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 영국기행 14] 줄 세우기, 취업학원화를 넘어 사회적 임팩트를
일과를 마쳤다. 젊은 학생들이 여기저기 담소를 나누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코벤트리대학 기숙사 사이클 웍스(cycle works)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역시 젊은이들로 가득한 마트에 들러 잉글리시 에일맥주 한 병을 샀다. 종일 수군수군 소곤소곤 일상 대화가 가득한, 제대로 알아듣기 힘든 토착 영어를 듣느라 잔뜩 긴장한 귀와 머리에 힘을 내려놓으며 한잔을 컵에 따랐다. 이제사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다. 갈증을 해소하며 잠시 사색에 잠겼다. 무엇이 나를 여기로 오게 한 것일까. 이름만 들어도 아는 런던이나 캠브리지나 옥스포드가 아닌, 이름 한번 들어본 적 없는 도시에 말이다. 돌이켜보니 한마디 단어로부터 시작됐다.
‘사회적 대학 (Social University)’
지난 2017년 겨울 연세대에서 진행된 서울시 캠퍼스타운 국제컨퍼런스에 초청되어 만난 CUSE 경영자 키이스가 내뱉은 말이었다. 수많은 학생, 교수, 공무원 등 ‘캠퍼스타운’ 추진 관계자들 앞에서 그는 “우리는 하나의 사회적기업 활동을 넘어 사회적 대학을 만들어가려고 한다”고 힘줘 말했다. 사실 생소한 말이었다. 하도 ‘사회적’(Social)이란 말이 유행처럼 쓰이는 세태가 있긴 하지만, 대학 앞에 붙인 것은 처음 들어봤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대학을 다닌 나는 ‘대학의 기업화, 취업학원화’ 소리만 지겹게 들려왔다. 고등학교 4학년과 같은 혹독한 경쟁의 파도만 있을 뿐이었다. 낭만은커녕 냉엄한 현실에 허우적댈 뿐인 캠퍼스 생활이었다. 높은 곳만 바라보며 합격, 당선, 취업에 목메라고 다그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사회적’이라니. 줄 세우기 평가와 경쟁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사회를 일구는 혁신 근거지로서의 대학이라니!
“사회적 대학은 지역사회와 함께 그가 속한 커뮤니티를 발전시키는 데 복무하며, 이를 위해 사회혁신과 사회적기업 등의 방법론에 근거하여 실천을 하고 있는 고등교육기관을 뜻합니다.” (사회적 대학 네트워크 소개글 중)
물론 지금의 코벤트리대학을 완성태의 ‘사회적 대학’이라고 칭하기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코벤트리대학은 ‘사회적’을 뺀 ‘장사’ 수완도 매우 뛰어났고 여느 대학들처럼 코스타(Costa, 영국에서 가장 큰 커피 체인) 등 대기업체가 캠퍼스에 주요하게 입점해있는 모습이었다. 키이스와 CUSE는 캠퍼스 안팎으로 사회혁신 그룹들과의 밀접한 관여를 추진하고 있었지만, 전체적인 비중으로 따져보면 여전히 작은 편이었다. ‘사회적 대학’은 완성된 실체라기보다는 하나의 운동이었고 현재 진행형인 지향으로서의 선언이었다.
“솔직히 대학에 바랄 게 있을까?”란 질문에 대해
키이스는 ‘사회적 대학’을 만들어가려는 지향과 의지가 사회적기업 경영자, 실천가들 중에서도 강한 사람이었다. 전국적인 연대체 조직인 ‘사회적기업 영국’(Social Enterprise UK) 인사들이 CUSE 엔터프라이즈 허브에 방문해 회의를 하는 자리에 참관한 적이 있다. 그들은 “요즘 한국이 굉장히 사회적기업과 사회혁신 분야에서 활발하게 잘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덕담을 하며 악수를 청했다. 이어 사회적기업 섹터와 관련한 활발한 논의를 이어가던 중, 한 여성 실천가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표출했다.
