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옆 조용한 동네의 변화
내가 살고 있는 서교동은 주거지다. 성산동과 인접한 조용한 동네에 있다. 홍대입구역에서 동네로 걸어올수록 데시벨이 줄어든다. 쿵쾅쿵쾅 빠른 힙합 비트에서 느릿한 재즈 연주로 내려가는 음악을 듣고 있는 느낌이랄까. 1번 출구에서 예전 청기와 주유소가 있던 자리의 높다란 L7호텔을 뒤로하고 걷는다. 강원도민회관과 아만티 호텔을 지나 대우미래사랑아파트, 더 걸어 들어가면 낮은 집들이 이어져 있는 서교동의 끝자락, 성산동이 시작되는 경계 직전까지 간다. 어느 순간 쉼표가 찍힌 듯 번화함이 소멸된다.
보통 연상하는 서교동은 홍대다. 홍대와 그로부터 파생된 상권, 거리, 인파, 시끌벅적, 떠들썩함을 떠올린다. 그러나 홍대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으면서도, 이상하리만치 꽤나 동떨어져 있는 기분마저도 드는 조용한 동네다. 시간, 초단위로 바뀌는 '핫플'의 낯섦과 변화를 바라보며, 골목을 걸어 들어가 익숙한 일상을 산다.
"거기, 잘 알죠.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였어요.”
합정에서 생태환경서점(에코슬로우)을 운영하는 책방지기 선생님을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이다. 원룸 크기 될까 한 작고 소박한 독립 서점에 서너 명이 조용히 둘러앉아, 환경이슈를 다룬 영어기사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 자리에서였다. 사는 곳을 이야기하자, 책방지기님 자신도 이 근처에 산 적이 있다며 반가워했다.
“정말, 조금만 걸어 나가면 시끄러운 곳들이 많은데, 그곳 일대만 섬처럼 동떨어져 조용했던 느낌이랄까.”
홍대나 합정 번화로의 차려입고 뽐내고 들썩이는 분위기에서 내려와, 무대 뒤편 아래로 힘을 빼고 넥타이를 푼 채 ‘생얼’로 돌아다니는 곳. 열광과 번잡함이 덜 침투한 주거지. 이벤트보다 일상을 사는 순간이 많은 주민으로서의 사는 용도로는 집객 효과로 가득한 곳보다는 시끄럽지 않고 너무 튀지도 않는 곳이 좋다.
집 앞에는 구멍가게와 세탁소, 이발소, 약국이 한 모퉁이씩을 차지하고 있었다. 요즘 웬만한 서울의 동네에서는 사라졌음 직한 1980~90년대풍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올법한 세월을 지닌 가게들이다. 역으로 말하면, 한산한 동네 권역에 들어가 있지 않은 핫한 중심가라면 진작 간판 내리고 문 닫았을 곳들이다. 동네가 뜨는 조짐이 보이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곳. 스마트폰 지도앱이나 SNS 상에는 존재 자체를 인지하기 힘든, 주민이 주로 찾는 오래된 동네 장사 위주의 가게다. 이사 와서부터 여태까지 살면서, 그다지 변하지 않고 어릴 적부터 보아온 익숙한 가게들 간판을 한 번씩 바라보며 ‘이제 다 왔구나’를 체감하며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단번에 모조리 밀어버리고 새로 지어 올리는 식의 재개발을 하지 않은 동네는 완만하게 변화하는 법이다. 유행의 민감함을 한껏 품었다는 홍대나 서교동 일대도 변화의 속도가 같지는 않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 들어오는 자그마한 골목상권 거리 역시 과거 (지금보다 더)한적했던 시절부터 남아 있는 가게들이 여럿 있다. 생선구이집, 떡집, 백반집, 전집, 참기름집, 금은방, 미용실, 꽃가게 등 꽤 오랫동안 자리 잡은 가게가 이어져 있다. 홍대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서울에서 아파트가 올라서지 않고 여전하게 남아 있는 가장 보통의 동네를 걷는 기분. 거리에서 집으로 걸어오며 맞이하는 풍경은 크게 변한 게 없다. 여느 때처럼 귀가를 맞이한다.
