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 영국기행 12] 셰필드서 본 전시회 Hope is 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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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벤트리편 전편에 이어 계속]
주말을 이용해 잉글랜드 북부도시 셰필드(Sheffield)에 다녀왔다. 영국적인 자연풍경을 보고싶은 마음에 고원지대이자 국립공원인 피크 디스트릭트(Peak District)로 향하는 여정이었다. 그 길목에서 우연찮게 흥미로운 전시를 발견했다.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밀레니엄 갤러리(Millennium Gallery)에서 였다. 2018년 2월17일부터 6월10일까지 진행하는 ‘희망은 강하다’(Hope is strong)라는 특별전시. 여느 영국의 국립 박물관, 미술관들 처럼 여기도 무료 입장이다.
“극우 정당들과 혐오 범죄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적 증오와 소수자들의 인권은 그 어느때보다,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위기에 처한 작금의 현실입니다. 이 난폭한 시대에, ‘희망은 강하다’ 전시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의문을 던질 수 있는 예술의 힘을 탐구해나가고자 합니다.”
이른바 ‘사회파’ 예술 전시였다. 밀레니엄 갤러리는 2018년 ‘항의&행동주의 시즌’(Protest & Activism season) 행사를 진행 중이었다. 사회적 임팩트를 지원하는 펀드(Esmée Fairbairn Collections Fund)의 도움으로, 거기에 더해 국민투표법(Representation of the People Act, 일정 자격을 갖춘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 제정 100주년을 기념하며 이러한 전시를 이어가고 있었다.
폭력과 야만의 회귀 기류를 민감하게 포착하는 '사회파' 예술
그러나 많은 사회운동의 성취들은 중대한 역작용의 모순에 봉착해있다. 유럽과 서구인들이 그들 스스로 자랑으로 여겼던 자유와 인권 등의 가치가 무자비하게 해체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수많은 양심적 시민, 예술인, 지식인들은 깊은 우려와 좌절을 체감하고 있었다. 특히 예술인들은 특유의 민감한 정세인식과 일상적 체험을 통해, 사라진 줄 알았던 폭력과 야만이 다시, 더 무서운 형태로 곰비임비 분출하고 있는 오늘날의 모순에 무겁게 사로잡혔다. 인종차별은 보편적인 인권의 이름으로 이미 극복된 문제 아니었던가. 서구문명의 근원을 이루는 2천년 전 쓰여진 성경에 따르더라도 ‘이방인을 환대하라’고 했는데, 지금 나타나고 있는 난민, 이주민들에 대한 혐오와 적대의 일상화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물론 상식과 선의로서 ‘무조건 인권, 환대’를 부르짖기에는 현 유럽사회의 얽힌 난맥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군부독재시절 한국의 정치 난민이었던 ‘파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에게 1970~80년대 프랑스는 ‘자유의 이름으로’ 흔쾌히 망명의 피난처를 제공했다. 그러나 지금의 프랑스와 유럽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수용과 관용의 미덕은 사라지고 검열과 추방이 만연하다. 몇몇 손님들이 들어오는 현상을 넘어서서 대규모의 다른 문화권, 인종, 종교의 이주를 경계 안으로 받아들였을 때, 게다가 갖은 분쟁과 테러리즘 등의 이슈가 피아 구분을 어렵게 할 정도로 뒤섞인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사회국가 시스템과 철학’이 든든한 나라라고 할지라도 혼돈에 휩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흘러간 옛노래인 줄 알았던 인종차별적 극우정당이 불평등 사회의 불만 기류 등을 등에 없고 곳곳에서 득세하고 있다. 문화와 생활패턴이 다른 집단, 공동체, 개인이 뒤섞여 한 지역사회에서 삶을 일궈가는 모습은 단순히 낭만적인 ‘세계시민주의’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제주도에 도착한 500명 예맨 난민들(2018년 6월)에 대해서도 극도의 반감과 거부감을 드러낸 바 있다. 접경지 터키는 350만명, 상대적으로 관대한(이마저도 2018년을 기점으로 흔들리고 있다) 독일은 97만명(유럽 1위)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의 난민과 이주 폭증은 국제분쟁, 기후변화, 지구적 양극화 등 ‘못난 개인 혹은 민족국가’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구조적인 폭력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분노는 왜 어떻게 누구에게로 향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정당합니까. ‘희망은 강하다’ 전시는 검은 대륙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었다. 대영제국, 해가지지 않는 나라,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원조, 노동과 인권을 향한 투쟁... 스스로를 영광스러워하며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이라 칭하는 이 나라 역사에는 사실 많은 흑인들의 피땀이 서려있었다. 한 사회는, 시대는 이들에 대한 착취와 굴욕, 이들이 주도한 액티비즘을 어떻게 조명해왔는가.
