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음식, 비틀거리는 인생에 부활을 선사하다

[사회혁신 영국기행 13] 코벤트리의 '사회적' 맛집들을 가다

by 이웃주민

https://brunch.co.kr/@jmseria/12

[코벤트리편 전편에 이어 계속]


금요일 점심은 ‘정크푸드’를 먹으러 간단다. 그것도 진짜(real) 정크푸드를. 마리아마와 캐롤, 그리고 도나 등 코벤트리대학 사회적기업(CUSE)의 여성 스텝들과 함께 코벤트리 브로드스트리트에 있는 한 교회(Foleshill Baptist Church)를 찾았다. 2층 짜리 낮은 주택이 줄지어 있는 영국의 흔한 서민적 주거지 한복판이었다.


Pay as you Feel Cafe [Open Today. From 12pm Until 2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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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 만큼 내고가면’ 되는 카페, 오늘 점심 영업한다는 표지판이 교회 강당 앞에 내걸려 있었다. 런던의 오이스터 카드(대중교통이용) 충전은 ‘pay as you go’(타는 횟수만큼 내는 방법, 정액권과 다른 개념) 방식이 있었는데, 여기는 느낀 만큼 내란다. 그 옆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이어졌다.


“사람들 사이에 단지 돈을 가지고 거래하는 것이 아닌, 아이디어와 시간, 창의성 등 각자가 가진 것을 우리 음식을 먹으면서 공유해주시면 됩니다. 만약 오늘 지불할 게 없다고 해도 괜찮아요. 테이블을 청소하거나 우리 카페의 운영을 위해 손을 보태주시는 것도 좋습니다. ‘Pay as you Feel’ 개념은 누구에게나, 꼭 돈이 아니더라도, 음식에 대해 해줄 수 있다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버려지는 음식 but 굶는 사람들... 자선활동서 시작해 지속가능한 사회적 비즈니스 모색


흥미로운 방법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담 없이 한끼를 제공하려는, 그리고 금전이 아닌 관계로 일을 순환시켜가려는 비영리적 활동의 분위기가 짙게 느껴졌다. 그리고 한쪽 표지판에는 ‘음식 낭비를 끝냅시다’라고 눈에 띄게 적어놓았다. 왜 리얼 정크푸드 프로젝트임을 알리는 말과 함께. “우리는 팔리지 않은 잉여 식료품들을 지역상점으로부터 수집하여, 이를 건강한 끼니와 간식으로 탈바꿈시키는 일을 합니다. 오셔서 우리의 자원봉사자들이 신선하게 손수 만든 훌륭한 음식을 맛보세요.”


카페가 차려진 강당 안으로 들어가니, 이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는 커뮤니티활동가 팀(Tim Rees)이 활짝 웃으며 맞이했다. 분위기는 소박했다. 주로 중장년 주민들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거나 이미 먹고 있었다. 그중에는 근무 중에 들러 점심을 먹는 경찰들도 한무리 뒤섞여 있었다. 가장 바쁜 시간, 팀은 여기저기 정신없이 음식을 나르다가, 조금 한가한 틈을 이용해 내게 와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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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는 음식들이 너무 많잖아요. 영국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 중 하나죠. 한편에서는 굶는 사람들도 있는데. 잉여로이 낭비되지만 먹을 만한 음식들을 다시 근사한 ‘핸드메이드’ 한끼로 대접하는 취지죠. 환경에도 좋고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죠. 인간과 자연을 함께 살리는 작지만 큰 프로젝트!”


막스앤스펜서(Marks&Spencer)와 같은 대형마트부터 지역의 소상점, 개인들까지, 다양한 지역사회 그룹들로부터 기부를 받고 있다고 했다. 과잉과 버려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뤄지는 시대에, 소중하고 지당한 실천이다. 사실 팀은 이 프로젝트를 사업으로 생각하지 않고 시작했다. 고맙게도 교회에서 공간을 공짜로 내어줘서 임대료 부담도 없었다. 자원봉사와 기부, 서로 도우며 이어가는 정도로도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 그런데 예상보다 호응이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품을 내어줬고 또 음식을 먹으러 찾아왔다. CUSE 직원들은 ‘퍼실리테이터’들 답게 이 프로젝트를 공동체이익회사(community interest company) 형태의 사회적기업으로 발전시켜서 지속가능하게끔 권유를 하는 중이었다. 팀은 현재 CUSE와 함께 구체적인 방법 등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했다.

