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 영국기행 2] 코벤트리대학 사회적기업으로 가는 길
[전편에 이어 계속]
영국 코벤트리와의 인연은 코벤트리대학(Coventry University)으로부터 비롯된다. 나는 서울 강북구에 있는 한신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추진하고 있는 캠퍼스타운 사업을 대학-지역사회 인사들과 함께 기획하고 있었다. 캠퍼스타운은 서울시 정책으로 촉발된 프로젝트로, 대학-지역사회-공공기관의 협력을 통해 청년문제 해결, 창업 육성, 지역재생, 앵커시설 구축 등을 추진하는 목적을 지녔다.
지난 2017년 11월 연세대에서 개최된 서울시 캠퍼스타운 국제컨퍼런스에 초빙된 코벤트리대학 사회적기업의 경영자 키이스 제프리(Keith Jeffry)는 대학 내 사회적기업을 통한 지역혁신 사례를 소개했다. 필자와 한신대-강북구 또한 사회적기업, 사회적경제, 도시재생 등과의 연계를 통한 캠퍼스타운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터라 그의 발제가 귀에 쏙 들어왔다.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 오창호 교수의 도움을 받아 방문 요청을 했고,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하여 2018년 2월, 2주 간의 코벤트리 생활이 시작되었다.
대학에서 연계해준 기숙사 싸이클웍스(cycle works, 과거 자전거 생산지로 유명했던 코벤트리의 흔적이 담긴 이름)에서 코벤트리대학 사회적기업(Coventry Unversity Social Enterprise, 이하 CUSE)이 소재한 엔터프라이즈 허브(Enterprise hub)까지는 도보로 10분. 숙소를 나와 마주하는 건 고가로 펼쳐진 링 로드다. 커다란 콘크리트 다리 아래를 발 빠르게 지나가면 다시 역시 브루탈리스트(Brutalist, 1950~60년대 거대한 콘크리트, 철제 등을 활용한 건축양식)한 ‘무식해’ 보일 정도로 단조로운 모던 건축물 스포츠센터를 마주하게 된다. 그 옆 건너편에도 역시 꾸밈없이 적나라하게 ‘브루탈’한 양식의 브리타니아 호텔이 보인다.
“나는 링 로드 아래에 서있는 걸, 자동차들의 소리를 듣는 걸 즐긴다. 이것은 해변가에서 바닷소리를 듣고 있는 코벤트리 버전이다.”(Leanne Bridgewater)
이 시인의 미학은 당최 무엇인가. 사실 나는 이 거리를 무미건조하게 지나갈 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코벤트리가 문화 도시로 선정된 데에는 이 역설적이고 엇갈리는 얼굴을 지닌 건축물이 하나의 상징물로 작용했단다. 삶이 남긴 흔적의 형성은 우연과 전복적 경험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어 대학 건물들이 밀집한 캠퍼스 한복판으로 들어선다. 유서 깊은 캠브리지나 옥스포드 등의 고풍스러운 대학 분위기는 전혀 아니다. 코벤트리대학은 1990년대 초반 폴리텍대학에서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영국의 모던 대학(Modern University) 중 하나다. 대다수는 현대식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다. 계획적으로 캠퍼스 형태를 체계 있게 조성했다기보다는 대학의 확장에 따라 하나 둘 규모를 늘린 모습이다. 여전히 신축 중인 기숙사 등도 눈에 띈다. 캠퍼스를 걸어 다니는 2주 내내 공사 소리가 들려왔다.
코벤트리대학은 코벤트리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있다. 코벤트리 대성당이 과거로부터 이어온 유물이라면, 바로 옆에 위치한 대학은 오늘의 코벤트리를 잘 보여주는 얼굴이다.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학생들의 얼굴이 형형색색이다. 영국 학생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국제 학생들이 매일같이 도심지를 오가며 공부하고 있다. 시 외곽에는 워릭대학(Warwick University)도 자리하고 있어 도시에 젊고 다문화적인 분위기를 한껏 고취한다.
링 로드 주변의 아파트식 신축 건물들은 상당수가 이들을 수용하는 기숙사들이다. 특히 코벤트리 도심지는 ‘대학도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학생들과 그와 연관된 시설, 상점들이 한껏 밀집해 있다. 대학이 도심을 꽉 채웠다. 제조업이 빠진 자리를 메우고 있는 도시의 새로운 ‘(교육)서비스 산업’으로도 기능하고 있는 풍경이다. 이러한 다양한 젊은 풍모들이 만든 코벤트리는 전 세계의 140개의 언어, 방언들이 뒤섞이는 그야말로 다문화의 용광로로 이글거리고 있다.
대학이 만든, 대학에 자리한 사회적기업
코벤트리대학 사회적기업(이하 CUSE)은 말 그대로 코벤트리대학에서 만들고 파생된 자회사 격인 회사다. 그렇다면 사회적기업이란 무엇인가? CUSE 소개자료 첫 줄에 간단명료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하다.
“사회적기업(Social Enterprise)은 사회적 문제, 도전들(social challenges)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업을 하는 회사다. 이 기업은 지역공동체들(communities), 사람들의 삶의 기회들(people’s life chances), 환경(the environment) 등을 개선하고 증진시키는 목적으로 일한다. 이를 위해 물건과 서비스들을 개발, 제조, 판매하며 이윤을 창출한다. 이는 다시 사회적 목적을 위해 재투자된다.”
