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 영국기행 11] 뿌리뽑힌 이방의 삶, 일자리로 다시 세우다
https://brunch.co.kr/@jmseria/10
[코벤트리편 전편에 이어 계속]
난민들을 새로운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는 사회적기업의 활동
난민 문제(Refugee Crisis)는 최근 유럽사회의 뜨거운 현안이다. 분쟁과 기근, 기후변화 등 다양한 이유로 고향을 떠나 목숨을 건 이주를 감행하는 많은 아프리카와 중동인들, 그러나 이 탈주는 오늘날 유럽인들에게 환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혐오와 반감을 불러일으켜 ‘유럽연합’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국제질서, 종교분쟁, 민족 간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또한 이를 자양분삼아 독버섯처럼 퍼진 ‘테러리즘’의 공포에 뒤덮여, 선량한 난민들마저 증오와 추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 여정 중에 런던에서 친분이 있는 한국인 성직자를 만났다. 그는 ’정글’이라 불리는 악명 높은 난민캠프가 있는 프랑스의 깔레(Calais)에 파견나와 미션 수행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영국 방문소식에 휴가차 런던에 왔다. 함께 레미제라블 뮤지컬 공연을 본 후, 소호거리의 시끌벅적한 펍에서 잉글리시 에일맥주를 마시던 중, 적나라한 한마디를 던졌다.
“유럽은 난민 문제 때문에 망할 거 같아요.”
영국 또한 많은 난민들이 이주의 목적지로 삼고 있는 나라다.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 가장 가까운 프랑스 땅인 깔레에 난민 캠프가 차려진 것도, 영국으로 향하려는 난민들의 행렬이 만들어냈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영국으로 가야해요. 우리 가족들과 형제들이 거기에 살고 있거든요. 제발 국경을 열어주세요.”(영국신문 <인디펜던트>에 비친, 깔레에서 종이 피켓을 든 난민의 모습 등) 실제 과거의 식민지배 등 경험으로, 영국에 터잡은 아프리카인들이 많다. 가족, 지인들이 먼저 자리잡은 이들을 수소문해 찾아오는 것이다. 현실적인 측면도 있다. 언어 문제(영어가 아무래도 편하고 실용적이란다), 일자리(상대적으로 대륙유럽에 비해 상황이 낫다고), 그리고 비교적 ‘리버럴’한 사회 분위기도 한몫 한다고. 실제 영국은 과거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그 여파로 많은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 다문화 나라이기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최근 영국의 보수당 정부는 난민들을 받아들이는데 굉장히 인색하다고 한다. 하기야 유럽연합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 여론, 이주민에 대한 국경 통제 등의 이슈로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까지 결정한 여기 사람들이다.
그래도 어디에든 양심과 선의는 있다. 코벤트리 체류 동안 나의 일정을 담당해준 코벤트리대학 사회적기업(CUSE)의 마리아마도 그런 시민이자 활동가였다. 검은 대륙의 핏줄을 이어받은 나이지리아계 영국인인 그녀의 최우선 관심은 아프리카 청년들에게 있었다. 잠재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사회환경적 악조건으로 인해 시들어버리는 현실을 타개해나가기 위한, 소수인종 청년들과 함께꾸리는 사회적기업 등의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난민 이슈에 대해 관심을 보이자, 그녀는 코벤트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난민/이주민센터(Coventry Refugee and Migrant Centre, 이하 ‘난민센터’)를 연결해주였다.
난민센터는 링로드 고가에서 들려오는 번잡한 차량소리와, 백조들이 뛰노는 고요한 공원을 함께 마주하며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상담 혹은 서비스를 기다리는 젊은 난민들이 삼삼오오 줄지어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영어와 다른 언어로 떠드는 수근거림 소리가 들려왔다. 호기심 가득할 나의 눈을 역시 호기심(그러나 경계가 반쯤 섞인) 깃든 눈빛으로 서로 바라보았다. 살짝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주고받은 뒤, 담당직원이 기다리는 위층으로 오래된 계단을 밟으며 걸어올라갔다.
