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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주민 Jul 13. 2021

리치몬드의 기억

달콤함에 홀려 살던 날, 사라진 홍대점과 그 후

리치몬드 제과 홍대점에 처음 들어갔던 순간이 떠오른다. 2000년대 중후반 무렵, 아직 대학생이던 시절이다. (난 이 무렵 처음 서교동 주민이 되었다)


이국적인 빵 냄새가 짙게 느껴졌다. 지금껏 모르던 낯선 세계로 들어온 기분에 휩싸였다. 우아하고 엔틱한 유럽풍의 분위기와 함께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거대한 거무스름한 호밀빵(썰어서 가지고 가던)이 우선 눈에 띄었다. 바움쿠헨, 가또피리네 등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신기하고 한 겹 한 겹 만드는데 정성이 들어갔을 법한 고급스러운 빵도 눈에 들어왔다. 사방에 펼쳐진 각종 쿠키, 과자, 케이크류가 오감을 어지러이 자극했다. 하얗고 기다란 모자를 쓰고 밀가루 반죽을 하는 제빵사들 모습도 엿보였다. 정통의 맛을 선사할 것 같은 리얼함을 더했다.


빵에 대해 잘 몰랐다. 나중에 여행을 좋아하게 되면서, 언제부턴가 대중적으로 유럽여행 붐이 터지면서 와인, 맥주, 치즈 등과 더불어 유럽식 빵이나 디저트류가 널리 알려지곤 했지만, 당시만 해도 나는 물론 주위 사람들도 제대로 알진 못했다. 동네 제과점이나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의 한국화 된 익숙한 빵을 주로 접해왔을 뿐이다. 물론 빵을 좋아하고 제과에 조예가 깊었던 사람들이야 그렇지 않았겠지만, 적어도 내게 리치몬드는 새로운 세계였다. 그리고 공산품이나 프랜차이즈의 냉동생지를 쓴 빵과 다른 깊은 맛과 달콤함에 빠져들었다. 서울의 3대 빵집으로 불렸다는 사실도 그제야 알았다. 유명하다는 슈크림은 정말로 진하고 럼(rum)향이 곁들여 느껴지면서 품격 있게 달콤했다.

최근에 성산본점에서 찍은 샷. 홍대점이 있을 당시에는 1,500원인가 그랬다.


당시 나는 무언가에 결핍되어 있었다. 이전에는 별로 좋아하지도 즐겨 먹지도 않았던 빵류였다. 그런데 흡사 중독된 사람처럼 강하게 뇌리와 입맛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리치몬드를 맛본 이상, 프랜차이즈 빵은 구미에 들어오지 않고 성에 차지 않았다. 사실 그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젊은 날 앓았던 극심한 소화불량으로 엄격한 식생활을 유지하며 살았다. 밀가루는 일절 제한했고, 야채와 곡류 위주로 반 공기 정도의 소식을 해왔다. 그 이상 먹으면 더부룩할 정도로 소화력도 좋지 않았다. 계속 약을 먹어도 낫지 않자, 학교 도서관, 그리고 집에서 가까운 마포평생학습관 자료실에서 자연치유 책을 몽땅 찾아보며 자구책을 모색했다. 책에서 일러준 대로 몸을 비우고 소화기관에 휴지기를 주고자 열흘 가까이 단식을 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별다른 차도가 없자, 어느 순간부터 절망에 휩싸였던 것 같다. 자포자기는 요요현상과 같은 거대한 반작용을 불러왔다.


달콤함에 홀려 살다


그날 리치몬드 홍대점에 들어갔던 게 화근이었을까. 우연이었을까 필연적인 끌림이었을까. 시식 빵으로 맛을 본 순간의 달콤함은 강렬하게 짜릿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리치몬드에 수시로 들러 빵을 사다 먹었다. 설탕과 버터로 빚어진 빵은 소화가 잘되지 않았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단숨에 느껴지는 갈망은 흐트러진 이성과 자기 관리를 이겼다. 먹을 땐 달콤했지만, 먹고 나면 더부룩해서 후회스러웠다. 거식과 폭식이 병적인 습관으로, 파리한 자제력을 짓누르며 휘몰아쳐가는 이유를 알았다. 누적된 결핍이고 도저히 마음먹은 대로 주체하기 힘든 스스로를 망치는 반작용이었다. 학생이었고 이후 사회초년생 돈을 많이 벌 때도 아니었지만, 아르바이트나 일을 해서 돈을 벌면 다른 건 아끼더라도 빵값은 조금 더 들여서 리치몬드로 갔다. 밥 대신 먹는 날도 잦았다.


