게 없다. 완전한 콘크리트 과잉 도시 서울에 산다면 더더욱, 너무도 익숙한 광경일 뿐이다. 영국과 코벤트리에서는 전후, 19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이러한 재건 프로젝트의 붐이 있었고, 이는 고풍스러운 영국식 도심에 모더니즘을 심어 넣는, 브루탈리스트(Brutalist, 거대한 콘크리트나 철제를 사용하는 특히 1950~60년대 건축양식)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링 로드는 두 개의 시대에 다리를 걸쳐 놓으며 관통하는 상징이다. 링 로드 자체는 서울의 하고 많은 ‘토목과 산업화의 상징’ 거대 고가도로나 순환도로와 다를 게 하나 없다. 결국은 공간에 깃든 사연과 의미부여, 예술적 재해석과 표출이 도시를 재구성한다.
링 로드가 휘감은 코벤트리를 다시 내려다본다.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서 바라본, 온통이 전통이고 그 자체가 명작인 도시의 풍경과는 분명 다르다. 잉글랜드의 ‘바스’(Bath)와 같이 잘 보존되고 수려한 도시도 아니다. 아예 작정하고 계획해 현대에 들어와 새로이 일군 ‘밀턴 케인즈’(Milton Keynes)와 같은 뉴타운도 아니다. 코벤트리를 내려다보는 재미는 온갖 평지풍파를 겪으며 짓고 무너지고 다시 세웠다가 때론 흉터를 낸, 역사의 질곡을 거치며 세월의 더께를 더한 거친 풍모에서 나온다. 각종 산업들의 융성과 변모를 그대로 겪었던 현대의 코벤트리는 노동자와 이민자의 도시이기도 하다.
전후 부흥의 기운과 제조업의 전성기가 저물면서 한때 ‘유령 도시’(Ghost Town)로까지 불리며 한탄하기도 했던 곳. 그러나 이제는 영국의 ‘문화 도시(UK city of culture in 2021)’로 선정(2017년 12월 발표)되어, 주민들은 설렘을 안고 다시 문화적 사회적 재생을 꿈꾸고 있다. 폐허가 된 도심을 가슴에 품고 흉측한 콘크리트 건축물에서도, 어울리지 않을 법한 사물들의 조화 속에서도 예술의 감각을 발견한 코벤트리안들이 도시를 지켜온 결과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