오늘의 점심은 인도식 커리였다. 고기와 야채가 듬뿍 담긴 커리에 인도 특유의 ‘날림쌀’밥이 함께 접시에 나왔다. 이들에 따르면 커리는 매우 ‘잉글리시’한 요리이기도 하단다. 오랜 식민지배의 결과로 ‘역토착화’된 음식일게다. 우리 입맛에도 잘맞는 따뜻한 한끼 오리엔탈 정찬이었다. 함께 점심을 먹으며 CUSE의 캐롤은 “이런 활동은 지역사회에서의 순환과 재투자에 매우 좋은 소재이자 모델”이라며 “지역기반 사회적기업으로 함께 해나가길 바라며 관계를 계속 가져가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에피소드: 맛집명소 추천! 의미와 맛 모두를 담은 Rising Cafe


‘리얼 정크푸드’ 말고도, 코벤트리에서 먹거리 관련 추전하고 싶은 곳이 하나 더있다. 여기는 이미 명소이기도 하고 ‘맛집’ 반열 정도까지 올라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게다가 도심 한복판, 코벤트리의 상징인 ‘대성당’과 인접해있는 중심지에 위치해있다. CUSE의 키이스, 캐롤이 점심을 대접해준다며 처음 데리고 간 곳이었는데, 점심시간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예약 안하고는 한참 줄서있어야 하는 곳이었다.


라이징 카페(Rising Cafe). 폭격의 폐허에서 다시 일어선 코벤트리처럼,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카페(음료 뿐 아니라 다양한 음식도 함께 판다)를 세웠다. 약물과 알콜중독자들을 지원하는 ‘Betel UK’라는 자선단체에서 만든 사회적기업이다. 중독자들을 교육하고 일자리를 제공하여 자립할 수 있게끔 운영하는 곳, 이들의 수입은 100% 다시 중독자를 위해 쓰이는 사회적 목적을 가진 카페였다. 중독은 단기적인 처방으론 안된다. 장기적인 개입과 실천으로 변화를 도모하여 무너진 개개인들이 궤도를 되찾을 수 있게끔 공동체를 이뤄 활동하고 있는 곳이 Betel UK였다. 이 자선단체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단다. 대부분의 수익은 Rising Cafe와 같은 사회적기업 활동을 통해 충당하고 있다고 했다.


가능할까. 북적이는 카페의 인파가 답을 주는듯했다. 1940년대 풍으로 꾸몄다는 분위기도 독특하고 전통적이면서 곳곳에 삽입한 모던한 느낌을 동시에 선사하는 곳이었다. 진열되어있는 케익, 베이커리류는 모두 손수 만들었단다. 메뉴도 다양했다. 샌드위치, 햄버거 세트(패스트푸드가 아닌 건강한 수제 ‘시골 트래디셔널’ 메뉴였다)부터 커리와 같은 동양식, 샐러드, 파스타 등 입맛에 맞게 골라 주문하면 되었다. 영국에 오면 다들 한번쯤 먹어보고 싶어하는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메뉴도 있었다. 3단 접시에 각종 디저트, 스콘, 샌드위치, 샐러드 등이 정성껏 우린 홍차 주전자와 함께 나왔다. 가격은 시중보다 훨씬 저렴했지만 질은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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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 음료들과 함께 다양한 얼굴의 코벤트리 주민, 대학생, 관광객들이 카페에서 각자의 모임을 삼삼오오 즐기고 있었다. 옆자리에서는 여대생들이 친구의 생일 파티를 하고 있었다. 달콤한 디저트류가 푸짐하게 담긴 ‘애프터눈 티’가 나오자 ‘오마이갓!’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솔깃했을까. 코벤트리를 떠나는 날 옆지기와 점심 때 한번 더 들른 카페에서 그녀는 그 ‘애프터눈 티’를 주문했다. ‘티’ 메뉴라고 하지만 한끼 이상의 양이었다. 기차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느긋하게 음미하며 ‘점심 겸 차, 오후 디저트’를 함께했다. 오래된 나무의자에 앉아 흘러나오는 잔잔한 클래식에 행복했다. 이 모든 웃음소리, 행복을 위해 선사된 점심 비용은 다시 가장 밑바닥에서 스러진 사람들에게 재투자된다. 그저 푸짐하고 아늑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의미있는 실천에 동참한 셈!


[다음 편에 계속]


이 연재를 엮고 보완하여 단행본으로 출판하였습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6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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