그렇게 홍대점과 성산본점을 오가며 빵을 흡입했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집으로 향하는 1번 출구가 아닌 건너편 9번 출구로 올라갔다. 번화한 홍대 거리를 걸어가 유명한 철판볶음밥집을 지나서 바로 보이는 리치몬드로 들어갔다. 빵 몇 개를 골라서 산 뒤, 큰 차도인 양화로를 건너서 집 방향으로 내려왔다. 하루는 슈크림, 또 하루는 초코크림, 다른 날은 갓 구워져 나온 크루아상, 뺑오쇼콜라, 또 다른 날은 버터와 계란을 듬뿍 넣어서 반죽했다는 브리오쉬, 어떤 날은 카스테라나 끈적한 파운드케이크를 샀다. 펌퍼니켈, 폴콜브로트, 코작켄, 이런 이름이 붙은 버터가 들어가지 않고 건강해 보이는 시골스러운 유럽식 빵도 간혹 사다먹었다. 잼이나 치즈, 버터와 곁들여 먹으면 깊고 맛있었다. ‘과자빵’에서 느껴지지 않는 진한 호밀과 밀가루 반죽의 풍미가 전해졌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어느 날이었다. 하얗게 슈가파우더로 뒤덮인 채, 진한 숙성의 맛을 간직했을 법한 아우라를 발산하는, 랩으로 신비롭게 싸여 있는 생소한 빵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은 슈톨렌. 독일에서 성탄을 기다리며 먹는 빵이란다. 오랫동안 숙성시킨 건과일, 견과류를 넣어 반죽해 만들었다고 했다. 호기심에 한 덩어리 집어 들고 집에 와서 썰어 먹었다. 겉 표면은 눈에 흠뻑 맞은 듯 설탕가루로 하얗게 뒤덮였고, 맛은 끝내주게 달콤했다. 얕은 단맛하고는 달랐고 깊고 짙은 풍미의 달달함이었다. 버터와 절인 과일, 견과류와 함께 입안을 가득 채웠다. 요즘에는 그래도 슈톨렌이 자주 보이기도 하지만, 2000년대 중후반 당시에는 상당히 드물었다. 리치몬드는 전혀 빵에 대해 모르던 나에게, 일반적인 대중 수준에서는 아방가르드의 제과류를 선사했다.


얼마 전 성산본점에 들렀을 때 찍은 사진


집에 있을 때면, 홍대점보다 조금 더 가까운 성산본점으로 향했다. 성미산 약수터 쪽으로 가다가 경성고교 4거리에서 길을 건너면 바로 당도했다. 홍대점보다 넉넉한 공간이었고 앉아서 먹을 수 있는 라운지도 넓었다. 2층에는 베이커리 학원도 있었다. 어느 날인가, 본점 앞에 ‘우리는 이제 구례산 우리밀로 빵을 만듭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붙었다. 빵을 먹을 때마다 위장 건강이 염려되었는데, 우리밀은 우리 몸에 잘 맞고 낫지 않을까, 글루텐도 적게 함유되었다고 하고. 역시 리치몬드에 가는 건 옳다! 좋은 재료를 써줘서 감사한다는 메시지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남겼다. 그러자 답장이 왔다. “고객님, 감사합니다. 보내주시는 관심과 사랑 잊지 않고 계속 좋은 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대략 이런 말이었다.


사라진, 많아진, 발길이 줄어든


그 후 서른 즈음 서울의 다른 곳으로 나가 홀로 자취해 살면서부터는 자연스럽게 리치몬드에 가는 횟수가 줄었다. 그러던 어느 날 리치몬드 홍대점이 문을 닫는다는 뉴스를 들었다. 어랏, 진짜인가? ‘홍대 명물 리치몬드 제과 폐점, 그 자리에 대기업 커피점 들어서’ 등의 언론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2012년 1월 말일부로 30여 년간 홍대 앞 그 자리를 지키던 빵집은 사라졌다.


