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 영국기행 3] 긴축, 시장화 그리고 사회적 대학 프로젝트
[전편에 이어 계속]
대학 이름을 앞에 붙인 사회적기업을 접하면서 떠나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왜 대학인가? 사실 대학 전체로 보면 코벤트리대학 사회적기업(CUSE)은 굉장히 작은 부분일 뿐이었다. 오늘날 영국의 대학들은 과연 국공립대학(대부분의 영국 대학은 국공립이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은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에서는 예산을 줄이고 학생들이 부담하는 등록금 상한선을 계속해서 올리면서 ‘스스로 알아서 경쟁해서 살아남아라’는 기조를 이어가고 있었다. 따라서 학생 기숙사를 포함해 임대사업을 하는 부동산 관리회사 등(국제학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영국에서는 이 또한 굉장히 큰 시장이다) 큰 규모의 대학 자회사들이 여럿 있었다. 코벤트리대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교육서비스에 대한 비즈니스적 경영을 공격적으로 도입하여 팽창하고 있는 대학 중 하나이기도 했다.
CUSE 경영자 키이스는 “우리는 아직 작다”고 했다. 또한 “대학이라는 곳은 요식 체계(bureaucracy)가 크고, 따라서 항상 설득하고 줄다리기를 해야 할 긴장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거대한 대학 체계 속에서도 작은 부분이고, 기업의 비즈니스 수익의 관점에서도 적다. 대학을 울타리로 두고 있지만 잘 안착되고 기득화 된(establishment) 구성체는 아니다. 여전히 그들은 신생조직이고 도전하는 실체다. 이런 측면에서 그들은 대학 속으로 뛰어 들어간 사회혁신가들이다. 대학을 그저 대학만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혁신적인 실천과 비즈니스를 통해 지속가능한 좋은 영향을 주게끔, 관성의 울타리를 타파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드는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앵커 시설(Anchor Institution)로 자리매김하게끔 하도록 노력 중인 실천가들이다. 이 과제는 현재 진행형이고 여전히 풀어가야 할 숙제가 산적해있는 커다란 도전이다.
“사실 정부의 긴축(Austerity)이 사회혁신과 사회적기업 등을 추동하고(driving) 있는 요인입니다.”
키이스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금융위기 이후 진행된, 근본적으로는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상징’인 마가릿 대처 이후 이어진 긴축 정책이 결국 기존의 공공서비스 등의 예산 삭감으로 이어졌고 각종 공공영역의 민영화와 시장으로 내몰렸다. 즉 “비즈니스를 해서 살아남든가, 아니면 문을 닫든가”라는 것이다. 실제로 키이스 역시 내몰렸던 사람이다. 잉글랜드 이스트미들랜즈의 도시 더비(Derby)에서 공간 기반 문화예술, 비즈니스 활동으로 지역재생 사업을 하는 사회적기업 QUAD가 이전 직장이었는데, 공공예산 삭감으로 인해 그만두고 나와야 했다. 이는 대학에도 그대로 전가되었다. 많은 대륙 유럽 국가들이 그러하듯, 영국도 1990년대 후반까지 국가지원 무상 등록금을 유지했다. 그러나 현재는 연간 약 9000파운드(학부, 내국인 기준, 약 1340만원)까지 치솟았다.
“(돈벌이가 되는) 해외 학생 유치에 혈안이 된 모습, (앞뒤 안 가리는) 기업들과의 파트너 관계 형성에 대한 강한 열망, 거대한 부동산 관련 투자와 이득의 축적 등”
코벤트리대학에서 있었던, 강사와의 계약이 대학 직접 고용이 아닌 상업적인 자회사로 넘어가면서 논란을 일으켰던 사태를 비판한 <가디언> 칼럼니스트 아디탸(Aditya Chakrabortty)의 일갈이다. 그는 최근 영국사회에 논란이 된 파리 목숨과도 같은 ‘0시간 고용계약’이 만연해지고 있는 세태를 언급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블루칼라 서비스 노동자뿐 아니라,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마저 불안정 고용 형태에 시달리고 있는, 대학이 이를 오히려 부추기고 있는 현실에 개탄했다. 대학이 시장 경쟁에 내몰리면서 수익의 관점으로 계산기 두드리며 ‘돈벌이’에 지나치게 매몰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뒤로 빠지고 대학들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각자도생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등록금 빛에 허덕이는 학생들”, “‘승자독식’ 대학 시장화 가속화”, “상위 대학은 대부분의 보상을, 하위대학은 부스러기 정도만 가져가는 구조”, “잘 나가는 대학의 부총장(vice-chancellor)은 막대한 수익과 보너스를, 대부분의 대학 구성원들은 불안정 임시직에 놓이는 상황” 등이 비판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코벤트리대학의 부총장 존 라탐(John Latham)은 대표적인 상징 인물이다. 그는 대학 경영을 책임지는 CEO라는 명칭 또한 가지고 있는 ‘고액 연봉자’다. 정부 돈이 줄어들면서, 대학은 스스로 돈을 벌고 쓰는데 상당한 자율권을 부여받았다. 그는 분명히 말한다. “대학 내 많은 자회사들은 잉여 수익을 발생시킵니다. 그리고 그 수익들은 대학 본연의 역할(연구 등)을 수행하게 하도록 기부됩니다. 이를 위한 자회사의 사업들은 분명히 냉철하고 상업적입니다.”
