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 끝 고흥으로의 '이주 시기' 마주한 풍경들
#서울을_떠나며
센트럴시티에서 고흥행 고속버스로 서울을 떠나며... 올해 7월은 내게 여러모로 특별한 달이다.
(고흥에서 어촌신활력증진사업 추진 준비가 임박해, 이삿짐 트럭에 앞서 몸만 태워서 내려왔다)
ps. 강남 센트럴시티 호남선 터미널 고속버스는 서울과 고흥을 직통으로 잇는 유일한 대중교통 노선이다
만 나이 통일을 한다고 해서 잠시나마 30대로 슬쩍 돌아갔는데, 7월생인 나는 며칠 안가 다시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 아무리 붙잡으려 용써도 나의 청년기는 흘러가는구나. 숫자뿐 아니라 몸도 마음도, 사회적 역할과 관계도 그렇게 변했다고 신호 보내는 요즘. (그런데 고흥에 오니 다시 청년으로 되돌아갔다^^ 이야기는 후술)
서울 주민으로서의 마지막 시간을 부여잡는 날들...도 이제 멀어져 간다.
고흥 일은 본격화 중이고, 오늘은 몸만 내려가지만 모레면 왕창 짐 싸들고 내려와 둥지를 튼다. 군생활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서울 이외의 곳에 주소지를 두고 사는 삶이 기다리고 있다. 과잉과 혼잡 혹은 다양성이 교차하는 대도시 한복판 동네에서, 감소와 정적 혹은 대자연의 풍요가 대비되는 반도 끝 남도로 향하는구나.
(뭐, 이런 변화, 생의 층계에서 맞이하는 경로 전환과 다이내미즘. 인생의 나그네길에서 결행한 길이니 흥미롭게 받아들인다. 사실, 수십 년 전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며 ‘서울로, 서울로’ 향하던 시절, 농경사회를 살다가 상경한 어른들도 나와는 역방향으로의 드라마틱한 근거지 변화를 체감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래봐야 같은 코리안 하늘 아래고 내려가더라도 종종 들르겠지만, 일단락 지으며 막장을 넘기는 순간이 주는 감정의 동요가 있다. 공기와 같이 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던 일상들, 망원역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어스름한 퇴근길, 군집한 낮은 빌라와 단독주택, 오래된 집을 개조해 ‘힙’한 분위기를 입은 상점이 섞여 있는 서교동 골목을 터벅터벅 걸을 때 발밑에서 느껴지는 이 동네의 질감을 평소와 달리 묵직하게 느꼈다. 이 걸음도 이제, 꽤 오랫동안 없겠구나.
모두 퇴근하고 텅 비어있는 일터(지역자산화협동조합) 서울 사무실에서도, 자주 무미건조하게 오가며 쳇바퀴 같이 느끼던 곳. 짐 싸들고 나오다가 멈춰 섰다. 비어있는 동료들 자리에 하나씩 길게 눈길을 남긴 채(당신들은 모르죠?), 안녕, 여기도 멀어지겠구나... 생각하며 어둑해진 보문로 거리로 나왔다.
휘몰아친 장맛비와 더불어, 올여름은 내 생의 향배에도 커다란 진동과 변화를 야기하는 중이다.
#소멸위기 지역에 주민등록을 하다
결국, 마침내, 7월부로 고흥군 주민이 되었다.
이사하고 읍사무소에 들러 전입신고까지 마쳤으니 여하튼 쉽게 되돌리기 힘든 '빼박' 상황이 된 셈인데, 굳이 가족사를 언급하면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와 고모, 친척들이 이곳을 떠나 서울에 터를 잡은 지 거의 반세기 만에... 이촌향도의 그 시절과 지역소멸 위기감이 고조되는 오늘을 교차하며 나로선 살아본 적 없는 최남단 땅으로 회귀하여 들어왔다. 늘 소수파인줄만 알았던 ‘송’씨가 이렇게 많은 동네는 처음이고, 할머니들의 구수한 말투와 남도 음식에 깃든 익숙하고 진한 풍미에서 체득되는 정감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이삿짐이 좀 정리되니, 이제 사람 사는 집 같아지고 있다.
고흥터미널 근처에 전셋집을 얻었는데 가까이에 편의점, 마트, 카페, 식당, 병원 등등 다 있어 아직 불편한 건 없다. 물론 거리가 전반적으로 ‘올드’한 분위기이긴 하다. 굳이 레트로 감성을 흉내 내려고들도 많이 하는데, 여기는 그 자체로 과거의, 사라진 줄 알았던, 여전한 간판(예컨대 어릴 적에나 보던 목욕탕 표기 스타일!!)과 상점 분위기(굳이 과한 자본주의 미소로 응대하는 것이 아닌, 이웃 아주머니의 동네 장사, 단골을 대하는 느낌이랄까)가 꾸며지지 않은 채로 그득하다.
서울을 준거점으로 비교하면 대략 응답하라 80-90년대 정도로 돌아간 듯 시차가 느껴지는 읍내 거리(이곳에선 가장 번화한 도시 지역이다!) 분위기이긴 하지만, 이 또한 지역의 모습이고 다름일 것이리라.
#자연! 로컬살이의 매력
어디서든 달리면 바다, 산, 들이 펼쳐진다.
고흥에 와서 가장 명징하게 체감되는 변화가 있다면, 단연 자연에 근접해 사는 삶이 된 점이다. 이곳은 ‘시골’, ‘촌’이라 불리는 곳 중에서도 다양하고 다이내믹한 자연 광경을 품은 곳이긴 하다. 바다와 수많은 섬, 변화무쌍한 남해안 특유의 해안선은 물론 육지의 산(뷰), 논(뷰) 모두를 품은 땅이니.
우후죽순 솟은 고층 빌딩과 콘크리트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확 트인 하늘과 바다, 자연광이 그대로 투영되는 숲과 산, 들판을 마주하며 지낸다. 소음과 잡음이 일상에서 멀어졌고 파도, 물결치는 소리, 바람소리, 새 울음소리, 간혹 들리는 확성기 소리(마을방송)가 배경음처럼 가까워졌다.
교통체증 없이 뻥 뚫린 한가로운 출퇴근길은 더없이 평온하다. 맑고 흐린 날씨에 따라 다르게 펼쳐지는 하늘, 태양빛의 색감과 구름의 모습, 물때에 맞춰 회색톤 뻘이 되기도 파랗게 물이 한껏 충만해지기도 하는 바다…. 도시의 혼잡과는 전혀 다른 자연이 품은 베리에이션을 곁에 두고, 눈으로 귀로 가슴으로 담고 감탄을 내뱉는다. 지금은 무엇을 봐도 신비로운 허니문 같은 기간인지라 더욱 감탄사가 잦을 것이다.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여름날 맞은 주말. 고흥 반도의 서쪽 라인인 고흥만 수변노을공원에서 야외 난타공연을 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느지막한 오후 차를 몰아 서쪽으로 불쑥 달려갔다.
K-pop 공연이라는데 클론의 ‘꿍따리샤바라’가 연주되는 시차는 어쩔 수 없는듯했지만(전문 공연팀이라기보다 주민, 다문화 동아리에서 준비한 것이기도 했고), 아! 그 뒤로 펼쳐진 해질녘 광경은 무엇이란 말인가. 따로 무대를 차리지도 않았는데, 주황빛 그라데이션 톤으로 물들어가는 하늘과 바다, 노을을 배경 삼아 자체로 절경을 선사하며 공연을 수려하게 장식한다.
이건 다름이라기보단 ‘우위’ 일 것이다. 자연이 무상으로 선사하는 로컬살이의 매력이랄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