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기만 하던 사람들에게]

2. 쉬어도 회복이 안 되는 사람의 신호

by 신정미

일요일 저녁이었다.

나는 “쉬는 날”을 거의 다 써버린 사람처럼 소파에 파묻혀 있었다. 분명 낮에는 아무것도 안 했다. 침대에서 뒹굴고,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하고, 배달음식을 먹고, 또 눕고. 그런데도 몸은 가볍기는커녕 더 무거워졌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려고 팔에 힘을 줬다. 그 순간, 생각이 먼저 무너졌다.

“아… 내일이네.”


이 말이 이상하다는 건 안다.

내일은 그냥 월요일이다.

세상 사람 대부분이 월요일을 맞는다.

그런데 내 몸은 월요일을 ‘일정’이 아니라 ‘사건’처럼 받아들였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숨이 얕아지고 어깨가 굳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이걸 그냥 “피곤함”이라고 불렀다.

피곤해서 그렇지.

요즘 많이 지쳤잖아.

잠만 좀 더 자면 괜찮아질 거야.


문제는, 잠을 더 자도 괜찮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주말에 열두 시간씩 잤다.

잠에서 깨면 시간이 멍했다. 꿈이 너무 많아서, 현실보다 꿈이 더 선명한 날도 있었다.

씻으러 욕실로 가는 일조차 귀찮았다.

샤워기 물줄기를 맞는 동안 “오늘은 회복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물을 끄는 순간 바로 다시 지쳤다.


가끔은 이상하게도, 쉬는 날이 더 괴로웠다.

출근하는 날은 적어도 할 일이 있었다. 해야 하니까 움직였다.

하지만 쉬는 날은 ‘내가 어떤 상태인지’가 너무 또렷하게 보였다.

휴대폰 화면이 꺼진 뒤에도 머릿속에서는 계속 뭔가가 돌아갔다.

• 다음 주 민원 처리량

• 팀장 얼굴

• 내가 놓쳤을지 모르는 실수

• “내가 왜 이렇게 됐지”라는 자책


몸은 소파에 누워 있는데, 뇌는 계속 근무 중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런 질문을 했다.

“내가 쉬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멈춰 있는 걸까?”


‘휴식’이랑 ‘회복’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휴식은 시간을 비우는 거고, 회복은 시스템이 돌아오는 거다.

나는 시간을 비우고 있었다. 하지만 내 시스템은 돌아오지 않았다.


회복이 안 되는 날의 특징은 아주 현실적이었다.


첫째, 자도 개운하지 않았다.

눈을 떴는데 이미 피곤했다.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방전된 느낌.


둘째, 작은 일이 과하게 부담됐다.

연락 하나, 답장 하나, 빨래 하나.

원래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그날은 ‘큰 산’처럼 느껴졌다.


셋째, 감정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어떤 날은 아무 감정도 없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도, 내가 좋아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났다.

어떤 날은 반대로, 사소한 말 한마디에 터질 것처럼 예민해졌다.

감정이 회복되는 게 아니라, 둔해지거나 폭발하는 쪽으로 갔다.


그런 날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약해서 그런가 봐.”


그 문장이 제일 위험했다.

‘약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순간, 나는 해결책을 “더 참고 더 버티기”로 바꿔버렸다.

그래서 더 무리했고, 더 억지로 웃었고, 더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런데 그건 회복이 아니라, 고장 난 상태에서의 추가 가동이었다.


어느 날은 출근길 버스에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필요한 건 휴가가 아니라… 리셋 같아.”


그날 이후, 나는 거창한 결심 대신 아주 작은 실험을 시작했다.

‘인생을 바꾸자’ 같은 말은 내 상태에 맞지 않았다.

대신 “오늘 하루, 회복 조건 하나만 바꿔보자”로 갔다.


가장 먼저 한 건, 늦잠을 줄이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말 늦잠이 나를 더 망가뜨리고 있었다. 리듬이 무너진 몸은 월요일을 더 잔인하게 맞았다.

그래서 주말에도 기상 시간을 크게 흔들지 않기로 했다.


두 번째는, 햇빛이었다.

솔직히 ‘햇빛 쬐면 좋아요’ 같은 말은 너무 교과서 같아서 싫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걸 했다.

집 앞에서 딱 10분, 걸으면서 햇빛을 받았다.

신기하게도 그날은 ‘머리가 덜 뿌옇게’ 느껴졌다. 기적은 아니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세 번째는, 휴식 중에 업무를 보는 습관을 끊는 거였다.

나는 쉬는 날에도 습관처럼 메시지를 확인했다. “10분만 볼게.”

그 10분이 내 머리를 다시 전투모드로 올린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아예 3시간짜리 ‘업무 확인 금지 구간’을 만들었다.


마지막은 아주 짧은 메모였다.

정리하려고 쓴 게 아니다. 생각을 멈추게 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뇌 밖으로 빼놓고 싶었다.

• 오늘 나를 가장 지치게 하는 것 1개

•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 1개

• 오늘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 1개


이걸 쓰고 나면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머릿속에서 같은 장면이 무한 반복 재생되는 건 줄었다.


그때 알았다.

회복이 안 되는 상태에서 가장 필요한 건 “더 쉬기”가 아니라, 회복이 가능한 조건으로 내 하루를 다시 세팅하는 것이었다는 걸.


그리고 이것도 알게 됐다.

회복이 안 되는 사람은 대개 이미 충분히 버텨온 사람이라는 사실.

그러니까, 이 상태를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신호를 알아차린 순간이, 다음 단계의 시작이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쉬어도 회복이 안 되고, 잠을 자도 더 피곤하고, 어느 순간부터 미래 생각이 고문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자해·자살 생각이 스치기라도 한다면, 혼자 견디지 말아야 한다. 그건 ‘참는 문제’가 아니라 ‘연결하는 문제’다. (1393, 1588-9191, 긴급 시 112/119)



나는 아직도 완전히 회복된 사람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쉬는 날의 내가 무너지면 “내가 약해서”라고 결론 내리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지금 내 회복 조건은 무엇이 망가져 있지?”


다음 편에서는 그 질문의 다음 단계로 가보려 한다.

내가 가장 자주 무너졌던 지점—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 고문처럼 느껴질 때’의 이야기로.

작가의 이전글[버티기만 하던 사람들에게]