캠퍼스에 완연한 젊은 기운 한복판에 위치한 엔터프라이즈 허브가 그들의 사무 공간이다. 사실 사무 공간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 분위기다. 누구나 와서 일하고 상담하고 회의하고 쉬었다 갈 거점이자 허브 공간이다. 이번 여정을 허락하고 맞이해준 키이스는 CUSE의 경영책임자(‘Manager’이자 ‘Managing Director’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임에도 자기 방도 없다. 아담한 회의실 탁자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며 나를 맞았다. 여기서 일하는 10여 명의 스텝, 코디네이터 모두 ‘개별 업무석’이 없다. 그저 곳곳에 놓인 책상, 테이블 등을 잡고 유연하게 일을 하는 모습이었다. 공간 조성, 배치도 역시 이들 스텝들 등이 의견과 참여를 모아 함께 진행했다고 한다. 키이스의 지론이 ‘스텝들을 최대한 관여’시켜야 자발적인 업무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의견과 손길이 닿은 공간 조성과 ‘그냥 주어진’ 공간은 분명 동기부여의 차이가 크다.
“(사회적)기업가들을 키우는 공간인데 자리 하나씩 차지하고 딱딱하게 있을 필요는 없죠. 여기는 누구든 찾아와서 자유롭게 소통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는 공간으로 마련되었어요.”
사회적기업가 육성, 교육, 창업지원, 허브센터, 생태계 구축 등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한 일들이고 표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경우 (지방)정부나 민간위탁 등을 통해 이러한 역할들이 시행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대학에서, 그것도 독립적인 회사인 사회적기업을 통해 중간지원, 육성, 생태계 조성 등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영국에서도 대학에서 이렇게 공동체이익회사(Community Interest Company, CIC, 이익을 지역사회에 재투자하는 등 지역공동체에 편익을 주는 비영리적 성격의 회사) 형태의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경우는 최초 사례라고 한다. 주요 사업은 대학 구성원(학생, 교직원 등)과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사회적기업 등의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발굴하고 인큐베이팅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즉 사회적 임팩트(Social Impact)를 줄 수 있는 사회적기업과 도전적인 비즈니스를 발굴하고 육성하고, 대학-지역사회의 협력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주요한 CUSE의 미션이다. 그리하여 ‘사회적기업들을 인큐베이팅하는 사회적기업’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해나가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코벤트리대학이 지역사회 앵커기관(anchor institution)으로서의 역할과 잠재력을 극대화하게끔 일하며, 지역사회에 편익을 제공하고 진정한 사회적 가치를 성취해내는 방법들을 찾고 실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사회투자 관련 펀딩, 잉글랜드의 고등교육 관련 펀딩, (지방)정부 관련 부서와의 계약, 자체 비즈니스 등을 통해 이러한 역할과 서비스를 지역사회에 제공하는 것이 CUSE가 하는 일이다. 그들은 대학으로부터 파생되었지만, 독립된 회사고 예산도 자체 조달한다. 심지어 이 허브공간에 대한 임대료도 대학 측에 지불하면서 운영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영국에서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 아무리 ‘사회적’이라고 할지라도. 키이스는 약간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기도 하며 “연간 약 4500파운드(약 700만원)를 임대료 등으로 학교에 내고 있다”고 말했다.
CUSE에서 발간한 2018/19년도 ‘사회적 임팩트 보고서’(Social Impact Report)에 따르면, 그들은 2014년 이래로 65개의 사회적기업들을 육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들은 아동복지, 자원봉사 등 사회서비스 분야부터 청소, 음식, 레저 등 다양한 비즈니스 분야에 걸쳐 있다. 특히 2018-19년도에는 15개 사회적기업 설립을 지원해 관련 실천을 하고 있는 영국 대학 중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더불어 2018/19년도 기준 6,667명의 학생, 교직원, 지역주민들이 관련 교육, 프로그램, 커뮤니티 행사에 참여하고 인식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했다. 이러한 성과를 기반으로 코벤트리가 사회적기업 도시(Social Enterprise City) 지위를 획득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잉글랜드 고등교육기금위원회(HEFCE, Higher Education Funding Council for England)에서 부여하는 2017 올해의 사회적기업 대학, 사회적기업 챔피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결국 일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 적은 소개문엔 그들의 열정(passion)과 미션(mission)이 담겨있다. CUSE 스텝들은 이런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는 이들을 따라다니며(shadowing) 코벤트리를 누비고 체험했다.
키이스 제프리 (Keith Jeffrey, Managing Director):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통하여 세상을 바꾸는 일에 열정을 품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일이 되게 하는’(Getting things done) 사람입니다.
가브리엘라 마토스코바 (Gabriela Matouskova, Business Development Manager): ‘사회적 가치’에 관심을 두고, 코벤트리가 사회적기업 도시를 만들어가는데, 그리고 학생과 교직원과 지역공동체가 그들의 필요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캐롤 도넬리 (Carole Donnelly, Head of Entrepreneur Development): 사회적기업과 역사적이고 오래된 건축물을 지키는 활동, 그리고 지역공동체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고 고취하는 활동에 열정을 품고 있습니다.
수메야 후세인 (Summayyah Hussain, Enterprise Hub Manager): 사람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는데 관심이 있고요. 사람들과 사회적기업, 국제적 관계와 글로벌 기업가 정신을 고무하고 동기 부여하는데도 열정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마 은지 (Mariama Njie, Social Enterprise Officer): 아프리카에 관심이 많고요. 사회적기업이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모든 잠재력을 깨닫고 실현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도구가 되길 바라고, 환경이 좋지 않은 친구들도 같은 기회를 얻을 수 있게끔 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도나 프리스 (Donna Preece, Enterprise Programme Manager): 창의적인 기업들에 관심이 많아요. 미래세대들이 좋은 기업가정신을 확산시키는 데도 열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이 연재를 엮고 보완하여 단행본으로 출판하였습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61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