사회적기업 '스프링 액션', 난민을 고용하고 생활임금 지급하는 청소회사
“우리 센터는 코벤트리에 있는 난민들과 이주민들, 피난처를 찾는 이들의 어려움과 고충을 덜어주기 위한 일을 합니다. 이들이 필요한 의료서비스, 주거, 교육, 직업훈련, 일자리 등에 접근할 수 있게끔 말이죠. 일상적인 사회활동들과 친교들 맺어주는 것과 더불어 포괄적인 지원활동들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낯선 땅에서 새로운 시민으로서 정착할 수 있게끔 돕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2층 사무실에서 나를 맞은 마이클(Michael Gabriel)은 여기서 비즈니스 코디네이터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명함에는 ‘스프링 액션’(Spring Action)이라는 사회적기업 홍보문구도 같이 쓰여져 있었다. 이는 난민들을 고용하여 함께 꾸려가고 있는 청소회사였다. 또한 ‘생활임금’(Living Wage) 표기도 함께였다. 사회적기업으로서 노동자 대우에 대한 정당한 책임을 명시해놓은 것이었다.
50대 중년 남성인 그는 처음에는 자원봉사부터 일을 시작했다. ‘난민센터’는 등록된 자선기관(Charity)이고 이를 모체로 하여 다양한 사회복지 및 비영리사업, 사회적기업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영국에는 비영리 자선기관이 목적을 달성하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며 수익을 자선활동에 재투자하기 위해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운영하는 사례들이 많다. 이곳 역시 그러했다. 마이클은 전직 은행원이었고 주로 소상공인 대출과 지원 관련 업무를 맡아 했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비즈니스 영역에서의 경험이 여기도 필요하겠다 싶어서, 자원봉사, 주10~30시간 근무로 점점 일을 늘리다가 현재는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현재 난민의 약 95%는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넘어오고 있다고 했다(다수는 아프리카). 나머지 소수 인원은 동유럽 출신들이 차지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부자나라라 당연히 여기에 온 경우는 없었다”면서 “일본 출신 여성은 한명 있었다.”라며 슬쩍 웃었다. 아마도 기구한 인생사가 있었으리라. 이어 그는 종이를 한장 꺼내더니, 이곳에서 하는 일을 그림을 그려가며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었다.
“가운데 센터라는 자선기관이 있어요. 그 속에 법적 지원부서, 상담컨설팅 지원부서, 주거 지원부서, 일자리 지원부서 등등이 있고요. 시리안 프로젝트 팀과 같이 긴급한 지역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팀도 있죠. 그리고 제가 맡고 있는 사회적기업 담당팀의 연계와 지원으로 3개의 기업이 일을 하고 있어요.”
센터의 예산은 정부(중앙/지방) 지원금과 민간(개인/단체) 기부금, 그리고 사회적기업을 통한 자체 펀딩 등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이를 통해 2017년 한해에만 3000명 이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난민, 이주민들에게 1만건 이상의 상담, 지원, 연계 서비스 등을 실행했다. 그들은 말한다. (비록 사회적인 인식과 악평이 있을지 몰라도)"우리의 실천에 대한 가치는 변함 없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피난처를 찾는 이, 난민, 이주민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통해 그들 스스로의 운명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뿌리뽑힌 이방의 삶, 다시 뿌리내리게 하는 사회적 일자리... "삶을 바꾸는 청소 서비스"
특히 마이클은 일자리를 통해 난민들이 새로운 사회에 둥지를 틀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코디네이팅을 하고 있는 사회적기업 ‘스프링 액션’은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했다. 2017년 4월 문을 열었는데 7개월만에 난민 15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그 중에는 주 20시간씩 정규적으로 일하는 사람들, 그보다는 간헐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섞여 있다고 했다.
“우리는 첫해 1년도 안된 시점에서 약 3만 파운드의 수익(약 4천5백만원)을 올렸어요. 또한 코벤트리 도심지 등에서 10개 이상의 교회, 비영리조직, 공공기관 등 고객을 확보하였죠. 기대보다 빠른 성과예요.”
더 인상적인 점은 이들에게 생활임금을 책정해 지급하고 있었던 것. 2017년 기준 영국의 최저임금은 시급 7.5파운드(약 11,000원)였는데, ‘스프링 액션’에서는 난민 출신 청소부들에게 시급 8.45파운드(약 12,500원)을 지급했다. 고객들의 좋은평도 잇따르고 있다. 종교NGO인 WEC International의 모이라(Moira Stephens) 운영관리자는 뉴스레터를 통해 “그들은 친절, 친근하고 효율적으로 일한다. 믿을만하고 잘 신경써주는 것은 물론 서비스의 ‘가성비’ 역시 뛰어나다”며 “청소부들은 시간을 엄수하며 우리 사무실의 스케줄에 따라 정확히 맞춰주고 있다. 나는 이 업체를 전적으로 추천한다”고 말했다.
