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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주민 May 07. 2022

만약, 2세가 없다면

마흔으로 향하는 감정선, 나도 기울어갈 것인데

나는, 순진했다. 몰랐거나.


그녀는, 나보다  순진한 사람인  같고(가끔 보면 정말, 어떤 면에서는 인간계에 있지 않은  같기도.... 사실 그런 면에 끌렸을 것이다^^). 나이는 편견일 뿐이라 여겼다.  나이차  나는 연상남은 한번 끄덕하고 넘기는데, 연하남은  꺼내기 무섭게 눈이 휘둥그레지고 갸우뚱할까. 나는 숫자나 생물학에 게의치는 않았다.   없고   없는 feeling 이끌려가는 사람. 감정은 분명했으며 그때 만남은 전혀 예기치 못했지만 우연인  운명 비슷했고 선택은 롸잇 했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관계의 모습은 그대로 박제된  남아있지는 않는다. 날씨가 요동치고 계절이 순환하고 무르익듯 변한다. 로맨티시즘으로 올라갔던 아우라의 무게추가 점차 내려와 뭉근하게 자리를 잡는다. 일상적 관계로 기울어간다. 언젠가, 집에서 흐트러진 차림새로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다가 그녀가 불쑥 말했다. 우린 이제 친구야.... 피식 웃음이 났다. 오래된 커플들이 농담처럼 던진다는, 가족끼리  이래,  그녀 버전인가. 편하고 서스름 없는 동반의 관계로 변모하여 , 자연스러운 궤도로 생각한다.


아이는 있으면 좋고 없는 거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크게 고민하지는 않고 살아왔던 것일까. 세월은 흐르고, 이제, 내가 결혼 당시의 그녀 나이까지 어느새 훌쩍 와버렸다. 그리고 올해 유독 정신이 번쩍 든다. 초반에 어떻게든 승부를 봤어야 하는 것이다. 계속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생의 단계에서 다른 걸 미뤄둘지언정 ‘최최최’ 우선순위로 설정하고 매진(?)했어야 하는 것이다.


30대 초중반의 나는 나이브했고 실제 잘 몰랐다. 급하지 않았으며 이런 식, 저런 방향으로 펼쳐지는 삶의 모습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지, 저럴 수 있지, 요럴 수도 있지.... 쿨했다. 나이 들수록 절실히 느끼는 건, 모든 건 때(timing)가 있다는 것이다. 때를 놓치면 아예 불가능한 것들이 있다. 나는 나이를 고려하지 않는 개방적인 사람일지 몰라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시간이 흐르고, 더 나이가 들면 나도 점점 하나둘 히끗해지고 탄력을 잃어가며 어딘가 삐끗, 덜거덕 거리는 곳이 생길 것이다. 나의 존재도 무상한 세월 속에 빛이 바래고 파리하게 소멸해갈 것이다.


2세를 바라고 갖는 건, 유한한 생명체가 지닌 연결과 영속에 대한 그 어떤 본능의 영역일 게다. 물론 인간이기에 그것마저도 선택일 수 있다. 자기 결정이자 선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라도, 어느 순간 강한 리비도가 일상을 휘감아버릴 정도로 몰아칠 때. 청년기의 다음 단계로 이행 중인 나의 생물학적인 상황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요즘 들어 조급함과 공허함이 뒤섞인, 생의 층계에서 점핑하지 못한 채, 계단 아래에서 어정쩡하게 맴도는듯한 눌리고 잠겨버린 감정에 종일 멍할 정도로 휩싸인다.


#나무

착상에 성공했다고 듣고 온 날, 그녀는 캘린더에 ‘나무’라는 글귀를 써놓기 시작했다. 그날이 4월 5일 식목일이었던 것이다. 난임 병원에 들러야 하는 날, 무언가 검사, 점검해야 할 요일이면 캘린더에 나무, 두 글자가 들어앉았다. 나무, 나무, 나는 그 글귀가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녀에게, 아이를 정말 좋아하고, 길에서 마주치는 아이만 봐도 저절로 미소를 짓고 어쩔 줄 몰라하며 생면부지 애들에게 말을 거는 그녀에게 아이를 안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나무는 뱃속에 내려앉지 못하고 가냘픈 채로 사라졌다. 일 하다가 나와 다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갔다. 힘없이 누워있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다독이며 괜찮아, 괜찮아.... 를 되뇌었다. 그날 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일어나 앉았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참을 울었다.


가슴이 아릴 정도로 슬펐지만, 그때만 해도, 아이를 안겨주고 싶다, 는 생각이 앞서긴 했지만, 설사 잘 안된다 하더라도, 2세가 없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그려보진 않았던 거 같다. 이제 나도 불혹으로 향하고, 그래서인지 더욱 어떤 코너로 몰려가는 것 마냥 커다랗게 직감하는 것일까. 다시 도래할 수 없는 ’때’가 이대로 곁을 지나쳐 영영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물론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다.



이제, 나는, 우리는, 자발적 딩크가 아닌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있더라도, 없더라도 행복할 수 있을까. 불혹은커녕 여전히 인생은 안갯속 같은 미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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