2012년 당시 홈페이지 등에 올라온 폐점 공지


그리고 대기업이 운영하는 엔젤리너스 커피 체인이 들어섰다. 가파른 임대료 인상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고 했다. 규모 있고 유명하고 잘 알려진 빵집조차 버티지 못한다면 다른 중소상공인은 오죽했을까. 이후로도 리치몬드가 있던 홍대입구역 4거리에서 홍대 정문으로 올라가는 상권 거리는 국내외의 유명한 브랜드들이 하나둘 들어서며 차지했다. 스파오, 포에버21, H&M, 뉴발란스 등 대형 브랜드나 프랜차이즈가 간판을 달고 장악해나가는 쇼핑거리로 가파르게 변해갔다.


좋든 나쁘든 시간과 돈과 경험을 들인 공간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순간에는 애석한 감정이 밀려온다. 나는 리치몬드 홍대점에 몇 번이나 드나들었을까. 성산본점과 합친 것이지만, 살 때마다 적립해주었던 포인트가 5만점 가까이 있었다. 아마 중간중간 사용한 것도 있으니 그보다 많았을 것이다. 그것으로 나중에 성산본점에 들러 친구의 생일 케이크를 사다 주었다. 물론 다들 아주 만족해하며 먹었다.


요즘 동네 주변에는 빵집이 많아졌다. 

리치몬드 홍대점이 있던 중심가 말고 주로 골목 안으로 들어와 있다. 지난 10여 년 사이 우후죽순 정말 많이 늘었다. 빵은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훨씬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음식이자 간식, 식사대용, 후식이 되었다. 저마다의 콘셉트, 개성을 뽐내는 작은 가게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글로벌화를 타고 해외에서 경험하고 배워온 사람도 많아졌고, 본토보다 더 근사하게 해석하고 토착화시켜 가게를 연 젊은 사장님들도 등장했다. 내가 찾는 발걸음을 기준으로, 독보적이던 리치몬드의 위상도 조금씩 낮아졌다(기보다는 평평해졌다). 대기업이 홍대점을 밀어냈다면, 이제 동네 곳곳에 흩뿌려진 작은 빵집들이 리치몬드로 향하는 발길을 분산시키고 있다. 물론 여전히 리치몬드는 인기가 많다. 주말이면 성산본점 앞에는 차를 타고 와서 길가에 대놓고는 빵을 한가득 사서 가지고 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더 작은 가게로 간다. 집에서 가깝고 맛도 있는, 더불어 나와 맞닿은 개성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푸근하고 소박한 동네 빵집을 자주 가곤 한다. 울림두레생협 성산점 건너편에 있는 ‘키다리 아저씨’가 그러하다. 좋은 재료에 맛까지 있고, ‘공동체 가게’에 동참하여 지역화폐를 받아주는 작지만 사랑스러운 빵집이다. 이곳의 앙버터나 바게트류, 스콘, 크림빵은 일품이고 가격도 질에 비하면 착하고 부담스럽지 않다. 망원역 가는 길에서 보이는 ‘그랑블레’도 그렇다. 우리 토종 앉은뱅이밀을 쓴다. 치아바타, 곡물빵 등 시골 느낌이 나는(러스틱, rustic) 건강한 빵 위주로 구워서 내놓으며 담백한 맛을 낸다. 친환경제품을 파는 동네 생협과 연결해 소비자들과 만나기도 한다. 두 곳 모두 리치몬드보다 저렴하다. 재료는 분명 더 좋은 것들을 쓰는 듯하다.


그렇게 이제 리치몬드를 자주 가지 않는다. 다행히 결핍이 어느 정도 치유가 되었는지, 걸신들린 듯 빵을 흡입하지도 않는다. 리치몬드가 싫어진 건 아니지만 발걸음이 현저히 줄었다. 습관처럼 가서 달콤한 빵을 사 들고 오지도 않는다. 가끔 생각나서 먹고 싶을 때만 간다. 아니면 내가 먹기보다, 친구나 동료, 친척에게 선물해주거나 사다 먹이고 싶을 때 간다. 유서 깊은 홍대, 성산동 빵집 리치몬드에서 사 왔다고 그러면 ‘평타’ 이상은 친다. 여전한 슈크림을 사 들고 가서 풀어놓으면 환호를 받는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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