마이클의 동료인 패럭(Faruk Norat)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그저 일에 관한 것만이 아니예요. 사람들에게 자존감과 자부심을 주고, 소속감, 신뢰감을 쌓아갈 수 있게 하는 일이죠. 난민들은 그들의 자격을 증명할 방법도 없고 짧은 영어 실력도 핸디캡이어서 일자리를 찾는데 고된 싸움을 해야하죠. 우리의 사회적기업을 통해 그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물론 첫째로 그들에게 좋고 나아가 우리 공동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죠.”
마이클 역시 “여기서 ‘자원봉사’가 아닌 ‘일’을 하게될 줄은 처음엔 몰랐는데, 지금은 이 일에서 많은 가치와 보람을 느낀다”며 “매일 난민,이주민들의 사연들, 눈물쏟게 만드는 삶을 향한 분투기들을 듣는다.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도움이 필요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임을 모두 알게되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의 말에는 ‘사회적기업’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코벤트리에는 백여개의 청소업체들이 있어요. 그럼에도, 그 중에서도 좋은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선하고 긴요한 일을 함께 행하는 우리를 택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혐오 기류 짙어지는 현실, but '돌보는 도시' 환대정신을 이어가려는 흐름
평화와 화해의 도시 코벤트리는 이방인들에게 환대를 실천해가려는 역사적 맥락이 있는 도시이기도 했다. 지역언론에 따르면, 코벤트리 시장인 토니(Tony Skipper)는 2018년 3월 이 센터 이전행사(내가 방문했던 2월에도 이전해서 운영은 하고 있었지만 공식 오픈행사는 하기 전이었다)에서 “돌보는 도시(caring city) 코벤트리는 긴급한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도왔던 자랑스런 역사가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코벤트리는 2차대전 때 우리 스스로 가슴 아프게 겪은 전쟁 참상의 경험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양심을 가진 곳입니다. 우리 ‘돌보는 도시’는 전쟁으로부터 피난한 사람, 박해받는 사람들을 서로 돕고 환대하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백발에 연세가 지긋한 노동당 출신 시장을 나는 코벤트리의 노숙청년지원 후원행사에서 만난 적이 있다. 금빛의 묵직한 휘장 같은 어마어마한 장신구를 목에 두르고 있는 그를 처음 봤을 때 ‘혹시 말로만 듣던 영국 귀족인가?’라고 생각을 했다. 알고보니 시장이 두르고 다닌다는 표징 장신구였다. 나를 이곳으로 안내한 CUSE의 캐롤은 오랫동안 지역에서 정치와 의회 활동을 해왔다는 그와 인사를 시켜주며 “지역 활동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주려는 의지가 큰 분”이라고 소개했다. 토니 시장은 “한국에서 여기까지 오다니 환영해요” 인사를 건네며,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어진 행사에서 스텝들, 후원자들, 전문가 활동가들, 시의원, 노숙청년 당사자들이 차례로 마이크 잡고 발언을 이어가는 동안, 토니 시장은 묵묵히 사연을 듣고 있었다. 그에게는 마이크가 가지 않았다. 그래도 ‘뒤풀이’ 다과나눔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난민 이슈는 풀기 어려운 난제다. 전통적으로 노동당세가 강한 코벤트리의 주민들 조차 이민자 이슈가 짙게 작용한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표를 많이 던져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계속해서, 점점 더 이 문제는 영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커다란 도전을 안기고 있다. 그러나 누구의 책임일까. 이탈리아와 독일, 미국 등 주요국에서 비난여론을 등에 엎고 난민에 대한 강압적 처사들이 이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영국 <가디언>지는 사설(2018.6.18)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기도 했다.
“(동정심과 설교만으로 이 문제를 풀 수는 없지만)인도주의적 이상은 이 문제가 (개인, 개별국가 책임이 아닌)전세계 차원의 해결을 요하는 세계구조적인 것으로 이해하게끔 한다. 이 위기는 단지 유럽이나 미국으로의 이주에 대한 매력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중앙아메리카 등에서 (여러 요인으로 발생하고 있는)끔찍한 상황 때문에 난민들이 불가피하게 폭증하는 측면이 강하다.”
결국 개별 국경 단위 ‘난민 유입, 난민 통제’로는 해결할 수 없고 국제사회가 함께 부담을 나눠지며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신문은 역설했다. 그리고 코벤트리의 양심적 실천가들은 언제 바뀔지 모르는 ‘구조’가 나서기 전, 여론과 실천의 ‘악조건’을 감내하고 설득해가며 한 사람이라도 낯선 땅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끔 손을 내밀고 있었다. 환대와 관심은 혐오보다 강하다.
[다음 편에 계속]
이 연재를 엮고 보완하여 단행본으로 출판하였습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61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