그는 양면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1990년대까지 폴리텍대학이었던 신생대학인 코벤트리가 웬만한 러셀그룹(영국의 명문대학들이 속해있는 집단으로 일컫는) 대학들을 제치고 <가디언> 순위 기준 12위를(2018년도) 기록했다. <타임즈> 등에서 선정한 ‘올해의 모던 대학’에도 수차례 선정되었다. 코벤트리대학 캠퍼스 곳곳에는 이를 알리는 사진들이 “우리는 계속해서 상승 중이다”라는 문구들과 함께 내걸려있다. 이는 분명 라탐 부총장의 공세적이고 비즈니스적인 대학 경영의 성과가 큰 몫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가지의 방향성은 국가가 다시 적극 등장해 ‘등록금 무상’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실제 ‘제3의 길’ 중도파 노선을 비판하며 등장한 영국 노동당 제레미 코빈 대표(2015~2020) 등 진보파들은 이러한 정책노선과 대안을 공약해왔다. 이와 더불어 또 하나의 움직임이 있다. ‘사회적 대학’(Social University)을 만들어가자는 실천과 담론이다. 사회혁신 방법론을 기반으로 한 재구성을 통해 무분별한 대학 시장화의 폐해를 극복하고 국가 주도의 한계점도 넘을 수 있는 역동적인 기관으로 혁신해가자는 취지다. 대학을 지역사회 혁신과 재생, 사회적경제 등을 추동해내는 거점 기지로서 적극 조성해가자는 제안이다(사회적 대학에 대해서는 추후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다시 키이스의 말로 돌아가면, 정부에서 돈줄을 줄이거나 끊어버리는 긴축이 사회혁신을 추동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푸념이 섞여 있었으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실재하는 측면이 있다. 모든 혁신의 대안은 넉넉함보다는 굶주림과 위기 속에서, 기존의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잉태되곤 한다. 결국 영국형 복지국가가 쇠퇴하고 시장화의 문제가 대두되고 그것을 다시 혁신시키는 과정에서, 국가가 빠진 자리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 또한 시장만능과 사유화(privatization)의 폐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들의 문제의식은 단순한 국가의 재등장 담론(큰 정부, 국유화 등)을 넘어서자는 의미가 서려있다. 물론 그중에는 ‘제3의 길’ 방식의 중도노선을 따르는 지향, 보수주의적인 시각에서 시장실패를 일부 보완하려는 움직임도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예컨대 사회적경제에 대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우선하되 폐해를 보완하는 완충’으로 삼는 보수적 접근과 ‘자본주의 방식을 극복하는 대안경제로의 이행’ 등의 급진적인 시각과 실천들이 동시에 존재하듯이 말이다.
실제 최근의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정부, 시장, 시민사회 영역을 넘나들며 특정한 규정보다는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인 좌파, 우파, 노동자, 자본가 등의 구분을 횡단하며 “사회혁신이라는 기표가 얼마나 탄력적으로 기능하며 다양한 행위자들을 자신의 우산 아래 결집시키고 있는”(이승철, 조문영, 2018, “한국 ‘사회혁신의 지형도’” 중)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모호성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들도 존재한다. 변화보다는 완만한 현상유지, 사회적 생태적인 위기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조금씩 완화시키며 기존 질서에 새로운 ‘통치 합리성’을 부여하는, 혼종적이고 애매하고 경계가 흐릿하지만 결국 '포섭' 과정으로 향하는 담론으로 악용될 소지가 짙다는 것이다.
이를 둘러싼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여기서는 이론적 담론적인 구분보다는 ‘사회혁신’을 내건 구체적인 실천 사례 속에서 실질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시의적인 가능성 혹은 모순들을 조명해내려 한다. 이번 여정의 목적이기도 하다. 키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실질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민영화, 국유화 방식 말고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긴축 기조로 파생된 현재의 매서운 국면에서, 민영화된 공공서비스들이 청년과 지역사회 주민들의 안녕(well-being)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상의 현장 속에서, 구체적인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사회혁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CUSE는 대학의 역할을 사회혁신을 위한 매개와 촉매제의 공간으로 설정한다. 대학 구성원과 지역사회에 능동적인 시민성(active citizenship)과 기업가정신, 사회적 가치를 심어 넣는(embedding) 활동에 정진한다. 또한 다음 세대 젊은 사회혁신가와 기업가들을 키우고 고양시킨다. 이런 도전적인 활동을 위한 펀딩 기회를 연결하고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를 만드는 생태계를 조성한다. 엔터프라이즈 허브와 같은 인큐베이팅 공간을 제공하고,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변화의 관여를 도모한다. 이들은 항시 강조한다 “사회적기업이 이익이 발생하면 곧 사회에 이익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대학은 (지역)사회를 이롭게 변화시키는 혁신 추동 플랫폼이자 양성소, 제작소다.
[다음 편에 계속]
이 연재를 엮고 보완하여 단행본으로 출판하였습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61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