조용한 동네의 변화
어느 날, 변화가 시작되었다. 집 바로 앞, 구멍가게(J마트)가 있던 단독주택 건물을 허물고 투룸 빌라를 지어 올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게를 운영하는 아주머니는 주택의 1층 창고 공간 같은 곳을 활용해서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해왔다. 집 주변으로 각종 브랜드의 편의점이 하나둘 늘어나고 아예 골목 건너마다 촘촘히 생겨나면서 장사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터이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단골 위주로 근근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지나가다 그곳을 바라보면, 아주머니, 할머니,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아버지는 그 가게에서 소주를 사 가고는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하는 일 없이 매일 같이 소주를 사다 마셨다. 어느 날 내가 가게에 들렀을 때, 아주머니는 말했다. 아버지가 술을 너무 많이 사 간다고. 그만 드시라 하라고. 내 말을 들을 리 없는 그였다. 그래도 신경 써주는 말이라도 고마웠다. 언젠가는 아버지와 함께 그 가게에 들렀다. 아주머니는 아버지를 보더니 등짝을 손으로 가볍게 치며 “아이고, 이제 술 좀 그만 드소”라고 웃으며, 그러나 진지하게 말했다. 아버지는 알겠다며 웃었지만, 그 후로는 눈치가 보이는지 그 가게에서는 더 이상 술을 사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 술을 살 수 있는 가게와 편의점은 널려 있었다.
급하게 집에 손님이 오거나 할 때면 J마트에서 과일을 샀다. 지갑을 놓고 오면 “됐어, 나중에 줘”라고 말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외상을 해주고는 했다. 마지막으로 가게에서 산 것은 복숭아였다. 아주머니가 아는 농장에서 철마다 직접 가져온다고 했다. 집으로 들어가면서, 과일을 좋아하는 아내와 더불어 한 상자 사 들고 갔는데 그날도 외상을 했다. 깜빡 잊고 있었다. 한동안 일이 바빠서 밤늦게 들어와 집에서는 잠만 자며 지냈다. 어느 날 마트 간판이 사라졌다. 단번에 포클레인이 주택을 허물고 있었다. 몇 달 동안 공사 소음으로 아침마다 시끄러웠다.
오늘, 이제 집 앞 구멍가게는 없다. 동네에 오래 거주하던 어르신들이 주로 찾던 자리에 이제 젊은 1~2인 가구를 타깃화한 투룸 빌라가 들어섰다. 세월에 따른 변화일 수도 있고, 자본의 경쟁 흐름에 따르자면 진작 없어졌어야 할 허름하고 작은 점포였다. 아마도 동네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했고 주민들과도 안면이 널리 있으며 집주인과도 오랜 관계를 맺어왔기에 여태까지라도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세탁소 앞에서 아주머니를 다시 보았다. J마트가 있던 자리 바로 앞이기도 하다. 세탁소와 구멍가게는 양 모퉁이에 나란히 붙어있었는데, 저만치 들어오는 길에서 보면 짝을 하나 잃은 느낌이다. 그녀는 복숭아 상자를 한가득 가져와서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노상 판매를 하고 있었다. 몇십 년 운영했을 가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이제 아주머니는 거리에 섰다. 집에 들어가던 나는 아주머니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오 그래, 잘 잘 지냈소? 요새 아버지는 술 좀 안 드시고?” 순간, 지난번에 못 드린 외상값이 떠올랐다. 바로 집으로 뛰어 올라가서 현금을 가져다가 건네주었다. “아, 그랬던가…” 아주머니는 그것도 잊고 계셨다.
셈이 느리고 술을 그만 먹으라고 말해줄 수 있는 가게는 편의점이나 프랜차이즈에 없다. 변화가 아쉬운 순간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