“솔직히 대학에 바랄 게 있을까요? 여기 코벤트리만 해도 ‘사회적기업 도시’ 인증도 받았고, 대학도 사회적기업과 관련한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알려져는 있지만 과연 실제 대학 관계자나 주민들 중 몇 % 나 이런 활동들을 알까요? 계속적으로 이어나갈 의지와 동력은 있을까요?”
이에 키이스는 “좋든 싫든, 잘했든 못했든 대학은 자원과 돈줄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라며 “이 공간에 ‘사회적’(Social) 가치(value), 실천(practice), 제품(product)을 심어 넣으려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대학이 조달 혹은 운영하는 공간, 상점, 재료, 자원 등에 혁신적인 사회적기업들이 계약 및 입점해, 대학이 윤리적인 제품, 서비스 구매와 순환(‘사회적기업 영국’에서는 ‘Buy Social Enterprise’ 운동을 벌이고 있다)의 진지가 된다면? “최고 수준의 바이어(Top level buyer)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최근 영국에서 불거지고 있는 공공서비스 민영화에 따른 여러 부작용, 폐해, 부패 문제와 그럼에도 단순하게 다시 국유화(re-nationalization)를 부르짖기에는 적합하지 않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분야 등을 제대로 숙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의 경험을 뒤풀이하지 않기 위해, 공공성을 확장하는 새로운 사회혁신 전략을 모색해야 하며, 그 추동 공간으로서 대학도 큰 몫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보면 기회의 영역입니다. 민영화의 폐해는 물론 기존 공공영역의 한계에 대한 도전에도 응답할 수 있는 하나의 솔루션으로써 말이죠. 최근 급증하고 있는 고령화, 커뮤니티 붕괴 등 여러 사회문제에 대해 능동적이면서 사회적 가치도 발생시킬 수 있는 사회적기업 섹터와 대학이 힘을 합쳐서 혁신의 활로를 모색하는 것이죠.”
그는 2018년 초순 영국에서 크게 이슈가 되었던, 공공서비스를 위탁받은 대형 민간회사(Carillion)의 부패와 방만 운영 사례를 언급했다. 세금은 세금대로 쓰이고 졸지에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 처지에 놓인 상황에 분노하며 “저런 엉터리들 말고 제대로 된 지역사회 주체들이 공공, 사회서비스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NGO 등 사회적 섹터(social sector)의 조직화와 재구성을 통해 공공 부문(public sector)을 혁신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사회적 서비스, 미션, 교육 등에 대한)중앙정부, 지방정부예산 모두 삭감되고 있다. 대학이라도 나서서” 숨통을 틔어야 한다고도 했다.
정부와 공공부문의 뒷걸음질과 후퇴를 '역이용'하는 전략
사실 대학과 학교는 본질적으로도 퍼블릭한 성격을 내재한 기능을 담당하는 공간이다. 실제 대부분의 영국 대학은 국공립 대학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지만, 최근의 영국 대학들은 정부의 공공예산 삭감 기조와 맞물려 급속도로 시장주의적 개편이 일어났으며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현실 또한 키이스와 같은 실천가들이 ‘사회적 대학’을 만들자고 외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지금의 문제와 위기를 잘 파고들어 오히려 역이용하면 새로운 공간이 열릴 수 있다. 정부는 예산을 뺏어가는 동시에 알아서 해보라며 독립성과 자율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어떻게 대학을 사회화(Socialize)할 수 있을까”
창밖으로 젊고 다양한 학생들이 시끌벅적 떠들며 지나가고 있었다. 키이스는 대학의 젊은 기운들을 배경으로 “사실 대학은 이런저런 가능성이 열린 역동적인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며 “관성에 젖은 형태, 조직, 문화를 능동적인 사회혁신적 실천을 통해 바꿔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노스햄턴 대학 등에서 단순히 몇몇 움직임이 아닌 부총장 단위에서부터 조직적으로 이러한 전략에 따른 커뮤니티 관여 등에 관심을 갖고 만들어갈 모색을 하고 있다는 사례를 덧붙여 언급하기도 했다.
[다음 편에 계속]
이 연재를 엮고 보완하여 단행본으로 출판하였습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61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