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마을’(transition town) 영국 토트네스에서의 일주일
필자 주
"2010년경부터 2020년 전까지 약 10년간은 해외여행, 탐방의 ‘붐’이 일었던 시기였다. 반도를 훌쩍 떠난 글로벌 노마드들은 전세계를 누볐다. 2020년을 강타한 코로나19 전염병 사태로 세계가 멈춰서고 국경이 막힌 작금의 상황에서 보면 드라마틱한 역사의 변곡점 하나를 지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지난 10년 간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다른 사회가 궁금했고 보고 느끼고 싶었다." <모던 대학 코번트리, 도시를 바꾸다>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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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와 봉쇄, 거리두기로 점철된 2020년, 어찌보면 과하다 싶었을 정도로 해외에 대한 관심과 여행이 붐이 일었던 지난 날들을 복기하며, '각자의 방'에서도 볼 수 있게끔 다른 나라의 풍경과 사연을 나누고자 합니다. '전환마을'(Transition town)로 알려진 영국의 시골마을 토트네스에 다녀왔던 순간들을 전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지역공동체... 토트네스와의 만남
“속도를 늦춰 나에게로 돌아오는 삶...”
한마디가 깊게 각인되는 순간이 있다. 토트네스는 한 주민의 음성으로부터 다가왔다. 우연찮게 본 다큐멘터리 속 토트네스와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모습은 대도시의 번잡함과 소비적 삶에 익숙한 우리들의 일상과는 많은 차이를 나타내는 듯 보였다. 토트네스에 가보고 싶었다. 속도를 늦추는 삶, 나에게로, 우리에게로, 일상을 자연과 더불어 몰입하는 삶이 펼쳐지는 곳.
지난 2016년 2월, 하던 일에 속도를 늦추고 ‘자체 안식월’ 삼아 영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런던에서 서쪽행 열차를 타고 토트네스로 향했다. ‘프로그램화’된 탐방 보다는 단 며칠이라도 그저 일상을, 우연한 만남에 기대어 지내보고 싶었다. 그렇게 여행인 듯도하고 견학인 듯도하고 일상인 듯도한 토트네스에서의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토트네스는 영국 남서부지방 데본주에 위치한 인구 8,500여명의 농촌마을이다. 이 작은 지구건너편 마을이 우리에게도 알려지게 된 계기는 활발한 전환마을(Transition Town) 운동의 전개 때문이다. 여기서 ‘전환’이라는 키워드는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인 재앙의 흐름을 바꿔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특히 전환마을은 마을에서, 주민과 공동체가 주도해 밑바닥에서부터 이 운동을 능동적으로 선언하고 시작해나가자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토트네스 사례는 지속가능, 친환경 농업과 먹을거리, 환경운동 등의 테마와 밀접하다. 또한 ‘전환’이라는 대안적 주제는 보다 더 다양한 그룹들과의 통섭과도 연결이 된다. 음악, 예술, 자연주의 운동, 뉴에이지 공동체 운동 등 대안을 꿈꾸는 다양한 흐름과 문화들이 뒤섞여 오늘날의 토트네스를 형성해내고 있다. 그리하여 “보헤미안 라이프 스타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위키피디아) 있기도 하다. 이러한 다양성은 흙냄새 나는 농촌스러우면서도 트랜디하고 문화적이고 모던한 토트네스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토트네스 파운드(지역화폐)로 하루를 유람하다
시내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토트네스성 방향의 완만한 경사로 이어진 시가지 길을 걸어 오른다. 주위로 온통 초원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시내는 바쁨과 혼잡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다. 줄지어 이어진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다 쓸 것만 같다. 로컬 푸드를 다루는 식료품점부터 제각각 자기 이름을 가지고 있는 아담하고 건강한 카페, 식당들, 다큐멘터리에서도 봤던 근사한 수제화 가게, 맥주와 수다로 가득한 펍(대중술집)까지, 이방인의 눈엔 모든 것이 호기심이다.
특히 각종 비영리기관(옥스팜 등)에서 운영하는 재활용 가게가 연이어 많이 보인다. 영국은 이런 가게들이 많이 있다고 하지만 유독 토트네스 거리와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실제 토트네스 전환마을 활동의 여러 주제 중 하나는 REconomy다. 재사용, 재활용 등의 의미를 담은 ‘Re’를 붙인 표현).
상점들 곳곳에는 지역화폐 ‘토트네스 파운드’(Totnes Pound)를 받는다는 녹색 스티커를 붙여놓은 곳들이 자주 보인다. 약 200여곳의 지역상점에서 동참하여 지역순환경제를 일구려는 시도다. 지역화폐는 초국적, 대자본에의 휘둘림을 완화시키고 지역사회 내부로 돈을 순환시키고 투자하게끔, 그리하여 지역경제의 자치성을 놓지 않게끔 하려는 실천이다. 상점 중 ‘발행처(Issuing point)’라고 붙여진 곳에서 이 지역화폐를 구할 수 있다.
보자마자 들어가서 영국 정규화폐인 파운드화를 ‘토트네스 파운드’로 환전한다(비율은 1:1이다). 이 마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돈이다. 꼭 어릴 적 소꿉놀이할 때 쓰던 장난감 화폐처럼 아기자기한 돈이지만, 토트네스 주민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상당 부분 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생필품부터 식당, 다양한 소비재까지, 많은 상점들이 지역을 살리는 화폐 발행과 소비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화폐로 결제하면 상점별로 동참해 5% 할인, 10% 할인, 보너스 메뉴 제공 등의 행사를 하기도 한다. 또한 모바일 트렌드에 맞춰 전자결제 기능까지도 탑재하여 운영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 언론기사를 보니, 그린라이프(친환경상품 매장)의 한 점원은 “2년 전까지만 해도 10%에 불과했던 토트네스 파운드의 결제율이 30%에 이를 정도”(농민신문, 2017.10.11)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토트네스 주민과 활동가들은 로컬 푸드와 지역화폐 등은 생산과 소비를 자연친화적으로 연결하여, 일상 안에서 변화에 한걸음씩 동참하는 ‘뚜벅이’들의 실천이란다. 골목상권까지 모조리 획일적으로 장악해가는 ‘얼굴 없는’ 거대자본에 맞서서 지역사회의 주도권을 되찾아(take back control)가는 움직임이란다. 꼭 그렇게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 여행자로서는 그저 동네를 제대로 유람하면 되는 것이다.
걷다가 보이는 토트네스 파운드가 붙은 초록빛 간판의 카페에 들어간다. 추운 날씨에 몸을 녹일 수 있는 잉글리쉬 티와 로컬 채소로 만든 샌드위치로 오후의 허기를 따뜻이 채운다. 이어 지역화폐를 쓸 수 있는 재활용 가게에 들른다. 영국의 뼈를 스미는 추위에 보탬이 될만한 옷을 하나 고른다. 날이 어두어지자 분위기 있는 채식 레스토랑을 찾아 로컬 푸드로 만든 저녁만찬을 그날 초대한 지역뮤지션의 리듬감있는 노랫소리와 함께 느긋하게 즐긴다. 토트네스를 거닐며 토트네스에서만 순환되는 돈으로 여행한 하루였다. 토트네스 파운드를 쓸 때마다 부지불식중에 유유한 전환운동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특별한 행동은 없었지만 잘 소비하는 것만으로 변화에 동참한 셈!
[다음 편에 계속] https://brunch.co.kr/@jmseria/19
이 글은 <ARTRAVEL TRIP.42>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