'분노'를 관통하며 놓인 흔적들... 그리고 희망
영국인 작가 키이스(Keith Piper)는 ‘7대에 걸친 인간 생애의 분노’(The Seven Rages of Man)란 작품으로 아프리카 대륙과 흑인들의 질곡진 삶을 형상화했다. 이는 세익스피어의 ‘인생의 7기’(seven ages of man)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영국이 낳은 전설적인 극작가는 생의 일곱 단계를 유아기부터 고령기까지 분류해 나타냈다. 키이스는 첫번째 태어남(1st birth)부터 일곱번째 태어남(7th Birth)까지, 아프리카(계) 흑인 공동체가 거쳐야 했던 험난한 인생 경로를 좇고 있다. 이 ‘분노’를 관통하며 놓인 흔적들, 즉 문학작품, 다큐멘터리 사진, 조각, 역사적 사건을 담은 포스터, 출판물 등이 일곱 단계마다 겹겹이 표출된 작품은 진한 울림을 준다. 보는 이로 하여금 분노와 연민, 그리고 무언가라도 해야한다는 동참의 실천을 자극한다. 과장된 표출이나 꾸밈 없이 묵묵하게 역사적 단계를 조합해 재현해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묵직한 감동을 준다. 일곱개의 조각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사진 촬영이 금지된 전시라 글로 전한다).
-첫번째 태어났을 때 우리는 공동체를, 종교와 과학, 아프리카 토양에 뿌리내린 문명을 물려받았습니다.
-두번째 태어났을 때 우리는 노예의 쇠사슬을 물려받았습니다.
-세번째 태어났을 때 ‘우리는 자유다’란 문서를 물려밨았습니다. 그러나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열악한 노동자로 착취당했습니다.
-네번째 태어났을 때 우리는 영국행 여권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열등 시민이었을 뿐입니다.
-다섯번째 태어났을 때 우리의 현실에 대한 대안적인 분석과 생각, 실천들에 눈을 떴습니다.
-여섯번째 태어났을 때 우리는 자유의 투사로서 전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곱번째 태어났을 때 꿈에 그리던 자유롭고 단결된 우리의 고향, 아프리카 땅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빼앗긴 땅, 짐승같은 노예, 착취노동, 열등 시민, 변화를 향한 투쟁을 넘어 결국 완전한 자유의 상태로 이제 다시 자유로운 고향 땅으로 돌아간다. 전시공간 한쪽에 놓여진 주크박스에는 항거의 현장에서 불렸을 투쟁가(Protest songs)가 울려퍼졌다. 감명 깊은 전시에 좀처럼 발을 떼지 못하고 있는 나의 주변으로 백인, 흑인, 동양인 할 거 없이 비슷한 공감의 표정으로 작품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검은 대륙에서 넘어오는 난민들에게 영국(과 유럽) 시민들은 근원적인 죄와 책임이 있다. 그렇기에 혐오가 아닌 희망을 함께 갈구해야 한다. 목숨걸고 도망치는 처량한 이방의 삶을 손가락질하는 게 아닌, 그를 파생시키는 본질적인 악을 연대해 물리쳐야 한다. 그리하여 각자에게 마련된 평화로운 고향 땅에서 다양한 개성을 분출하며 보금자리를 이뤄 살아갈 수 있게끔 갈망해보자. 신세지는 신세로 치부할 게 아니다. 뿌리깊게 빼앗긴 존재들과 더불어 제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에 동참하라고, 그것이 진정한 분노의 승화라고 작품은 말하고 있다.
이외에도 전시에는 다양한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이어져 있었다. 폴란드인 시각예술가 아투르(Artur Zmijewski)는 오늘날 유럽의 일상적인 공공 공간(광장, 성당 등)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스며들어 표출되고 있는 증오와 극우성을 영상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광장의 연설과 담화, 성당 사제의 강론 등에서 무의식적으로 침투해 있는 난민, 소수자에 대한 혐오 현상들을 특별한 편집이나 개입 없이 사실주의적으로 드러냈다. 무던하게 무심하게 오염된 일상을 직시하라는 강렬한 메시지다. 또한 1980년대 대처정권 시절 극렬했던 광부파업 당시 셰필드 인근 지역에서의 전쟁(The Battle of Orgreave) 같은 투쟁사를 많은 공간을 할애해 전시한 작품도 눈에 띄었다. 그 전투에서 광부들이 부르짖었던 구호가 눈에 들어왔다. 서로를 향한 증오와 삿대질과 냉대가 만연한 지금의 세상을 향한 외침으로도 들렸다.
“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은 모든 이를 다치게 하는 것이다.”(An Injury to One is an Injury to all)
[다음 편에 계속]
이 연재를 엮고 보완하여 단행본으로 출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